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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나무아미타불 원문보기 글쓴이: 향련
경권은 무겁고 죄의 문서는 가벼워
유씨는 옹주 만년현 평강방 사람으로 당나라 고종 2 년에 이틀 동안 앓고 죽었는데,
죽은 지 육일이 지나도록 그의 가슴이 따뜻하였다.
그래서 가족들은 장례 치를 준비를 마치고 날짜까지 받아 놓았으나 감히 염습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칠일째 되던 날 새벽에 그가 갑자기 다시 살아나서 말하기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붙들려 큰 성으로 들어가니 궁전과 누각이 웅장하고 주변
자연환경이 아름다웠다. 염라대왕 앞으로 끌려가니 바로 이때 염라대왕이
큰 목소리로 네가 세상에서 지은 공덕을 말하라 하므로, 살아 있는 동안에
법화경 두 권을 읽었을 뿐이고 그 밖에는 아무런 공덕이 없다고 대답했더니,
염라대왕이 내가 지은 모든 죄를 조목조목 기록해 놓은 문서를 찾아내서 법화경
두권과 달아보고 법화경 두 권이 죄를 기록해 놓은 문서보다 무겁다 하며 죄의
문서를 버리고, 이 사람은 구십살까지 살아야 한다 하고 죄의 문서를 맡아보는
이에게 나를 석방하여 세상으로 돌려 보내라고 명령하여 이제 내가 다시 살아난
것이라 하였다.
유씨는 마침내 수계를 받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순금으로 법화경을
정성드려 한자 한자 옮겨써서 오래오래 공양하였다.
묘자를 쓸 적에 이미 인간에 환생하다
수나라 개황 연중에 혜초라는 스님이 계셨는데 언제나
착실히 수행을 하셨다.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한번은 데리고 있던 제자 한 명이 나이 이십이 되어
병들어 죽기에 이를 무척 애석하게 여기셨다.
그러던 어느날 혜초스님이 비몽사몽 간에 태산부군묘에
이르게 되어 태산부군에게 여쭈되, 일전에 제자 한 명이
일찍 죽었사온데 지금 어느 곳에 있습니까 하니, 태산부군이
대답하여 가로되, 그 사람은 죄와 복이 모두 없는 까닭에
아직 미결로 이곳에 있노라 하는 것이었다.
이에 혜초 스님이 만나 보기를 청하니 곧 응락하여
사자 한 명을 안내로 동쪽으로 수십보를 걸어가다가 이윽고
그 제자를 만나게 되었는데, 혜초스님이 반가워 하며 고와 낙이
어떠하냐 묻기에 제자가 대답하되, 다만 얽매어 있어 자유로운
행동을 못할뿐이고 고와 낙이라는 것은 아무 감상도 없습니다.
어느 곳에 태어나고자 하나 아직 결정되지 않고 있으니 스님께서
제도하여 주시옵소서라고 하였다.
이에 스승이 어떤 공덕을 지어야 하겠는가 하니 제자가,
법화경 한 벌을 조성하시고 회향재로 일백명 스님들께
만발 공양 시켜 주소서 하고 간곡히 청하니, 혜초가 승낙하였는데
문득 깨어보니 꿈이었다.
이에 혜초스님은 꿈에서 약속한 대로 법화경 한 벌을 쓰고
수행하는 스님 일백 명에게 공양하여 마치기를 다한 후
다시 꿈을 얻어 태산부군을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그동안
경을 쓰고 재를 올린 사연을 말씀드리니 태산부군이 하는
말씀이, 「잘 하였소. 그대의 제자는 스님이 경을 쓸 적에
묘법연화경의 묘자를 막 쓰고 나자마자 좋은 곳에 태어났습니다.
제군이라는 땅에 사는 왕무라는 사람의 집에 남자로 태어났으니
세 살 먹거든 한번 찾아 보시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 꿈을 얻은 후 삼년이 지난 뒤에 혜초 스님은 왕씨 집을
찾아가 지난 사연을 설명하고 어린 것을 보여 달라 한즉
그 부모 이상히 생각하여 어린 것을 안고 나와 보이는데,
갑자기 어린 것이 혜초대사의 품으로 달려들며 슬피 울거늘
모두가 기이하다 여겼다. 혜초가 그 부모에게 잘 양육하여
줄 것을 부탁하고 돌아왔는데 그 아이 장성하여서는 스스로
출가하기를 원하여 다시 혜초대사를 섬겼다 한다.
지옥에서 경을 외우니 후대하고 보내주다
감문교위 이산룡은 무덕연중에 모진 병으로 죽었으나 이상하게도
가슴이 따뜻하여 가족들이 차마 염습을 못하고 있었는데 칠일 만에
깨어나 다음과 같이 명부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였다.
내가 죽어 명부에 들어가 어느 관청에 이르렀는데 그 집 정원은
굉장히 넓고 죄수 수천명이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칼도 차고 고랑도
채워진채 모두 복면을 하고 서 있었는데, 뜰의 대청 위에는 염라대왕이
높은 걸상에 앉고 좌우로는 많은 관원이 시위하고 있었다.
나를 보고 염라대왕이 묻기를, 너는 평생에 무슨 복업을 닦았는가 하기에,
나는 우리 고을 사람들이 부처님께 재를 올릴 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그 시주에 동참하여 왔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염라대왕이 다시 묻기를, 너 혼자 선업을 닦은 일은 없는가 하기에,
법화경 두 권을 늘 지송하여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니 왕이 놀라며 나를
뜰로 오르라 하여 올라서니, 그곳에 동북간으로 높은 자리가 하나 있는데,
왕은 그곳에서 내가 경을 외워줄 것을 청하였다.
이에 나는 좌에 올라 실상 묘법연화경 서품제일이라 경을 외우니 왕이
일어서 공손히 합장 예배하며 말하길, 법사께서는 그만 그치소서 라고
하기에 내가 좌에서 내려 다시 뜰 아래를 돌아보니 아까 가득 차 있던
죄인들이 한 명도 없는지라. 놀라 서 있는데 왕이 가로되, 그대의 경을
지송하는 복이 단지 자기 자신에게 좋은 것만이 아니라 뜰 아래 있던
여러 죄수들까지도 모두 경의 제목 외움만을 듣고도 모두 그 죄를 면하게
된 것이니 어찌 그대를 착하다 하지 않으리오. 이제 그대를 풀어주어
인간으로 돌아가게 하오리라 하여 그곳에서 수십보쯤 걸어 나오는데 왕이
다시 부르며 시위 관리들을 보고 하는 말이, 이 사람을 데리고 가 지옥을
보게 하라 하는 것이었다.
관리들이 왕의 명을 받들어 나를 데리고 동쪽으로 백여보를 걸으니
문득 높다란 성벽이 보이는데,무쇠로 쌓여 있는 그 성벽 가장자리로
많은 구멍이 뚫려 있어 모든 남녀가 땅에서부터 그 구멍으로 날려 들며
다시는 나오지 못하거늘 관리가 설명하되 이는 무간 지옥입니다. 각각
사람마다 지은 업에 따라 옥에 들어가 죄를 받는 모양입니다 라고 하였다.
이에 나는 한편 슬프고 한편 겁이 나 나무불 삼자로 염불하고 또 한 곳에
이르니 커다란 가마가 있어 불이 활활 타며 물이 펄펄 끓는데 그곳의 모든
사람이 앉아서 졸고 있기에 그대들은 웬 사람인가 하고 물은즉 그들이 대답하되,
우리들은 죄가 많아서 이 끓는 가마속으로 들어갈 터인제 그대가 나무불
삼자를 지송하여 주신 공덕으로 옥중 죄인과 같이 하루 쉬라는 명을 얻어 듣고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여 이와 같이 앉아 졸고 있습니다. 라는 것이었다.
이에 더 구경할 마음이 없어 걸음을 급히 하여 인간으로 나왔는데 문득
세 사람이 앞을 가로막고 나서며 나에게 하는 말이, 대왕께서 그대를 풀어주나
우리들의 수고는 잊지 못할 것이라 하였다. 미처 내가 뭐라 하기 전에 관리가
설명하는 말이, 저 사람들은 일전에 그대을 명부로 잡아온 자들입니다.
한 사람은 포승를 맡은 자니 붉은 줄로 그대를 묶은 사람이고, 또 한 사람은
방망이를 맡은 자니 방망이로 그대를 때린 사람이며, 마지막 한 사람은
자루임자로 자루를 가지고 그대의 혼을 잡아 넣은 사람입니다.
오늘 그대가 인간으로 환생함을 보고 무슨 보수를 청하는 모양입니다
라고 하니, 내가 겁이 덜컥나서, 미처 누군지 알아 보지 못하였습니다.
청컨데 집으로 돌아가서 물품을 준비 하겠으니 어는 곳에서 보내 드리리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그들이 대답하길 물가나 마무 밑 모두 좋습니다 하기에
허락하고 하직하여 들아오니 집안은 곡성이 낭자하고 장례 준비로 정신이
없던 터였습니다 라고 말을 마쳤다.
이산룡이 이같은 경로로 환생한 며칠 후에 종이로 돈을 만들고 비단과
여러 가지 음식을 갖추어 물가에 나가서 위채를 불사르는데, 갑자기
세사람이 나타나 하는 말이 그대가 실신을 하지 않고 이제 좋은 물품을
가져다 주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고 자취를 감추는 것이었다.
날짐승이 법문을 익혀 듣고 문득 업장의 몸을 벗어 버리다
동진때 법지라는 스님이 있었는데 여항산에 들어가 토굴을 짓고 법화경을
읽어 외우는 것을 일과로 삼아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그때 그 토굴 옆에 꿩 한 마리가 집을 틀고 있으면서 법지스님의 경전 읽는
소리가 있으면 곁으로 날아와 법문을 들어온 것이 그럭 저럭 칠 년이라는
긴 세월을 채우게 되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 꿩이 법문 소리를 듣고 날아왔는데 법지 스님이 살펴보니
전과 달리 그 모양이 배우 수척하여져 있었다. 법지 대사가 가엾게 여기고
날개를 쓰다듬으며 말하기를 , 네가 비록 날짐승이나 법화경 법문을 잘
들었으니 만일 축생의 몸을 벗어 버린다면 반드시 인간 세상에 환생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법화경을 읽어 마쳤으나 웬일인지 꿩은
돌아가지 않고 뜰 아래로 왔다갔다하며 돌아 다니고 있었다. 이에 법지 스님은
더욱 측은한 마음이 들어 거것이 혹 먹을 것을 찾는 것은 아닌가하여
콩낱 같은 것을 던져 주었으나 잘 먹지 않더니 그 이튿날 새벽에 그만 죽어 버렸다.
대사가 그 몸을 염습하여 깨끗한 곳에 묻어 주었는데 그날 저녁 꿈에 웬
청의 동자가 나타나 공손히 절하며 가로되, 저는 오늘 아침에 죽은 꿩입니다.
스님의 법문소리를 많이 들은 공덕으로 이 산하동 왕씨의 집에 남자로
태어날 터이온데 바른쪽 겨드랑이에 조그마한 꿩 털이 붙어 있을 터이니
그걸 보시면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대사가 생각턴데 내가 꿩이 죽기전에 예언한 바도 있었고
또 꿈이 이상하기도 하니 한 번 징험하여 보리라 하고 왕씨 집 형편을
비밀히 알아 보았다. 그랬더니 과연 열 달 후에 남자 아이가 태어났다 하기에,
대사가 생각하기를 이 아이가 걸음을 걷고 말을 배울 시기가 되거든 한 번
찾아 보리라 다짐하였다.
그후 세월이 흘러 삼년이 되는 어느 날 마침 왕씨 집에서 재를 베풀고는
대사에게 공양할 것을 청하는지라 대사는 좋은 기회를 만났다 생각하고
흔연히 내려가 그 부모를 만나보고 막 인사를 하는 판인데 그 어린 것이
달려들며 우리 스님이 왔다 하고 무한히 반기는 것이었다. 대사 또한
그 아이를 사랑하여 품에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로되 이 아이는
분명 꿩 아이라 하며 아이의 옷깃을 풀어 바른편 겨드랑이 밑을 살펴보니
과연 조그마한 꿩 털 세 개가 박혀 있었다.
삼년 전 대사의 꿈과 일치함에 크게 감탄하는데 왕씨 내외가 이상히 여겨
묻기에 대사가 지나온 일을 낱낱이 설명하여 주고 다시 하는 말이 이 아이는
불문에 인연이 깊은 아이니 일곱 살이 되거든 나의 상좌가 되게 하시오 하니
그 부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흔연히 승낙하였다.
칠세가 되는 어느 날 출가한 아이는 머리를 깎고 오계를 받을 때
겨드랑이에 꿩털이 있다 해서 이름을 담익이라 하였는데, 그에게
법화경을 보여주니 한 자도 서슴지 않고 무른 땅 벗기듯 술술 읽어 나갔다.
그는 대승경전을 섭렵하여 대법사가 된 연후에 동쪽 회계 땅에 놀다가
진망산에 들어 결초위암하고 법화경을 전문적으로 외워 열두 해를 채웠다.
그러던 중 하루는 날도 저물었는데 천하 절색의 여자 한 명이 담익의 토굴로
들어서는 것이었다. 몸에는 채의를 걸치고 손에는 대보금이를 들었는데
그 보금이 속에는 흰빛 돼지 새끼 한 마리와 큰 마늘 두 뿌리가 들어 있었다.
그 여자는 스님 앞에서 울며, 자기는 이 산 밑 아무개 집의 딸로서 산중에
들어와 고사리를 뜯다가 그만 모진 범을 만나 도망쳐 왔는데, 날은 벌써
저물어 산길은 희미하고 수목은 컴컴하며 무서운 짐승은 오락가락 할 것이니
집을 찾아간다 해도 살아날 방도가 없으므로 미안한 말씀이오나 하룻밤 자고
갈 수 있게 하여 달라 하는 것이었다.
담익 대사가 생각컨대 깊은 산중 무인지경에 젊은 남녀가 한 집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매우 혐의스럽다 하여 허락하지 않았더니 여자는 슬피 울며
허락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담익대사는 풀자리를 따로
한 곳에 정하여 주고 다시 법복을 정제한 후 법화경을 읽어나갔다.
밤이 이슥하여졌는데 여자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하며 스님이 보아 주기를 청했다.
대사가 약을 던져 주었으나 여자는 먹지 않고 아프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만일 스님이 나의 가슴을 만져 주신다면 곧 편안해질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금방 죽을 것 같습니다 하며 가로되 일찍이 불법은 자비 방편으로
근본을 삼는다 하였사오니 스님은 어찌 앉아 보시기만 하면서 한 번 손을
다하여 구제치 않습니까 하였다. 이에 대사가 가로되 나는 계행을 지니는
스님으로서 여자의 몸을 만지는 것은 크게 당치 않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여자는 들은 척도 않고 그저 만져만 달라고 하는 까닭에 대사는
어쩔 수 없이 수건을 주장자끝에 매어 멀리 앉아 여자의 배를 문질려 주니
조금 있다가 여자가 하는 말이 병은 벌써 가라앉았으니 감사합니다
하고 잠이 들었다.
날이 밝아 여자가 일어나 뜰 아래로 내려서는데, 채복은 변하여
상서로운 구름이 되고 돼지는 변해서 흰 코끼리가 되었으며 마늘은
변해서 한쌍 연화가 되었다. 그 여자가 발로 연화를 디디며 코끼리위에 올라
구름을 타고 날아가며 하는 말이, 나는 보현보살이더니 네가 오래지 않아
보살도를 얻게 됨에 특별히 와서 한 번 시험하였노라. 네 마음은 물 가운데
달과 같아서 더럽혀 줄 도리가 없구나 하였다. 말을 마치고 표연히 날아가니
그때 공중에서 꽃비가 내리고 땅이 다 진동하는지라.
그날 회계 태수 맹공개가 새벽에 일어나 대청을 거닐 때 문득 남쪽 하늘에서
오색 구름이 일어나며 그 속으로 서기 광명이 비쳐 관청 뜰까지 환하여지고
그 상서로운 구름 밑으로는 금석사 죽지성이 은은히 들리는 것을 목격하고,
너무도 이상하게 여겨져 그 즉시 사방으로 탐문하고 나서는 담익대사가
보현보살을 만나 본 결과임을 알고, 대사의 행장을 갖춰 그 연유로 조정에
알려 임금의 명을 받아 그곳에 절을 지었으며, 임금께서 법화사라 이름을
지어 주시니, 그때는 동진 안제 의희 십삼년 봄이었다.
몸을 연꽃에 의탁
옥엄은 낭야 임기 사람으로 그의 할아버지는 대궐 안에서 문서를 맡아보는
사람이었고, 옥엄의 벼슬은 황문랑에 이르러 신안태수가 되었는데 항상 정성이
지극하여 불교 수행을 열심히 하였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고
법화경을 여러 해 계속 독송했다.
그의 동생인 옥고도 역시 채식을 하며 법화경을 매일 독송했다. 그러다가 옥엄이
죽었는데 동생인 옥고의 꿈에 형이 나타나서, 나는 서방정토 극락세계 무량수불의
나라에 태어나게 되었는데 철엽 연꽃안에 태생하여 오백년 뒤에나 태에서 나와
부처님을 뵙게 될 것이다. 애써 법화경을 외웠기 때문에 극락세계에 태어나게
되었지마는 어리석고 의혹이 많았기 때문에 태속에 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네게
알려주는 것이니 너는 부지런히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옮겨써라 하고 작별하고 갔다.
수명을 더 주고 어깨에 기록
법랑스님은 중국 황하강의 북쪽 산동성에 있는 무성 사람으로 강소성에 있는
팽성 정도사에 가서 사미스님이 되어 있을 때부터 법화경을 읽고 외우고 쓰기
시작하여 늙도록 멈추지 않았다.
개황 13년에 쉰세 살의 나이로 죽었는데 칠일만에 염라대왕을 만났다.
대왕 앞에 여섯 도인이 있있는데 왕이 첫 번째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덕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더니 스님이 대답하기를 「예, 유마거사가 세존의
제자들과 대승불교에 관해 문답한 경인 유마경을 독송했습니다.」하고 대답하니
왕은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하고, 다시 둘째번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행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다.
「저는 세존께서 이 세상을 떠나실 때 가섭. 고귀덕왕. 사자후. 교진여 네 보살의
물음에 대해 일승불성의 미묘한 뜻을 설하신 경인 열반경 열 권을 독송했습니다.」
라고 하니, 왕이 역시 남쪽으로 가 서 있으라 하고, 세 번째 스님에게 「그대는
어떤 덕업이 있는고?」하고 물었다. 세 번째 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는 참회멸죄,
왕법론 및 제천옹호의 사상을 설하신 금광명경을 독송했습니다.」라고 하니
왕은 역시 남쪽에 가 서 있으라 했다.
왕이 다시 넷째번 스님에게 물으니 그 스님이 대답하기를 「저는 열반경을
강설했습니다.」하니 왕은 「서쪽으로 가 서 있으라.」고 했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 스님에게 물으니 스님은 「저는 인도의 천진보살이
화엄경의 십지품을 해석한 십지론을 강설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왕은 눈살을 찡그리고 「북쪽에 가 서 있으라」하고 여섯째번 스님에게도
물어보고 남쪽에 가 서 있으라 하였다.
왕이 이번에는 법랑에게 물었다.
「그대는 어떤 행업이 있는고?」
「법화경을 독송했습니다.」하고 스님이 대답하니 왕이 「동쪽에 가 서
있으라.」하였다.
그리고 왕은 사람을 시켜 북쪽에 있는 사람은 지옥도로 데려가게 하고
서쪽에 있는 사람은 축생도로 데려가게 하고 남쪽에 있는 네스님은 인간세상으로
데려가게 한 다음, 법랑스님은 천상세계로 데려가서 그 태어날 곳을 보게 하고
나이를 여든다섯살로 늘려 집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스님은 천궁에서 돌아와 홀연 깨어났는데 어깨위에 여든다섯 살이라는 붉은
글자가 은은히 나타나 보였다.
기와가 연꽃으로 변해
혜초스님은 단양 건원현 사람으로 어려서부터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법화경
독송을 업처럼 삼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라에서 영을 내려 승려 되는 것을
엄중히 금지하고 단속했다.
이에 스님은 기와굴 속에 숨어서 여러 해를 지내게 되었는데, 뒤에 금령이
없어져 자유롭게 되자 숨어 지내던 기와굴의 주인을 찾아가서, 빈도(貧道)가
이 안에서 법화경을 천여 번이나 독송했으니 깨끗이 소제하여 공양하시고 다시
기와 굽는데 쓰지 마십시오 하였다. 그러나 주인은 스님의 말을 믿지 아니하고
수리하여 전처럼 기와를 구웠는데 꺼내보니 모두 연꽃모양으로 변하여 사방의
벽에 덮여 있었다.
이에 먼데서까지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와 보고 모두 감탄하기를 마지 않았다.
또 혜초스님이 일찍이 절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을 때 사나운 짐승이 와서
들었는데 스님이 수계를 시키니 마치 집에서 기르는 개처럼 온순했으며 스님이,
신도는 이제 돌아가오 하니 맹수는 순순히 가버렸다.
이렇듯 스님이 하신 일들은 이승과 저승을 다 수없이 감동시켜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뒤에 병이 들어서 위독해지자 제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니
혜초스님은, 오래 산다고 기뻐할 것도 없고, 일찍 죽는다고 슬퍼할 것도 없다
하고 서쪽을 향하여 단정히 앉아서 조용히 숨을 거두시니 나이 일흔일곱 무덕 5년
(서기 622) 12월 6일이었다.
문인 중에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가 있어 역시 법화경을 일만여 번이나
독송했는데, 임종하는 날 번개와 하늘꽃이 하늘에서 분분히 떨어지고 하늘의
음악이 요란히 들려와 절에 있던 스님들이 모두 보고 들었다. 또 스님은
연화대가 맞으러 오는 것을 보고 단정히 서서 합장하고 입적하였으니
사방에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구경하러 모여 들었다.
경전에서 사리가 흘러나와
수. 당때의 고승으로 성은 진씨요 화엄종의 제 2조인 지엄스님은 중국 섬서성에
있는 동주 사람이다.
나이 열세 살 때 범승을 만나서 출가하여 계법사에서 법화경. 유마경. 반야경
등을 배워서 그 깊은 뜻을 구명하여 마침내 통달하고 말과 행동이 다 뛰어난
고결한 법사가 되었다.
현경(서기 656~660) 3년에 하북성에 있는 태주 선장현의 여러 스님과
속인들이 지엄스님을 영선사로 청하여 법화경을 강설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스님은 이 절의 환향스님의 방에 거처하게 되어 첫날 밤에 법화경을
책상 위에 펴 놓고 한 대문을 찾아서 독송하려고 하였다.
환향스님과 시자 세 사람이 한 자리에 있었는데 지엄스님이 향을 피우자마자
홀연 법화경의 부처불자에서 세 개의 사리가 나와 오색 광명이 경 위에 찬란히
퍼지고 사리가 이리저리 흫러다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아니함을 보았다.
환향스님이 곧 절의 다른 여러 스님들에게 알려 모두 와서 예배하고 함께 사리를
거두어 모시려고 하니 사리는 도로 부처佛자로 흘러 들어갔다.
이에 스님들이 슬피 울며 예배한 다음 향을 피우고 다시 진용 뵙기를 발원하니,
사리가 다시 부처불자 가운데서 나와 흘러 다니다가 잠시 후에 다른 부처불자로
들어가 차례로 없어졌다.
이렇듯 지엄스님은 법화경을 수십번을 강설하여 영험을 느끼고 상서로움을
얻은 일이 이루 다 말할수 없이 많았다.
스님은 입적하기 며칠 전부터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여러 스님과 아는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찾아보고 작벌인사를 하고는 홀연 어느날 아침에 정원을 깨끗이
조제한 다음 단정히 앉아 선정에 들어가서 그대로 입적하였다.
기이한 향기와 기운이 온 집에 가득 차서 칠일이 지나도록 남아 있었고 그 혀는
입적하고서도 몇 해 후까지 썩지 않고 머리털이 두 치나 자랐으며, 얼굴 빛이
생전과 같아 식견 있는 사람들은 다 그는 득도했다고 하였다.
부처님이 손으로 어루만지심
송나라 나여의 아내 비씨는 중국 감숙성에 있는 영주 사람이었는데 삼보를 믿고
공경하였으며, 여러 해 동안 법화경 독송을 부지런히 힘써 조금도 게으름이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병에 걸려 가슴이 몹시 아프게 되어 그 고통이 점점 더 심해져서
극도에 이르러, 온 집안이 크게 두려워하고 근심하였다. 비씨는 속으로, 내가
법화경을 부지런히 독송하였으므로 반드시 좋은 도움이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끝내 그 보람이 없이 이제 죽어가는 것인가 하고 애타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창밖에서 손을 뻗으셔서 그의 가슴을 어루만져 주시니 이때 집 안
팎이 온통 금빛으로 빛나고 방에는 기이한 향내가 가득했다.
비씨는 꿈을 깨고 나서 그 마음이 몹시 상쾌하였는데 그 뒤로 병이 차차 나아
이내 완쾌되니 이것을 본 사람들은 신심을 일으키지 않는 이가 없었다.
문둥병이 나아
중국 당나라 산서성에 있는 강주 고산의 함천사에 법철선사라는 분이 있었다.
하루는 조용히 산을 돌아다니면서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생각하는 수행을
하는데 한 문둥병 환자가 토굴 속에 있다가 스님을 보자 먹을 것을 빌었다.
이에 스님은 그를 불쌍히 여겨 절로 데리고 와 토굴을 파서 거처하게 하고 옷과
음식을 주면서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는데 그 사람은 본래 글을 모르는데다가
아둔하고 어리석어서 가르치기가 몹시 힘들었지만은, 스님은 한 구절 한 구절
싫증내지 않고 꾸준히 가르쳐 주었다.
절반쯤 독송하게 되었을 때 꿈에 한 스님이 나타나 그를 깨우쳐 준 후부터는
차차 총명해져서 깨달음이 빨랐으며, 이리하여 제 5 권에 이르자 몸의 헌데가
차차 아물더니 법화경을 전부 통달하다 몸이 완전히 건강하게 되었다.
부처님의 말씀은 병에 대해 좋은 약이라는 말의 뚜렷한 징험이었다.
글자가 금으로 변해
장만복이라는 사람이 정관 연중(서기 627~649)에 낙주자사가 되었는데 그
성품이거칠고 포악하여 두무지 성실하지 못했다.
그는 부임해 가자, 관내에 덕행이 높은 스님이 있느냐 하고 물었다. 이에
좌우에서 시중드는 이들이 예, 묘지라는 한 여승이 있는데 수행에 매우 정진하고
또 법화경한 질을 만들어 법과 같이 받아가지고 공양하고 있어서
그 명성이 이 지방에 자자합니다 하고 대답했다.
만복은 시험삼아 사람을 보내어 그 법화경을 가져다 보려고 했지만은 스님은
이를 거절하고 주지 않았는데 이는 자사가 법을 보호하지 않고 또 재계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복이 크게 노하여 다시 사람을 보내 억지로 요구하자 스님은 더 거절할 수가
없어서 법화경을 내어 주었는데 만복은 법화경을 얻기는 했으나 끝내 손도 씻지
않고 경을 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누런 종이이고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만복이 크게 노하여, 그 요망한 할망구가 이럴수가 있느냐하고 곧 좌우에 명하여
스님을 잡아 오라고 하니 사자가 스님에게 가서 말하기를, 스님의 경전에 글자가
한 자도 없어서 자사께서 크게 노하여 스님을 잡아오라고 하셨습니다 하니 스님은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자를 따라 자사의 관가에 이르러 문안으로 들어서니 두 금강신이 금강저를
두 손으로 받들어 스님에게 드리는 형상을 하고 있어 스님은 적이 마음을
놓았는데 바로 안으로들어가 자사의 앞으로 나아가자 법화경이 허공으로
올라가 글자가 모두 금으로 되어 나타났다.
자사는 스님이 이르자마자 금강신과 금으로 글자가 나타난 법화경이 허공으로
올라가 떠 있음을 보고 놀라고 두려워서 급히 대청 아래로 달려 내려가 스님
앞으로 가서 슬피 울며 예배하고 사죄 참회하였다.
만복이 스님에게 그 법화경을 만든 내력을 물으니 스님은, 경을 만들 생각을
하고는 먼저 산중에 닥나무를 심고 늘 향수물을 주어 잘 자라게 했습니다. 그
리고는 닥나무가 크게 자란 다음 진흙에 향수를 섞어서 종이 뜨는 집을 짓고
닥나무 껍질을 벗겨서 법식대로 향수로 깨끗하게 해가지고 직공을 고용하여
종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능히 법을 보호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하여 모집했더니 스물너댓 살쯤
된 강남 사람이 모집에 응해 와서 법화경을 베껴 쓰게 했는데, 우선 진흙에 향수를
섞어서 청정하게 집을 새로 짓고, 서생은 사경을 시작하기 전에 사십구일 동안
재계를 한 다음 새로 지은 깨끗한 옷을 입고서야 비로소 쓰기 시작하였고, 외출했을
때는 돌아와서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다시 썼습니다. 쓸 때에는
소승이 손에 향로를 들고 꿇어 앉아 서생을 공양하였습니다. 법화경은 이처럼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정성을 다하여 완성한 것입니다.
그리고 승니, 남녀 네 종류의 옷을 각 각 열 벌씩 만들어 두고 경전을 빌러 오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이레 동안 목욕재계하게 하고 새옷을 주어 입게 한 다음에야
경전 주었습니다. 이렇게 공경하면 영원히 훼손되지 않을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스님의 법화경에 대한 지극한 정성을 들은 자사 장만복은 마침내 마음을 돌려
신심을 일으키고 법화경 일천 질을 만들 것을 발원하여 널리 사방에 공양하고
자기도 법화경을 받아가져 게으름이 없었다. 임기가 차서 자사가 돌아간 뒤에도
사람들은 법화경 신봉에 정성을 다했다.
선업은 따라 다녀
명나라 세종때 보은사 주지 스님은 말 한 필을 길러 마을에 볼 일이 있으면 그 말을
타고 오고가며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그 마을의 한 여인이 아이를 배었는데 하루는 꿈에 큰 말이 방으로 들어오면서,
저는 보은사 주지스님이 기르시는 말인데 인간으로 태어나서 불도를 구하고자
합니다 하였다. 얼마 후 여인은 아들을 낳았는데 전일의 꿈이 하도 이상하여
사람을 보은사로 보내 알아보았더니, 과연 아이를 낳던 그날 그 시간에 주지스님이
타고 다니던 말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아이가 탈없이 잘 자란 후 여인은 주지스님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아들을
출가시켜, 스님은 그를 상좌로 삼게 되었다.
그런데 몇 해를 두고 가르쳐도 상좌는 머리가 둔해서 도무지 공부가
늘지를 않았다. 그래서 스님이, 네가 전생에 축생의 업보를 받아 익힌 것이 없어서
그렇구나. 그럼 전생에 많이 들은 법화경이나 익히도록 해보자 하고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더니 상좌는 단 한 번을 듣고 법화경 일곱 권을 모두 환히 외워버렸다.
스님은 다음과 같은 법구경을 설하었다.
방금 짜낸 소젖은 싱싱하듯
재에 묻힌 불씨는 그대로 있듯
지은 업은 당장은 안 나타나지만
그늘에 숨어 있어 그를 따른다
그 뒤 스님이 어떤 곳에 갔더니 호수가 있고 호숫가에서 어떤 스님이 법화경을
읽고 있는데, 개구리 한 마리가 그 경 읽는 소리를 조용히 듣고 있다가 끓어앉아
머리를 숙이고 선정에 들어가더니 그대로 죽어버렸다.
당나라의 수아법사는 말하기를, 이는 부처님의 뜻이요 조사의 골수이며
내 마음의 경이다. 눈을 감고 명심하여 자세히 들으라. 제호의 맛이 좋아도
뱃속에 들어가면 곧 벌레다. 어찌 제호의 맛에 취하여 공부하지 않고 잠을 자까보냐.
이치에 통달하라 하였다.
죄의 갚음은 반드시 받아
중국 당나라 섬서성에 있는 부평현의 수리를 맡아 보는 도수감에 딸린 하급관리인
도수소리 반과는 친구들과 함께 들로 놀러 갔다가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양을 쫓아가
잡으려고 했다.
이에 놀란 양이 큰 소리로 슬피 울므로 반과는 주인이 알까봐 양의 혀를 빼어
죽여버렸다. 그런 일이 있은 뒤 얼마 안되어 반과는 혀에 부스럼이 났는데,
녹두알 같은 것이 가득 나서 음식도 먹을 수 없고 말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별의별 약을 다 써 보았으나 아무런 효험이 없어서 마침내 벼슬도 그만두고
날마다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그의 후임자 정여경이 보고, 「이것은 틀림없이
저지른 죄의 갚음으로 받는 업병이니 법화경 한 질을 베껴써서 양의 명복을
빌어 보시오.」하였다. 반과는 문득 양의 혀를 빼어 죽인 일을 크게 뉘우치고
법화경 한 질을 베껴써서 양의 명복을 빌고 부처님께 나아가 진심으로 참회하였다.
그랬더니 과연 얼마 안가서 병이 차차 나아 다시 벼슬을 하고 그 후로는 더욱
부지런히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눈 먼 상 좌
천병산 골짜기에 보문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었다. 규모는 작을망정 천병산
줄기가 내리 뻗어 갑자기 두 갈래로 갈라진 사이 절벽 아래 자리잡고 있어서
아늑하고 경치가 아름다윘다.
계곡을 따라 십여리를 내려가면 무학이라는 마을이 있는데, 비룡천이란 개울이
마을을 휘돌아 흐르고 개울을 따라 기다랗게 기름진 땅이 열리어 생긴 곳이었다.
보문암에는 육십고개를 넘은 철감대사와 왕노인 단 두 사람이 살고 있었고,
무학 마을에는 벼슬을 버리고 이곳에 옮겨와 서원을 짓고 정주하고 있는,
철감대사와 같이 불교를 신봉하는 유일한 친구요 지기가 된 고진사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새벽 비몽사몽간에 한 부인이 나타나서 철감대사에게 발우 한 벌을 바쳤다.
스님은 제자를 얻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고, 아침 공양을 마치자 암자를 나섰다.
하루의 일과를 마친 스님은 발길을 돌이켜 암자로 향했다. 일과인 법화경을
독송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하면서 평일보다 좀 늦어졌구나 생각한 스님은 발길을
재촉했다. 바로 그때 시냇물 소리에 섞여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스님은 울음소리를 따라갔다. 반석 위에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가 울고 있었다.
스님은 장삼소매에 받쳐 안고 보문암으로 돌아왓다. 등불을 밝히고 어린아이를
살펴 본 스님과 왕노인은 놀랐다. 어린아이가 장님이었다. 스님은 한참 어린아이를
들여다보고는 업보는 어찌 할 수 없는 일이지 하고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두 노인은 심력을 다해 어린아이를 길렀다. 아이의 이름은 혜안이라고 지었다.
팔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어느날 새벽에 스님을 따라 법당에 올라가 예불을
마치고 나온 혜안은 비통한 표정으로, 저는 스님의 은혜만 입고 아무 보람없이
살아가니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죽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스님은, 네 이름은
혜안이다. 혜안은 육안으로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이다. 네가 내 말대로만
한다면 십년 뒤에는 중생을 살릴 수 있는, 모든 의원 중에서 으뜸이 되는 부처님의
대의왕이 될 것이다 하고 타일렀다.
그날 저녁때 스님은 비룡천 개울가에서 삼베 자루에 모래를 가득 담아 가지고
암자로 돌아왔다. 혜안과 함께 목욕재계하고 법당에 올라가 예불한후에
혜안을 모래자루 옆에 앉히고 말했다.
「너는 지금부터 십년동안 이 모래자루를 주무르면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불러라. 그러면 이 모래 한 알 한 알이 다 신선이 만들어 먹는 효험이
신기하고 오래 사는 약인 선단으로 변할 것이다. 그러나 내 말을 조금이라고
의심하면 헛일이 될 것이다. 능히 할 수 있겠느냐?」
「예, 이르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혜안의 얼굴에는 기쁨과 희망이 넘쳐 흘렀다. 혜안은 기어코 선단을 만들고야
말겠다고 굳게 결심하고 그날부터 모래자루를 만지면서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스님은 전보다 더 간곡하게 불법을
가르쳐 주고 불보살의 뛰어난 행적을 일러주어 성불을 도왔다.
혜안이 정진을 시작한지 벌써 구년이 되었다. 그 동안 모래자루를 스물일곱 번이나
새것으로 바꾸었고 모래알은 모가 닳고 닳아서 금강석같이 빛이 나는데 아직 선단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혜안은 정진을 멈추지 않았다. 더욱 정진에 정진을 더해갔다.
철감대사는 여든세 살의 고령으로 이제는 기력이 많이 쇠약해졌다. 어느날
대사는 평일처럼 이른 새벽에 혜안의 부축을 받아 법당에 올라가서 예불을
마치고 거처하는 방으로 내려와서 왕노인을 불러 고진사를 청해 오라고 했다.
부탁할 일이 있다는 것이었다.
기별을 받고 고진사가 급히 암자로 왔다. 왕노인과 혜안이도 옆에 모시고 앉았다.
대사는 새옷으로 갈아입고 단정히 앉아 조용히 입을 열었다.
「갑자기 진사어른을 오시라고 한 것은 부탁할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실은
오늘로 나의 이 세상 인연이 다하는 것 같습니다. 혜안이 너는 내가 간 뒤에도
부처님과 관세음보살님을 성심으로 모시고 공부를 계속하여 내 뒤를 이어라.」
모두 대사가 입적한다는 말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대사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왕노인은 오늘부터 절의 살림을 맡는 총지거사가 되어 주시오. 그러나
이 암자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려면 고진사께서 적극 도와 주셔야 하겠습니다. 두 분께
뒷일을 부탁합니다.」
말을 마친 대사는 합장하고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을 염한 다음 조용히 자리에
누워 영원히 눈을 감았다. 철감대사가 입적한 이듬해 시월 십사일은 혜안스님이
정진을 시작한 지 만 십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러나 모래는 아직 선단이 되지
않았다. 혜안스님은 실망하지 않고 앞으로 다시 십년이 더 걸리더라도 기어코
철감대사의 뜻을 이루리라 결심했다.
이튼날 혜안스님이 법당으로 올라가 예불을 마치고 내려오는데 한 신도가
황급히 달려와서, 스님, 스님, 큰일 났습니다. 고진사 어른이 그만...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스님은 그를 따라 급히 고진사가 있는 데로 갔다. 여러 사람이
모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고진사는 중풍을 일으킨 것이었다. 스님은
사람들을 물리치고 고진사의 맥을 짚어 보았다. 맥박이 몹시 잦고 몸이 불덩이
같이 뜨겁고 숨소리가 몹시 가빴다. 스님은 고진사의 옷을 벗기게 하고 모래를
자리에 흩고 고진사를 그 위에 눕히게 한 다음, 온 몸을 주무르면서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한참만에 고진사는 차차 정신이 들어 눈을 떠 사방을 둘러보았다. 얼마 안되어
고진사는 언제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깨끗이 나았다. 모두들 이 엄청난
기적에 오히려 말이 나오지 않았다.
혜안스님의 기적같은 의술의 소문은 자꾸만 번져나가 병자들이 한 사람 한 사람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몇 달이 안되어 하루에 사십 명 오십 명씩 불어 나갔다.
그리고 아무리 중한 병에 걸린 사람도 스님의 치료를 받기만 하면 새사람이
되어 돌아갔다.
이 무렵 대궐에서는 공주가 중풍에 걸려 삼년 동안 온갖 약을 다 써 보았지마는
조금도 차도가 없어서 온 대궐 안이 근심으로 나날을 보냈는데, 혜안스님의 의술이
용하다는 소문이 서울에까지 알려져서 대궐에서도 알게 되었다.
사신이 급히 말을 달려 보문암으로 내려왔다. 스님을 만나 왕명을 전하고 급히
상경하기를 청했다.
스님은 이 보문암으로 찾아오는 병자들을 응급조치할 수 있도록 마련한 후
모래주머니를 가지고 사신을 따라 서울로 올라갔다.
혜안스님은 대궐로 들어가 공주의 병실로 인도되었다.
잠시 공주의 맥을 짚어 본 다음 병실에는 왕후와
여관 한 사람, 그리고 시의 한 사람만 남아있고 다른 사람들은 다 물러가게 했다.
스님은 자리에 모래를 깔고 공주를 속옷만 입혀 모래 위에 눕히게 했다. 그리고
합장하고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며 공주의 맥을 따라 주물렀다.
스님이 치료를 마치고 미처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공주가 크게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 앉았다.
삼년 동안이나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던 중환자가 금시에 정신을 회복하고
자리에 일어나 앉았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이랴. 참으로 기적이 일어난것이었다.
임금과 왕후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이 공주의 회복을 기뻐했다. 임금은
몇 번이고 고맙다고 치하하고, 스님의 소원을 말씀하시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면 무엇이고 이루어 드리리다 하였으나, 스님은 아무런 소원이 없다고 하고
곧 돌아가기를 원했다. 임금은 대신을 불러 해마다 쌀 오백섬을 보문암에
내리게 하고, 스님에게 왕이 내린 증표로 내어 보이면 어떤 관원이고 그의 청을
거역하지 못하는 여의패를 내렸다.
혜안스님이 천병산 보문암까지 이틀길이 남은 두 고을의 경계에 이르렀을 때
행렬 앞에서 여인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앞 못보는 불쌍한 여인입니다. 밝으신 사또께서 제 딸을 찾아 주십시오.
제 딸을 찾아 주십시오.」
호위하는 군사가 여인을 꾸짖어 물리치려고 했으나 여인은 그냥 몸부림치며
호소했다. 스님이, 잠깐 나를 내려주고 저 여인을 데려와 주시오 하여,여인이
스님의 앞에 인도되었다. 여인은 장님이었다. 스님이 인자한 말소리로, 무슨
사연인지 말씀해 보십시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도와 드리겠습니다 하고 물었다.
「저는 죄 많은 여인입니다. 남편을 잃고 눈이 멀어 어린 딸을 지팡이 삼아서
유리걸식하다가 오늘 이 근처에서 어떤 자에게 딸을 빼앗겼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갑니까.」 하고 여인이 애원했다. 그리고 빼앗아 간 사람은 이 고을
관속들이라 하더라고 했다. 스님은 우선 그 여인을 고을 숙소로 데리고 가게 하였다.
마중나온 원이 이 사실을 듣고 이것 큰일 났구나 생각하고 스님과 여인을 객
사로 인도해 들인 다음 급히 아전들을 불러, 어느 놈이 그 여인의 딸을 겁탈했느냐?
영접나갔던 관속들을 모조리 형틀에 올려매어라 하고 불호령을 내렸다. 관속들은
사시나무 떨듯했다.
그리고, 일을 저지른 놈은 빨리 나오너라 하고 아우성을 쳤다. 한 군노가
벌벌 떨면서, 소인이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했다.
원은 곧 군노를 옥에 가두고 처녀를 데려다가 그 어머니에게 인도하고
스님의 앞에 끓어앉아 자기의 불찰을 사죄했다. 그리고 범인은 곧 처형하겠다고했다.
인자한 스님은, 그러실 것까지는 없습니다. 사람은 찾았고 범인은 자백하였다니
잘 타일러서 석방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였다. 원은, 인자하신 뜻을 받들어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범인을 데려오라 하여, 너를 당장 처형할 것이지만
인자하신 대사님의 분부로 석방해 주는 것이다.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렸다 하고
결박을 풀어 주었다. 군노는 눈물을 흘리면서 수없이 절을 하고 물러갔다.
딸을 찾은 여인은 감격하여 합장하고 울면서 그 은덕을 고마워했다. 더욱이
스님도 자기처럼 장님이라는 것을 알고 자기의 지난 날 일이 회상되어 하염없이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스님은 여인을 다정하게 위로하고, 은혜와 원한은 백지 한 장 차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은혜와 원망은 모두 마음의 집착에서 오는 망녕된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망녕된 생각을 없애려면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염하면 됩니다.
라고 하였으나 여인은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스님은 다시, 선과 악 그리고 그 인과응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죄지은
사람이라도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하면 죄가 없어집니다 하고 부처님의
가르치심을 설했다. 여인은 어쩐지 스님의 내력이 마음에 걸렸다. 길게 한숨을
내쉬고, 스님은 어느 절에 계십니까? 성씨는 누구신지요? 부모님은......? 하고 물었다.
「예, 나는 천병산 보문암에 있습니다. 나에게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안계십니다.
철감대사께서 강보에 싸여 개천가 반석위에 버려진 나를 데려다 기르셨으니
성도 모릅니다.」하고 스님은 기탄없이 대답했다. 여인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그럼, 지금 스님의 연세는 얼마이십니까?」
「열 아홉입니다.」
혹시나 하던 여인은 이제 더 의심할 여지가 없게 되었다. 스님에게 왈칵 달려들어
얼싸안고 흐느껴 울었다. 스님도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스님은, 지난 일을
슬펴하실 것은 없습니다. 떳떳하게 자식이라고 부러 주십시오. 모두가 인연입니다.
피할 수 없는 업보 소관입니다 하고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날 밤 스님은 어머니의 눈을 뜨게 하였다. 어머니는 버릴 때의 아들을
생각하면서 하염없이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윽고 딸을 불러 세 사람은
다시 한 번 얼싸안고 목을 놓아 울었다. 자정이 지나 문득 스님의 눈도 검은 안개가
깨끗이 걷혔다. 세 사람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부처님의 뜻에 감사하여
스님은 법화경을 독송하고 모녀는 관세음보살을 염했다.
여인이 참회의 눈물을 걷잡지 못하면서 이야기한 내력은 다음과 같았다.
스물세 살에 여인과 결혼한 스님의 아버지 남씨는 부농의 아들인데, 몸이
허약한데다가 과거 공부에 너무 애를 써서 결혼한 지 사년만에 스님을 유복자로
남겨놓고 죽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낳아 기르며 홀로 일생을 마치기로 결심했으나
남편을 잡아먹었다고 트집을 잡아 못살게 구는 시어머니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몇 번을 죽을 생각까지 했었다. 그 무렵 이웃에 사는 문씨라는 청년이 넌지시
동정하여 마침내 어느 날 밤 두 사람은 무작정 집을 떠났다.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고 아디로 가서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그렇게 유랑하다가
어느 집 헛간에서 몸을 풀었다. 갓난아이는 장님이었다. 두 사람은 생활고에
몸부림쳤다. 갈수록 앞 길이 막연했다. 문씨의 짜증이 날로 늘어났다. 그들은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일구기로 하고 천병산 골짜기로 들어섰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종일 길을 걸은 그들은 지칠대로 지쳐서 이제 한 발자욱도 옮길 기력이
없었다. 시냇가의 반석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은 저물어 갔다. 어떻게 시장기를
면할 것인가, 어디서 또 하룻밤을 지낼 것인가? 그저 답답할 뿐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죽어버리자고 도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마침내 문씨는 눈 먼 아이를 버리고 가자고 했다. 옥신각신 싸우다 못해
어머니가 졌다. 두 사람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어린아이를 뉘어두고 힘없이
발길을 옮겨 놓았다. 얼마를 걸어갔다. 그러나 버리고 온 어린아이가 눈앞에
아른거려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죄책감이 마음을 쥐어뜯었다. 견디다 못해
두 사람은 발길을 돌이켰다. 쉬던 자리에 이르러보니 어린아이가 간 곳이 없었다.
필시 산짐승이 물어간 것이라 생각하자 미칠 것만 같았다.
그 근처를 얼마를 헤맸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했다. 두 사람은 천병산에서
사는 것이 두려웠다. 며칠을 북으로 북으로 도망치듯 발길을 옮겼다.
그러다가 한 곳에 이르러 어느 부농의 고용인이 되었다. 문씨는 머슴살이,
어머니는 식모가 되었다.
이때 딸 정화가 태어났다. 두 사람은 오륙년을 부지런히 일하여 조그만 집도
장만하고 논도 몇 마지기 손에 넣었다. 이제 그런대로 아무 걱정없이 살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또 불행이 닥쳐왔다. 어느 해 그 지방에 전염병이 돌아
문씨가 병에 걸려서 마침내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는 눈앞이 캄캄했으나
딸 하나를 정성을 다해 키우리라 결심했다. 굳세게 살아가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문씨가 죽은지 일년 남짓하여 까닭없이 어머니의 눈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더니 기어코 아주 멀고 말았다. 일을 할 수 없었다. 얼마 동안은 논을 팔고
집을 팔아 살아갔으나 이제 아무것도 없게 되어, 어머니는 딸을 앞세워서 지팡이를
삼아 이 마을 저 동네로 구걸하여 목숨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이번에 그 딸을
군노에게 빼앗겼던 것이다.
「천벌을 받아 진작 죽었어야 할 어미였다.」
지난 일을 울음 반 말 반으로 다 이야기하고 난 여인은 설움이 다시금 북받쳐
올라 흐느꼈다. 정화도 울고 스님도 울었다.
이튿날 아침 원 이하 모든 사람은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하룻밤 사이에
장님이었던 스님이 눈을 떳고 장님이었던 여인이 눈을 떴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인이 스님의 어머니라는 말을 듣고는 또 한 번 놀랐다.
법화경을 독송하고 관세음보살을 염한 공덕이 이렇게도 클 수 있느냐고
모두들 불법의 거룩함에 새삼스러이 탄복했다.
혜안스님은 어머님와 누이동생을 데리고 보문암으로 돌아왔다. 수백 명의
환자가 스님이 돌아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스님은 환자들의 병을 고쳐주기에
눈코 뜰 사이가 없었다.
어머니는 삭발하고 출가하여 보살행을 힘썼고, 감격하여 따라온 군노는
전혀 딴사람이 되어 절의 온갖 일을 도맡아 했다.
나라의 도움도 있고 하여 절은 크게 번창해갔다.
전각이 잇달아 세워지고 신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보문암을 보문사라 부르게
되었고 세상 사람은 혜안스님을 혜감 대사라 불렀다.
천병산 골짜기에서 법화경을 독송하는 소리가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영기가 멀리 멀리 퍼져 나갔다. 그 소리와 영기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깨끗하게 정화시켜 나갔다.
<佛敎生活>
장님으로 눈이 없어도 능히 보아
청신사 왕범행은 중국 산동성의 낭야현 임기 사람으로 어려서 양쪽 눈이 다
멀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자비로운 마음으로 입으로 법화경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나이 열여덟에 법화경을 통달하여 밤낮없이 열심히 일만 칠천 번을 외웠으니,
비록 눈이 멀어 보지는 못했지마는 길을 걸어도 남이 인도해 줄 필요가 없었고
또 길 가운데 구덩이가 있음을 스스로 알았으며 능히 자리를 짜고 옷을 꿰메고
편지쓰기를 오히려 눈성한 사맘보다 더 잘했더라,
그래서 사람들이 모두 신기하게 여기었다.
그가 일흔한 살의 나이로 개황 육년에 명을 마쳤는데 그의 시체를 들판에
내다놓으니 새와 짐승이 감히 가까이 가지 못하였고, 살이 다 없어진 뒤에도
백골이 남아 있어 혀가 입 밖으로 한 자쯤 나와서 빛이 연꽃과 같이 아름다웠다.
그의 아우인 혜의가 벽돌로 함을 쌓아서 넣어 두었는데 오래도록
그 혀는 썩지 않았다고 한다.
자리에서 향내가 나
만상스님은 옹주 만년현 사람으로 법화경을 낭송하고 그 뜻과 이치를
십여 번이나 해설하였다.
스님이 일찍이 처마 밑에서 법화경을 외우고 있노라니 흰 꿩이 홀연히
날아와서 좌우에 엎드리는지라. 스님이 손으로 잡아도 놀라서 나부대지
않고 무시로 왔다갔다 하였다. 또 화로에 숯불이 저절로 피어나기도 하고
혹은 좌상 뒤 자리 밑에서 자주 기이한 향내가 나며 또 방 뒤의 나무위에
탑 같은데 모셔 놓는 조그마한 불상이 어느 사이에 와 있기도 하였는데,
푸른 참새 한 쌍이 양쪽에 스님을 모시는 듯 서 있다가 스님이 그 불상을
모셔 들여오니 새는 훌쩍 날아가버렸다.
또 스님이 한밤중에 조용히 앉아 있는데 홀연 비몽사몽간에 서북쪽 하늘에
굉장히 높고 아름답게 장식한 보탑이 나타나고, 동북쪽에서는 일곱 개의
별 속에서 일곱 부처님이 나오시니 금빛 찬란한 모습이 한없이 단아하고
명랑하신지라, 서로 기뻐하시고 예배 찬탄하시더니 잠시 후에 유연히 없어졌다.
만상스님은 법화경을 사천여 번이나 외웠는데 입적할 대 제자더러 보현보살의
이름을 부르라 하더니 갑자기, 보현보살이 오셔서 내 오른쪽에 계시다고
하고는 숨을 거두니 나이는 일흔 살이었다.
호주의 천하상좌
중국 오나라 오흥에 본명이 포옥인 한 스님이 있었는데
어머니 매씨가 스님을 잉태할 때 신령스러운 상서가 있어
냄새나는 풀을 싫어하였다.
나이 일곱 여덟 살이 되자 여승이 관장하는 이총지의
법화사에서 출가하여 법화경 외우기를 소원하니 석달만에
환히 외우고 날마다 칠권을 다 독송하였으며, 스무 살 때
서울로 가서 수계를 받아 계율과 불도 수행을 맹세하였다.
이에 앞서 숙종황제가 밤에 꿈을 꿨는데 오나라 슬여가
법화경을 독송하니 그의 입에서 오색 빛이 나오고 그 목소리는
맑고도 고왔다.
이튿날 아침 황제는 영을 내려 서울 안에 있는 승려로서
법화경을 외울 수 있는 이 이백 명을 대궐 안으로 불러들여
보았으나 모두 꿈의 그 스님이 아니었다.
이때, 포옥이 마침 관중으로 들어오는데 관문을 지키는
우두머리가 멀리서 온 까닭을 물었다. 이에 포옥은 나는
법화경을 잘 독송합니다. 그래서 수계하러 왔습니다 라고
말하니, 관문 지키는 관령이 황제에게 아뢰었고 또 황제는
곧 그를 불러들여 보고는, 내가 꿈에 본 그 사람과 목소리와
용모가 흡사하다 하고 전각에 오르게 하여 자리를 주고
법화경을 독송하라 하였다.
스님의 독송이 수희공덕품에 이르자 입에서 오색빛이
내뻗어 황제가 크게 기뻐하며, 내가 꿈에 본 사람이 바로
이 사람이다 라고 하였다. 독송이 끝나자 황제는 우유와
호도와 백합으로 죽처럼 만든 칠보탕을 하사하고 새로이
향단을 쌓아서 수계하게 하고 대광이란 법명을 내리고
천하상좌에 봉하여 천복사에 있게하였는데, 스님의
독송하는 소리가 널리 퍼져서 늘 황제에게도 들렸다.
스님은 또 중국 섬서성의 남전 장사사에 있었는데, 이 절
스님의 꿈에 천상계의 동자가 내려와서 대광스님의 경 읽으시는
소리가 유정천에까지 들려옵니다. 그 분은 예사 분이 아닙니다
라고 하였다.
이 무렵 모두들 대광스님을 양나라 때 이총지의 후신이라고 했다.
뒤에 스님은 황제에게 청하여 오흥으로 돌아와 있었는데
이때, 이신이란 사람이 오흥의 자사로 있었다. 하루는
술이 취하여 지경도량에 쓰러져 자가다 밤에 깨어 보니
흰 빛이 대광스님의 방안에 가득한지라, 이상하게 생각한
이신은 문 틈으로 스님의 방 안을 들여다보니 스님이
선정에 들어 몸과 마음을 깨끗하고 조용하게 하고 경을
독송하고 있는데 스님의 입에서 흰 빛이 나오는 것이었다.
독송하는 소리가 멎자 빛도 따라서 거두어졌다.
이를 본 이신은 본래 불교를 그다지 깊이 믿지 않았지만은
대광스님을 깊이 공경하여 친히 비문을 지어 제목을
묵조지경대덕신이비문이라 하였다. 전에 스님이 황제에게
글을 올려 오흥으로 둘아가기를 청했을 때 황제가
친필조서인 묵조를 한 통 내렸던 것이다.
신인이 허공에 머물러
현진스님은 중국 안휘성의 수춘 사람으로 영복사에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는데 잠시도 게으름을 피우는 일이 없었다.
어느 해 가을 달이 휘영청 밝은 밤이었다. 스님은 달을 바라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법화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제 칠권의 절반쯤 이르렀을 때
옆방에 있는 한 사문이 갑자기 일어나서 변소에 가려고 방에서 나와
뜰에 내려서 보니 밝은 달빛에 엄청나게 큰 사람의 그림자 같은 것이
마당에 비치고 있었다. 무슨 그림자인가 하고 머리를 들어 사방을
둘러보니 공중에 한 신인(神人) 이 의연히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사문은 걸음을 멈추고 똑바로 서서 우러러 보았는데 현진스님의
법화경 독송이 끝나자 신인도 홀연히 없어졌다.
사문은 이때부터 법화경을 배워 독송하여 종신토록 게으름이 없었다고 한다.
폭풍이 배를 뒤엎어도
신라 때 보개라은 한 여인이 서울(경주) 우금방에서 살고 있었는데
장춘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그 아들이 장삿배를 따라 바다로 나가서
돌아올 때가 되었으나 소식이 묘연하여 어머니는 아침 저녁으로 근심
걱정하다 몸까지 몹시 쇠약해졌다.
그러다가 다행히, 관세음보살의 신통한 힘에 의하여 설혹 폭풍이 불어
그 배가 표류하여 사람 잡아 먹는 흉악 무도한 나찰귀의 나라에 떨어질지라도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곧 환난에서 벗어날것이라는 관세음보살의
시현하심을 듣고 곧 깊은 신심이 생겨, 민장사의 관세음보살상 앞에서
이레를 기약하고 정성껏 부지런히 기도를 드렸다.
이레째 되는 날 홀연히 장춘이 나타나 어머니의 손을 잡으니 어머니는
놀랍고 기뻐서 아들을 얼싸안고 울었다.
절의 스님이 괴이하게 여기고 그 까닭을 물어보니 장춘이 말하기를,
제가 집을 떠나 바다로 들어갔다가 갑자기 폭풍을 만나 함께 배에 탔던
다른 사람들은 모두 고기밥이 되고 저만 홀로 널빤지를 타고 오나라에
표착했는데 그 나라 사람이 나를 데려다가 종으로 부렸습니다.
하루는 들에 나가 밭을 갈고 있는데 문득 한 기이한 스님이 와서 말하기를 ,
고국이 생각나지 않느냐고 하기에 나는 그의 앞에 꿇어 앉아서, 늙으신
어머님이 계시어 사모하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하였더니, 만약 어머니를
만나보고 싶거든 나를 따라오라하고 동쪽으로 가기에, 나는 곧 그 뒤를
따라 갔습니다. 한 곳에 이르니 수좌스님이 내 손을 잡아 이끄는데 정신이
몽롱해져서 마침 꿈 속과 같더니 홀연 우리나라 말이 들리고 내가 이 민장사의
관음상 앞에 와 있었습니다. 이내 우리 어머니인 줄을 알았지만은 오히려
꿈 속 같습니다. 라고 하였다. 천보사년 을유 사월 팔일 신시에 오나라를
떠나 술시에 이 절에 이른 것이었다.
경덕왕이 이 소문을 듣고 깊이 공경하여 전답과 곡식을 후히 내려 영구히
공양에 이바지하게 하고, 다달이 팔일이면 절에 행차하여 부처님께 예배하여
그 공덕을 찬탄하는 것을 정례로 삼았다. 어머니 보개와 아들 장춘은 인근의
청신사와 청신녀들과 합력하여 특별히 금자 법화경 한 질을 만들었으며,
해마다 봄 삼월에 도량을 베풀고 법화경의 미묘하고도 깊은 이치를 강설하여
수행에 정진하고, 관세음보살을 공경 예배하여 큰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敏藏寺記. 鶴林古記略. 傳弘錄>
항쇄 족쇄가 저절로 벗겨져
진나라의 장창이 초왕이 되었는데 그는 장사왕과 함께 어떤 일로하여
죄를 다스리는 관아에 체포되었다.
장창은 일찍부터 정법을 믿고 있었는데 체포되자 곧 발심하여
법화경 보문품을 일천 번 독송하여 죄를 면하기를 바랬다. 마음에
생각하여 입으로 하는 말이 지극해서 항쇄 족쇄가 저절로 끊어지고
부서져서 두 사람 모두 처벌을 면했다고 한다.
개호는 중국 강소성의 산양 사람으로 옥에 갇혀 죽게 되었는데
사흘 낮 사흘 밤을 잠시도 쉬지 않고 꼬박 관세음보살을 부르니
관세음보살이 눈에 보였다. 보살이 빛을 놓아 그를 비추니 형구가
벗겨지고 문이 열리었거늘, 개호가 그 빛을 따라 이십여리쯤 가자 빛은 없어졌다.
<謝數觀音傳. 現應錄>
불탄 경전이 변하지 않아
중국 사천성 융주에 사는 호원궤는 불법을 독실하게 믿었다.
법화경과 금강경과 열반경 등을 베껴썼는데 잘못 쓸까봐 두려워서
마침내 땅굴 속에 들어가 쓰고는 한 선서에게 교정을 청했다.
경이 완성되자 그는 곧 경을 섬서성 기주에 있는 시골 농촌에 있는
집으로 가지고 갔는데, 하루는 볼 일이 있어서 어디를 갔다가 와보니
그 집이 이웃불에 연소되어 아무 것도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그는 땅을 치며 한탄했지만은 별 도리가 없었다.
그가 사람을 시켜 잿더미를 헤쳐 보니 책을 매어 장식했던 금동의 축이
드러나고 여러 경전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며 종이 빛깔은 오히려
변하지 않았는데 다만 금강경. 반야경의 첫머리 제목만이 검게 타 있었다.
이를 보고 그가 혼자말로 중얼거리기를, 처음 베껴 쓸 때 한 관원이
글씨를 잘 썼는데 갈길이 바빠서 미처 몸을 청결하게 하지 못하고
그대로 제목을 쓰더니 그래서 제목만 타버렸구나 하였다.
<弘贊傳第十 . 現應錄>
경전에 글자 한자 없어
당나라 무덕 때 법신이라는 한 여승이 있어 법화경에 통달하였는데
법화경을 한 질 깨끗이 베껴 쓸 생각을 하였다.
글씨 잘 쓰는 사람을 수모문하여 보수를 갑절로 주고 딴 채에 거처하며
베껴 쓰게 하였는데, 언제나 일어나면 목욕을 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
입고서야 책상을 향해 앉게 하였고, 또 벽에 구멍을 뚫어 밖으로 통하게 하고
대나무 토막을 꽂아서 서생이 숨을 쉴 때에는 이 대나무 토막을 입에 물고
숨을 밖으로 내쉬게 하여 외부와 연락을 끊고 일심으로 법화경을 쓰게 하였다.
이렇게 하여 법화경 한 질을 베끼는데 팔 년이 걸렸다. 경이 완성되자
재를 베풀어 완성을 경축하고 찬양하며 깨끗이 도량을 세워서 꽃과 향으로
공양하였다.
정관 십삼 년에 용문사 스님 법단은 늘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이 법신 스님의 경이 정성이 지극한 것이라 하여 사람을 보내 청하였다.
법신스님이 굳이 거절하였지마는 법단 스님은 그대로 가져갔다.
그리하여 법을 강설할 양으로 경전을 펴 보니, 그것은 누런 종이일 뿐
글자는 한 자도 없었다.
법단 스님은 부끄러워서 곧 돌려보냈는데 법신스님은 무슨 잘못이
있었음을 알고 곧 향탕으로 씻고 상자를 머리에 이고서 불상의
둘레를 돌아 도를 행하기를 무릇 이레 낮 이레 밤을 한 다음에
뚜껑을 열어 보니 경전이 전과 같이 되어 있었다.
<法苑珠傳. 弘贊傳第十>
피를 뽑아 법화경을 써
송나라 사조스님은 법화경이 몹시 영험함을 알고 자기의
피를 뽑아 법화경 한 질을 써서 책갑에 소암 이라 쓰고
오로지 일심으로 부처님을 염하는 염불삼매를 수행하였다.
스님이 법화경과 정토칠경을 쓸 때, 절 한번 하고 한자 쓰고
절 한번 하고 한 자를 써서 모든 힘과 정성을 다 기울였다.
그동안 삼십여 년이란 긴 세월이 흘러 선화원년 어느날 저녁에
금색신의 한 부처님이 나타나시는 것을 보고 스님은
가부좌를 맺고 앉아 조용히 입적하셨다.
살생은 지옥가는 길
송나라 수주 사람 강학사가 스무 살 때 아무 병없이 갑자기 죽었다.
강학사가 명부에 가니 염라대왕이 말하기를, 너는 전생에 착한 일을
많이 하여 금생에는 여든두 살의 명을 타고 났는데 진사가 되어
소를 잡아먹은 죄로 네 명과 복을 줄인다. 너는 해주에서 뇌성 폭우에
벼락맞아 죽은 사람들을 보지 아니하였느냐?
그 사람들의 죄는 모두 여서 가지 가축인 소. 말. 돼지. 양. 개. 닭을
죽인 죄이니라. 너는 횡사하는 사람을 보지 못하였느냐? 그들은
다 소를 잡아먹은 죄이니라 하고 꾸짖었다. 강학사는 대답할 말이 없었다.
이때, 한 관리가 너는 개과천선하면 곧 인간에 돌아가게 할 것인데
지옥에 들어가면 나올 기한이 없게 된다고 하였다. 잠자코 처분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한 관리가 다시 말하기를 명부에서는 글 잘 하는
사람을 공경하므로 법화경이나 금강경을 독송하면 감응하여 죄를
용서해 줄 것이다. 네가 만약 발심하여 일심으로 경전을 독송하겠다면
죄를 용서해 줄 것이로되 그렇지 아니하면 지옥으로 가야 한다고 하였다.
이에 강학사가 돌려보내 주신다면 진심으로 저의 허물을 참회하고
일심으로 경전을 베껴 쓰겠습니다. 하였더니, 염라대왕이 돌려보내 주었다.
다시 살아난 강학사는 명부에서의 일을 명심하여 불법을 힘쓰고
법화경을 베껴쓰고 또 남에게도 베껴쓰게 하였으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가족끼리 화목하여 집안이 편안하고 살림이 윤택해졌다.
그는 또 학문을 열심히 하여 과거에 급제하고 순조롭게 승진하여
높은 벼슬을 얻었다.
신선이 보탑품 외우기를 청해
옛날 한 법사가 항상 법화경을 외우고 있었다.
한번은 정처없이 각지를 유람하다가 어느날 산길을 지나가는데
한 하인이 산중의 조그만 집으로 가기를 청하여 문앞에 이르러 보니,
모습이 범상하지 않은 노인이 나와서 법사를 맞아 들였다.
노인이 높은 자리를 마련해 놓고 말하기를 자리에 오르셔서
보탑품을 외워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하여, 법사가 자리에 올라 유창하게
보탑품 한 편을 외웠다. 그러자 노인이 수고하셨습니다 하고는
복숭아 하나와 금 한 덩이를 주었다. 그리고는 하인더러 모셔다
드리라고 하였다.
법사가 골짜기 어귀까지 나와서는 그 노인이 누구시냐고 하인에게 물으니,
말은 하지 않고 손가락으로 법사의 손바닥에다 성은
손이고 이름은 사막이라 써 보이고는 그만 사라져 버렸다.
손사막은 당나라 화원 사람으로 백가의 학설에 통달하고 음양주보 및
의술에도 통하여 찬금요방. 복록론. 섭생신록 등의 저술을 남겼으며,
나라에서 국자박사와 간의 대부등의 벼슬을 주었으나 이를 사양했던 사람이었다.
법사는 받은 금을 팔아서 갑자기 큰 부자가 되었으며 또 그 복숭아를 먹고는
오래 살았다.
<現應錄>
소가 된 어머니를 천도하여
명나라 성천 스님의 호는 낭연이었다. 오성 사람으로 일찍이 보타사에 들어가
출가하여 불법을 배워 익혔는데, 돌아가신 어머니가 좋은 곳에 가지 못하고
축생의 보를 받았을 것 같아 태창 경신년에 남해로 가서 훌륭한 법사를
청해다가 법화경을 독송하니 우연히 부근에 있던 힘이 센 소가 갑자기 죽었다.
그날 밥 스님의 꿈에 어머니가 나타나서 말하기를, 나는 옛날 업이 무거워
아무개네 집 소가 되어 있었는데 오늘 네가 법화경을 독송해 준 공덕으로
소의 몸을 면했다고 하고 스님에게 절을 하면서 참회하였다.
성천스님이 몹시 측은하여 다시 부처님 앞에 나아가 어머니의 인간계 환생을
기도드리니 그날 밤 꿈에 어머니가 또 나타나서, 나는 네가 경 읽고 예참한
힘을 입어 동쪽 마을 아무개네 집에 태어나게 되었으니 그리 알라고 하였다.
스님이 이 말을 명심했다가 이듬해 그 집을 찾아가보니 과연 정씨 집에서
아들을 낳았는데, 서로 보고 놀라는 표정을 할 뿐이었다.
스님은 절로 돌아가자 곧 도량을 깨씃이 치우고 몸에서 피를 내어
법화경 일곱 권을 다 써 마치고 진흙으로 연잎을 만들어 벽에 붙이니
모든 상이 관세음보살께 절을 하는 모습을 했다. 이를 보는 사람마다
환희심을 일으켜 발심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동지 섣달에 연꽃이 피어
법융스님은 속성이 위씨인데, 단양 연릉현 신정사람이다.
어려서 속세을 떠나 법복을 입고 회영산 숲속에서 법화경을 배우다가
책을 짊어지고 천리길을 멀다하지 않고 높은 스승을 찾아 다녔다.
뒤에 그는 단양 우두산의 유서사로 돌아와서 따로 조그마한 집을 짓고
다시 법화경 수행에 몰두하니, 사방에서 학자와 스님들이 모여들어
흔연히 그에게 귀의하였다.
그래서 법융스님은 골짜기 어귀에서 크게 법화경을 강설하였는데
이때가 마침 몹시 추운 겨울이라, 나뭇가지에는 서리가 하옇게 엉켜 붙였는데
강설하는 곳에는 두 줄기의 연이 나서 금빛 연꽃이 활짝 피었다. 모두들
크게 놀라고 기이하여 감탄하기를 마지 않았다.
그리고 법화경을 강설할 때면 또 한 마리 커다란 사슴이 반드시 와서
강설을 들었으므로 문인들은 크게 발심하여 법화경 수행을 정업으로
삼고 힘써 행하였다.
법융스님은 뒤에 어디서 입적하였는지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弘贊傳第三>
보살이 육아의 코끼리를 타고 와
고제때 한 스님이 있었다.
그는 영암사에 머물러 있으면서 동쪽 숲에서 법화경을 독송하였는데
항상 정성을 다했으며, 몸과 옷을 깨끗이 하고 향을 피우고 부처님을
공경예배하며 징험이 있기를 빌었다.
처음에는 큰 뱀과 꿩 노루 등이 와서 법화경 독송을 듣다가 독송이끝나면
흩어져 갔고, 한낮이 되면 산신이 음식을 가지고 와서 스님을 공양하였다.
후에 홀연 찬란한 광명이 동산에서 내려오는데 큰 보살이 여섯 개의
이빨을 가진 흰 코끼리를 타고, 많은 사람들이 보살을 호위하여 바로
스님의 앞으로 다가왔다. 스님은 광명을 바라보고 엎드려 절을 했다.
한없이 기쁘고 즐겁더니 경전의 의심나는 구절과 탈락된 글자가 다
저절로 환히 깨달아졌는데, 다른 사람들은 다만 기이한 향내가 코를
찌름을 깨달을 뿐이었다. 향내는 오랫동안 없어지지 않았다.
<弘贊傳第7>
소리를 높이 하여 경을 독송함에 수호 병정이 뜰에 가득하다
승영이라는 스님은 젊어서 출가하여 강양 영제사에 머물러 있었는데 나이가
늙도록 법화경을 독송하고 익히기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웃 방에 다른 법사 한 분이 있어 항상 승영이 소리 높여 법화경을
읽는 것이 자기 간경에 방해가 된다 하여 승건이라는 스님에게 승영의
고성독경을 못하도록 부탁하였다.
승건이 허락하고 그날부터 권고하기로 하였는데, 마침 승영이 달이 창에
밝음을 이용하여 언제나처럼 경을 외우거늘 승건이 막 승영에게로 가려고
할 때 멀리 바라보니, 승영의 방앞에 수천의 사람이 있어 몸에 의갑주를
굳게 하고 창과 활을 지니고 합장하고 끓어 앉아 정성스럽게 그 송경소리를
듣거늘 승건이 크게 놀라 가만히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이웃방의 법사를 찾아가 어젯밤 일을 자세히 설명하고 승영에게
그들의 허물을 크게 참회하였다.
승영이 혹 출입을 하면 팔부신장의 호위하는 형적이 항상 나타났는데
개황연중에 영제사에서 열반하였다 한다
동자가 보기에 가득한 뱃사람이 모두 수족이 묶여 있다
명나라 때 소주 사람 장수는 항상 법화경을 지송하고 수행하는
스님께 만발 공양하기를 좋아하더니 만력 신해년 봄에
이르러는 보타낙가산으로 가서 관세음보살께 기도를
드려 볼까 하고 여덟 살 먹은 손자를 데리고 떠났다.
가는 길에 향주에 이르러서는 하루라도 속히 가려는 생각에
육로인 서릉 땅을 경유치 않고 해로로 배를 타고 건너려 하였다.
그때 해안에는 배들이 널려 있었는데 장수가 어떤 한 배에
오르고자 하니 마침 그 어린 손자가 배를 넘겨다 본즉 배에
가득찬 사람들이 모두 포승으로 손발이 묶여 있는 것이었다.
이에 손자가 급히 장수의 옷자락을 잡아 당기며
못 오르게 하고 말하기를, 그 배는 이상스럽게도
여차 여차하오니 여간 위험하지 않습니다 하였다.
장수는 크게 놀라서 어린 것의 말이라도 아니 들을 수 없다
하여 다음 배에 오르고자 하니 그 손자가 또 만류하기를
제가 본즉 그 배도 앞의 배처럼 불상지조가 있습니다 하는
것이었다. 장수가 다시 그 말을 소중히 듣고 그러면 그 다음
배를 살펴보라하니 손자가 가로되 그 배는 아무 일이 없습니다
하였다. 이에 장수가 위방불입이요 난방불거라 하였으니
좋은 배에 올라 보자 하며 그 배를 향하려는데 뜻밖에
사공같은 사나이가 뱃머리로 쑥 나서며 이 배가 안전하니
노인장은 어서 오르시오 하고 누군가 등 뒤에서 배 위로
밀어주는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장수는 여러 가지 이상한 징조에 감격하여 급히 손자를 끼고
그 배로 뛰어올라 살펴보니 이 배로 올라오라고 부르던
사람과 등 뒤에서 밀어주던 사람 그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이윽고 배들이 해안에서 출발하여 중류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날이 저물고 사방이 캄캄해지면서 그만 폭풍이 일어나는데
물결은 눈빛처럼 뱃전에 와 크게 부딪치며 모진 바람이 일어
먼저 두척 배는 그만 그 자리에서 엎어졌는데 그 배에 탔던
사람은 한명도 살아나지 못하였고 오직 장수가 탄 배만 순풍을
만나 편안히 육지에 도착하였다.
이튿날 인화 현령이 하인들을 데리고 달려 나와서 수십명의
송장을 건져 내어 검시하여 본 결과 그들이 모두 아명 장사로
남의 신세을 망치거나 하는 사람이며 혹은 어린 처녀들을
적은 돈으로 사들여 도시의 창녀촌에 많은 돈을 받고 팔아 먹는
사람 백정이며 혹은 도박꾼으로 남의 재산을 여지없이
탕진하게 하는 악당이었다. 현령이 탄식하되 저런 불량한 자들이
배에 탔으니 천지신명이 미워하지 않겠느냐. 다만 그중 선량한
사람들도 몇 있어 함께 횡사한 것이 여간 애석하지 않다 하였다.
장수가 법화경에 인연을 맺고 있어 횡액을 면한 것은
두말할 것이 없지만, 배안의 불상지조를 동자에게만 보여주고
노인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은 본인이 보았다 하면 듣는 이가
반신반의할지라도 다른 이가 보았다 하면 그를 의심할 수 없기에
그러한 것이다.
부진 때 서의는 수족이 풀리어 몸을 숨기다
부진 때 고륙 땅 사법 서의는 그 나라의 상서 벼슬을 하고 있었는데
젊은 때부터 법화경을 지극히 모셨다.
어느해 난리가 나서 서상서는 적국의 군인에게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다.
적군은 그의 두 발을 땅에 파묻고 두 손을 포승으로 묶었으며 머리는 풀어
나뭇가지에 잡아매고 전후좌우로 수직군을 두어 그 이튿날로 쏴 죽이려 하였다.
이에 서의가 생각하기를 살아날 길은 전혀 없으니 후생 인연이나 깊이 맺자
하고 밤이 다 새도록 법화경을 소리없이 외우고 있었는데,
그러던 중 비몽사몽간에 한 사람이 나타나 하는 말이 지금 일이
몹시 급한데 어느 시간에 잠을 자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서의가 깜짝 놀라
일어나며 수직군을 달빛으로 살펴보니 모두 피곤한지 잠이 들어 있고
시험삼아 몸을 움직여 보니 두 손과 상투 잡아맨 것이 스르르 풀리며
두 발도 흙에서 쉽게 빼어지는 것이 아닌가. 아, 이게 웬일이냐.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도망을 치는데 한 백여보쯤 갔을 때 수직군 한 명이
그만 잠에서 깨어나 큰 소동이 벌어지고 말았다.
여러 놈들이 횃불을 잡고 쫓아 오는데 서의는 쫓기며 생각하기를 바른 길로
갔다가는 반드시 잡힐 것이다 하여 숲이 우거진 곳으로 들어가 납작하게
엎드리고 있었더니 수직군들이 그 옆으로 오락가락 하면서도 찾아내지 못하고
날이 밝자 모두 흩어져 가 버렸다. 그때야 서의는 숲에서 기어나와 그 근처
절로 찾아가 화를 면하였다.
범이 소리를 질러 도적을 물리치고 점차로 좋은 사람을 만나다
법애라는 스님은 장사땅 사람이라 항상 법화경을 외우더니 어느해 무슨
사고가 있어 교지국이란 곳에 가게 되었는데, 뜻밖에도 그곳에서 난리를
만나 산속으로 피신하려던 와중에 다섯 명의 도적을 만나게 되었다.
도적들은 법애를 붙들어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가서 어느 집 빈방에 가두어
놓았다. 그리고 문밖에서 수군거리며 하는 말이 점심을 먹고 난 뒤 저놈을
죽여 몸에 지닌 것을 뺏어 가지자 라고 하였다. 법애가 놀라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방안을 이리저리 살펴보니 마침 목창 하나가 방 구석에 세워져
있는지라, 얼른 그 창을 가지고 벽을 뚫어 뛰어나와 북쪽을 향하여 도망을 쳤다.
이때 도적들이 밥을 다 먹고 일어나서 문을 열고보니 법애는 간 곳이 없고
북쪽 벽이 뜷려 있는지라. 다섯 놈이 아우성을 치며 뒤를 쫓아 오기에
법애는 창황망조해서 길 옆 가시덤불 속으로 뛰어들어 잠깐 몸을 숨기려 하는데
뜻밖에도 커다란 범 두 마리가 그곳에 엎드려 있다가 법애가 들어옴을 보고
대가리를 들어 주뼛주뼛하는지라.
법애가 더욱 겁이 나서 무심결에 말하기를 두 분 산군이시여, 빈도가 지금
도적에게 쫓기어 산군 있는 데로 달려 왔으니 구호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였다.
두 마리 범이 귀를 기울이고 법애의 말을 듣는 듯하더니 즉시 밖으로
뛰쳐나가 산이 무너져라 하고 크게 소리를 질러대니 도적들이 달려
오다가 그 광경을 보고 겁이 나서 각각 도망을 치기에 정신이 없었다.
여기서 법애는 한참을 쉬다가 또 북쪽을 바라보며 달아났는데 범이 뒤를
따르며 보호하였다. 한 강변에 이르니 웬 사람이 좋은 음식으로 요기를
하다가 법애를 보더니 그곳으로 인도하여 앉게 하고 밥을 나누어 주기에
법애가 받아 먹으니 감미가 참으로 이상하였다. 법애가 그 사람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곧 물을 건너 언덕에 오름을 보고 두 마리 범은
고개를 흔들며 하직하여 사라져 갔다.
그 길로 얼마를 더 가다가 무인지경 외딴집을 만나 그곳에서 잠을 청하려
하는데 뜻밖에도 두 사람이 많은 음식을 장만하여 들어와 법애에게
많이 먹기를 권하고 같이 자게 되었다.
이튿날 아침 떠나는 길에 그들이 법애에게 말하기를 그대는 북쪽으로만
달려가라. 그러면 자연히 구호해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였다. 이에
법애는 감사하다는 인사로 작별하고 삼십여리를 가다가 천만 뜻밖에도
각별한 친구를 만나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아, 법화경 공덕이 이 얼마나 거룩한가. 도적에게 쫓길 적에는 범이
뒤를 따라 보호하고 강변에 이르러 배가 고플 때에는 웬 사람이 점심을
대접하며 무인공가에서 숙박하려 할 때에는 또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았으며 다시 친한 벗을 만나 고향으로 무사히 돌아오게 되었으니 이는
모두 호법신장님이 이리저리 도와 준 것이라. 불자들은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고 그 큰 은혜를 마음깊이 새길지이다
칼등으로 스물여섯 번 쳐서 전생 원수를 풀다
청나라 사람 정백인은 오래도록 양주 땅에 살면서 법화경을 지송하고
또한 관세음보살을 정성껏 섬겼다.
그런데 을유년 여름 나라에 난리가 나서 적국 군사가 양주 땅을 지나가게
되었는데 정씨가 관세음보살님께 기도하며 피난할 방책을 구하였더니
어느 날 밤 꿈에 보살이 일러 가로되 너의 가족 십칠 명중에 십육명은환난을
면할 수 있지만 오직 너 하나만은 어려움을 면할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정씨가 꿈에서 깨어 지극정성으로 관세음보살님께 다시 기도하니 그날밤 꿈에
보살이 또 일러 가로되 너는 전생에 왕마자라는 사람을 칼로 스물여섯번이나
쳐서 죽였으니 지금 그 목숨을 갚게 되는지라. 가족 십육 명을 다른 곳에 안전히
옮긴 후에 네가 혼자 기다리다 당할지언정 가족에게는 누를 끼치지 말라 하였다.
이에 정씨가 마음깊이 참회하고 시키는 대로 행하였더니 닷새 후 적군이 집안으로
달려들거늘 정씨 나서며 그중 자신을 죽이려 칼을 빼고 달려든 적군에게 물어
가로되 그대의 성명이 왕마자인가, 내가 그대에게 스물여섯 번의 칼로 빚진 것이
있으니 나를 속히 죽일지어다. 그것 말고 나와 그대가 다른 원수진 일은
없도다 라고 하였다. 이에 적병이 놀라 묻기를 네가 어찌 나의 성명을
알았느냐 하기에 정씨는 관세음보살이 꿈 속에서 이르신 말씀을 전하였다.
정씨의 이야기를 듣고 난 적병이 탄식하며 하는 말이 네가 전생에
나를 죽인 까닭에 그런 것인지 지금 너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걷잡을 수 없으나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게 되면 오는 세상에 다시
네가 나에게 보갚음을 하지 않겠느냐.
그리고 보살이 현몽까지 하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게 되면 이는
성현을 저버림이라. 어찌할 수 없다라고 하고 즉시 칼등으로 정씨를
스물여섯 번 치는 시늉을 하고 원한을 풀고 떠나갔다.
앉은뱅이 병을 고쳐 행보가 자유롭다
명나라 숭정 신사년 산동 땅에 앉은뱅이가 있어 손으로 발을 대신하고
시장 주변으로 돌아 다니면서 걸식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미워하니,
그가 비록 폐인이나 속은 살아서 항상 불평을 품었다.
마침 그때 당교암에 수곡이라는 스님이 있어 수행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하루는 찾아가서 걸식하는 괴로움을 하소연하니 스님이 가엾게 여기고
가로되 그대가 발심하여 스님이 되어서 부처님 자비의 힘을 빌어 의지하면
혹 시주가 있을까 하노라 하였다. 앉은뱅이는 그 말을 듣고 감사히 생각하여
즉시 머리를 깎고 십계를 받으며 비록 걸식을 할지라고 파, 마늘, 술, 고기,
담배를 먹지 않으며 또한 남들이 욕설을 하더라도 인과를 생각하여
좋은 마음으로 참았다. 수곡 스님이 또 법화경 보문품을 배우라 하며
관세음보살의 명호 지송함을 가르치거늘 일년 동안 일심 전력으로 수지하였다.
그러던 무자년 가을 어느 날 밤 꿈을 꾸는데 한 늙은 부녀가 소복에
화관을 쓰고 미묘한 얼굴로 나타나서 일러 가로되 너는 곧 일어나라 하고
두세 번 재촉하였다. 이에 앉은뱅이는 저는 앉은뱅이라 어찌 일어날 수가
있사오리까 하고 대답하였다. 이때 부녀가 손으로 앉은뱅이 두 발을 잡아
당기니 다리가 쭉 뻗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 일어나니 꿈에서처럼 두 다리가 쭉 뻗어 완전히 정상이
되었는지라.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몸이 다하도록 법화경 지송과
관음주력을 지성껏 봉행하였다.
소의 장난없이 자식얻어 영화보다
송나라 서울 사람 적집은 나이 오십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서
법화경을 지송하고 또한 관음화상을 그려 붙여 정성으로 기도하더니
마침내 그 처가 자식을 잉태하였다. 그런데 꿈에 흰 옷 입은 부인이
상자 속에다 아이를 담아 주는데 얼굴이 매우 묘하였다. 아이를 막 받아
안으려는 순간 천만 뜻밖에도 소 한 마리가 달려들면서 그 사이를 막아
끝내 그 아이를 받지 못하는 그런 꿈을 꾸었다. 그후 열달이 차 아이를
낳기는 낳았으나 몇 달이 못되어 그만 죽고 말았다.
아픔을 딛고 다시 지극 정성으로 관음기도를 드릴 때 한 친구가
그전 꿈 이야기를 듣고 일러 가로되 그대가 평소 쇠고기 먹기를 너무
좋아하니 혹 그것이 원인이 되지 않았겠는가 하였다. 적집이 그말을
듣고 그만 겁이 나서 그후로는 온 집안 식구가 다시는 쇠고기를
먹지 않기로 맹세를 하였다.
그후 또 꿈을 꾸는데 전에 왔던 부인이 다시 아이를 데려다 주는데
그때는 소의 장난도 없었고 열 달이 차서 생남하여 그 자식으로 해서
큰 영화를 보았다.
항상 법화경을 읽었음에 혀를 빼어도 나오지 않는다
용삭연간에 경성 사람 고문은 항상 법화경을 독송하였다.
하루는 말을 타고 순의문을 지나는데 뜻밖에 말 탄 사람 두 명이 쫓아와
잡으려 하기에 고문이 누구냐 한즉 그들이 대답하기를 우리는 염라대왕의
차사로서 너를 잡으러 왔노라 하였다.
고문이 겁이 나서 이리저리 피하려 하는데 사자가 앞뒤로 달려들어 결국
붙잡혔다. 그들이 고문을 말에서 끌어 내려 머리카락을 움켜쥐니 마치
칼로 살을 도려내는 듯하여 그 자리에 까무러치고 말았다.
가족들이 소문을 듣고 달려와서 데려다가 방에 눕혔는데 밤이 이슥해서
깨어나며 이르되 내가 귀신에게 붙들리어 명부에 들어가니 염라대왕이
나에게 묻기를 너는 무슨 까닭으로 절에 가서 스님의 과실을 훔쳐 먹었으며
또 어찌하여 부처님의 허물을 말하였는가 하니 모두 내가 지은 죄라,
대답할 말이 없어 그대로 엎드렸더니 대왕이 판결하되 과일을 훔친 죄는
합당히 불융골의 철환 사백오십 개를 사일 동안 받아 먹어야 하겠고 부처님
허물을 말한 죄는 합당히 그 혀를 빼서 밭을 일구는 소비로 갈아야 하겠다
하며 잠시 놓아주기에 지금 깨어 났노라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다시 쓰러져 입을 다물고는 마치 무슨 음식을
우물우물 씹는 모양을 하는데 온몸이 빨갛게 불에 타 아프고 견디기
어려운 모습을 보이더니 며칠을 지나 깨어났다.
그리고 다시 하는 말이 내가 지옥에서 나흘 동안 철환을 삼키어
사백오십 개를 다 먹었는데 그 고초는 형언할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혀를 빼서 소비로 갈려고 하는데 아무리 빼어도 혀가 나오지 않는지라.
그때 죄복을 감정하는 소장이 말하기를 고문은 항상 법화경을 읽었기
때문에 혀를 빼려해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이에 염라대왕이
하는 말이 그와같은 공덕이 있을진대 남과 같이 죄를 다스리지는 못할지라.
다시 인간으로 내어 보내라 하여 내가 지금 깨어 나왔노라 하였다. 그후
그는 화도사에 가서 경을 듣고 참회하였다.
오로지 성호를 생각함에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다
나는 유제규 평화교당에 다니면서 불전에 예경하고 법사스님의 설교를
듣는 한 신자입니다. 인연이 닿아 정지월이라 하는 젊은 법사 스님에게서
관음보살 보문품이라는 법문을 들은 후로는 그 불경을 따로
지송하기로 하고 우리 내자와 더불어 보문품독송 행자가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관음보살에 대한 신앙을 날로 더하고 달로 깊어가게
하였는데 그러던 중 얻은 신앙담을 이제 하고자 합니다.
바로 지난 십이월 십팔일 밤의 일입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날씨가 매우
나빠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는 가족들이 모여 앉아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아홉 시나 되어서 각각 취침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밤마다 보문품 한 번 독송과 관음보살 삼천념을 하는 성벽이 있는지라.
그날도 열두 시까지 일과를 마치고 잠이 들어 약 삼십 분 가량이나 되었을까
하는데 비몽사몽간에 어떤 백의 노부인이 와서 잡아 일으키며 정신을
차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려고 했으나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여 전혀 기동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중에도 그 부인은 이상하게도 선명히 눈앞에 보이며 일이 급하니
어서 일어나라 하며 몸을 잡아 일으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일어나 정신을 처려보니 그 백의 부인은 간 곳이 없고 옆에서 누워자는
내자가 손발을 달싹이지도 못하고 눈을 흡뜨고 말 한 마디 내지르지
못하며 사경을 헤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나는 황겹공포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허둥지둥 왔다갔다
하며 집안 사람들을 일으키는 한편 내자의 신체를 주무르며 코밑을
부벼주고 인공호흡을 시킨 후 정신을 차리라고 목이 터지도록 불렀으나
아무런 대답이 없었습니다. 숨소리가 점점 사라지며 죽음길을
재촉할 뿐이었습니다.
집안 사람들은 모두 불쌍하다며 울음소리를 내고 의사도 와서 보고
단념하라고 선언할 뿐입니다. 나도 울음을 그칠 수 없음에 참으로
비참한 광경이었으나 문득 한 생각에 관음보살을 생각하고 일심염불공과
능명제유고라는 법구를 떠올리게 되었고 일심으로 오직 관음보살을
부르면서 내자의 기사회생을 기원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자가 이와 같은
급병이 난 것은 식물의 중독이라 생각하여 의사에게 주사 넣어 줄 것을
부탁하였으나 의사는 심장마비라 하며 돌아보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모든 걸 단념하고 오직 관음보살만을 염송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내자가 호흡을 시작하며 정신이 도는 듯 살며시 눈을
뜨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안 되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절망에 빠져 있던 집안 사람들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고 나 또한 하도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일이라 관음성력에 감격할 뿐이었습니다.
내자가 그렀듯 회생한 것은 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백의부인의
현몽은 나뿐만 아니었습니다. 내자도 그 부인을 보았다 하며 그 부인에게서
무슨 약수를 얻어 마시고 겨우 숨을 트게 되었다 합니다. 중생이 피곤액하여
무량고핍신이라도 관음묘지력으로 능구세간고라는 법구를 보문품의
법문으로만 믿다가 참으로 불가사의한 관음묘지력을 실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원문은 소화 사년 이월 불교지에 기재된 것을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한 번 닥친 술냄새에 지옥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명나라 부경 형부가에 있는 축봉사는 에전에 전단불상에 공양을 올리던 절이었다.
신종제 말년 제주라는 스님이 주지로 있었는데 성품이 진실하고 부처님을
엄숙하게 받들기는 하나 다만 술 한 가지를 끊지 못하는게 큰 흠이었다.
어느 날 꿈에 험상스러운 얼굴을 한 사람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나는 지옥의
사자입니다. 생전에 아무개 노파가 착한 일을 한 가지도 한 일이 없었기에
지금 지옥에 갇혀 있어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매월 삭망 때마다
이 절에 와서 예배하고 과일을 가져다 스님께 공양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스님은 그러한 인연을 생각해서 그 노인을 위해 법화경 한 부질을
읽어 좋은 곳에 태어날 수 있도록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인홀불견
되는지라 스님이 꿈에서 깨어나 그 노파의 생전일을 생각하니 지옥 사자의
말이 틀림이 없었다.
이에 칠월 보름날 백종재를 기다려 그 노파의 위패를 접어놓고 부처님
앞에 끓어앉아 법화경을 읽어 나갈 때 다섯권째에 이르러 읽기는 뜨겁고
목은 몹시 말랐다. 그만 일어나서 차를 찾아 보았으나 얻지 못하여 부엌
탁자 위의 술병 하나를 발견하고 흔들어 보니 아직 남은 것이 있었기에
그곳에서 병을 기울여 찬 술 한 모금을 그대로 마시고 다시 불전에 끓어앉아
일곱권 법화경을 다 읽어 마쳤다.
그 이튿날 밤 꿈 전에 왔던 지옥 사자가 다시 와서 하는 말이 스님께서
법화경 네 권까지 읽었을 때 마침내 지옥 일대는 금색 광명이 내려 쪼여서
그 노파가 막 지옥을 여의고 곧 선처에 수생하려 할 찰나인데 별안간
한 무더기 술 냄새가 들이침에 광명은 어느 결에 없어지고 법화경
다섯권째에서 일곱권째까지 읽는 동안 술냄새는 마찬가지이므로 그 노파는
힘을 얻지 못하여서 그대로 갇혀 있습니다 하였다.
주지스님은 그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하여져서 그 즉시로 일어나
다시 목욕하고 정의정복을 갈아입고는 불전에 나아가 지성참회한 후
법화경 다섯권째에서 일곱권째까지 정성을 다하여 읽어 마쳐주고
그후로부터 한 평생을 마치도록 술을 엄금하였다 한다.
뒷간 귀신과 산의 호랑이가 도덕을 흠앙하다
홍명이라는 스님은 회계산음 땅 사람이라, 일찍이 출가하여 산음
운문사에 있으면서 항상 법화경을 외우며 정근하고 예참하기를 가히
주야불철이더니 아침마다 일어나 앞으로 나가보면 비어 있던 물병에
깨끗한 물이 가득차 있곤 했으니 이것은 천동천녀가 비밀히 내려와
시봉을 하여준 것이다.
또 어느날은 홍명이 경을 읽고 있는데 커다란 범이 들어와 법상
아래 엎드려 경을 잠심하여 듣다가 물러나기를 몇 번이나 하였다.
어떤 날은 조그마한 아이가 와서 홍명법사의 송경함을 듣는지라,
홍명이 묻되 너는 어떤 아이냐 하니 그 아이 대답하되 저는 옛적 이 절에
어린 중으로 있으면서 대중의 공양할 밥을 먼저 훔쳐 먹은죄로
뒷간 지키는 귀신이 되었습니다. 스님의 도력이 높음을 알게 되어
가끔 와서 경을 듣게 됩니다.
원컨대 법사의 높고 높은 송경공덕으로 이 죄업을 면케 하여 주옵소서
하는지라. 홍명법사가 듣고 측은히 생각해서 재를 베풀어 천도식을
행하며 법화경 산림을 하여 주었더니 칙귀가 그 공덕으로 선도에
태어남을 현몽하였다.
홍명법사는 제나라 영명 사년에 백림사라는 절에서 열반하니
춘추가 여든넷이라 하였다.
급병이 낫게 되고 대풍창에도 이롭다
조천수는 성품이 바르고 견고하나 불행하게도 급질에 걸려 갖가지 의약으로
치료하였으나 낫지를 않았다. 그래서 지성으로 법화경을 외우니 그 병이 모두
낫게 되어 천수는 그로부터 항상 경을 외워 게을리 하지 않았다.
또 망명이라는 스님 역시 불행하게도 나병에 걸려서 만방으로 치료하여
보았으나 조금도 효험이 없었다. 누가 말하기를 법화경은 이 염부제
사람의 병에는 영약이라 하기에 망명이 정성을 다바쳐 법화경을 독송하니
문둥병이 곧 나았다.
남대녹사 유씨가 또한 그 병에 걸려서 갖가지로 치료하였으나
효험이 없더니 어느날 길을 가던 망명법사와 우연히 만나서 법사가
유씨에게 말하되 나도 그전에 이 병을 얻었으나 법화경을 독송하고
쾌효를 얻었노라 하기에 유씨가 그 말을 듣고 결정한 신심을 일으켜서
즉시 법화경을 준비하고 밤낮으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더니 어느날 밤
꿈에 이상한 스님이 들어오며 손으로 전신을 뜨는지라. 유씨 놀라
깨어나니 온몸에 흰 땀이 비오듯 하며 몸과 마음이 활연해서 운권청천으로
즉시 병이 낫게 되었다.
조개 속에 불형을 나타내니 문종이 화상을 모시게 하다
당나라 태화 연중 문종제가 조개 먹는 것을 좋아하여 해변 관리들은 조개
진상하기에 골몰함으로써 민간에 끼치는 폐해가 적지 않았다.
하루는 어찬 가운데 커다란 조개 하나가 있어 다깨어도 벌어지지 않았다.
문종이 이것을 기이하다 생각하고 즉시 향을 사르며 기도를 드리니 그곳에서
별안간 관음형상이 솟아 오름에 상호가 구족하였다.
곧 금함에다 모시고 흥선사라는 절에 사승하여 여러 스님들로 하여금 예배
공양케 하고난 후 여러 신하들에게 물으시되, 이것이 무슨 상서인가 하였다.
이에 어느 대신이 여쭈기를 대일산에 유정선사가 불법이 깊어 모르는 것이
없다 합니다 하였다. 문종께서 즉시 선사를 불러 그일을 물으니, 선사 대답하기를
신이 듣사오니 어떤 물건이라도 헛되이 응하는 법이 없는지라. 이는 폐하의
신심을 열어줌이외다. 그런 고로 법화경에 말씀하기를 제왕신으로 제도할 자에
응해서는 곧 제왕신을 나타내기 위하여 법을 설한다 하셨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가로되 보살의 몸은 벌써 내가 보았으나 아직 법문을 듣지 못하였노라 하였다.
선사가 다시 여쭈어 가로되 폐하께서는 그 일을 예사롭다 느끼십니까 아니면
이상하다 느끼십니까. 또 그일을 믿습니까 믿지 않습니까 하니 임금이 답하되
희귀한 일이라 내가 깊이 신앙하노라 하였다. 선사가 가로되 그러시다면
폐하께서는 벌써 법문을 들어 마쳤습니다 하였다.
이때 임금이 깨닫고 크게 즐거워하며 다시는 조개를 먹지 않겠다 맹세하고
천하 사찰에 조서하여 모두 관음상을 모시게 하였다.
머리털을 세 번 깎되 그때마다 즉시 자라나다
홍조라는 사람은 나이 스무 살에 스님이 되어 법화경을 배워 읽기로
업을 삼는데 원체 총명하여 칠축경전을 두어달만에 외워 마쳤다.
종남산에 토굴을 묻고 법화경 일천번 외우기를 맹세하고 불철주야로
독송함에 밤마다 천신이 내려와서 은근히 호위하였다.
한번은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그 마을에서 가장 가난한 집 부녀 유씨가
홍조대사의 덕행을 듣고 자기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법화경을 설해 달라고
지성으로 청하기에 대사가 불쌍히 여겨 그 집에 얼마동안 있게 되었다.
한 주일을 지나자 집안에 먹을 것이라고는 한 홉 곡식도 없게 되었다.
대사도 그것을 짐작하고 그만 떠나기를 작정하니 유씨가 정성을 다하여
만류를 하기는 하였으나 대접할 도리가 없는지라. 즉시 자기의
머리를 깍아 팔아 시장에 가서 양식을 구해다가 대접하였다.
다시 일주일을 지남에 대사가 또 가고자 하는지라, 유씨가 또 눈물을
흘려가며 못가게 하였으나 머리털을 팔아서 사온 양식은 벌써 없어졌고
달리 양식을 구할 방도가 없기에 밤새도록 걱정하며 뒤척였는데
새벽녘에 우연히 이마를 만져보니 밤 사이에 머리털이 전처럼
자라나 있는지라. 놀라고 기쁜 마음을 걷잡지 못하여 즉시 깎아 팔아
양식을 사 오는데 그와 같이 세 번 깎았으나 머리털도 역시 세 번 자라났다.
대사는 그럭저럭 한 달이나 있다가 떠나게 되었는데 유씨가 하는 말이
스님의 양식은 스님이 준비한 모양입니다 하며 그동안 지내온 일을 낱낱이
설명하였다. 그러면서 스님의 도력이 아니면 어찌 머리가 세 번이나
자라났겠습니까 하니 대사가 듣고 그 정경을 불쌍히 여겨 내가
왜 유씨 부인에게 그와 같은 고생을 시켰던가 하며 눈물을 머금고 떠났다.
경을 한 번 통달함에 다시는 잊지 않았다
청신사 사지장은 옹주 남전 땅 사람이었다. 비록 농가에 처하였으나
항상 오계를 지키며 살았는데 어떤 인연으로 남전현에 있는 어느 절을
찾았다가 마침 그 절 법사 한 분이 법화경 설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그중 안이비설신의 육근공덕 대문에 이르러서 흔연히 발심한
다음 집으로 돌아와 법화경 제일권부터 읽어 외우는데 급한 일을
당한 때 이외에는 조금도 쉬지를 않았다.
다시 둘째권을 배우려 하였으나 선생을 만나지 못해 이 삼년을
안타깝게 흘려 보냈는데 어느날 지나가던 스님이 들어와 지장을
보고 하는 말이 집에 밥이 있거든 한 그릇 빌려달라 하거늘 지장이
흔연히 대답하고 소찬을 정성껏 차려 드리니 스님이 공양을 마치고
하는 말이 그대가 법화경을 배우려 하는가. 그러면 경책을 가져오라
하는 것이었다. 지장이 크게 기뻐 그것이 자신의 소원임을 말하고
책을 가져다 드리니 스님이 그 책을 가르치는데 신통력으로
총명을 주어서 한번 일러주면 다시 잊지 않게 되는지라. 스님이 마치기를
다하자 문득 사라지거늘 그후부터 기이한 향기가 수일동안 끊어지지 않았다.
이에 이것은 반드시 보현보살이 본원력을 의지해서 보통 승려로 화현해서
잘 가르쳐 주고 간 것이라 한다.
법화경을 지송하기 피곤함에 약의 정기가 품에 들다
정견이라는 스님이 어릴 때 출가하여 오래도록 용문산에 머물면서 법화경
지송하기를 일만삼천번을 하고 나니 몸이 피곤하여 얼굴이 수척하여지는지라.
그럼에도 정진하기를 그치지 않고 줄곧 이십여년을 끌어 나갔더니 하루는
북쪽에서 어린아이 수십명이 몰려 들며 왁자지껄 떠드는데 그 시끄러움을
견디기 어려우나 그 아이들이 어느 곳으로 쫒아옴을 알 수 없기에
주저주저하는데 뜻밖에 한 백두노옹이 나타나며 하는 말이 스님의 기력이
어떠하십니까 한다. 이에 정견이 대답하기를 점점 피곤이 더해감을
깨닫는데 어느 곳에서 쫓아 왔는지도 알 수 없는 조무래기 아이들이
날마다 분란을 피워 차마 그대로 더 볼 수가 없습니다 라고 하였다.
정견의 말을 듣고 노옹이 가로되 스님은 이제 그 아이들이 노는 곳에 가서
모두 옷을 벗고 목욕함을 기다렸다가 한 놈이 벗어 놓은 옷을 집어 가지고
돌아 오십시요. 그러면 옷을 빼앗긴 아이가 분명히 따라와서 옷을 내어달라
간청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른 척하고 내어주지 않으면 필경에 욕지거리까지
할 것입니다. 스님은 그때 꾹 참고 아무런 응답도 하지 말고 계시면 제가 와서
말씀하여 드리리다 하였다.
정견이 노옹의 말대로 여러 아이들이 옷을 벗고 못에 들어가 목욕하는
곳에서 한 작은 아이의 옷을 집어 가지고 방으로 돌아오니 그 아이가
얼른 보고 뒤를 따라 오며 옷을 달라 하거늘 정견은 노옹의 부탁을 생각하고
영 돌려주지 않고 그 아이가 악담으로 욕설을 퍼부어도 조금도 마음을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노옹이 달려와서 그 아이에게
일러 말하되 너는 스님의 품으로 들어가라 하는 것이었다. 그 아이가
머뭇머뭇하며 듣지 않다가 노옹이 몰아 내쫓기를 두세 번 한 뒤에 어쩔 수 없이
정견의 품으로 달려들어 뱃속으로 빠져 없어지거늘 노옹이 그때 정견에게
묻기를 스님의 기분이 어떠합니까 하였다. 정견이 대답하되 기력이
그전보다 훨씬 나아졌습니다 하니 노옹은 감사합니다 하며 그 즉시
작별하고 떠나갔다.
정견은 그로부터 정신이 백 배나 나아져서 경전 독송에 아무런 힘도 들지 않
았는데 식자는 말하기를 그것은 보현보살이 산신을 시켜 산삼의 정기를 모아
한 작은 아이로 변형을 시켜 정견의 품에 들어 병을 없게 해 준 까닭이라 하였다.
하늘의 제석과 바다의 용왕이 동시에 강경을 청하다
연광이라는 스님은 신라 때 사람이라, 권세있고 이름 높은 집안사람으로
일찍이 출가하여 수나라 인수년에 중국에 들어가 천태지자 대사를 만났다.
대사가 법화경을 가르쳐줌에 연광은 아침 저녁으로 항시 익히고 외워서
수년동안 부지런히 하더니 홀연 통달하였다.
천태별원에 머물면서 늘 법화삼매를 수행하는데 하루는 이상한 사람
두어명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우리는 하늘 제석천왕의 명을 받아
스님께 강청장을 가지고 왔습니다. 연광은 묵연히 승낙하고 그 즉시로
앉은 자리에서 목숨이 끊어졌는데 안색은 하나도 변치 않았으며
십여일 후에 깨어나 전과 같이 경읽기를 계속하였다.
연광은 고국인 신라로 돌아오려 할 때 지자대사에게 하직한 후 십여 명의
사람과 함께 떠나 커다란 배를 타고 바다 한복판에 이르렀는데 배가 문득
멈추더니 웬 사람이 말을 타고 물결을 저어 오다가 뱃머리에 이르러 하는
말이 저는 바다신의 명을 받아 이곳에 이르렀는데 스님께서 잠깐 용궁에
왕림하사 대승경을 설해 주실 것을 간곡히 청하나이다 하였다. 연광이
대답하되 빈도는 중생의 이로움을 위해 살 것을 서원하였는데 이제
용궁으로 들어가 버린다면 이 배와 남은 사람들은 어찌하겠는가 하였다.
그러니 그 사람이 모든 이들을 함께 동행케 하시고 배 또한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기에 연광이 대중에게 일장경계한 후 함께 용궁으로 들어가는데
바라보니 큰 길이 평탄하게 뚫렸고 향화가 길에 가득하며 바다신이 백천시종을
거느리고 궁중으로 환영하니 금벽이 휘황찬란하여 모두 놀라울 뿐이었다.
바다 가운데의 훌륭한 음식과 다과로 대접을 받고 난 후 법화경을 강송하여
마치니 용왕이 크게 기뻐 해중칠보를 기념품으로 전하며 시종에게 명하여
배가 있는 곳까지 전송하거늘 연광 등이 그 배를 다시 타고 고국으로 돌아왔다.
고국에 돌아와서는 날마다 한 번씩 경을 독송하다가 나이 팔십이 되어 열반에
들게 됨에 따라 화장을 하게 되는데 온몸이 다 재가 되었으되 오직 혀만
타지 않고 남아 있으므로 보고 듣는 자가 모두 희유함을 찬탄하였다.
연광법사에게는 누이 두 사람이 있었는데 역시 불교를 깊이 믿어 모셨다.
그 혀를 거두어 나무상자에 담아 깨끗한 곳에 모셔 놓고 예배 공양하는데
항상 그 혀에서 법화경을 낭송하는 소리가 들렸으며 그 누이들이 법화경을
읽어 나가다가 모르는 글자가 있어 그 뜻을 혀를 향해 묻게 되면 일일이
잘 가르쳐 주었다 한다.
옛집을 지나는데 전생이 완연하다
수나라 개황년에 위주자사 최언무가 각 지방을 순회할 때 한 곳에 이르더니
깜짝 놀라고 기뻐하며 가로되 내가 전생에 이 마을에 살았는데
어떤 이의 부인이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제 내가 살았던 집까지
기억하겠다라고 하면서 말을 돌이켜 한 곳에 이르니 조그마한 집이 있는지라.
문 앞에서 사람을 찾으니 주인되는 노인이 나와 영접하거늘 자사가 그 집에
들어가 앉아 사연을 말하기를 나의 전생 몸은 주인장의 아내입니다 하였다.
노인이 가로되 무엇으로 그를 증명할 수 있으리오 하니 자사 가로되 내가
증거품을 찾아 낼테니 생각하여 보시오 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마루로 올라가더니 동쪽 벽 땅에서 예닐곱 자쯤 되는 곳을 가리키며
주인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예전에 공부하던 법화경과 금비녀 다섯 개를
이곳에 감추어 두었노라 그리고 법화경 일곱권째 끝에 불똥이 떨어져서
글자 몇 개가 타 버렸는데 오늘날까지 내가 이 경을 모두 외우나 일곱권째
끝장을 항상 잊어버리고 생각할 수가 없노라 하며 하인을 시켜 벽을
뚫게 하니 과연 법화경과 금비녀가 있고 또 법화경 일곱권째 끝장은
불에 타 있어서 자사의 말과 조금도 틀리지 않았다.
주인이 울며 가로되 죽은 처가 살아 있을 적에 항상 이 경을 독송하였고
이 금비녀 또한 죽은 아내의 물건입니다. 아내가 아이를 낳다가 죽어서
이 물건들이 있는 곳을 몰랐는데 천만 뜻밖에 귀인이 오셔서 있는 곳을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니 자사가 다시 이르되 내가 아이를 낳고자
할 때에 머리카락을 뜰 앞의 괴화나무 구멍속에 넣어 두었노라 하였다.
이에 이것도 사람을 시켜 찾아보니 과연 있는지라.
노인이 그를 보고 한편 기뻐하고 한편 슬퍼하거늘 자사 역시 측은한
마음을 어쩔 수 없어 많은 재물을 하사하고 떠났다.
강에 빠졌으나 경을 읽고 살아나다
무덕년에 소장이라는 사람이 파주자사가 되어 부임하는 도중에
가릉강에 당도하여 배를 타고 노를 저어가던 중 중류쯤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폭풍이 일어 배를 여지없이 흔들어 부수어 같이 탔던 육십명의 사람이
한꺼번에 빠져 죽음을 면치 못하였는데 오직 자사의 첩 한 사람만이 살아났다.
그녀는 그전부터 법화경을 몸에 지니고 다니면서 가만가만히 독송해 왔는데
그날 배가 뒤집힐 때 파도가 배 안으로 넘쳐 들어옴을 보고 생각하기를
내가 평생 모셔 온 법화경을 죽어도 버리지 않으리라 하고 경함을 머리에
인 채로 물 속에 잠겨 가게 되었다.
그런데 천만 뜻밖에도 목판같은 것이 두 발을 받쳐주니 그것에 몸을 실어
이러저리 표류하다가 언덕에 닿아 생명을 건지게 되었다. 그때 그 여자가
법화경이 들어있는 경함을 살펴보니 물이 한 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다.
이에 부처님의 신력을 무수히 공경하여 우러러 사모하였고 그후
다른 집에 개가하여 살면서도 몸이 다하도록 법화경을 수지독송하여
부처님 은혜의 만분지 일이라도 보답하게 되기를 발원하였다.
법화경을 외우니 수갑 채운 것이 자연히 벗어지다
하동 땅 동웅은 어릴 때부터 불교을 크게 믿어 술과 고기를 끊고 소찬으로
수십년을 지내왔다. 정관년중에 대리승 벼슬에 있었는데 십사년 봄 역적의
죄를 뒤집어 쓰고 어사옥에 갇히고 되었다. 그때 임금은 동웅을
역적과 공모자다라고 하여 어사위종을 시켜 혹독하게 다스렸는데,
당시 법관 이경현과 숙직하던 왕흔이까지 관련되어 함께 옥에 갇혀
칼을 쓰고 고랑을 차게 되었다.
동웅이 옥중에서 정신을 가다듬고 법화경 보문품을 지송하되 며칠만에
삼천번을 읽고 밤중에 홀로 다시 경을 외우는데 수갑 채운 것이 갑자기
저절로 풀려 땅에 떨어지는 것이었다. 동웅이 놀라서 옆에 있던 이경현에게
말을 하니 모두 살펴본 즉 그 고랑과 열쇠가 부서지지도 않고 두어자 길이쯤
나가 떨어져 있었다. 이에 모두 이상히 생각하거늘 동웅은 무슨 책망이나
들을까 겁이 나서 간수를 불러 다시 채워 달라 하니, 그날 감찰어사 장병일이
숙직을 하다가 이 일을 당하여 간수에게 명하여 수갑을 다시 채워주는데
촛불을 비춰 고랑과 열쇠를 자세히 살펴보니 열린 것이 아니라 자연히
벗겨진 것을 알수 있었다.
무척 괴이하게 생각하여 수갑을 다시 채우면서는 종이로 봉하고 그 위에다
인을 찍었다. 동웅이 다시 경을 지송하는데 오경쯤이 되어 다시 열쇠가
떨어지며 마치 사람이 여는 것과 같은 소리가 났다.
동웅이 더욱 겁을 먹어 옆의 두 사람에게 급히 깨워 말하니 이미 새벽이
되었으니 관리를 부를 것이 없다 하고 날이 샌 후 자세히 살펴보니 고랑과
열쇠가 떨어져 있는데 조금도 열리지 않았고 또 봉인한 것도 그대로 있었다.
이경현은 어릴 때부터 불법을 믿지 않았고 또 그 처가 경을 읽으면 왜
오랑캐 귀신에게 아첨을 부리느냐며 무수히 책망하여 왔는데 동웅의
일을 보고야 크게 감탄하여 가로되 이제야 부처님 신통력이
한량없음을 알았다.
그러나 우리 신세가 부처님 경을 배울 여가가 없게 되었으니 팔보살의
명호나 가르쳐 달라 하고 왕흔이와 함께 팔보살 명호 삼만번을 지송함에
대낮에도 수갑이 손에서 벗겨지는 것이 동웅의 경우와 다름이 없었다.
세 사람의 일을 본 관리들은 그들의 죄가 모두 애매하다 하여
무죄로 풀어주었다.
옥에서 풀려나온 그들은 법화경을 쓰고 팔보살탱화를 조성하며 한 평생
부처님께 정성을 다하였다.
오래전에 죽은 마른 뼈에 청련화가 혀 밑으로 솟아나다
지업이라는 스님의 속성은 양씨니 양주 장락사에 있으면서 항상
법화경을 외웠다. 그런데 수나라 대업 말년에 우문화급이 양주에
있다가 역적이 되어 수양제를 궁중에서 죽이니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다.
쌀 한 말에 백냥씩 받는 등 나라가 어지러워 굶어 죽는 백성이
부지기수였는데 그때 별원 조그만 집에서 법화경만 정성껏 외우던
지업도 난리 중 죽었으나 시체를 거둘 사람이 없었다.
그대로 방치되다가 그 집이 전복되면서
시체는 그 밑에 깔리게 되었다.
의령 초년에 난리가 평정되어 어느 정도 인심이 예전처럼 돌아올 즈음
지업이 수행하다 죽은 곳에서 한 줄기 청련화가 솟아 올랐는데 광색이
이상하여 모두가 의아해 했다.
그때 한 노승이 원인을 알고 모두에게 깨우쳐 가로되, 이 땅에 일찍이
수행하던 스님이 있어 진심으로 법화경을 외웠는데 마침 난리를 만나
봉변을 당하였으나 시체를 매장할 사람이 없었다. 지금쯤 해골이
그대로 남아 있을 터이니 이 꽃은 반드시 그 스님의 상서라 하여
사람들이 이에 꽃뿌리를 캐어 들어가니 해골 가운데 혀 밑에서
청련화가 솟아 나왔고
더군다나 혀는 생존시와 같이 조금도 상하지 않았음을 보았다.
모였던 사람들이 그 혀와 꽃을 가져다가 절 법당에 이르러 대중을
더 모으기 위해 법화경을 설하니 그 혀가 경 소리를 듣고 오히려
널름널름 하는지라.
보고 듣는 자가 감탄하여 대승경전에 신심을 크게 내었다 한다.
법화경을 사경하고 병이 낫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은 혼탁한 세상을 깨끗한 불국토로 만들어 보다
살기좋은 사회를 건설하고 미혹 가운데 고난 받는 모든 사람들을 성불의 길로
인도하여 참다운 지혜로 세상을 행복하게 살게 하심이다.
도림스님도 제주도에 내려와 고통받는 모든 중생을 인도하기 위해 정법의
씨를 뿌리고 가꾸었으나 그렇게 수월하지는 못했다. 간경화로 네 차례나
쓰러졌고 또 간농으로 쓰러져 서울대학병원에서 9일만에 깨어났다.
한 스님의 일생에 너무나도 병마와 역경이 심했다. 그러나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절대로 탓하지 않고 매일 일기를 쓰듯이 법화경 사경을
조금씩 조금씩 쉬지 않고 계속했다.
「1990년 7월 17일 제헌절 새벽 3시에 제주도 한국병원에 입원했다.
이때 제주도 대각사 법무스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다. 이 스님이 아니였다면
나는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오시어서 절 일도 바쁘신데 가지 않고 밤새도록
간호와 정성을 아끼지 않으셨다. 어떤 영감에 의해서인지 죽어가는
나를 업고 새벽에 병원에 갔지만 병원에서 받아 주지를 않아 언성을 높여가며
설득시키자 결국 응급치료를 받고 입원하였다. 이때는 법화경 한글 번역과
사경을 정성들여 하고 있을 때였다.
7월 18일 아침 8시에 병원에 앉아 있는데 50여명의 얼굴이 나타나,
영화의 스크린처럼 지나가는데 맨 끝에 지금 내가 들어갈 장소가
정해져 있었다. 누군가 말하기를 도림스님의 전생의 얼굴들이라고 했다.
나는 결심했다. 죽음의 길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의 길이라고,
내과과장이 간수술을 하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갈 길을 알고
있기에 거절했다.
18일날 오후에 서울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지장보살염불을 했더니
일념 즉시 무량겁이라고 자장보살 한번 생각하는데 수백만번이 불러졌다.
그러던중 7월 24일 새벽 꿈에 노란옷을 입고 삼지창을 오른쪽 어깨에 걸친
9척 장신의 남자 세 분이 앞에 와서, 저희가 들어가서 청소를 할 테니
스님께서는 만년사 절에 올라가서 부처님께 예배하고 오라고 했다.
오른쪽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하늘이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면서
스님 끝났으니 들어오십시오 했다. 한순간이었다. 오른쪽 옆구리가
따끔하면서 시원해졌다. 눈을 뜨니 새벽 3시 10분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정신을 찾았다. 이때 병실에는 하늘 향기가 충만했다. 향기가 코를 통해서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모든 혈관과 360 골절까지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의사와 간호사, 주변 사람들이 와서 보고 놀라며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3분 가량 향기가 진동하다 딱! 소리가 나며 끊어지고 나는 새정신이 들었다.
이때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는 믿음이 생겼다. 한 순간에
새생명으로 바뀌어 버렸다.
나는 병상에서 늘 발원했다. 부처님 살려만 주시면 남은 여생
부처님의 심부름꾼으로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부처님은
분명하게 응답하셨다. 그날 오후 초음파실에 들어갔더니 의사 세분이
노란 가운을 입었는데 꿈에 본 얼굴과 똑같았다. 세 시간에 걸쳐 간에서
농을 뽑아냈다. 그 이후 놀라울 정도로 경과가 좋아 8월 3일날 퇴원했다.
두 발로 걸어 나오니 참으로 감사했다. 보이는 돌에 대고 감사합니다.
나무에 대고 감사합니다. 빌딩에 대고 감사합니다. 모두가 감사하고
고마울 뿐이었다.
지장보살님께 살려주심을 감사하며 강원도 철원 심원사를 찾았다.
밤 12 시 10분이었다. 정영도 주지스님께서 너무나 친절하고
반갑게 맞아 주셨다.
법당에 들어가 예매를 드리는데 기운이 탈진되어 3배를 올리지 못하고
벽을 기대고 앉아서 지장보살님 한 번 부르고 백만 번,
두 번 부르고 이백만 번이라고 했다. 얼마나 다급하면 이런 생각까지 했을까,
지금 생각하니 감사하면서도 부끄러운 마음 금할길이 없다. 기도하다
조금 피곤하면 잠을 자는데 새벽 3시만 되면 누군가 깨워서 눈을 떠 보면
아무도 없다. 과로하면 안된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따라 또 잠을
청하지만 두 번 세 번 자꾸 깨운다. 지금 법당에 아무도 없으니 어서 오란다.
무거운 마음과 육신을 끌고 가 보면 아무도 없다. 지장보살님 전에 배를
쭉 깔고 엎드려서 기원을 한다.
「지장보살님 살려만 주십시오. 청정계행 굳게 지켜 일체욕심 다 버리고
오직 불법을 세상에 펴고 전하는데 생명을 다하겠습니다.」
수천번 수만번을 발원하고 또 했다. 이때 기록해 놓은 글이 있어서 소개한다.
「병원을 퇴원한 뒤 쉴 곳이 없구나. 기력은 점점 약해 생각마저 복잡하다.
허응보우 환성지안 순교비를 어찌할꼬. 생각다 못해 걸망메고
심원사를 찾았구나. 고요한 삼경에 세간은 조용한데 안개 속에
미소짓는 지장보살 그 모습이 인자하신 어머님의 따뜻한 품속 같네.
원하오니 지장보살님 살려만 주십시오. 남은 여생 오직 부처님의
시자로서 청정계행 굳게 지켜 끊임없는 기도로써 고통받는 세상중생
인도하는 사람되고 부처님의 바른 정법 활짝 피게 하오리다.
간절한 마음으로 7월 7일 칠석날에 환성지안대사 순교일을 기념하며
심원사 객실에서 화성유품 번역과 사경을 시작하여 백중날에
대각사 용성도량에서 마칩니다.」
그 이후 제주도 고관사에 내려와 기도와 전법으로 열심히 수행정진하고
계십니다.
법화경을 일자 일배하니 사리가 자연 증가하다
부처님 치아사리가 출현하신 이후에도 도림스님은 기도와 전법을 쉬지 않고
계속 하였다. 처음 제주도에 내려와서 가정법회를 마을마다 정착시켜
한 달에 30회 이상을 어촌에서 산간벽촌까지, 화사사원아파트에서
공장까지 부처님의 대승경전인 법화경을 걸망에 메고 다니면서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읽고 외우고 쓰고 해설하였다. 이곳저곳에서
불교신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고 모두 다 기쁨과 감격에 신앙생활을 하였다.
이때부터 신도님들한테 법화경 독송과 사경을 지도했다.
이 세상에 수많은 경전이 있지만 이 법화경은 인간이 만든 모든 책 가운데
가장 신비한 경전이며, 모든 업장을 소멸시키고 일체의 소원을 성취시키는
부처님의 위신력이 충만한 경전이고, 우리가 어떤 장소에서나 이 경을
독송하고 사경할 것 같으면 부처님은 즉시 감응하시어 미혹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불치의 병고에 신음하는 자를 건강케 하심을 강조하였다.
도림스님도 병원에서 퇴원한 뒤 사리탑에 올라가서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새롭게 번역하여 수십만권을 법보시 하고 있다.
칠년동안 철야기도 하면서 번역에 착수한 법화경을 마치지 못하고 갈 것만 같아
사리탑에서 방문을 안으로 잠그고 3개월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목욕재계하고
이 세상에 인간으로 태어나 부처님 정법 만나 이 대승경을, 나의 기도와 정성이
흠뻑담긴 이 법화경을 반드시 만들고 이 세상을 떠나자 하고 일자 일배하면서
번역했다. 온 방안에 향기가 충만하고 맑은 정신속에 영감이 떠오르면서
법화경이 마음과 허공 가운데 번역되기 시작하는데 팔과 손이 글자를
받아 쓰지 못할 정도로 지혜의 칼날이 번쩍였다.
3 개월 동안 정성을 다하여 번역을 마치고는 탈진이 되다시피하여
또 쓰러졌다. 서울 병원에 후송되어 치료를 받았으나 회복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아픈 몸을 이끌고 번역이 끝난 법화경을 걸망에 메고 출판해
줄 인연을 찾아 무작정 상경했다. 아무래도 법화경 출판을 보지 못하고
갈 것만 같아서였다.
충청도 천원군 만일사를 찾아 관세음보살님께 법화경을 올리고 발원했다.
이 경전이 세상에 널리 유포되어 어두운 중생을 밝혀주고 병든 사람을
모두 살려 주시는 약이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그리고 이 산중에 산삼이 계시면
한 뿌리만이라도 주시어 이 업보 많은 제자로 하여금 건강을 회복하고
전법하게 해달라고 칠일 철야를 기도 발원했다.
그 이튼날 캐나다에 계시는 광옥스님께서 노모의 문병을 오셨다가
도림스님이 죽게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전화를 주셨다. 약속장소에
나갔더니 큰 산삼 한 뿌리를 주시면서 이걸 먹고 스님 죽지 말고 살아서
평소에 그리도 원하던 불교전법운동을 해야 되지 않겠냐고 하시며
힘을 주셨다. 광옥스님께서 주신 약을 먹고 건강이 회복되어
도림스님은 열심히 법화경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 신명을 바쳐 깨끗한 정성을 드리면 천리 만리 밖에서
서원하더라도 부처님께서는 즉시 감응하신다는 것을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어려운 병마와 싸우고 큰 일을 하고자 하는 분이 계시면 법화경을
열 번 정도 사경하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산승은 요즈음도
계속 사경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서 불자님들이 사경하여 보내온 경전이 수천권에
달하고 있습니다. 이 공덕으로 화주 한번 다니지 않아도 불사리탑이
힘차게 올라가고 있으며 저의 뜻대로 성역이 이룩되고 있습니다.
그동안 버마에서 불사리 2과가 오셨고 스리랑카에서 10과가 오셨고,
또 티베트 달라이라마께서 1과를 보내 주셨는데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수십차례에 걸쳐 방광하고, 향기가 가득한 가운데
1과가 50과로 증가되고, 가루사리가 수도없이 증가되는 일이
현재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시절 인연을 찾아 부처님이 이 땅에 감응하시어
불국정토를 이룩하고자 하심이며 혼탁한 세상과 욕심에 덮인
사람들을 구원하시어 참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려고 부처님의
힘을 보이신 곳입니다.
법화경을 한자 쓰고 큰절 한번 하면서 정성을 드리면 이 세상에
어떠한 고난과 불치의 병마도 험난한 역경도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분명하게 소멸되고 행복한 삶을 부여받는다는 것을 굳게 믿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큰일이나 불교중흥을위한 큰불사는 돈과 권력이
하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이것은 절대로 한계가 있으며 만약 이루어 진다고 해도 크나큰
마장이 끼고 멀지않아 사라져버립니다. 그러나 자신을 비워버린 큰 원력은
한계가 없습니다. 무한합니다. 불가능이 없습니다. 분명히 원력대로
성취되고 이룩됩니다. 이 세상에 비할 수 없는 기쁨과 만족함이 내생명
내생활속에 항상 넘칩니다.
이것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께서 함께 하심이며, 항상 보살펴 주심이며,
우리 생명 생활속에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저희 제주도 佛사리탑에서는
앞으로 수천만권의 법화경을 출판하여 한사람 한권 모시기 운동을
전개하겠습니다.
모든 불자들이 아침저녁으로 법화경 독송하고 사경하는 일이 생활화되면
이땅은 그대로 불국토요 불자들은 그대로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불자형제 여러분 부처님은 이 순간에도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부처님의 부르심에 자신있게 대답하고 부촉하심에 자신있게
실천하는 불자가 됩시다.
한글 법화경 전체보기 (클릭 →) http://cafe.daum.net/amtb/62Bc/454
첫댓글 감사합니다! 나무 아미타불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