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딸도 한비야님처럼 키우고 싶어요."
제 책을 읽은 엄마들이 가끔 이런 말을 합니다. 그때마다 민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희 엄마한테 물어보면 저에 대해 금방 알게 될 겁니다. 제가 얼마나 키우기 어려운 딸인지요. 명랑, 발랄하고 심부름 잘하는 건 좋지만, 옹고집에다 정리정돈 잘 안하고, 맨날 뚱단지같은 생각만 하고, 말도 무진장 빨라서 늘 잔소리를 해야 하는 딸입니다.
솔직히 저도 천천히 말하고 싶습니다. 말하기 전에 심호흡을 하고 손등과 손바닥에 매직펜으로 '천천히!'라고 쓰는 등 용하다는(!)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없는 걸 보면, 저는 말 빠른 유전자를 타고 난 게 분명합니다. 그렇게 빠르기를 고칠 수 없으니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발음을 정확하게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일 아침, 시 한 편을 소리내어 읽습니다. 될수록 입을 크게 벌려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읽다 보면 발음이 정확해지기 때문입니다.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의 조언으로 시작했으니 30년도 넘은 생활습관입니다.
이렇게 긴 세월 하다 보니 수십 번 반복해서 읽은 시는 절로 외우게 되고, 그 외운 시 구절들은 글을 쓸 때나 일상생활 중 요긴하게 쓰이기도 합니다. 며칠 전에도 일이 꼬이고 겹쳐 무척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 짧은 시로 위로의 말을 대신했습니다.
"천길 벼랑 끝 10미터 전, 하느님이 벼랑 끝으로 나를 밀어내신다.
1미터 전, 계속 밀어내신다.
벼랑 끝. 아니야. 하느님이 날 벼랑 아래로 떨어뜨릴 리가 없어. 내가 어떤 노력을 해 왔는지 잘 아실 테니까.
그러나 하느님은 벼랑 끝자락에 간신히 서 있는 나를 확, 밀쳐 떨어뜨리셨다, ...
그때야 알았다.
나에게 날개가 있다는 것을."
20대 초반, 아무리 발버둥 쳐도 모든 문이 닫혀있는 것만 같아 절망에 빠져있을 때, 미국인 선교사가 보내준 이 시 한 편에서 제가 받은 위로를 그 친구도 받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시가 저에게 준 것이 이렇게 많습니다. 요즘은 이런 고마운 시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어 정말 반갑습니다. 일간 신문, 지하철 유리문, 인터넷 시 사이트, 빌딩 글판...
덕분에 예전보다 훨씬 많은 시를 읽게 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당연히 성경 속의 시, 시편도 자주 읽습니다. 시편에 있는 150편의 장시에는 인간의 희노애락, 회개와 용서, 하느님을 향한 찬미와 사랑이 가득 담겨 있어, 매일 아침 큰소리를 내서 읽으면 발음 연습과 함께 아름다운 시편 기도를 바치는 셈이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입니다. 여러분도 한 번만 해보시면 그 매력에 푹 빠질 것입니다.
그나저나 하늘에 계신 우리 엄마, 홍 글로리아님! 비록 발음연습 때문에 시작했지만 큰 소리로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여는 셋째 딸을 보고 기특하다 하실까요? 부디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한 비 야 (비 아)
UN 자문위원, 이대 초빙교수
첫댓글 오늘은 토요특전 미사를 보고 왔습니다^^
(보통 때는 일요일에 성당에 가서 미사를 보고 오지만 일요일에 사정이 있어
미사를 하지 못 할 경우에 토요일에 볼 수도 있습니다.)
<내일 우리 산책의 6월 정기모임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