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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여우를 잡으라(아 2:15-1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제, 다른 지역에서는 우박이 내려, 농작물에 큰 피해를 주었다고 하고, 또 어느 해변에서는 낙뢰가 쳐, 모래밭에서 놀고 있던 여러 사람들이 다쳤다고 하는데, 이상 기후 때문에, 올 여름은 덥기도 하겠지만, 많은 비가 내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날씨로 인하여, 어려운 당하는 일이 없이, 늘 행복한 날들만 다가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읽은 아가서는 “솔로몬의 아가라”(아 1:1)라는 말로 시작됩니다.
아가서는 솔로몬이 썼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롭고, 다재다능한 왕이었습니다.
열왕기상 4:32-33절을 보면, “그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였고 그의 노래는 천다섯 편이며 그가 또 초목에 대하여 말하되 레바논의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그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다니는 것과 물고기에 대하여 말한지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은 잠언 삼천 가지를 말하고, 천다섯 편의 노래를 만들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아가서입니다.
어느 날, 솔로몬 왕이 길을 가다가, 아름답고 잘 가꾸어진 포도원을 보았습니다.
솔로몬은 그 포도원에서, 술람미 여인이 열심히 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아 1:5-6)
요새 디즈니에서 나온 영화 가운데, 인어공주가 있는데, 인어공주가 흑인이라서 이런저런 난리도 아닙니다. 그 와중에, 넷플리스에서,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데, 그 여왕 배역을 흑인 배우가 섭외되어서, 이집트에서도 난리가 아니라고 합니다.
솔로몬이 사랑한 여인인 술람미 여인에 대하여,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검고 아름다웠습니다. 그녀는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했습니다.
솔로몬은 그 술람미 여인을 보는 순간, 한 눈에, 사랑에 빠졌습니다.
사랑에 빠진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 두 사람은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아가서는 두 사람의 사랑이 담긴 아름다운 시입니다.
“나의 사랑하는 자가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아 2:10-14)
사랑에 빠진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은 아름다운 포도원에서 행복한 순간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작은 여우 한 마리가 등장하여, 아름다운 포도원을 망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그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며칠 전, 속리산을 다녀왔는데, 오고 가는 길에 보니, 아직 포도밭에 포도들이 달려있지 않고, 대추밭에 대추가 달려있지 않고, 옥수수 밭에 옥수수도 없었는데, 시내 길거리와 마트에서는 옥수수를 판매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옥산역 근처에는 방울 토마토, 문의 IC 쪽에는 딸기밭이 있고, 괴산 쪽에는 옥수수밭이 있고, 용암동 쪽에는 포도밭이 있었던 것처럼,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스라엘에는 좋은 포도원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포도원 주변에는 항상 여우들이 많다고 합니다. 여우는 포도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 여우들은 땅에 구멍을 뚫고 들어와 잘 가꾸어진 포도원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여우는 포도원에 굴을 파고 서식하면서, 봄철 포도나무에 싹이 돋고, 꽃이 필 무렵, 포도원을 돌아다니면서, 포도나무를 갉아먹어 버립니다. 꽃이 필 때 꽃을 떨어뜨리고, 열매가 열릴 때, 포도송이를 따 먹어, 포도원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충주에 있을 때, 교회 집사님의 밭을 빌려, 방울 토마토를 심고, 콩을 심고, 여러 가지 작물을 심었습니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들리거나, 오후 퇴근 후에 들려, 돌보았는데, 콩을 심고, 싹이 올라올 무렵부터, 고라니가 내려와, 잎을 다 먹어치우는 바람에, 콩 농사를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방울 토마토는 엄청나게 잘 맺혔는데, 그때그때 바로 가서 수확할 기회를 놓쳐, 크게 성공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잘 가꾸어진 좋은 포도원을 작은 여우가 망쳐놓는 것처럼,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 그 두 사람의 행복한 순간을 깨뜨리는 방해군들이 있었습니다. 그 두 사람 사이를 시기, 질투하고, 모함하고, 이간질하여, 그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깨뜨리려고 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작은 여우와 같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작은 여우를 잡지 않으면, 두 사람의 아름다운 사랑이 깨져버릴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좋은 포도원에, 작은 여우가 들어와 포도원을 망치려고 한다면, 그 작은 여우를 그대로 내버려두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때에 따라 꽃이 피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고 한다면, 반드시, 그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좋은 포도원을 유지하려면, 그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좋은 포도원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꽃도 볼 수 없고, 열매도 거둘 수 없습니다. 거둔다 한들, 상품 가치가 없습니다.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주변에, 그 행복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이간질하여, 그 아름다운 사랑을 깨뜨리려는 작은 여우와 같은 나쁜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면, 그 나쁜 사람들을 멀리 해야만 할 것입니다.
영적인 이야기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요 15:1),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 1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시고, 예수님은 참포도나무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참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포도나무 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가꾸시는 좋은 포도원에 있는 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우리도 때에 따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성도 사이를 깨뜨리려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가지인데, 줄기에서 떨어지게 하려고 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품을 떠나게 하려는 이들입니다.
우리를 불신앙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열매를 맺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하게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도록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 품 안에 있기는 하나,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개인적으로, 꽃 사진과 설교문을 올리는 페이스북 계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하면서, 페이스북 친구가 얼마나 되나, 확인해보니, 4,950명 정도 되고, 팔로우는 330명 정도 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댓글에서나 친구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우리의 신앙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단에 관련된 글이 올라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 친구 관계를 정리하는데, 그들은 작은 여우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가만히 놔두면,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가 깨지고 맙니다. 불신앙과 불순종의 자리로 나아가도록 유인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신앙과 순종의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바로 여기, 예배의 자리, 은혜의 자리입니다. 나쁜 사람들은 우리가 이 자리에 있지 못하도록 합니다. 나쁜 사람들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은혜 받지 못하도록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반드시 그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시 18:2-3)라고 고백했던 다윗은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9-12)라고 부르짖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편 6:6-7절을 보면, 다윗은 “내가 탄식함으로 피곤하여 밤마다 눈물로 내 침상을 띄우며 내 요를 적시나이다 내 눈이 근심으로 말미암아 쇠하며 내 모든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두워졌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전부입니다.”라고 고백했던 다윗이,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라고 밤새 눈물로 부르짖게 되었을까요?
다윗이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힘들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굳건하게 믿음을 지키며 살아왔습니다.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두 번씩이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기름 부은 자를 죽일 수 없다”라는 믿음으로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숱한 어려운 일들을 겪으면서, 마침내 다윗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왕이 되고 난 후, 넘어졌습니다.
다윗이 밧세바를 본 순간, 그를 범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넘어지게 한 것이 아닙니다. 주변에 있는 나라들이 다윗을 쓰러뜨린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자신을 관리하지 못함으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고 말씀하셨을 때, 배드로는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눅 22:33)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눅 22:34)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밤이 다 가기 전에, 예수님은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을 저주까지 했습니다.
믿음에 잇어서, 너무나 자신만만했던 베드로는 넘어졌습니다. 실패했습니다. 작은 여우가 그의 마음을 쓰러뜨렸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수많은 이적과 능력을 체험하고, 변화산에서,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고, 귀하고 복된 주님의 음성을 들었으면서도, 베드로는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의 자만심이 그를 넘어지게 했습니다. 그의 자만심이 그의 작은 여우였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넘어지지 않기 위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신앙에는 자만이 금물입니다. 자만하거나 교만해서는 절대 안됩니다.
신앙의 연륜이 우리의 신앙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우리의 직분이 우리의 믿음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믿음의 가정이라는 울타리가 우리의 구원을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훗날,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벧전 5:8-9)고 말했습니다.
작은 여우를 잡기 위해서는 근신하여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매사에,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주님 품 안에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0-13)고 말했습니다.
작은 여우를 잡기 위해서, 우리는 늘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
방심해서는 안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고전 10:12)
여러분!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면, 포도원에 꽃이 피고 열매를 맺어서, 풍성한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교만과 탐욕, 의심, 불신앙과 불순종을 쫓아낸다면, 우리 생활에도 하나님의 축복과 은총이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하고 기뻐야 할 인생, 하나님의 풍족한 축복 가운데서 만족스럽게 살아야 할 우리의 삶이 여러 가지 불행한 사건과 원치 않는 일로 인해서 근심과 걱정 속에 빠져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16절 말씀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요 15:4)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요 15:7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잇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우리는 사랑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9-10)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요일 4:16)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주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우리에게 속삭이십니다.
“나의 사랑, 내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겨울도 지나고 비도 그쳤고 지면에는 꽃이 피고 새가 노래할 때가 이르렀는데 비둘기의 소리가 우리 땅에 들리는구나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었고 포도나무는 꽃을 피워 향기를 토하는구나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아 2:10-14)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아 3:1)
“내 사랑 너는 어여쁘고도 어여쁘다”(아 4:1)
“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아 4:7)
“내 누이, 내 신부야 네가 내 마음을 빼앗았구나”(아 4:9)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아 5:8)
아가서를 읽을 때마다, 느낄 수 있는 것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포도원을 주시고, 그곳에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그 아름다운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가 있습니다.
그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가만히 놔두면, 좋은 포도원을 망치게 됩니다.
아름다운 꽃을 볼 수 없고, 풍성한 열매도 거둘 수 없게 됩니다.
작은 여우를 잡아야, 꽃을 볼 수 있고,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게 됩니다.
작은 여우를 잡으려면, 깨어 있어야 합니다.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로마서 8:37-3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여러분!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작은 여우는 과감하게 쫓아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을 사랑하며.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넘어지기 쉽사오니, 우리를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굳게 붙들어 주옵소서.
우리 안에 있는 작은 여우를 잡을 수 있도록 힘을 더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안에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사랑 안에 머물기를 원합니다.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죄악들을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시고, 성령의 단비로, 우리에게 크신 은총을 내려주옵소서.
주여! 우리와 항상 함께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