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꽃, 버찌, 포리똥, 앵두
2011. 6. 28. 금계
나오는 사람들
조 선생 : 65세. 2008년 2월 퇴직.
임 선생 : 65세. 2008년 2월 퇴직.
문 선생 : 65세. 2008년 8월 퇴직.
유 선생 : 61세. 2010년 2월 퇴직.
나 선생 : 61세. 2010년 2월 퇴직.
전 선생 : 61세. 2011년 2월 퇴직.
김 선생 : 58세. 2010년 8월 퇴직.
이 선생 : 56세. 2011년 2월 퇴직.
출발
조 선생, 임 선생, 문 선생 세 사람은 10여 년 전 목포청호중학교에서 함께 만났는데, 정말 우연히도 세 사람 모두 1946년생 동갑나기였고, 하나같이 많은 형제간들의 장남이었다(조 선생은 7남매 장남, 문 선생은 8남매 장남, 임 선생은 9남매 장남). 매사에 별명 붙이기를 좋아하는 나는 그 셋의 만남에 ‘789’라는 별명을 붙였다. 형제 남매간이 일곱 여덟 아홉씩이나 되는 집안의 장남으로 살아간다는 것도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동병상련-우리는 보통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 술잔을 나누고 저녁을 먹으면서 차곡차곡 우정을 쌓아갔다.
유 선생, 나 선생은 정년퇴직을 몇 년 앞두고 작년 봄에 청호중학교에서 나란히 명예퇴직을 했다. 나이는 늙어가고 힘은 떨어지고 학생들 지도하기가 갈수록 어려웠는지 모른다. 789 세 명에다가 유 선생 나 선생을 합친 다섯 명은 식사를 몇 번 하다가 작년에 ‘화백회(화려한 백수 모임)’를 만들었다.
화백회는 올해 전 선생, 김 선생, 이 선생 세 명을 새로 영입하여 여덟 명으로 불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이는데 지난 5월 모임에서는 6월에 2박3일로 멀리 여행을 떠나기로 합의하고 총무인 유 선생과 여행 경험이 많은 전 선생을 추진위원으로 위촉하였다. 유 선생, 전 선생에 이 선생까지 합세하여 세 사람은 여행 일정과 준비물까지 치밀한 계획을 작성하였다.
2011년 6월 15일 수요일 오전 8시, 드디어 ‘화백회’ 회원 여덟 명은 목포 하당 해양수산청 주차장에서 만나 두 대의 승용차에 나눠 타고 2박 3일의 여행길에 올랐다. 아직 퇴직을 하지 않은 교사들은 서둘러 학교로 출근을 재촉할 시각이었다.
농사차, 당구차
우연찮게도 전 선생의 승용차에는 789 동갑 세 명이 탔고, 이 선생 승용차에는 유 선생, 나 선생, 김 선생이 탔다. 나는 또 우리 789 차를 ‘농사차’, 다른 차를 ‘당구차’라고 이름 붙였다. 우리 차는 모두 농사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농사차’가 되었고, 다른 차는 모두 당구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당구차’가 되었다.
‘농사차’의 운전기사 전 선생은 하당에 사는데 지난봄 퇴직하자마자 남의 땅을 빌려 서툰 농사일을 시작하였다. 농사 책까지 사서 뒤적여가며 연구했다. 농사지을 땅을 파다가 무슨 케이블선인가가 불거져 잘라버렸는데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여 한전 직원까지 불러다가 물어보고 어쩌고 했다던가. 아무튼 한바탕 소동 끝에 지금은 조용해졌단다.
임 선생, 문 선생은 몇 해 전 남악지구 새 아파트로 이사 갔는데 집 근처 남의 땅에다 채소를 열심히 가꾸면서 얼굴도 검게 그을리고 건강도 많이 좋아졌단다. 차가 영산호 강진 쪽으로 출발하자마자 임 선생이 농사 이야기를 꺼냈다. 이랑 도랑 치는 이야기, 지역 특성에 맞는 거름, 모종 심는 방법, 씨앗 심는 시기, 물주기, - 임 선생의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나도 말을 거들었다.
“뭐니 뭐니 해도 흙이 제일 중요하겄데. 황토가 좋더라니까. 식물들도 새 기운을 받아야 잘 자라.”
나는 이십여 년 전부터 단독주택에 살면서 마당의 심은 금잔디를 깎고 화단에 꽃나무와 채소도 심고, 옥상 화분에다가 고추 토마토 가지 오이를 길렀다. 살아보니까 채소 가꾸기는 취미 중에서도 가장 고상하고 건전한 취미였으며 돈도 별로 들지 않고 건강에 유익한데다가 무공해 밥상까지 즐길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조인 셈이었다.
‘당구차’에서는 유 선생, 나 선생, 이 선생 세 사람이 뗄래야 뗄 수 없는 당구 친구였다. 그들은 그냥 친선 시합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고로시’라고 해서 돈내기 당구를 즐긴다. 자고로 돈이 오가는 놀이치고 점잖게 끝나는 경우가 드물지만 세 사람은 워낙 인격이 높고 도를 잘 닦은 사람들인지라 돈내기 당구를 치면서도 절대로 의를 상하는 일이 없다. 도리어 그냥 친선 경기만 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우애롭다. 요즘에는 ‘성문암’이라는 희귀한 병에 걸려서 수술을 하고 명예 퇴직하여 겨우 한숨 돌린 김 박사까지 합세하여 가끔 고로시 당구를 즐긴다. <계속>
첫댓글 요즘 한비야 오지 여행기 읽으며 발동 누르고 있었는데 함께 여행하는 맛 또한 맛있으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