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자유로워지세요, 도전하세요"… '프라다' 오너 미우치아 프라다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이 유명하디 유명한 '디자인계(界)의 여제(女帝)'를 만나러 가면…, '악마'가 앉아 있을 줄 알았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편집장 메릴 스트립 같은, '도도'와 '괴팍'과 '깐깐'이 온몸을 휘감아 도는 여인 말이다.
무엇보다 '프라다'를 제목으로 삼은 그 영화의 잔영(殘影)이 뇌리를 맴돌았고, 여기에 그녀가 내건 '사진 기자 동행 불가', '50분 시간 엄수' 등의 까다로운 인터뷰 조건이 억측의 개연성을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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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라다(PRADA)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수석 디자이너 미우치우 프라다 여사. 그녀는 창업자의 손녀인‘오너 3세’이면서, 프라다를 세계 최정상 브랜드로 도약시킨 신화의 주인공이다. / 프라다 제공·그래픽=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
"와~ 좋은 날씨예요. 하늘에 감사합니다. 어제는 비바람이 몰아쳤잖아요?"
악수를 청해오는 그녀의 손을 잡고 이 인사를 듣는 순간까지도, 솔직히 그녀가 바로 그 프라다인지 조금 헷갈렸다.
"대한민국이 귀하,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를 가슴 속 깊이로부터 환영하는 것 같다"고 운을 띄운 후 그녀로부터 "고맙다"는 답변을 듣고서야 감을 잡을 수 있었다.
애당초의 예상은 여지없이 틀렸다. 귀고리 이외에는 장신구 하나 없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자리를 잡은 이 '여제'는 소탈하고 털털하고 겸손했다. 프라다를 오늘날 세계 최정상 브랜드로 키운 이 오너 3세 디자이너는, 요약하자면 "새로운 것을, 각자 스스로의 정수(精髓·core)로부터 뽑아내고 발전시키라"는 메시지를 누차 강조했다.
그녀는 자주 폭소를 터뜨리며 친근하게 대화를 이끌었다. 하지만 답변은 굉장히 꼼꼼했다. 기자가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려고 하면, "아직 조금만 더 답할 게 있다"고 끊고 대답을 잇는 식이었다. 듣던 대로 그녀는 '디테일'에 굉장히 강했다.
대화가 이어질수록 '소탈'과 '디테일'과 '새로운 것에의 도전'과 '각자 정수에의 기반'이라는 메시지가 각기 큰 원을 그려나갔다. 그리고 그 궤적이 겹치는 교집합에 그녀가 거둔 큰 성취의 비밀이 묻혀 있다는 확신이 밀려왔다.
"디자인을 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가"를 묻자 그녀는 0.5초의 망설임도 없이 "새로움이다. 언제나 새로운 것에 도전하려고 노력한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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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애당초 사진 기자의 동행을 고사(固辭)했던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가 인터뷰 말미에 사진 촬영에 흔쾌히 응하며 장원준 기자와 문답을 나누고 있다. 예정에 없던 촬영이 시작되자 그녀는“신문에 내 사진이 예쁘게 나오도록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크게 웃었다. / 프라다 제공
미우치아는 '패션의 괴짜'로도 통한다. 여성들은 누구나 잘 아는 '나일론백의 대박'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치학을 공부한 그녀는 가족의 사업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물려받은 후, 1985년 낙하산에 쓰이는 나일론을 소재로 삼아 만든 실용적 토트백(윗 부분이 벌어져 있는 핸드백), 흔히 말하는 '나일론백'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최상의 가죽이나 천연 섬유만이 '근엄한 명품'의 재료가 될 수 있다는 통념을 여지없이 깨뜨린 것이다. 그녀는 전통과 미래, 실용과 아름다움을 적절하게 버무리면서 명품의 타성에 반기(反旗)를 들어 성공 시대를 이어갔다.
―도대체 그런 독특한 시도의 영감(靈感)은 어디서 어떻게 얻습니까? 이를테면 여행, 영화, 독서, 쇼, 대화… 뭐 그런 건가요?
"그 모든 것입니다. 한마디로 답할 수 없고, 그때 그때 달라요. 매우 많은 쇼와 많은 컬렉션을 보고 또 많은 것을 접하는데, 그런 것이 다 혼합돼 영감을 받습니다."
―그러면 에피소드를 들 수 있나요? 가족이라든지, 이웃이라든지, 동료라든지, 어떤 특별한 사람이나 특별한 포인트로부터 영감을 얻는 경우가 없나요?
"저는 그렇게 순간적으로 영감을 받는 식으로 일을 하지 않아요. 그래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없어요.(웃음) 예를 들어, 패션쇼 같은 일에 며칠씩 몰두하고 있다 보면, 내가 뭘 하고 있는지도 모를 때가 있어요. 그저 그 작업과 내 자신이 서로 소통(疏通)하는 겁니다. 저는 특히 흥미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데서 작업의 실마리를 찾습니다. 제가 맘에 드는 소재를 고르면 일이 쉬워지지요. 차근차근 쌓아가는 연속적 과정 속에서 어떤 그림에 도달하게 되면 주제를 부여합니다. 결국 그렇게 도달한 결과물을 보는데, 내 스스로에게도 좀 어색하게 느껴진다면? 그게 바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순간입니다. 어리석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게 매우 중요합니다."
―이렇게 묻지요. 당신처럼 최고의 디자이너, 최고의 패션 리더가 되고 싶은 사람에게 충고를 주신다면?
"아주 많아요. 공부하고, 공부하고, 공부하세요.(웃음) 자유롭게 읽고 보고 배우세요. 뭐든지 읽고, 세계를 보고, 예술과 패션을 배우세요. 그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당신 스스로의 정수(core)에서 나오는 그 무엇을 소망하세요. 그러기 위해 당신 스스로에 대해서도 공부하세요. 당신의 개성과 재능이 뭔지 잘 따져보세요. 그리고 이 모든 걸 잘 혼합하세요. 가장 어려운 것은 당신 자신의 사고(思考), 당신 스스로의 정수에서 나오는 것을 따라가는 겁니다. 아마 이 조언은 패션이나 디자인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 일반적으로 적용될 겁니다.(웃음)"
―당신은 많이 읽나요?
"예. 신문도 읽고 책도 읽습니다. 많이 읽습니다."
그녀의 설파(說破)는 놀랍게도, '세계적 경영 사상가' 말콤 글래드웰(Gladwell)의 지론과 맥이 닿는다.
글래드웰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최신 저서 '아웃라이어(Outlier)'를 설명하며 "창의성과 창조성은 '1만 시간의 몰입'으로부터 얻어진다"고 지적했다. 황상민 연세대 교수(심리학)는 "글래드웰이 말하는 '1만 시간'은 단순한 시간 축적량보다는 마니아처럼 철저하게 빠져드는 상태의 지속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런 지속적 몰입이 있어야 마치 '티핑 포인트'(글래드웰의 또 다른 저서)를 거치듯이 능력의 폭발적 업그레이드가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미우치아 프라다가 말하는, '자신의 정수에서 나오는 그 무엇을 소망하며,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작업과 자신이 소통하는' 광경은 글래드웰 세상에서 '마니아의 1만 시간 지속적 몰입'을 묘사하는 듯하지 않은가? 그렇게 해서 도달한 결과물이 바로 '새로움'을 창조하는 순간이란 그녀의 설명 역시, 노력 축적을 통해 티핑 포인트를 통과하듯 폭발적 업그레이드에 도달한다는 글래드웰의 분석과 동전의 앞뒤면 아닌가?
그녀가 생각하는 본인과 프라다의 성공 비결이 궁금해졌다. 한마디로 요약해달라고 질문을 던져보았다.
"하하, 어려운 질문이에요. 딱 떨어지는 답은 없어요. 타고난 재능도 있어야 하고, 일에 대한 호감과 열정과 고집과 성실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당신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비전과 아이디어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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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우치아 프라다 여사가 지난 3월 초 이탈리아 밀라노에서‘패션 주간’을 맞아 열린 한 파티에 참석하면서 환하 게 웃고 있다. 그녀는 지난 4월 23일 서울 경희궁에서 열린‘프라다 트랜스포머’오프닝 파티에도 컬러만 검정 으로 다를 뿐, 거의 유사한 드레스 차림으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검정 장식이 촘촘히 박힌 채 세로로 길쭉한 고무판을 연속적으로 이어붙인, 실험적 드레스이다. 그녀는 파격적 소재로 새로움과 미래 지향의 이미지를 뿜어 내는 한편, 하이힐과 귀고리로 포인트를 주면서 세련됨을 잃지 않았다. Weekly BIZ 인터뷰, 밀라노·서울 파티 등 세 곳에서 모두 그녀의 얼굴에는 화장기가 거의 없었다. /Getty Images
―당신은 패션계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요?
"물론 두려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저를 멈추게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새로움이 없다면 제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렇게 태어난 것 같아요. 물론 시작할 때는 두렵지만, 시간이 흘러 제 시도를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나면 두려움이 없어지지요. 사실 제가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하면 저보다 회사가 더 두려워하고 공포에 질립니다.(웃음)"
―'브랜드'란 과연 무엇인가요?
"저는 브랜드란 말은 즐겨 쓰지 않아요. 브랜드란 글쎄요, 저희가 하는 일과 정신과 개성을 표현하는 그 무엇 아닐까요? 저희가 추구하는 새로움의 방향이 브랜드 아닐까요? 요즘과 같이 세계화 시대에서 흔들림 없이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핵심을 향해 나가는 것, 그것이 브랜드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브랜드는 '다양성'과 변화'로 인해 유명해진 것일 겁니다. 프라다의 경우 제 남편이 사업을 주로 하고 디자인은 제가 맡습니다. 그래서 브랜드와 핵심에 관한 추구에서 혼선이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희는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라다는 한국에서의 트랜스포머처럼 문화 시설을 세계 각국에 짓고 있습니다. 대중을 향한 본격적 공략 마케팅인가요?
"프라다의 역사를 잘 모르면 그렇게 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질문에 그녀는 약간 흥분하는 듯했다.
"우리는 거의 20년 전부터 남모르게 다양한 예술을 지원해왔어요. 예술 작품이나 영화, 책 출간 등을 지원해왔던 활동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처럼 보이는 게 싫었어요. 저는 예술과 비즈니스를 연결 짓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한 것이지요. 그런데 약 10년 전부터 예술과 건축, 예술과 패션을 융합하는 게 대세가 됐습니다. 저희의 활동과 우연히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그래서 더 이상 대중에게 비밀로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자연스럽게 우리의 활동을 공개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다른 기업들도 저희를 따라 예술을 지원하기 시작했어요. 그들은 우리와는 달리 그러한 활동들을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더군요."
이쯤에서 기자가 "잘 알겠다"고 하면서 다른 질문으로 넘어가려 하자, 그녀는 "조금 더 답하겠다"며 말을 이었다.
"그런 활동을 보면서 저는 매우 화가 났습니다. 저는 예술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지원해왔기 때문이지요. 서울에서 하는 트랜스포머 행사도 이런 오랜 전통의 연장 선상에서 하는 겁니다. 마케팅 수단이 아닙니다. 때로는 오히려 회사가 하기 싫다고 해도, 저 개인의 열정으로 이런 예술 활동을 지원하고 있어요. 결국 그 질문에 대한 저의 대답은 '정반대'라는 겁니다.(웃음)"
일반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녀는 세밀한 '디테일 챙기기'로 프라다 내부에서 유명하다. 프라다 전 제품의 작은 디자인 하나까지도 그녀의 통제권 밖에 놓인 것이 없다고 한다. 심지어 작은 파티가 열려도 그녀는 '칵테일이 잔의 어느 수위(水位)까지 담기도록 할 것인가' 하는 세부 지침까지 챙긴다. 그녀의 이런 지침이 이제는 프라다 파티의 매뉴얼이 됐을 정도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열린 트랜스포머 개막 행사에서도 그녀는 1500여 명의 하객 명단과 주요 인사 프로필을 일일이 확인한 것은 물론, 행사에 참여하는 통역사, 운전기사, 청소 담당자의 유니폼까지도 미리 치수를 받아 본사에서 만들어왔다.
프라다 코리아의 이주은 부장은 "미우치아의 디테일 챙기기는 이제 프라다 전체의 문화로 자리 잡았고, 제품과 업무 과정의 작은 실수도 없애는 강점으로 발전했다"고 말했다.그런 점에서 미우치아 프라다는 중국의 경영 컨설턴트 왕중추(汪中求)의 저서 '디테일의 힘'을 연상시킨다. 그는 "사소한 하나가 삐끗해 결국 전체가 무너진다"는 요지의 주장으로 중국과 한국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당신이 생각하는 최강의 경쟁자는 누구입니까?
"(웃음) 말하지 않을래요. (웃음) 거의 없어요."
―그래도 한국의 독자들은 궁금해할 텐데요.
"경쟁자는 모두이자 또 아무도 없어요. 경쟁자가 있기는 하겠지만, 우리는 매우 구체적이고 우리는 특별한 철학이 있기 때문에 우리 갈 길을 갈 뿐입니다."
―프라다는 초고가도 아니고, 중저가 명품도 아니어서, 가격 정책이나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명쾌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물론 아주 비싼 가격에 그저 열명, 백명만 누리는 제품을 만들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전 달라요. 명품이면서도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국가에서 향유되기를 저는 희망합니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국가에서 접근 가능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요. 저희는 아름답고 품질이 탁월한 제품을 만들어서 너무 비싼 가격이 아닌, 적절한 가격에 제공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저희에게 '좀더 가격을 올려 매겨도 될 텐데, 너무 정직하다'고까지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런 철학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아마도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벌 수 있는 돈보다) 덜 벌고 있을지 모르죠. 어쨌든, 그렇게 수익만을 위해 가격을 높이 매긴다든가, 또 낮춘다든가 하는 정책을 취하지 않습니다. 초고가 제품이라는 이미지를 통해 비싼 가격으로 매출액을 올린다든지, 또 그런 초고가 제품을 어느 정도 판매한 뒤에는 중저가 제품을 내놓아서 매출을 높인다든지 하는 식으로 (소비자를 상대로) 가격 정책을 펴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는 영화는 마케팅에 도움이 됐나요?
"예, 결국 도움이 된 것 같아요.(웃음) 사실 처음에 그 도입부를 보고는, 이상한 영화, 나쁜 영화가 아닌가 굉장히 걱정을 했어요. 하지만 끝까지 보고 나니 좋은 영화더군요."
―당신이 론칭한 또 다른 브랜드, '미우미우(miu miu)'와 오리지널 프라다의 가장 큰 차이는 뭔가요?
"미우미우는 언제나 저 자신입니다. 프라다에서는 허락되지 않는 것, 그러니까 너무 전위적이고 독특하고 개념적인 시도가 미우미우에는 담겨 있지요. 프라다는 전통이 너무 깊어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다 담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미우미우는 기본적으로 재미와 본능을 더 담고, 심각함은 덜 담고 있지요."
―아시아 고객만의 특성이나 한국 고객만의 특성이 있나요?
"요사이 제가 국가별로 소비자들이 어떻게 다른지 연구해보고 있습니다. 잠정적 결론은 국가별로 그렇게 큰 차이는 없는 것 같다는 것입니다. 특히 1년여 전만 해도, 경제 위기가 오기 전만 해도 뉴욕과 밀라노와 도쿄와 서울의 인기 상품은 거의 똑같았어요. 그런데 경제 위기가 닥쳐오니까 차이점이 나타나기 시작하더군요. 미국인은 더 미국인처럼, 독일인은 더 독일인처럼, 이탈리아인은 더 이탈리아인처럼, 아시아인은 더 아시아인처럼…. 위기가 오니까 국가별로 개성이 발현되고 있어요."
―한국인의 특성은 뭔가요?
"뚜렷한 것은 한국 여성들은 좀더 클래식하고 여성적인 것 같아요. 더 섬세하고 여성적 컬러를 더 좋아하고요."
―아시아에 짝퉁 제품이 많은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 (한숨을 내쉰 뒤) 어쨌든 누군가 모방한다는 것은 그 제품이 흥미롭다는 것이지요? (웃음) 물론, 가짜 모방 제품은 불법입니다."
―프라다 옷은 소화하기 어렵다고 합니다. 세련되게 입는 법을 추천해준다면?
"(크게 웃으며) 이 질문은 대답하기 불가능하지요. 사람마다 각자 다르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새로운 것과 실험적 도전에 대한 호기심이 많다면, 그런 도전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실험에 대한 호기심이 없다면 안정적으로 입게 될 거고요. 옷 잘 입는 지혜는 다른 사람의 충고에서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잘 아는 것에서 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용기(勇氣), 자신의 선호(選好)에 달린 겁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것과 당신이 입는 것은 조화를 이루게 마련입니다. 당신이 누구고 당신이 뭘 원하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저 우아하게 옷을 입고만 싶다면? 그러면 해답이 안 나옵니다. 옷 입기에 대한 타인의 충고를 따르는 것은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너 자신을 파악하고, 내부의 충고를 들으라는 것이지요?
"저는 제 인생에 두 번 실수한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충고를 들었을 때 실수를 했어요. 그래서 저는 실수를 하더라도, '자신이 내린 결정으로 인한 실수'를 하라고 권하고 싶어요. 저는 자유에 대한 큰 믿음이 있어요. 스스로가 선택한 끝에 생긴 실수는 괜찮아요. 하지만 남의 말을 듣다 범하는 실수는 재앙과도 같아요. 가장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당신이 갖고 있는 최상의 마음가짐(best mind)과 최고의 지혜(best brain)로, 자유롭게 결정하세요. 다른 사람의 비판은 신경 쓰지 말고 말이죠.
비슷한 맥락에서, 옷을 입을 때에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는 법을 연마하라고 충고하고 싶어요. 그러니까, 패션 잡지도 열심히 읽고 영화도 열심히 보고 또 보면서…."
―당신의 열정은 어디서 옵니까?
"모든 일에 대한 호기심,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에서 옵니다. 나는 예술도 좋아하지만 다른 분야도 좋아하지요. 예술계와 패션계와 그 외 많은 분야의 뛰어난 사람들과의 교류에서도 열정을 얻습니다."
―큰 실패는 없었나요?
"한번도 큰 위기는 없었어요. 저는 운이 좋아요. 또 저는 낙관적입니다. 특히 선택을 할 때 매우 낙관적이려고 노력합니다."
―서울과 한국에 대해 어떤 인상을 갖고 있나요?
"물론 한국을 좋아하니까 이 행사를 서울에서 합니다.(웃음) 한국은 새로움에 활짝 열려 있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 대해 한 말씀?
"서울을 좋아합니다. 산과 같은 자연과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울린 도시입니다. 현대성과 앤티크가 절묘하게 잘 어울린 도시입니다. 저는 한국 영화도 좋아합니다."
그녀는 "킴키둑"이라고 발음하면서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몇 편 봤고, 좋아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내며 기자는 "오늘 아침에 처에게 '오늘 미우치아 프라다와 인터뷰한다'고 하자 믿지 않더라. 독자들도 그럴 테니 당신을 만났다는 증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소녀처럼 5초 동안 웃더니 흔쾌히 기자와 사진을 찍었다. 이어서 기자의 5살배기 아들을 위한 '덕담(德談) 동영상'을 찍어줄 수 있느냐고 부탁하자, 그녀는 역시 주저하지 않고 촬영에 응하며 한국 어린이들을 향해 "자유롭거라(Be free)"라고 외쳤다.
인터뷰 시간은 이미 1시간 3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사전 엄포'와 달리, 사진도 찍고 인터뷰 시간도 예정을 훌쩍 넘기는 '디자인 여제(女帝)'의 '소탈하고 열린 매력'은 인터뷰 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프라다'는 어떤 회사
1913년 마리오 프라다(Prada)가 이탈리아 밀라노에 설립했으며, 그 손녀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남편 파트리치오 베르텔리(Bertelli)가 경영에 참여한 이후 세계 최정상의 브랜드로 도약했다.
평범하지만 세련된, 미니멀리즘(minimalism)의 대표적 브랜드라는 평이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나왔을 정도로, 2000년대를 가장 잘 표현하는 브랜드로 꼽힌다.
창업자 마리오 프라다는 가족 중 여성이 회사 일을 맡는 것을 막았다. 하지만 1950년대 중반 그가 사망한 뒤 그의 아들이 사업에 관심을 두지 않자 그의 며느리가 대신 회사를 맡아 20년 가까이 경영한다.
프라다의 '오너'이자 '상징'이자 '수석 디자이너'인 미우치아 프라다는 1949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는 정치학을 공부했지만, 할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죽 사업을 물려받아 '프라다 신화'의 주인공으로 변신했다.
2005~2006년 타임지(誌)는 그녀를 '절제된 럭셔리의 여왕'이라는 평가와 함께, '세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했다. 1994년에는 오스카 패션상을 받았다.
늘 남과 다르게, 자유롭게 생각하는 그녀의 사고(思考)가 '핸드백이 꼭 가죽일 필요는 없다'는 발상을 낳았고, 소위 '나일론 백'으로 불리는 신소재 가방 개발로 이어져 완전히 새로운 패션 트렌드를 창출했다는 평을 듣는다. 독특한 소재와 지적인 분위기로 실용적이면서도 고급스럽고, 거창하지 않지만 우아한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는 분석이다.
'LG 프라다폰'(휴대전화), '현대 제네시스 프라다'(자동차), '프라다 트랜스포머(2009년 서울에서 진행되는 복합문화 프로젝트)' 등을 통해 한국과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