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김도식/건국대 철학과 교수
이 책에 글을 쓴 사람 중 나는 매우 독특한 위치에 있다. 김태길 선생님은
나의 아버지면서 은사이기 때문이다.
나처럼 아버지에게 수업을 들은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을것이며 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철학교수가 된 사람 또한 흔치 않을 것이다.
이 글은 자식의 관점과 제자의 관점이 섞인 상태에서 記述될 것이다.하지만
아버지로 만난 기간이 스승으로 만난 기간보다는 훨씬 더 길기에 자식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것과 싫어하셨던
것이 생각난다.
좋아하셨던 것은 어머니가 준비한 식사였다. 외식을 그리 즐기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집에서 식사하시는 것을 선호하셨다.
싫어하셨던 것은 차를 오래 타는 것이었다. 멀미를 하셔서 그런건지 차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서 그랬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문리대에서 근무하실 때는 혜화동에
살다가 관악캠퍼스로 옮겼을 때 우리 집이 사당동으로 이사를 간것은 학교와 집이
가까워야 한다는 아버지의 주장이 전적으로 반영된 것이었다.
아버지의 사랑을 느꼈던 기억은 아들을 소재로 한 수필이었다. 나의 출생을 다룬
<만생기>다. 만생기를 읽어보면 나의 탄생을 엄청 기뻐하신 흔적이 구구
절절 느껴진다.
어쩌면 그렇게 무덤덤한 척한 서술을 통해 아버지의 기쁨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아버지는 남녀평등을 이론적으로 일찍 받아들이셨음에도 아들에 대한 사랑이 누나들
에 대한 그것보다 더 컷음을 일상에서도 느꼈다.
평생 "아빠"라는 표현을 한 번도 써보지 못할 정도였기에 부자지간이 친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지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셨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떤 방식
으로든 아들에게 전달된 것은 사실이었다.
아버지에부터 배운 것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돈과 시간에 대한 관리였다.
아버지의 철저한 지론은 "돈은 시간을 아끼거나 좋은것을 증진시키는 곳에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좋은것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건강. 사회적 공익
등을 포함한다.
가장 바보같은 짓은 시간과 함께 돈을 허비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대학생들은 돈이
있으면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 많기에 내 용돈이 많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버지의
논리였다.
특히 술을 먹고 늦게 들어와서 다음날 아침까지 정신을 못차리는 경우에는 돈과함께
낭비한 시간에 대해서 지적을 하셨다.
또 하나 아버지의 사랑을 잘 전달받은 것은 아버지로부터 테니스를 배우면서이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테니스를 배웠는데 코치에게서 레슨을 받으면서 배운 것이
아니라 아버지를 따라다니면서 어깨너머로 배우기 시작한 것이었다.
테니스라는 것은 힘이 많이 드는 운동이어서 두세 세트를 하고나면 지치게 마련이다
어렸을 때는 아버지의 마음까지 헤아릴 여유가 없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피로하셨음
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려고 노력하신것 같다.
평소에 걷는것을 좋아하셨던 아버지였고 테니스장을 갈 때는 항상 걸어서 갔지만
올 때는 택시를 타고 왔던 것도 아버지의 피로도와 연관이 있을 듯 하다.
대학에 다니면서 아버지의 수업을 세번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석사과정에서
세미나를 수강했다.
아버지의 수업을 듣는다는 것은 처음에는 매우 어색했다. 동일한 존재가 동시에
아버지면서 선생님이 된다는 것은 머리로 생각하면 별것 아닐 수 있겠지만 막상 현실
에서 그런 상황을 접하게 되면 난감하다.
아버지의 입장에서 수업시간에 아들이 들어와 있다는 것은 훨씬 더 어색하고 불편할
일이었을 것이다.
내가 우리 딸의 고등학교에 가서 특강을 하면서 느꼈던것 역시 어색함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수강한 윤리학은 아버지의 마지막 학부 강의였다.정년을 앞둔 마지막 학기의 수업에
마침 내가 수강을 하게 된 것이다.
강의가 끝나고 과 대표가 꽃다발을 드릴 때 내가 박수로 아버지의 마지막 학부 수업을
축하 드릴 수 있었던 것은 지금 생각해보아도 큰 축복이었다.
종강하는 날에는 강의실에 기자들이 몇 명 와서 취재를 하고 있었고 그 날은 일반적으로
하시던 강의 내용과는 달리 윤리학 일반에 대한 아버지의 생각을 말씀하셨던 기억이
있다.
지금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해서 부끄럽기 그지 없지만 그 교훈 자체는
내 평생에 잊지 않도록 잘 각인되어 있다.
그리고 사재를 털어 마련하신 철학문화연구소도 이러한 아버지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라고 생각하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이후에는 아버지의 명성이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
훨씬 더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철학계뿐 아니라 학계에서 아버지 이름 석자를 대면
모르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나를 소개할 때도 건국대 철학과 교수라는 직함보다는 누구
아들이라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경우도 많이 있었다.
그만큼 내게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이기도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아버지
이기도 했다.
어려서 가졌던 자신감. 즉 아버지보다 더 훌륭하게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아버지의 명예에 누를 끼치지만 않으면 다행이라는 소극적인 기대도 충족
시키지 못할것 같아서 불안해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 전집을 발간하면서 새삼 느꼈지만 아버지만큼 철학적인 업적을 남긴분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이제 겨우 보잘것없는 책 한권을 쓴 내 입장에서 보면 철학적인 업적을 아버지처럼
남기겠다는 생각보다는 아버지 살아계실 때 책 한권이라도 써서 보여드릴 수 있었다
는 것을 위로 삼아야 할 지경이니 말이다.
아바지와 같은 훌륭한 분을 아버지로 모실 수 있는 특권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만큼 나는 혜택 받은 사람이고 그 아버지의 발자취를 어설프게나마 따라갈
수 있는 것 역시 내게 주어진 축복이다.
하지만 아버지와 가진 40여 년간의 추억을 이제는 가슴에 묻어야 할 시기가 되었다.
천상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날 때 그동안 제대로 표현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감사를
마음껏 표현하고 싶다.
우송 김태길선생의 삶과 사상/철학문화연구소 /1910년
이 내용은 3분의 1로 축소해서 올렸음을 알립니다.
http://cafe.daum.net/daum1000
공감/책속의 한줄
첫댓글 부자지간에 교수라니 참 부러운 집안입니다
교수란 직업 부러운데...
아빠의 강의를 들은 아들이 교수가 되고
그 교수님이 아빠를 회상하니
모범이 되는 가정이구요
교회학교에서 울 아들들을 가르쳐 보긴했지요
학습지샘 하면서도 가르쳤고,
근데 강단에서 아들을 보는 재미는 어떨지...
부럽고 또 부럽네요~
좋은글에 부러움 가득 놓고 가요~~^^
그렇습니다. 우리집안의 자랑이지요
김태길교수님은 숙부님이시고 김도식교수는 사촌동생이랍니다
도식이는 어려서 여섯일곱살때 너무나 잘생긴 귀공자였는데
지금은 그 때만은 못하나 성품은 아주 모범적인 사람입니다.
친정할아버지가 독립운동중 옥살이 7년하시고1919년에
출옥하시어 1920년 막내아들 김태길교수를 나으셨지요.
출충한 인물이 나오심은 아마도 옥살이 7.8 여년 금욕생활로
인하여 정기가 축적된 이유가 아닐까 나름데로 상상해봅니다.
김형석교수와 동갑이신데 오래 사실줄 알았어요.
테니스를 너무 과도하게 치신것이 아닌가 이런저런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감사합니다. 느긋한 일상으로 살면 장수하실것입니다
하루가 다르게 흉포한 뉴스가 판치는 세상에
가슴 뜨듯하게 달구어지는 글에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안녕 하세요..? '♡.♡' *☕☕* '♡♡'*─♧
♥.┌─┐┌─┐┌─┐♣┌─┐┌─┐┌─┐♥
♡│머││물││다│♧│갑││니││다│♡
♥.└─┘└─┘└─┘♣└─┘└─┘└─┘♥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보고싶은 마음님 오랫만에 오셨네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