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에서야 다리에 뻐근함이 다 풀린 것 같아요.
수요일까지는 계단을 내려 갈때마다 ' 으흐흐..' 소리죽여 신음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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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과 친구가 되다. -
아-----
대체 세석산장엔 언제 도착한단 말인가.
목말라하며 기다려도 쉽게 만나지지 않는 내 첫사랑처럼
조금만 가면 나올 듯한데...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세석산장이
산행을 시작한지 3시간 30분만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눈에 띈건 샘터와 헬기장이였는데, 거기서 물통에 물을 채우고
헬기장을 지나 산장 가까이 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산장 주변에서
점심 식사를 먹고 막 각자의 하산길..또는 다음코스로 떠날 차비들로 분주했다.
이렇게 여럿이 함께 온 산행팀들이 많으면 그들이 자리 잡고 있는 주변에 지나갈때는
혼자 불쑥 지리산으로 떠나올 용기는 어디다두고 대체 눈을 어디다 둬야 할지 모르는
쑥스러운게 사실이다. 홀로 산행이 이럴때 가장 곤혹스러운거 같다. 남들 한상 차리고
밥먹을때 옆에서 라면이나 삼각김밥으로 소박하게 끼니를 때울때..ㅜ.ㅜ
이럴때 만큼은 함께 오거나 올라오는 길에 말동무라도 사귀었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헬기가 곧 도착한다는 방송에 솔깃해서 20분가량을 산장에서
헬기가 뿌리는 흙먼지 한번 맞아 볼까해서 기다렸지만, 돗자리를 들고
헬기장으로 점심식사 판을 벌리려는 단체팀때문에 거짓부렁으로 방송을
한건지...5분 후에 도착한다는 헬기는 20분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
맘 접고 장터목 산장으로 향한 시간은 오후 3시.
이제 부지런히 걸어가면 5시 이전에 장터목에 도착할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하지만 어쩐일인지 운무가 갑자기 끼기 시작하더니
바람까지 불어오면서 세석평전에서 볼 수 있다는 멋진 뷰는 볼 수 없었다.
지나치는 등산객들의 서운한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난 이런 날씨에 감사했다.
화창한 날씨의 산은 그 산대로.
비오는 날의 산은 그 산대로...
운무가 덮여 있는 산은 또 그 산대로....
색깔과 느낌이 달라 산의 다양한 모습을 그대로
함께 느끼는 것 같아 친밀감이 생기는것 같았다.
마치 잘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되어 가는 과정과 비슷한것 같다.
항상 깍듯하고 웃는 낯으로 대하던 형식적인 사람과
슬프고, 우울하고, 화나고, 감동하는 경험과 시간과 다양한 감정을 함께 겪게 되면서
인간적인 모습으로 서로 친밀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운무로 덮여 침침한 지리산이 여러가지 상념들로 힘들어하는 나의 마음과
함께 한다는 기분 때문이었을까. . .
문득 혼자 산을 오르는게 아니라 산과 함께 동행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 세석산장에서 장터목 산장을 가는 길은 참으로 멋지고 아름답다.
--- 저기요.. 잘 곳 없을까요? ㅜ.ㅜ ---
떠나는 날까지 갈까말까를 고민한 사람이 인터넷으로 10분만에 클로징된다는
장터목 산장예약을 무슨 재주로 했겠는가.
이런 날씨에 비박을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장터목산장이 가까워 올 수록
무대뽀대장인 나도 살짝 걱정이 됐다.
5시 5분전에 장터목산장에 도착했다.
벌써 도착한 사람들이 저녁준비를 하느라 산장 주변은 한참 부산했다.
우선 산장안으로 들어가 눈치를 살폈다. -.-;
예약도 안하고 무작정 처들어왔다고 혼날일이 뻔한데..최소한 사람들이 있을때는
창피당하지 말아야지 싶어서 입구에서 다른 사람들의 출입이 뜸할 기회를
엿봤다. 웅..ㅜ.ㅜ
접수대 조그만 창문 너머 보이는 산장 관리소 안쪽이 어찌나 따뜻하고 편안해 보이던지..
당장 어디든 조금 누워서 쉬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어 아저씨에게 물어봤다.
'아저씨.....저..예약 안하고 왔는데요,, 오늘 숙박이 가능할까요?" 라는 질문에
안경쓰고 살짝 깔끔하게 생기신 소장님이 '혼자 왔어요?'라고 먼저 물으셨다.
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네...'대답했더니 이따가 7시쯤에 예약자들 안오면
그때 순서대로 입장시킨다고 기다리라고 했다.
아....이제 어디서 기다린담. 다들 여러명이서 김치찌게며..삼겹살이며
저녁 겸 술자리겸 하는 자리에 내려가 있기도 뭐하고 해서 그대로 입구에
앉았더니 소장님이 '안으로 들어오소' 딱 한마디 하시길래 얼른 가방들고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크하하 ... 너무 빨리 대답했나. ^^;
젊은 공익같은 남자분이 아주~ 밝은 미소로 문을 열어 주고 커피를 끊여 주었다.
아~ 산에서도 나의 미모가 통하는구만.ㅋㅋ하..이 병은 산에 와서도 호전이 안되고.. -.-;;
환영 분위기도 잠깐 그 안에는 총 4명의 운영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저녁시간에 한참 바빠서 각종 과자며, 햇반이며, 라면 팔느라 바쁘셨고
예약자 확인과 담요 내어주는 일로 정신없으셔서 나는 앉아서 KBS 쇼프로를 보며
뻘쭘히 커피만 홀짝거렸다.
그렇게 얼결에 숙소에 발 들여 놓기 성공!
--- 맘 좋은 장터목 산장지기분들 그리고 빌붙기 노하우 ^^; ---
방문객이 자는 산장안은 2층으로 된 구조로 아랫층은 여자들이 자는 공간이고
1층은 남자들이 자는데 모두 복층 구조로 되어 있거, 공단관리인들이 있는 숙소는
사무실과 아담한 방과 햇반이나 과자등을 파는 밖과 연결된 접수대가 있는 작은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배는 고파오기 시작하는데 네분 모두 바빠서 9시 점호 하고 나서야 저녁을 드신다고
기다리라고 하셨다.
밖에선 사람들의 얘기소리..웃는 소리..누구야~ 동료를 부르는 소리..설겆이 하는 소리...
시골 5일장이 서는날 저녁에 장이 파할때 뒤늦게 가보면 떨이하는 물건을 앉고
계신 아주머니들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각자 짐 정리하고 주변 상인들과 못다한 얘기들을
나누느라 시끌벅적한데... 해가 뉘엇뉘엇 넘어가고 반갑고 즐거운 목소리들이가 가득한것이 소리만 듣고는 여기가 천왕봉 아래 산속이 아니라 어렸을쩍 보았던 5일 장날이 파하는 늦가을 저녁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슴프레 해가 넘어간 밖을 바라보니 오늘 하루가 이렇게 지났구나 싶으니 왠지모를
쓸쓸하고 헛헛한 기분이 든다.
9시가 되고 물건파는 창문을 닫고 나서야 아랫층에 있는 직원 식당에 내려갔다.
매일 2시쯤 점심을 먹고 이렇게 9시가 되야 저녁을 드신다니.. 고단하실 것 같다.
마침 그날 대원사 매표관리 팀장님이 방문차 올라와 계셔서 삼겹살을 저녁식사로
했는데,, 삼겹살에 빠질 수 없는 삐리리도 마셨다. (이거 여기에 써도 돼나..?)
삐리리는 산에서 너무도 귀한 몸이시라.. 다섯명이서 따악 한 잔만 돌아갔다.
가벼운 배낭하나 들고 와서 삼겹살에 삐리리...이게 왠 호강인가. ^^;
이 호강의 근원은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보통 산에 여자 혼자 오는 경우가 드물고,
혼자 오면 관리소장님께 잘 곳을 수줍게 물으면 안에 들어와서 커피 마시며 기다리라고
선심써서 말씀해주신다는데, 한번도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한번도 없었다고...
내가 넙죽 들어와 커피도 마시고 자기집인양 마신 컵도 닦고,
서글서글하게 저녁 준비도 같이 하고 한 냄비에 찌게국물도같이 떠 먹고
주는 삐리리 사양 한마디 않고 받아내고 ^^;ㅋㅋ 하는 모습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라고
하셨다.
워낙 수년간 여행 다니며 쌓은 내공이기에 가능한일인거 같다.
어디든 여행을 가면 민박집 후라이팬부터 식용유.. 안방에 고이 모셔 놓은
더덕술까지 빼오게 해서 같이간 이들로부터 탄성을 들은 몸이긴 하다. ^^;;
특별한 노하우 없다..그냥 그 분들 하는 일에 관심 갖고 막내동생이나
딸이나 조카처럼 얘기를 나누다보면 쉽게 마음이 열리는 것 같다.
내가 어려워하면 상대방은 더 어려워하니 그냥 마음 먼저 오픈하고
편하게 대하면 몇시간 얼굴을 봐도 오래전부터 알아왔던 사람들처럼
사심없는 대화를 나누게 되는거 같다.
아무튼 관리공단분들과 장터목 산장 얘기, 산장 운영 시스템 얘기, 정부 시책에 관한 얘기,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에 대한 얘기, 등산업의 앞으로의 비젼 얘기,
공단의 반달곰 프로젝트 얘기 등을 나누면서 삐리리에서 녹차로 녹차에서 맥주로
밤이 깊어 갔다.
지난주에 비가 와서 망설이고 있던 단풍들이 본격적으로 빨갛게 물들이고 있을꺼에요. 늦기전에 찬찬히 다녀오세요. 올라가다 힘들면 다시 내려오면 되지요... 꼭 끝까지 올라가야 맛은 아니니까요. ^^ 쉬엄쉬엄 맛있는 것도 먹어가며..주변도 둘러본다 생각하고 편한 마음로 시작하세요. 올 가을은 단풍이 늦어서 인지 늦가을이 길 것 같아요...
첫댓글 가을들어 지리산 카페 단풍구경하러 살짝 들어왔다 너무 용감하게 혼자 지리산을 만끽한 산행기에 부러워 눈물이 찔끔나네요. 글도 너무 재밌네요.
올가을에 피아골이나 노고단 한번 가려는데 잘될지.허리가 좀 안 좋거든요..
지난주에 비가 와서 망설이고 있던 단풍들이 본격적으로 빨갛게 물들이고 있을꺼에요. 늦기전에 찬찬히 다녀오세요. 올라가다 힘들면 다시 내려오면 되지요... 꼭 끝까지 올라가야 맛은 아니니까요. ^^ 쉬엄쉬엄 맛있는 것도 먹어가며..주변도 둘러본다 생각하고 편한 마음로 시작하세요. 올 가을은 단풍이 늦어서 인지 늦가을이 길 것 같아요...
오호 여자 혼자 가면 저런 특권도 있구나..^^
남자 혼자가도 그런 특권이 있을꺼에요...^^
잊지못할 장터목산장에 밤을 보내셨군요...
배짱도 좋읍니다.
정말 멋 있군요
인간적인 멋이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