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듣기만 해도 어머니의 넉넉함으로 우리의 마음을 자리잡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오르고 사라져 갔지만 지리산은 항상 그자리에 있다.
여름철 지리산을 오를때 사람들은 온몸을 흥건히 적시는 땀에 진정한 산행의 의미를 찾는다. 거기에다 등반객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줄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인심좋은 산장지기가 있는 산장을 만났을땐 산행의 묘미는 더욱 그러하다.
치밭목산장이 바로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는 ‘오아시스’이며 그곳을 10여년간 지켜오고 있는 민병태씨(45·진주시 이현동)가 바로 인심좋은 산장지기이다.
치밭목 산장으로 지리산천왕봉을 찾던 등산객들은 갈증과 탈진을 이곳의 원두커피와 당귀차로 피로를 한꺼번에 씻어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등산객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치밭목 산장 관리인 민병태씨의 넉넉한 웃음과 구수한 입담때문.
그는 어렵고 올라온 사람들을 지리산의 넉넉함처럼 편안하게 맞이해 지리산에서 마지막 남은 ‘인정이 넘치는 산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민씨는 산청군 생초에서 태어났지만 학업문제로 인해 거창으로 이사해 중·고등학교를 그곳에서 마쳤고 부산에서 대학을 마쳤다.
그는 거창 무심(無心)산악회에서 활동하다 진주로 오면서 마차푸차레산악회에 가입해 본격적인 산악활동을 시작했으며 지난 97년에는 마차푸차레산악회원들을 주축으로 인도 가르왈 히말라야의 케다르나스 원정대의 원정대장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 86년 3월 정연숙씨를 만나 결혼을 했지만 결혼생활 6개월만에 자신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은 지리산 치밭목으로 들어가 피눈물 나는 보수작업으로 치밭목 산장을 재단장하고 문을 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민씨는 “산이 좋아 막무가내로 지리산에 들어왔지만 신혼에 부인을 남겨두고 오는 것이 가장 안타까웠고 애들이 태어날때도 늘 곁에 있어주지 못해 늘 미안한 마음이 듣다”며 “이제는 아내가 어느 정도 이해를 해주고 있지만 가끔 산에서 내려와 다시 올라갈 때 초등학생이 된 아이들이 가지 말라고 억지를 부릴때 가장 마음이 아프다”고 여운을 남겼다.
치밭목 산장지기 민씨는 산악인답게 보통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퉁명한 말투로 처음 그를 만나는 사람은 사뭇 당황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와 대화를 하다보면 순박하고 부담없고 성격에 푹 빠져 들고 만다.
민병태씨가 치밭목 산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지난 86년부터. 치밭목 산장은 지난 71년 정부가 전국의 주요 국립공원 등산로에 산장을 건립할 것을 계획으로 세워졌다. 당시 치밭목 산장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산장으로 방치되면서 험한 등산로로 인해 등산객들이 많이 찾지 않았다.
특히 치밭목을 중심으로 인근의 써레봉에서 동남쪽으로 구곡산까지 뻗어내린 황금능선은 지리산의 마지막 빨치산 정순덕이 최후까지 활동했던 곳으로 일반 등반객들이 잘 찾지 않은 곳이다.
이로인해 지난 71년 세워진 치밭목산장은 16년간 방치되면서 쓰레기와 오물 적재소로 둔갑, 등산객들에게 오히려 반감을 주기도 해 산장을 폐쇄하자는 여론이 일기도 했다.
그렇게 16년간 방치되던 치밭목 산장의 관리권이 국립공원협회 경남지부로 넘어가자 주위 사람들은 민씨에게 치밭목 산장 관리를 제의했다.
민씨는 고심한 끝에 당시 자신이 활동하던 진주 마차푸차레산악회원들의 도움으로 제의를 받아들였고 치밭목 산장을 지리산 등반객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끼는 곳으로 가꾸겠다는 일념으로 대대적인 보수작업에 들어갔다.
민씨는 “대학을 졸업한후 진주에서 개인사업을 하면서 마차푸차레 산악회에 가입해 꾸준히 산악활동을 하고 있는데 무인산장으로 방치되고 있는 치밭목을 한번 경영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면서 “당초 사업도 잘되고 있는 터라 상당한 고민을 하다 주위분들의 제의를 받아들여 이곳에 들어오게 됐으며 이것이 결국 지리산과 인연을 맺게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민씨는 86년 9월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 새재를 거쳐 무재치기 폭포를 지나 치밭목 산장으로 들어갔다.그가 결혼한지 불과 6개월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16년간 방치된 산장을 수리하고 등산로를 정비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지만 그에게 힘이 된 것은 그가 가입해 활동하던 진주 마차푸차레 산악회원들이었다.
민씨와 산악회원들은 써레봉과 중봉사이에 일제시대때 벌목해 방치해둔 철도 침목과 참나무 원목, 그리고 고사목을 잘라 산장내부에 침상과 조리대를 만들었으며 산장 뜰에는 7개의 탁자를 만들어 아늑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또 지난 16년간 치밭목 산장이 폐허로 방치되면서 중봉~무재치기 폭포까지의 8㎞구간의 등산로 주변 쓰레기를 매일 수거하고 등산객들의 안전한 산행을 위해 나무사다리를 만들기도 했다.
민병태씨 부부는 지난 86년 치밭목 산장에 들어온후 3년간 많은 일을 했으며 대표적인 것이 새 등산로 개척과 조난사고를 당한 등산객들의 구조문제였다.
민씨 부부는 써레봉 4㎞구간이 경관은 뛰어나지만 위험하고 식수를 구할수 없는 것을 알고 안전하고 조용하면서도 계속 물을 구할수 있는 루트를 개척했는데 천왕봉까지의 거리도 1㎞나 단축했다.
지금까지 치밭목~천왕봉 등산로는 써레봉의 암릉을 거치는 8㎞의 외길밖에 없었지만 새 등산로는 치밭목 산장 바로 뒷편의 샘터에서 시작돼 외길로 이어지는데 시종 평평한 오솔길을 적당한 간격으로 써레봉에서 흘러내리는 맑고 아름다운 계곡들을 건너며 천왕봉을 오를수 있는 길이다.
해발 1,450m의 치밭목. 민병태씨의 지난 15년간 외길인생으로 보전해온 덕택으로 써레봉, 중봉, 하봉에 둘러싸여 원시수림(原始樹林)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지리산에서 가장 잘 보존된 지역중 한 곳으로 남아 있다.
민병태씨는 지난 86년 치밭목산장에 들어온후 현재까지 수백여명의 조난당한 등산객을 구조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97년 부산고신대생 4명 구조사건이다. 당시 집중호우로 무재치기폭포 부근에서 부산고신대생 4명이 길을 잃고 헤매다 민씨가 22시간만에 극적으로 구조하는 등 지금까지 수백여명의 조난자들을 구조해 ‘훌륭한 도민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하지만 민병태씨는 최근에는 많은 고민에 빠져 있다. 지난 15년간 치밭목 산장관리에 전념하다보니 어느듯 지영(10), 지현(8) 등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경제적인 부담을 안고 있다.
민씨는 “지난 86년 지리산이 좋아 무작정 들어와 폐허가 된 무인산장을 보수, 유지관리하고 있지만 세월이 지나고 아이들이 커 갈수록 경제적인 면이 부담이 되고 있는 것같다”면서 “실제로 어렵고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내 직업을 충분히 이해하고 따라주었으면 더 바랄것이 없다”며 특유의 웃음을 지어보였다.
감사합니다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 이네요 민병태님 몇번 뵈었지만 그렇게 대단한 분인줄이야...8월26일에도 하산길에 치밭목 들러서 캔맥주 한잔먹고 내려왔는데 딱 한마디 하시더만요 " 잘내리가소" 그리고 내용중에 치밭목 샘터에서 써래봉 올라가는 길이 있다는데 아시는분은 꼭알려주세요
첫댓글 러셀님 감사합니다..정말 유익한 정보가 되었습니다.치밭목에 가면 꼭 러셀님소식 전하겠습니다..
한달전쯤 장마때 다녀왓는데..... 등산화 수리하고 계시더만..대단하신분이야..
감사합니다 모두 처음 듣는 이야기 이네요 민병태님 몇번 뵈었지만 그렇게 대단한 분인줄이야...8월26일에도 하산길에 치밭목 들러서 캔맥주 한잔먹고 내려왔는데 딱 한마디 하시더만요 " 잘내리가소" 그리고 내용중에 치밭목 샘터에서 써래봉 올라가는 길이 있다는데 아시는분은 꼭알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