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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숙 : 충북 청주산, 1961년생. '오일장 통신' '나는 자꾸만 살고 싶어 진다'
'구리무댁은 복두 많지' '울지마라 너만 슬프냐' 등 7권의 수필집이 있다.
저자는 아이엠 이프 시절 모든것을 잃었다 합니다.
마지막으로 끼고있던 반지를 팔아 손수레와 밀가루를 장만하여
오일장을 떠 돌며 빵을 구워 팔기 시작했답니다.
빚이 족쇄가 되어 희망이란 전혀 보이지도 않던 나날...
두 어린 아이들과 떨어져 생활하면서 방 한칸을 장만하여 아이들과 합치기를 간절히 꿈꾸며
빵을 만들다 남은 밀가루 반죽을 버리기 위한 음식 쓰레기 봉투 값이 아까워서
그 밀가루 반죽으로 설겆이도 하고 날마다 바닐라향이 진동하던 수제비를
끓여 먹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비가 와서 일을 못하게 되는 날, 도서관에 가게 되었고,
그 시간을 통하여 서서히 온 몸에 피가 돌기 시작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자,` 그녀의 이야기속으로 조금만 들어 가 보시지요.
*
앉을수는 있으되 서 있을수는 없는 옥탑방 가장자리 유리문에는
아이가 종종 가위질하여 오려 붙인 연예인들 사진이 붙어있었다.
"엄마, 나 이 다음에 똑바로 걸어다닐 수 있는 집으로 이사가면
공주 침대 사줘, 내 옷장도" 하는 딸아이는 나만큼 꿈이 많다.
"그럼 다 사주고 말고 우리 영비 별거별거 다 사줄께"
약속했던 말들이 아무것도 지켜지지 못한 채 세월만 흘러갔고
아이는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아이는 유리로 막은 그 작은방이 제 방이라 하며
노크를 하고 들어오라고 했고
어느 날은 반나절이 넘도록 조그만 방을 청소하기도 했다.
잦은 이사로 여기저기 흩어진 친구들에게 엎드려 편지를 쓰기도하고,
용돈을 모아 새로 나오기가 무섭게 사들인 해리포터 책을 읽으며
채곡채곡 책장에 책을 쌓아가고 있었다.
학교 가느라 급하게 벗어놓고 간 체육복을
빨아줘야지 생각하며 엎드려서 들어간 딸아이의 조금만 방안에
노트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서둘러 나가느라 자물통을 미처 잠그지 못한 일기장이었다.
선뜻 펴보기가 겁이난다.
아이의 아픈 마음이 옮겨져 있으리라는 짐작 때문에
미안한 마음부터 고개를 든다.
어제밤에도 남편은 술을 먹고 들어와
밤새도록 행패를 부리고 내게 시달림을 주었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앉아 있는 내게
옆에서 말릴 엄두도 내지 못하고 죽은 듯 누워 있던 아이들이
번갈아가며 이불속에서 내 손을 잡고 내 손바닥을 펴서
손가락으루 무어라 쓴다.
엄 마
사
랑
해
힘 내
너 무 너 무 사 랑 해 우 리 엄 마
힘
내
하던 손엔 물기가 묻어 있었다.
나는 흩어지는 정신을 추스리며 입술을 꼭 물고 이불속에서
아이의 손을 힘주어 잡아 흔들며
"엄마는 괜찮아" 하는 마음을 전하여 주었다.
그렇게 고통스런밤이 지나고 아무일 없다는 듯 아침이 찾아오고
남편은 나갔다.
남편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자 이제야 제 정신이 반은 돌아와
아침밥을 차려 밥상에 앉았을때 기운 잃은 아이들은
"엄마도 먹거 엄마도 먹어" 하며 수저를 내손에 쥐어 주었고
우리 세 식구는 서로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은채 밥그릇을 비웠다.
딸아이의 일기장을 펼치기도 전에 가슴이 시려 눈앞이 흐려졌다.
이른 새벽 술주정이 끝난 남편이 잠들고 내가 옥상에 나갔을때
딸은 유리문을 열고 내 배꼽께나 오는 낮은 천장의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는데 그 어린것이 아무 이유도 없이 보고 겪어야 하는
아픔을 옮겨 놓은 일기장을 펴들다 그만 오열하고 말았다.
"나는 이제 우리 엄마가 그만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아빠는 또 술을
먹고 들어와 엄마에게 행패를 부리며 욕을 했고 때렸다
엄마가 힘들게 일하면서 아빠의 술주정에 맞고 욕설을 당하고
사는게 싫다 엄마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우리집은 왜 이럴까.... 우리집이 너무 싫다......"
얼마나 서러웠을까 세수로 몇번이나 울음을 씻어내고 부어버린
얼굴로 장터로 향했다
사람들이 쉽게 던지는 "그건 너의 운명이고 팔자야" 라는 말을
받아들여 내 인생에 대해 방관하고 절망했던 나는 내 사랑하는
가족을 아프게 한 죄인이었다.
나는 이제 내 인생에 대해 예의를 다 할것이며 더 이상 내 삶이
타인으로 인해 상처 입고 멍들어 고통스럽도록 놓아두지 않을것이며,
꽃같은 사람들 안으로 한없이 한없이 걸어 들어갈 것이다
*
언젠가 비오던 날 장거리에 앉아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월세 나가지 않는 집에서 더 도 말고 한 달에 한 번, 마음놓고 영화 한 편 볼 수 있는 날이 있으려나
그게 큰 바램 이였던 그 날 나는 맞추어지지 않는 방세로 더 없이 초조 해하며 아무도 없는 빈 장터에서
천둥과 번개가 쳐 대는 장거리에서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떨면서 앉아 있었다.
그러니 그 꿈이 이루어지긴 애시당초 하지 않는 게 옳다 싶었고 누군가 보면 정말이지 '꿈꾸고 있네' 할
극심한 상황이였다
지난 해 내가 그리던 소읍으로 이사 오면서 꼬박 한 달을 일하지 않고 한 주일에 5일만 장에 나갔고
이틀이나 쉬게 되었을 때는 월세를 걱정하지 않는 집으로 이사오고부터였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이 아니고 그 동안 보지 못했던 영화를 일주일에 열 편 정도씩 동네 비디오 점을
찾아가 빌려 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꿈이 이루어진 셈이다.
꿈꾸고 있던 것을 성취함은 기적이라고 했다.
기적.
그것은 분명히 십 년 전 한치의 빛도 찾아볼 수 없을 때를 생각한다면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내는 것들, 그래 기적이다.
기적, 기적이 비웃고 있었다.
요 며칠 소설을 읽는 대신 철학과 인간 처세술의 책을 찾아 읽었다.
일류가 되는사람,이류에 머무는 사람(와타나베쇼이치)에 보면 입고 먹고 쉬는 것에
인생의 성취와 기준을 두며 이루어지는 것은 가장 낮은 행복이라고 했다.
낮은 행복... 어떻게 찾아낸 행복인데...낮은 행복이라 함부로 말하는가.
좀 더 지적수준을 가미해 일류인 사람들과 행보를 맞추어야 그것이 성공한 인생이고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였다.
그러고 보니 심한 불쾌감과 반발심이 느껴졌지만 어차피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한 부류가 책을 읽기보다는
부와 지식을 축척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터이니 그 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할 사람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내가 찾아낸 행복이 가장 소중하고 진정한 행복이라고...너희가 그 자리에 있어보았냐고...그 만큼 절실해
보았느냐고...말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해낸 것은 내가 생각해도 그럴 듯하다.
(흠... 자신 만만한데... 그래 잘하고 있어. 하면서)
그렇게 생각과 똑 같이 마음과 행동이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생각과는 달리 고달픔과 절박함을 벗어나 쉴새 없이 영화를 찾아보고 정신적이 허기를 채우고자 애쓰일이
무참히 슬퍼지는 것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아침 일찍 딸아이가 학교가고 나면 자정이 가까이 되어서야 돌아온다.
그 시간. 책을 읽기에는 날씨가 너무 좋았다.
봄 아닌가... 가끔 아주 가끔 친구들과 영화를 보기도 하고 맛있는 식사를 하기도 하고...
그런데 그게 내가 꿈꾸었던 행복이 아닌가..
돌아오고 나면 더 침체되었다.
도대체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이 우울과 슬픔은 무엇인가.
.
*
언제부터인가 사치스런 소망하나 갖게 되었다.
예쁜 가게 하나 마련해 시골장터에 일주일에 두 번 나가 일하고 나머지 날들은 그 가게 안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글을 쓰고 커피를 마시고 보고싶은 친구들을 맞이하고 너와 나를 이야기하고 음악을 이야기하고
인생을 이야기하고 한잔 술을 마시고 손님을 맞이하고 물건을 팔고...
마지막 꿈으로 해 놓았다.
그 꿈이 이루어졌다.
쉬 흔 살 즈음 이루어지지 않을까 했던 그 꿈이 3년 앞당겨졌다.
누군가 "다른 계획은 없나요. 가게를 마련해서 들어앉을 생각이라던가.."
할 때 나는 없다고 강력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가장 큰 꿈 이였으므로 이루어지지 않을지도 모를 일 이여서 그 꿈을 숨겨놓았을 때는 불과 지난 해 일이였다.
그런데 그 꿈이 이루어졌다.
예쁜 가게를 장만했다.
*
내 사는 곳에 유일한 친구하나가 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다.
피아노 학원를 하고 있는 친구다.
우리는 서로 극진한 호칭과 예의를 지킨다.
그녀는 눈이 얼마나 큰지 이야기하다보면 눈이 어찌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고 조금만 슬픈 이야기를 하면 눈물을
뚝뚝 흘려 이야기에 집중할 수 없을 정도였다.
저녁식사를 산다고 했다.
마주 앉은 그녀는 내일이 자기 생일이라고 했다.
(그 내일은 내 생일이기도 했다.)
별자리가 뭐냐고 물었더니 물병자리라고 했다.
나는 양자리인데 무엇이 틀릴까...
피아노의 '라' 음 같은 여자는 목소리가 높은 게 아니고 몸이 높고 갸날펐다.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여보... 어떻게 이 남자는 이런 시를 쓸 수 있을까..."하고 눈물 흘리고
화장실에 갈 때면 방안에 있는 화장실 앞에 남편을 불러 세우고 쳐다보게 한다고 한다.
"나 무서워... 내 앞에 앉아 있어 줘.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화장실에서 일을 다 볼 때까지 앉아 있으며
그렇게 변 보는게 힘드냐고 물어 본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깔깔 거리고 웃어 댔는지 배가 아플지경이였지만 ....
마냥 그녀가 예쁘기만 했다.
그녀는 늘 보라색 팬지꽃 귀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녀를 보자면 모딜리아니의 여인 <쟌느 에프테퓨테른느>가 떠오른다.
그녀의 남편은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한다고했다.
<당신 나 없으면 어떻게 살래.. 그렇게 세상 무서운 게 많고 겁이 많으니...>
내일 생일 날 홍콩여행을 간다고 했다.
그래서 떠나기 전에 인사를 한다고 했다.
나보고 묻는다.
참, 생일은 언제세요?
....나요.... 지나갔어요.
잘 다녀와요. 예쁜 그녀. 사랑스런 그녀. 오래오래 행복하길 바래요.
.
*
금산장.
아침에 장에 나가면서 경비실에 열쇠를 맡겼다.
오늘 아들이 포상휴가를 나온다고 했다.
마침 잘되었다.
새로 열 가게의 실내가 지저분해 하얀페인트를 칠 할 생각이였는데
아들녀석과 같이 할 계획을 잡았다.
황사는 심했지만 장사가 잘되어 힘이 솟았다.
하루종일 가게 꾸밀 생각으로 다른 생각할 틈이 없다.
파장이 되어 알이 가득한 쭈꾸미, 낙지, 딸기,
녀석이 좋아하는 불고기감으로 소고기를 사고... 좀 일찍 집으로 돌아갔다.
문을 열고 내가 들어서자 녀석이 폭죽을 터트렸다.
작은 케잌 하나 상위에 덩그러니 놓였다.
엄마 생일 축하해...
녀석이 안기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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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장을 찾아 떠돌면서 절망하지 않고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 간 긴 시간들과 그걸 기록으로 남기며
주위를 향해 따뜻한 시선을 잃지않는 인간적 품격이 글을 읽는 우리들에게
자신의 삶들을 뒤돌아 보게 합니다..
안효숙님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저도 자꾸만 살고 싶어집니다.
건강하게 오래...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지금보다 조금 더 따뜻하게 ...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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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숙연해 집니다. 삶은 소중한건데 그걸 놓아버리고 허렁허렁 지내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물질로 이룩되는 그 폼나는 성 때문에 많은걸 잃고 삽니다.그게 전부가 아님을 알면서 그걸쫒아 삽니다. 몸만다른 나의 이웃을,또 나를 더 사랑하겠습니다. 꺼내놓으면 아픈 지난 기억들이 사랑의 원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안효숙이란 작가를 왕님 덕분에 처음 알았네요...저도 안효숙의 수필집 한권 구해서 읽어봐야 겠어요...가슴에 와 닿는 부분이 많습니다..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강추 ~
~~ 손가락 쿠욱 누르렵니다 ~~
~ 살아있는 글에 매료 되는 주말 아침 ~
~행복 합니다. ~
안효숙님의 글도 글이지만 머절님의 말씀에 공감, 또 공감합니다.
그옛날 고다꾜 댕기면서 정구지 자전거 싣고 부산 부전시장까지 새벽에 출발했던...
밭에서 장삿꾼에게 넘기는것 보다 한푼이라도 더 받아 학비에 보탤려고......
에혀~~그녀의 결혼생활이 나의 젊을 적과 같은 점이 넘 많아서....그런데 그런중에 조그만 성공을 했구만요.난 그저 머리칼 쉰것 밖에는 없는데...눈물 콧물 몰래 훔치며 살았던 시절..생각만 해도 그시절을 어찌 견디었는지 지금와 돌이켜보면 끔찍 하구만이라우..나도 함 도서관에 가서 찾아 빌려봐야 겠구만요.
가끔씩 친구 만나서 식사하고 영화를 보고았네요.
큰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
정말 숙연해 집니다.나보다 못한 사람이 얼마나많으며 지금의 이상황이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고 당연한것처럼 교만하게 받아 들였음이 부끄러워 집니다.왕님 덕분에 안효숙님 알게 됬습니다.
이 글을 올리고 제 글을 여러번 읽어 보았네요.
제가 전달하려는 말이 잘 연결되어 표현된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조금 가필을 해 보았습니다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하군요.
부족한 글에 따뜻한 댓글 달아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합니다.
모두 모두 행복한 봄 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