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마사주차장-유마사-집게봉갈림길-계곡합수점-용문재-정상-중봉-집게봉-유마사주차장(산행소요시간4:30)
모후산은 원래 나복산(蘿蔔山)인데 고려 공민왕 10년(1361년) 홍건적의 난을 피해 왕도인 개성을 버리고 왕비 노국공주와 모친 명덕태후를 모시고 이산 기슭으로 피난와 1년간 궁을 짓고 살며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해서 모후산, 또는 홍건적 난을 평정한 뒤, 태후를 모신 산이라는 의미로 모후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동쪽 송광면 에는 왕대(王臺)리, 유경(留京)리의 지명과 모후산 남릉 집게봉은 암릉이 집게처럼 위험하다는 뜻인데, 9부 능선에는 공민왕의 갑옷과 보검을 보관했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때 동복현감을 지낸 김덕령장군의 당숙인 김성원이 정유재란때 90세의 노모를 구하기 위해 왜적과 싸우다 전사해서 모호산(母護山)으로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조선 성종 때 쓰여 진 동국여지승람에는 모후산으로 기록돼 있다.
모후산 동쪽의 송광면은 유명사찰 송광사에서 따왔고, 삼청(三淸)리는 이성계가 조선창업을 위해 기도하던 전북 임실의 성수산 삼청동처럼 산. 물. 바람이 맑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전주 근교 종남산 송광사는 송광사의 스님들이 중건해서 이름이 동일하게 붙여졌다.
조선시대 동복현에서 생산되는 세 가지 궁중진상품(參福)은 복청(福淸,토종꿀), 복삼(福蔘, 재래종 인삼), 복천어(福川漁, 쏘가리. 가물치, 메기)로 조선 말엽까지 동복현감들의 골칫거리였다고 한다. 유마사에는 한국전쟁 때 인민공화국 전남도당이 있었고 백아산에는 빨치산 남부군 전남사령부가 있어 모두 불탔고, 지역주민들의 폐해가 심했던 곳이다. 모후산의 들머리 남면 유마리는 유마사에서 유래했고, 제월천은 처녀 유마운과 응일스님의 애처로운 전설을 간직했다. 보안교는 모후산 중턱의 너럭바위를 유보안이 치마폭에 싸서 가져다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증보문환비고엔 모후산은 한국 천종산삼 시배지로 기록됐는데 2005년에 심마니 오일갑이 2억5천만원상당의 120년생 천종산삼 8뿌리를 캔것으로 유명하다. 2009년까지 인삼시배지 복원과 생태관광테마파크 조성중이다. 순천시 남면은 원래 동복군 지영으로 동복의 남쪽으로 내남면과 외남면이었는데 1932년 남면으로 통합됐다. 유마는 유마사가 있어서 유래했고 유마 도는 유동이라한다.
산줄기는 호남정맥이 무등산으로 뻗어 오기전 꾀고리봉에서 남쪽으로 갈려나온 산줄기가 기우산, 차일봉, 밤실산, 운월산을 거쳐 모후산을 일구어 놓고 주암호로 숨어든다. 물줄기는 서족은 동복천, 동쪽은 보성강 주암호에 살을 섞고 섬진강과 살림을 꾸리다 남해 광양만에 골인한다.
문화유적
[유마사]송광사의 말사로 백제 무왕(627년)대 당나라 달마대사를 따라온 중국 요동태수 유마운(維摩雲)과 그의 딸 보안(普安)의 창건설이 있으나, 백제 15대 침류왕(384년) 인도승려 마라난타가 창건했다는 영광불갑사 나주 불회사처럼 백제유물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월천과 유마동천 보안교가 창건 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귀정암, 금릉암 등 8개 암자로 한 때 호남에서 제일 큰 사찰이었다. 1950년 한국전쟁 때 남노당 전남도당위원회가 있어 빨치산 본거지라 모두 불탔다. 호남최초의 비구니 승가대학을 설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