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위 노심초사 (國家安危 勞心焦思)’
이 글은 안중근 의사가, 취조하던 일본 검찰관에게 써준 것으로 유명한 글이다.
일본 검찰관의 후손에게 대대로 물려지다가 얼마 전에 무상으로 증정되었다.
안중근 의사의 글이기에 당연히 한국에서 보관되어야 한다는 후손들이 생각이었다.
대의(大儀)를 쫒는 일본인답다.
안중근 의사의 일본 속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대림사.
일본 대림사라는 절은 일본의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그맣고 초라한 절이라고 한다..
그 절의 대웅전 앞에 비석이 하나 서 있는데 그 곳의 비문 내용은 안중근 의사의 글이다.
‘위국헌신 군인본분 (危局獻身 軍人本分)’
이 비석이 서게 된 경위는 이러하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이후 일본 내에서는 안중근을 재판받기 전에 죽이겠다는 움직임이 있었다고 한다. 일본인 입장에서 보면 안중근 의사는 그들의 영웅인 이토히로부미를 죽인, 용서할 수 없는 암살자였던 것이다. 지바 도시치라는 일본 헌병 상사도 안중근 의사를 죽이려는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그는 자원하여 만주의 여순 감옥 간수로 부임을 하게 된다. 그것은 오직 안중근 의사가 재판을 받아서 죽기 전에 일본인 이름으로 처단을 하기 위해서였다.
지바도시치는 여순 감옥에서 간수로 근무하면서 안중근을 죽일 기회만 호시탐탐 엿보았다. 그는 일본의 영웅을 암살한 안중근 의사가 정식 재판을 받아 사형 당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게 기회를 엿보던 중에 지바 도시치는 안중근 의사와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안중근 의사에게 왜 암살을 하였느냐고 묻자 안중근 의사는 태연하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암살을 한 것이 아니다. 나는 대한민국 의병 준장으로서 전투중에 적을 사살한 것뿐이다. 나는 동양의 평화를 위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다. 내가 그를 죽이지 않았다면 동양의 평화가 위협 받았을 것이다. 그 뿐만 아니라 그의 침략 야욕에 의해 세계의 평화가 위태로워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전투 중에 잡힌 포로에 불과하다...... .”
지바도시치는 안중근 의사와 대화를 나누면서 점차 안중근 의사의 인품과 남아다운 당당한 면모에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었다고 한다.
지바 도시치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고, 안중근 의사는 천주교 신자였다.
종교와 민족, 그리고 국가를 초월하고 원수 관계마저 초월한 의리가 싹트게 되었던 것이다.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날은 10월 26일이었다. 그리고 안중근 의사가 처형당한 날은 3월 26일 아침 10시였다. 그 날 안 의사에게 사형 집행이 있을 것이라고 전달한 지바 도시치는 벽을 잡고 통곡을 하였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장으로 떠나기 전에 글 한 점을 써서 지바 도시치에게 주었는데 바로 그 글이 대림사에 비문으로 씌어 있는 ‘위국헌신 군인본분 (危局獻身 軍人本分)’이었다고 한다. 비록 민족과 국가는 다르지만 군인의 본분이 어디에 있는가를 일깨워 준 안 의사의 풍모를 느낄 수 있는 글이다.
안중근 의사가 처형을 당하는 날은 아침부터 보슬비가 내렸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는 사형 집행 당하기 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죽은 뒤에 내 시신을 조국으로 가져가지 마라. 비록 지금 이렇게 죽지만 내 조국이 해방되는 날 나는 천상에서 만세를 부르면서 춤을 출 것이다.”
만주 일대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들이 안중근 의사를 탈옥시키기 위하여 탈옥 지침을 적은 쪽지를 지입 물품 속에 넣어서 보냈는데 이를 발견한 지바 도시치는 아무도 몰래 없애고 지입 물품만을 안중근 의사에게 넣어 주었다고 한다. 안중근 의사가 처형을 당하던 날, 벽을 잡고 통곡을 한 지바 도시치는 그 길로 제대를 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리고 고향 근처의 대림사에 안중근 의사의 사당을 세우고 영정을 모셔두고 안중근 의사가 써준 글로 비석을 세우고 평생을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면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아내와 양녀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안중근 의사를 추모하는 일은 멈추지 말 것을 유언하였고, 그의 유언을 따라 두 사람은 평생을 향을 사르며 하루도 쉬지 않았다고 한다.
지바 도시치의 양녀인 미우라는 평생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살았는데 그녀의 살림은 매우 가난함에도 불구하고 안중근 의사의 글을 팔지 않고 무상으로 기증을 하였고,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아버지의 유언을 충실하게 따랐던 점 또한 우리들에게 귀감이 된다.
민족과 국가, 종교를 초월하여 맺은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고, 평생을 대대로 흠모하는 일을 멈추지 않는 점이 쉽게 달아오르고, 쉽게 잊혀지거나 식어버리는 냄비 근성에 비유되는 우리들에게 요즘 들어서 더욱 경종을 울려 줌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첫댓글 안중근과 지바도시치 그리고 미우라는 모두 훌륭한 분들이 시내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잘 읽었네
가슴이 벅차오는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