남산의 눈오는 날 여자친구와 함께
나는 66년도에 고등학교의 졸업식도 참석을 하지 않하고 ,호남선의 완행열차에 책 몇 권과
함께 서울로 향했다. 옛날의 선비들이 과거에 급제를 하기 위하여 도토리 묵 을 싸고
몇 컬레의 짚신을 허리에 차듯이 한양의 길을 향하였다. 그것도 무임승차 ....
근데 나는 과거급제를 보기 위하여 한양을 향하는게 아니라 , 더 넓은 세계에
가서 공부를 열심히 하다보면 나의 '꿈과 목표'를 향하겠지,그려면 그 목표를
달성하여 자아를 형성하고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뭔가 할 수 있는 힘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주 산골의 전기 불도 없고 ,시계 라디오도 없는 농촌에서 서울로
향하였다. 맨날 학교에 갔다오면 소깔이나 베고 소죽이나 써 주는 입장에 언제
공부를 하였을까?
아름다운 고향 산천의 진달레곷이 피고 ,두견새의 울움소리가 아름답고 영산강의
뱃노래가 구슬픈 그리고 따듯한 부모님의 곁을 떠나 한양으로 대학를 다니기 위하여
나주의 고향을 떠나고 있었다. 내 인생에 잇어서 최대한의 전환점(轉換點)이 되었다.
어머니는 걱정이 되어 그냥 여기서 살자고 하였다 .
날씨도 싸늘한 초겨을 , 요즈음의 계절이 된 것 같다. 허름 한 잠바와 책 몇 권을 보자기에
그리고 대학입시에 제출할 사진을 찍어 가지고 , 호주머니에 돈도 몇 푼 없이 상경길에
올랐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누나가 싸 준 도시락과 책과 함께 '남산의 시립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며 대학교 입시공부에 매달렸다. 나주의 촌놈이 도서관의 장서(藏書)를 보니 입이 확 벌어
진다 . 언제 저 많은 책을 공부를 할것인가?
나주의 촌놈 , 겨우 나주 고등학교의 실력을 서울에다 내 놓을수 없는 실력, 나는 공부만이
나의 살길이다. 안암동의 K대 , 남산의 D대학교 대학의 문을 노크 하였다. 남산의 오솔길을 우
람한 노송(老松)과 서울시내의 아름다운 비경, 한강의 서해로 유유히 흐르고 멀리는 '북한산'이
중앙청과 청와대 ,서울시내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꿈을 달성하여 "중앙청'(지금은 헐렸음)의
옆에 있는 직장을 들어가는 사람이 되자" 라고 야심차게 사대문이 있는 서울시내를 바라보면서
마음을 다짐하며 남산길에서 공부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서의 나의 마음 가짐 이었다. 그래서
중앙청 아래의 '서울시청'과 서울시에 몸을 담게 되었는가
서울시 공직의 길을 가다보니 30여년, 어언 정년이란 괴물이 나를, 그 사랑하는 나의 무대
서울시 공직의 무대에서 내려오게 되는 가슴아픈 '정년'(停年)이 나의 현실이었다. 아내는 유방암
이 발병이 되어 투병생활을 하게 되어 이중고의 고통을 나에게 주었다. 결과적으로 아내는
저 세상으로 떠나고 , 초등학교 교사 자격증이 있어 계약제 교사로 생활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그간의 가슴아펐던 이야기는 줄이고 ......
아내가 없으니 ,여기서 저기서 여자친구를 소개하여 준다. 그 여자중에 서울에 K 여고를 나온
엘리트 ,영어를 유창히 하여 외국관광회사의 통역을 하는 가이드를 알게 되어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늘 노상 시간이 있으면 '남산의 오솔길'과 남산에 있는 도서관에서 같이 문학
책을 읽고 ,문학답사를 다니며 아내 없는 허전한 나의 짝이 되어 주었다. 이야기는 자주 하였으니
생략을하고 그래서 남산은 나의 꿈과 그리고 사랑의 열매를 맺게하여준 공간이며 ,나의 서울생활의
가난을 헤쳐 나오고, 나의 꿈을 가질수 있도록 마련해 준 소중한 공간이며 , 여자친구의 사랑의
열매를 가질수 있는 삶의 공간이기도 하다.
서울의 모든 생활을 정리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는 여기 화순에도 '남산(南山)'이 있어 산책과 나의
걷기를 하면서 나의 살아온 인생을 돌아보며, 반추 해 보는 장소이기도 하다. 책 한 권을 들고
무등산을 바라보며 ,멀리 장천(長天)을 나르는 백구들을 바라보며 한가한 농촌형 도시 화순에서 나의
노후를 보내며 ,여자보다는 화순문학회 이사, 서울시문학회 이사 등으로 글을 내며 나주의 지역
신문에도 글을 내며 고향의 품에서 치열한 경쟁도 없고 남을 험담하는 사람도 없는 모든것을 내려놓고
무아의 경지에서 고향이 주는 아름다움과 문학의 소재들이 비일비재하니 자연속에서 책과 글쓰기
등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첫댓글 그옛날
나주가는길
광주를 거쳐서 가는길
그길에 끝이 목단저수지서
소똥밟으면서
낚시 하던 생각이 남니다
그러한 추억이 있었군요
감사합니다
만장봉님은 상처 하신후에 여자 친구가 있었군요
여자친구와 만남 에서 부터 헤어짐 까지의 스토리가 궁금해용
충성 우하하하하하
죄송합니다
그안에 많이 올린바있습니다
다시올리면 다른사람은 식상하여 합니다
만장봉님을 안 만나뵙고도
대타 전기문 한 권 써드릴 수 있는데요.
훌륭하신 만장봉님.
늘 우러러보입니다.
베리꽃님 정도 되시니 그정도이지요 정말 훌륭하십니다
우러러 보기는요 . 그냥 사실에 접근하여 나의 이야기를 하여 보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서울에도 남산이 있고 경주에도 남산이 있고
화순에도 남산이 있군요.
평생을 성실하게 공직에서 근무하시고
이제 여생을 포근한 땅 화순에서 글과 벗하시는 삶이
선비의 삶, 딱 그것이라서 참 뵙기 좋습니다. ^^
감사합니다 달항아리님......
저는 남산하고 인연이 깊나봅니다
연암 박지원선생이 쓴 작품중에서 '양반전'이 있는데 무능한 양반의 사회를 질타하고 허구성을 제시하며
조선사회가 발전을 하지 못하게 한 큰 원인중에 하나입니다
저는 서울시 공직이라도 잘 마쳤으니 무능한 선비는 아니나 봅니다 ...ㅎㅎ
시골 촌놈
남산 구경 가는길
처음 보는 노란 과일
엄청 맛나보여서
하나 사서 남산 벤치에서
어떻게 먹지 고민하다
한입 덥썩 ᆢ
얼마나 쓰던지 그냥
쓰레기통에
감귤 첫인사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러한 경험이 있었군요
늘 유유자적 글 벗 삼아 지내시는 만장봉님 세월이 너무 빠르지요 그 많은 지적인 재산 다 어찌 하시려는지 아깝습니다 이렇게 삶방에 글로 라도 자주 펼쳐주셨으면 합니다.
운선작가님 감사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의 글을 쓸 무대가 좁으니 조금은 답답합니다
각종 수기 공모전에 참여를 하고 있으나 ,그래도 양이 않참니다 삶방이라도 나의 조그마한 이야기를 펼쳐보겠습니다
유명한 교수분이나 강사분은 강의를 하다가 쓸어져 죽기를 원한다고 들었습니다
저도 유명하지는 않지만 책을 보다가 쓸어져 죽기를 원합니다 고통이 없이 스르르 ......
그래도 못다한 책들은 관속에 너 달라고 유언을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