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바이크와의 만남
1.
2008년 4월 작정한 바가 있어 삭막했던 도시 생활을 접고 나는 강구로 이사를 단행했다. 눈물과 분노와 행운도 나는 버렸다. 내게 남아있던 권리도, 치러야 할 의무도 나는 잠시 접으려고 했었다. 2009년 4월 나는 강구에서 다시 화진으로 이사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그 어느 것으로 부터도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산 삶이란 결국 내가 고스란히 떠안고 가야한다는 것을 알았다. 내 의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닐지라도 말이다.
2.
바닷가를 찾았던 것은 스쿠버와 수중사진을 좀 더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밥만 먹으면 물로 기어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 하는 바람이 있었다는 말이다. 일 년 반이 지난 지금 바닷가라고 해서 내륙과 별반 다를 것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바다가 그리 녹녹하게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기다가 요즘은 스쿠버는 뒷전이고 자전거에 꼽혀서 날뛰고 있다. 중독된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청춘을 다 바친 물로부터 멀어질 수는 없다.
3.
2008년 2월 21일 나는 자전거로 대구를 떠나 통일전망대로 향했다. 자전거로 처음 하는 장거리여행이었다. 그 한달전 나는 이 여행을 위해 자전거를 한 대 샀다. 십삼만원짜리 접이식 삼천리표 자전거였다. 내가 보기엔 디자인도 멋지고 튼튼하게 보이는 자전거였다. 이전에 간혹 기백만원씩하는 자전거를 봤지만 뭐가 일반자전거와 다른지 보고도 모르는 눈을 가지고 있었을 때니 그런 자전거에 대한 욕심은 아예 없었다.
2008년 3월 1일 나는 통일전망대에 도착했다. 7번 도로를 타고 북상하다가 해안이 나오면 7번을 버리고 해안길로만 다녔다. 출발첫날 대구에서 영천 경주를 지나 덕동댐을 지나 터널을 통과했다 캄캄한 밤중이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무서운 줄도 모르고 감포까지 도착했다. 고백하지만 오르막이 있으면 무조건 끌고 걸었다. 그때는 기어를 넣을 줄도 몰랐고 기어의 효능도 몰랐다.
삼척을 지날 때 이정표를 이해할 수가 없어 근처에 있는 슈퍼로 들어가서 길을 묻고 나오는데 상점안에 모여 있던 아저씨들 중 한명이 뒤따라 나오며 물었다.
“아저씨 그 자전거 얼마짜리에요?”
나는 사태를 단박에 알아차렸다. 모여 있던 아저씨들이 내게 어디서 오는 길이냐고 묻길래 그대로 대답을 했더니 자전거를 놓고 내기가 붙은 것이었다. 쓴 웃음을 지으며 내가 대답했다. 십삼만원 짜리라고,
“봐라 내가 그렇다 했지”
내려올 때는 고성에서 자전거를 버스에 싣고 내려왔는데 대구까지 차비가 이만팔천오백원이었다. 일곱시간 반이 걸렸나? 그러니까 열흘동안 쌔가 빠지게 올라간 경제적 가치가 이만 팔천오백원이었던 것이다. 그때 내가 좀 서운했던가?
이후에도 나는 그 여행에 대해 이 자전거를 타고 갔었다고 말하면 자전거를 타는 아저씨들이 불쌍하다는 투로 못 믿겠다는 듯이
“이 자전거로 말이요?”
라는 말을 여러번 들었다. 제길, 아무래도 엠티빈가 지랄인가 한 대를 사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4.
그 자전거를 십개월을 더 끌고 다니며 강구 인근 오십키로 안에 있는 가보고 싶은 곳을 샅샅이 뒤지며 타고 다녔다. 여전히 오르막이 있으면 끌고 오르면서. 통일전망대까지 갈 때 경주인근에서 한번 빵구났을 뿐인 자전거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슬슬 녹이 쓸고 라이딩 하는 사람들을 보면 불현듯 욕심이 생겨 자전거를 취급하는 친구에게 지금의 자전거를 샀다. 자전거 옷도 몸에 착 달라붙어서 아무래도 이 나이에 싶어서 쪽팔려서 못 입다가 요즘은 그런 옷을 입는 것이 기쁨이 되었다.
독립군이다 보니 자전거에 대한 의문이 생기도 물어 볼 곳도 없었다. 엠티비를 사고도 산을 탈 엄두도 못 내고 보경사 입구에서 돌아오곤 했는데 한번은 서울 청계산 이수봉을 올랐을 때 나이 지긋한 분이 자전거를 타는 것을 봤다. 그렇다면 내가 못할 것도 없지, 거기다가 보경사 입구 검표원아저씨가 내 자전거를 보더니
“저기 저 산길에 한번 도전해 보시지요”
라며 보경사 뒷길을 가르키는 것이었다. 갓부처로 가는 그 길을 나는 그날 답사를 했고 다음날부터 그 산길을 올랐다.
지금은 새벽 다섯시 사십분이면 집을 나와 일출을 찍는다고(해뜨는 시각이 요즘은 여섯시 오분쯤이다) 잠시 얼쩡거리다 화진을 출발해서 갓부처 느티나무아래까지 올랐다가 온다. 화진으로 이사 오고 지금까지 75회 올랐다.
거기서 최장호선배님 부부를 알았다. 일천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낑가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린다.
5.
어제 생전처음으로 포항바이크 회원들과 자전거를 탔다. 큰 기쁨이었다. 놀란 것은 페달에 발이 닿지도 않을 것 같은 여자분들이 산길을 오르는 것이었다. 애처롭게도 하하 예전에 시파단(보르네오섬 옆에 있는 세계 삼대 다이빙 포인트인 섬, 걸으면 한바퀴 도는데 이십분이 걸린다)이라는 깨알만한 섬에서 만난 일본인 할머니 다이버(당시에 육십일세였고 삼년전에 시작했다고 했다)는 혼자서 그 먼곳까지 와서 다이빙을 했는데 그녀는 공기통을 지면 땅으로 질질 끌릴 것만 같은 체격이었다. 이후로 나는 다이빙을 하려면 체력이 기본적으로 어쩌고 하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때 이후로 어제 두 번째 놀랐다. 모든 것은 의지이고 페달도 그렇게 밟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6.
포항바이크의 무궁한 발전을 빕니다.
* 생뚱맞게도 지난 유월 서귀포 문섬에서 찍은 수중사진을 넣은 것은 자랑하려고가 아니라 다만 수중세계에 대한 소개에 목적이 있으니 너그러이 봐 주십시오.
서귀포 새끼섬 불둑포인트 니콘D90 파티마하우징 수심13미터 2009년6월
서귀포 새끼섬 수심 10미터
법환리 서귀포 수심10미터
서귀포 법환리 가린여포인트 수심32미터
사진을 다 올릴수가 없어 일부만 올립니다. 인쇄가 되지않는 사진입니다. 원본이 필요하시면 메일을 주십시요.
첫댓글 동은이 앳된 사진이 있길래...
와...글잘읽었습니다 ㅎ
학교 안갔나?
설마 학교에서??
잠시 폰으로..~ㅎㅎㅎㅎ
와 정말 멋지네요..
저도 저렇게 멋진 자전거추억을 만들고싶네요.
엠티빈가 뭔가 ..ㅎㅎ
박종수 아저씨 너무 멋지시네요.!
역쉬 탐험가님이십니다요. 올딸아닌 줄알았습 깜짝놀라어요. 예뻐죽을 뻔... 글 또한 잘 읽어습니다. 자전거와 만난 글 나 또한 쓰고십은 사람중한사람입니다. 앞으로도 축억의 사진이있습 부탁 좀 합시다. 최박사님 넘멋있습니다.
열흘에 이만팔천오백원 ㅋㅋㅋ 본인한테 봉사활동 제대로하셨네요 ㅎ 대신 그때 추억 돈으로 환산하면 어마어마 할껄요?ㅎ
이글보고 깜~딱 놀랐어요!
행님이 스쿠버였다는거 꿈에도 몰랐네요! 청춘을 다바칠정도로 바다에 완전 미쳤었단 것도..
완전 멋있으십니다!!
저 사실 저번 주말에 일구랑 수경하나 들고 저어기 흥환이라는곳(해안도로따라 대보가는길에 있는..)에 가서 생전처음
스킨다이빙이라는것을 흉내좀 내봤는데..완전 기막히더라구요.
아무런 장비도, 다이빙에 ㄷ도 모르지만 바다에 수경쓰고 뛰어드니.. 이게 뭔가요,, 참으로 놀랍습니다.
동해안 어느동네 부둣가 근처 바다라고 우습게 생각했는데,, 말그대로별천집니다
놀랄정도로 투명한 물에 떼지어댕기는 물고기들.. 여태 횟집 어항에 있는 물고기만 보고 자란 저로서는 횟집 수족관속으로 착각하게 만들더군요.ㅎㅎ
바다..속. 푹 빠져버렸습니다.
이게뭐 제대로된스쿠버 다이빙도 아니고, 유명 바닷가 어디서 헤엄친것도 아녔지만, 육지우물속에서 다른 신세계로 다이빙하고 엄청난 신세계의 광경에 흥분해 난리 쳤습니다ㅎㅎ
언제 행님한테 꼭 듣고싶어요.
행님이 청춘마저 던져버린 물속세계를 ㅎㅎ
물속에서 사진을 어떻게 그렇게 놀랍도록 엄청나도록 멋지게 찍을수 있습니까?
30미터까진 다이빙이 가능한 깊인가요?
대단합니다.
언제한번 저도 경험해보고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