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림, 심양 지역을 가본 적은 없지만 할아버지 손을 찾고 있습니다.
할아버지 성함은 이 주자 실자 이시고 일제시대 초기에 하얼빈 길림 쪽으로 이주하여 지금은 자손들이 심양에 거주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아버지 성함은 이 우자 영자 이시고 1923년 생, 본관은 공주입니다.
저희는 아버지 혼자서 해방후에 월남하셔서 74년 작고하시기 전까지 홍콩을 통하여 편지왕래를 하시었는데 형이 모든 주소나 연락처를 혼자서 보관하고 있다가 한중 교류가 시작된 이후 고향 영주의 할아버지 소유이자 조상의 재산을 임의 처분한 이후 형제들과 상면을 안하고 있고 중국의 친척들과도 남한의 핏줄 대표, 장남 자격으로 가문 일을 처리하다가 불편한 사이가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직도 부끄러운 형을 통하면 중국의 사촌들을 만날 수가 있는데 본인이 일체의 연락처나 주소등을 함구하고 비밀로 하여 답답한 마음입니다.
종친회등을 통하여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고 남한에 사촌들이 일체 없기 때문에 모든 친가와 큰집이 중국에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고 십여년 전에는 캐나다에 사촌누이가 중국의 교환교수 자격으로 있었다는 소식을 형을 통하여 들었지만 그때에는 여러가지로 어려웠고 핏줄의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뒤늦게 나마 혼자 힘으로라도 찾아보려합니다.
저는 미국 워싱턴에서 산 지 23년째가 되고 아들이 대학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중국 교포들의 모임등을 통하여 알아 보아서 찾을 수가 있으면 더 나이들기 전에 지금이라도 당장 만나보고 싶습니다. 도와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외롭습니다.
형과는 연락을 하였던 것으로 아는데 재산 문제로 떳떳하지 못한 것으로 압니다.
저는 둘째이자 막내인데, 저는 외롭고 핏줄이 그리워 진심으로 친척들이 보고싶습니다.
도와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미국 워싱턴 쪽에 오실 일이 계시면 제가 음양으로 답례하겠습니다.
저의 이름은 이영규 이고 형의 이름은 이영호입니다.
형은 저의 도움으로 88올림픽 즈음에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형이 중국의 사촌을 초청하였던 것으로 알지만 일신 호의호식과 또한 가문의 일로 불편한 사이가 된 걸로 압니다. 지금 저는 텅 빈 큰 집에 살아서 중국의 사촌들이 원하면 미국으로 초청하여 더 늙기 전에 함께 기거하면서라도 돕고 정을 나누며 핏줄들과 연락하며 살고 싶습니다. 할아버지 이후로 핏줄이 단절된 듯한 느낌인데 지금부터라도 가문의 핏줄을 미국에 뿌리내리고 싶습니다. 평양에도 아버지 형님집이 있다고 전해들었고 돌아가신 어머니로부터 어머니 동서형님이 평양여전을 졸업하셨다는 자랑을 들었습니다. 세계화시대에 할아버지(이주실 씨) 자손들이 다 만날 수 있으면 여한이 없이 기쁘겠습니다.
할아버지 본적지를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공수래님 아이디를 클릭하니까 메일 주소가 안 나오네요. 등급을 시켜주시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본적지가 경북 영주군 이산면 석포리, 할아버지 함자는 주자 실자(주실), 본관은 공주 이씨입니다. 저의 메일 주소는 아시지요?
첫댓글 조선족 협회,조선족 노인협회,조선족 청년실업가 협회등을 통하면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측천님은 모르시는게 없으셔 ~ 제게 메일로 자세한 인적 사항을 주시면 심양 사무실에서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 결과는 미지수 .
할아버지 본적지를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공수래님 아이디를 클릭하니까 메일 주소가 안 나오네요. 등급을 시켜주시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본적지가 경북 영주군 이산면 석포리, 할아버지 함자는 주자 실자(주실), 본관은 공주 이씨입니다. 저의 메일 주소는 아시지요?
풋미인 님, 메일은 받았습니다. 정보가 자세할 수록 찾기가 쉽습니다. 동북 3성에 조선족이 중국 각지역으로 흩어지고 있고, 최소한의 한자 성명, 최종 거주지, 당시 상황 친척, 친구나 이웃, 출신학교 등 단서가 될 정보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