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함께 하심과 요셉의 형통
창세기 39:1-23(6)
요셉은 어머니가 넷이요, 형들이 열이나 되는 복잡한 집에서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사랑하는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이므로 요셉을 사랑했습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꿈을 꾸었고 형들에게와 부모에게 자주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서 형들은 요셉을 ‘꿈꾸는 자’(37:19)라고 했지만, 성경은 요셉을 ‘형통한 자’라고 합니다.(2) 국어사전에 ‘형통’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 되어 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여러 아들보다 더 사랑하고 채색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요셉에게 들에 양치는 형들에게 먹을 것을 갔다 주라고 하며 보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이 양치는 세겜에 같으나 형들이 보이지 않아서 사람들에게 물어 도단까지 가서 형들을 만났습니다.
그때 형들은 요셉을 죽이고자 묶어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러다 애굽으로 내려가는 이스마엘 사람에게 요셉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채색옷을 벗겨 양의 피를 발라 아버지께 보이며 요셉이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갔을 때가 열일 곱 살이었습니다. 요셉은 서른 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십삼 년 동안을 애굽에서 종으로, 옥에 갇힌 죄수로 살았습니다. 십삼 년은 그에게 있어서 가장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버지 야곱도 십삼 년은 사랑하는 요셉이 죽은 줄로 알고 매우 슬퍼하며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십삼 년 동안의 혹독한 시련을 잘 견디므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십삼 년 동안을 잘 견디지 못하였다면 그의 일생은 매우 불행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영원한 지옥 형벌도 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시련의 십삼 년은 요셉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서른 살이 되기까지의 십삼 년은 매우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때를 잘 이겨낸 사람들은 행복하게 살 수 있지만, 그때를 잘 이겨내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서른 살이 되기까지 혹독한 시련의 십삼 년이 있었습니다. 신앙적으로도 매우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때를 잘 이겨냄으로 오늘의 목사가 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그때를 이겨내지 못했다면 비참한 존재가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은 열일 곱 살이 되어 형들에게 팔려 애굽으로 끌려가서 노예 시장에 팔렸습니다.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요셉을 사니라’(1)는 말씀은 요셉이 노예로 매매 되었다는 말입니다.
요셉의 불행은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 받던 요셉에게 있어서 매우 충격적이며 실망이 아닐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2).
인간적으로 보면 노예로 팔려 종이 된 요셉을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말씀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3), 그리고 “형통하게 하심”(23)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말씀을 다시 보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었다는 말씀을 보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2),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3),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행통하게 하셨더라”(23)는 말씀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란 말씀은 요셉이 하나님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믿지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이 아닙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어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형통한 자가 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런데 요셉은 하나님을 원망했다는 말씀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요셉은 어려울수록 하나님을 찾고 의지했습니다.
우리가 뜻하지 않게 충격적이고 절망적인 일을 당할 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눈앞이 캄캄하고 앞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하나님을 원만합니다.
엎치데 덮친다는 말처럼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하였지만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죄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9)라고 말했습니다. 흔들림이 없는 요셉의 믿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혹을 받아도 넘어지지 않아야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오늘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생각대로 되지 않고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중고등학생 때와 대학을 다닐 때는 말씀을 듣고 울며 회개하고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던 그들이 사회에 취직해서 어려움이 닥쳤을 때 이겨내지 못해 쉽게 믿음에서 떨어집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나 억울한 일을 당했을지라도 하나님을 찾고, 달콤한 유혹을 받았을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넘어지지 않아야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형통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구나 청년의 때 십삼 년을 매우 중요한 때입니다. 믿음으로 잘 이긴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형통한 자가 됩니다. 그러나 잘 이기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다시 일어설 수 없을 뿐 아니라 영원히 실패한 인생으로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팔려서 종이 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것은 형통한 자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인간적인 형통은 사람 중심과 환경에서 찾습니다. 내가 생각한 대로 환경이 좋으면 ‘형통’이라고 합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형통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자가 형통한 자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종이 된 것이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것은 장차 애굽의 총리가 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종으로, 옥에 갇힌 죄수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에게 함께 하신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란 신실하신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신실하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므로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신실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주인이 요셉이 하는 모든 일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습니다.(3)
주인 보디발은 이방인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그의 눈으로 보기에 다른 종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요셉이 하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주인은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요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주인 보디발은 요셉을 종의 신분으로서 최고의 자리로 승진시켜 주었습니다.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4). ‘가정 총무’란 주인의 전재산을 관리하는 종으로서 최고의 직책입니다.
요셉이 가정 총무로 주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그 주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쳤습니다.(5)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집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형통한 자 요셉으로 인해 주인 보디발의 집이 큰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성도의 집에 모든 소유가 복을 받게 됩니다. 그가 다니는 직장이 복을 받습니다. 형통한 자가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다’(6)는 말씀은 원래 요셉은 잘 생겼지만, 형통한 자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기에 더욱 아름답고 존경스럽게 보였다는 말씀입니다.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며 동침하기를 청했습니다. 젊은 청년으로서는 이겨내기 어려운 시험이었으나,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죄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9)라고 말하며 거절했습니다. 신전의식을 항상 의식하는 신앙인으로서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성경에 나온 많은 신앙의 인물 중에서 특별히 요셉은 허물이나 죄악이 발견되지 않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거짓말을 하므로 큰 죄를 범했습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도 충신의 아내를 범하고 충신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요셉이 죄를 범했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여주인은 요셉을 붙잡고 동침하자고 했을 때 요셉은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요셉이 버리고 간 겉옷을 증거물로 거짓 고발하여 요셉에게 누명을 둘려 씌워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기 때문에 속히 옥에서 나갈 수 있도록 해 달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조용히 하나님만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믿었습니다. 우리가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어려움을 당하였을 그때 매우 주의해야 합니다. 그때 조용히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야 합니다.
옥에 갇힌 요셉은 간수장이 맡겨준 일을 성실하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간수장은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겨 그 제반 사무를 요셉에게 처리하라’고 맡겼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21-23)
요셉이 주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어 가정 총무가 되었던 것처럼, 옥에 갇힌 요셉이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옥에 갇힌 모든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겼습니다. ‘주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어’(4),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21)라는 말씀에서 여호와께서 주인에게와 간수장에게 은혜를 베풀도록 해 주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 가장 불행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면 불행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이러한 요셉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그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진행하셨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팔려서 애굽에 종이 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죄수가 된 십삼 년 동안을 어떻게 살았느냐가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 모든 어려움을 하나님의 섭리로 알고 하나님만을 의미하고 믿었습니다. 비로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요셉이 십삼 년을 억울하다고 원망이나 하고 불평하며 살았다면 그의 삶은 비참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누구를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만 의지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하시고 형통한 자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로 인해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나아가 아버지와 형들까지도 돌보아 주었으며,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는 인자가 오시는 날 구원하셔서 영원한 천국의 열두 지파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신 구속사적인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을 통해서 구속사적인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께서 오늘 나와 여러분을 통해서 크고 작은 구속사적인 역사를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에게도 십삼 년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어렵고 힘든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어려운 일을 통해서 원망이나 불평하지 말고, 조용히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을 찾고 더 가까이 하셔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형통한 자가 됩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이룹시다. 영원한 천국에서 열두 지파에 속한 우리 모두가 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