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가 안능, 즉 충간공 남지 묘소가는 곳이다. 저언덕 넘어로 약 500m지점에 안능이 있다.
★ 안능에 얽힌 이야기
안능이라 하면 충청북도 진천시 문백면 평산리에 소재하는 조선의 세종, 문종조의 양대에 걸쳐서 형조, 호조판서와 대사헌, 우의정, 좌의정을 지낸 재상으로서 자는 지숙(知叔)이며 시호는 충간(忠簡)인 남지(南智) 대감의 묘(墓 )가 있는 곳이며, 조부(祖父)는 영의정을 지내고 개국공신인 남재(南在) 대감이시다.
안능은 이분의 묘(墓)를 이르는 말이며 이묘는 충청북도 문화재 제80호로 양천산 자락에 위치해 있다. 이 묘자리는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이 탐내던 명당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이 양천산(凉泉山)은 해발 350m의 작은 산이다. 이산은 달리는 말의 형상을 하고 있는 분마형산(奔馬形山)으로 정상은 평원하여 반석과 같고 산중턱에는 석지(石池)가 있어 찬물이 그치지 않는 산이라 하여 냉천산(冷川山)이라 불리기도 한다.
이 산은 토성(土城)으로 된 양천산성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양천산성은 임진왜란때 일천여 주민들이 피신하여 목숨을 건졌던 곳으로 왜란 당시 재수(再修)한 곳이다.
정상에서는 시원한 사양저수지를 내려다 볼 수 있으나 사미마을 쪽으로는 하산길이 경사가 급하다.
이 산 밑에는 여러개의 작은 마을들이 있는데 옛날에는 의령남씨 손들이 아래 윗마을에 산재해서 살았었으나 이제는 많이 떠나고 지금은 몇호 안되는 손들이 이 산소를 수호하고 있다.
이 산소는 임진왜란때 우리나라를 돕기 위하여 왔던 중국(명) 장수 이여송이 이산 옆을 지나다가 이 장소를 멀리서 보고 부하를 시켜서 명당자리를 조사하도록 하였으나 조사를 마친 부하장수가 보고 하기를 가서 조사해 보니 그곳에는 이미 묘(墓)가 쓰여 있는데 조선의 정승이 묻혀 있다고 말하자 이여송이 그러면 그렇지 이런 명당에 산소가 없을 리가 없다고 아쉬워 했다는 일화가 있다.
또 이 양천산에는 양씨네 묘가 있는데 양씨 후손들이 이산이 자기네 산이라고 관아에 소를 제기하여 차지하려고 다툰바 있다고 한다. 이때 양씨 측에서는 이산의 이름이 양천산이기 때문에 이산이 자기네의 산이며 자기네 묘가 있다고 주장하여 지방 관아 에서는 이를 인정 소에 승소하였으나 현지거주 남씨 종친들이 당시 상급 관아인 한양 관아에 상소하여 한양에서 소송을 심리중에 산이름이 양천산이라 양씨네 소유라고 한다면 이산은 양씨네에게 주고 서울에 있는 남산은 산이름이 남산이니까 우리 남씨의 것이라고 주장하여 판관의 입장을 난처하게 한 것은 물론 南山이 南氏네 山이 아닌 것과 같이 凉泉山이 양씨네 산이 아니라고 판시를 하면서 그때 양씨네 묘가 있는 묘 주위의 적은 면적은 양씨네 한테 주도록 양해하여 현재에 이르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이것이 事實인지 아닌지는 더 調査硏究해볼 일이다
[出處 http://cafe.daum.net/euin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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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산 전경, 이산 아래에 사양저수지와 사미 마을이 있다.
▶ 저멀리 보이는 산이 양천산이고,저산아래에 사양저수지와 사미 마을에 있다. 사양저수지는 예전엔 노적봉이 마을이 있었다. 그리고 사미마을에서 밑으로약 500미터 지점에 중리마을이 있다. 중리마을은 "KBS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촬영마을"로 일명 "대추나무골"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사양저수지가 축조되기 전 그 옛날에는 의령남씨가 노적봉에 1가구, 사미에 1가구 중리에 3가구가 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중리 마을에 2가구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호암 마을에 1가구 만이 남아 그 옛날의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다.
▶KBS 대추나무사랑걸렸네 촬영지 안내판이 중리 마을가는 입구에 걸려있다. 매주 수요일 7시30∼8시30분에 KBS TV에서 방영되는 "대추나무사랑걸렸네" 에서 이 마을이 자주 등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