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피천 봇도랑길에서
공곡/이원근
◉ 2026.10.7
◉ 백발소주차장-구보소-까치소-터널수로-물벙골-살구나무골-매산골-주차장
오늘은 예임회 선후배들과 울진 왕피천의 봇도랑길을 함께 걸었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선선했다. 여름의 끝자락을 지나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이었다. 아직 단풍은 들지 않았다. 초록이 조금씩 빛을 바꾸고 있을 뿐이었다. 단풍이 물든 계절에 다시 온다면 이 길은 또 얼마나 다른 얼굴을 보여줄까. 아쉬움은 있었지만, 계절은 늘 다음 만남을 남겨 두는 법이다.
왕피천은 깊고 험하다. 수십 겹의 산을 굽이돌며 흐르는 물길이라 예부터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못했다. 삼척 실직국의 마지막 임금 안일왕이 이곳까지 숨어들었다는 전설 때문에 ‘왕피리’라는 이름도 생겼다고 한다. 산은 깊었고 물은 맑았다. 그래서인지 이곳에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삶과 자연의 시간이 함께 쌓여 있었다.
우리가 걸은 봇도랑은 그 삶의 흔적이었다.
옛사람들은 물이 필요한 곳까지 물을 끌어오기 위해 산허리를 따라 물길을 냈다. 지금처럼 관정으로 물을 퍼 올릴 수 없던 시절이었다. 논 한 배미의 물이 곧 한 해 농사의 성패였고, 물 한줄기가 때로는 가족의 생계를 좌우했다.
왕피천을 따라 걷다 보면 그 옛 물길이 절벽을 타고 길게 이어진다. 데크와 콘크리트 길, 금강송 숲길과 흙길, 자갈길이 이어지는 데 굽이돌 때마다 물과 숲과 바위가 서로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한쪽은 깎아지른 벼랑이고, 다른 한쪽은 맑은 왕피천이다. 물은 청록색으로 깊어졌다가 얕아지기를 반복하고, 바닥의 돌 하나까지 훤히 들여다보인다. 숲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물 위에 흔들릴 때면 우리는 걸음을 늦추고 물을 바라본다.
그러나 오늘 내 눈을 오래 붙잡은 것은 풍경보다 바위굴이었다.
봇도랑을 가로막은 거대한 암반에 옛사람들이 낸 물길이 남아 있었다. 기계도 없고 굴착기도 없던 시절, 그들은 오직 정과 망치로 바위를 쪼개고 또 쪼개었을 것이다. 한 번 내려치고, 다시 내려치고, 작은 돌조각을 걷어내며 조금씩 길을 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바위 속으로 물길 하나를 만들었다.
그 물길을 따라 물이 흘렀고, 그 물을 따라 벼가 자랐고, 그 쌀로 가족들이 한 해를 견뎠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 그 길을 편안하게 걷는다. 잘 다듬어진 길을 따라 걷다가 잠시 멈춰 사진도 찍고, 맑은 물에 눈길을 주며 감탄한다. 하지만, 이 길 아래에는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시간이 흐르고 있다.
잘미마을 사람들의 땀과 눈물이다.
배고팠던 시절, 산비탈에 매달린 작은 논배미를 지키기 위해 그들은 산을 두드렸다. 가뭄이 들면 물 한줄기가 절실했고, 그 물을 얻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쳤다. 누군가는 바위를 깨고, 누군가는 돌을 나르고, 누군가는 물길을 고쳤을 것이다.
그렇게 만든 봇도랑은 단순한 농업시설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마을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만든 생명줄이었다.
세월이 흘러 관정이 생기고 농사 방식이 바뀌면서 봇도랑은 더 이상 예전의 쓰임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버려질 뻔했던 물길은 다시 사람의 길이 되었다.
물이 흐르던 길에 이제는 사람이 걷는다. 오늘은 우리가 걸었다.
그것이 참 묘하다.
옛사람들은 먹고살기 위해 이 길을 만들었고, 우리는 살아온 세월을 돌아보기 위해 이 길을 걷는다.
우리는 평생을 바쁘게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제는 예전처럼 높은 산을 단숨에 오르지도 못하고, 먼 길을 걷고 나면 무릎과 허리가 먼저 신호를 보낸다. 그래도 걷는다. 전국의 명산과 대천을 찾아가고, 이름난 길뿐 아니라 사람들이 오래전에 걸었던 작은 옛길도 찾아 나선다.
아마 걷는다는 것은 늙어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국토 사랑인지도 모른다.
차창으로 스쳐 지나가는 산천은 풍경이지만, 두 발로 걸으면 그 땅의 결이 느껴진다. 오래된 돌 하나에도 사람의 손길이 보이고, 굽은 소나무 한 그루에서도 세월이 읽힌다. 그래서 우리는 걷고 또 걷는다. 아름다운 풍광을 보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그 땅에서 살다 간 사람들의 흔적을 만나기 위해서다.
백발소 주차장에서 시작해 굴구지마을 입구까지 이어지는 봇도랑길은 생각보다 순했다. 좁은 흙길과 작은 돌다리, 탐방객이 쌓은 곳곳의 돌탑을 지나며 일행들의 발걸음도 느긋했다. 왕피천은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굽이쳤다.
돌아오는 길에는 봇도랑 대신 산길을 택했다.
언제나 가 보지 않은 길에는 묘한 설렘이 있다. 왕피리로 이어지는 생태탐방로 14km도 언젠가는 걸어보고 싶다. 그러나 산은 한 번에 다 보여주지 않는다. 조금은 남겨 두어야 다시 찾아갈 이유도 생긴다.
오늘은 여기까지다.
단풍이 아직 오지 않은 왕피천은 푸르렀고, 물은 맑았다. 그러나 이 길에서 우리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은 어쩌면 숲도 물도 아니었는지 모른다.
거대한 바위를 오직 정과 망치만으로 뚫어 한 줄기 물길을 만들었던 사람들.
그들이 흘린 땀과 눈물이 오늘의 왕피천 봇도랑길을 만들었다.
우리는 그들이 만든 물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옛사람들이 물을 따라 삶을 이어갔다면, 우리는 이제 그들의 흔적을 따라 삶을 돌아본다.
그리고 또 다음 길을 생각한다.
늙어가면서도 걷기를 멈추지 않는 것은
아직 이 땅에서 만나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왕피천 봇도랑길 ▲ 계곡을 따라서 봇도랑을 메워 만든 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계곡보다 높은 논에 물을 보내던 ‘봇도랑이 걷기 길로 재탄생했다. 순한 굽잇길 옆 옥색 물빛이 압권이다. 벼랑을 따라 이어지는 낮은 담장이 과거 농수로의 흔적이다.
봇도랑의 ‘터널 수로’▲ 봇도랑을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바위를 뚫어 물이 지나는 터널을 만들었다. 농민들이 정과 망치만으로 거대한 바위를 깨어 물길을 내었다. 봇도랑길은 경관뿐만 아니라 ‘왕피천 아래 잘미마을에 살았던 이들의 눈물과 땀’이 새겨져 있었다.
울진의 걷기 길 ★ 울진에는 청량한 자연에 놓인 걷기 길이 많다. 왕피천 5개의 탐방로 말고도 울진에는 금강소나무 숲길, 덕구계곡길, 신선계곡길, 해파랑길 등이 있다. 그리고 동서트레일 51구간부터 55구간까지도 울진에 걸쳐 있다.
첫댓글 ㅡ 최숙희
오늘도 잘 보았습니다. 터널 물길은 꼭 한번 보고 싶긴 합니다. 6월에 울진서 1박하며 왕피천도 좀 걸어보고, 금강송길도 걸었었는데 좋았습니다.
남편도 걷기를 좋아해 둘이 좀 돌아다니는데 아직도 다른 분들과 안어울리려 해 예임회는 못갈 것 같습니다. 고맙습니다.
ㅡ 권수문
이번에는 울진까지 원거리를
다녀오셨습니다.
울진하면 소인은
울진.삼척 무장공비침투사건을
떠 올립니다.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이 한 마디에
비참하게 세상을 마감한 어린생명
'이승복'군의
마지막 생애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공산당이란 어떤 집단인지도....
울진을 여러 차례 가봤지만 아직 왕피천은
답사하지 못했는데
고문님께서 말씀하신 '왕이 피한곳....
즉 '임금왕, 피할피' 자를
써서 왕피천으로 부른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산행기 도중에
'걷는다는 것은 늙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정직한 국토사랑'이라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앞으로도
여러분들의 뒤를 열심히 따라,
가는데 까지 가겠습니다.
'산너머 파이팅'
멀리 울진까지 나들이 가셨군요.
붓도랑길 트레킹이 제법 쏠쏠하니 재미가 있는 길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집사람과도 한번쯤 가보고 싶네요.
아무튼 이고문님의 왕성한 산행력에 감탄하게 됩니다.
수고많이 하셨고 내일 속리산둘레길에서 뵙겠습니다.
제일 기다려 지는 날
속둘길
내일 뵙자고요.
ㅡ 정문희
공곡님의 끝없는 산행사랑 ^^
넘넘 부럽고 자랑스럽습니다
끈기와 인내력까지~~
지금시대 영웅이십니다
변함없으신 건강 과시하시면서
힘차게 GO. GO.
ㅡ 홍춘자
이원근님의 아름다운 수필을 읽을 수 있어서 영광입니다. 옛 마을 사람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봇도랑길을 걸으며 어쩜이리도 많은 생각들을 끌어낸 글을 쓰실수 있는지 감탄합니다.
문운이 더욱 펼쳐 지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ㅡㅡ 정성 어린 말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평범한 길도 어떤 마음으로 걷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와 이야기를 품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옛사람들의 땀과 지혜가 깃든 봇도랑길에서 얻은 작은 생각들을 글로 나누었을 뿐인데, 이처럼 따뜻하게 읽어주시니 큰 힘이 됩니다. 앞으로도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과 자연, 그리고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아보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