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자판기는 꿈꾼다
권남희
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서였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차표를
손에 든 채 차 한 잔 마시며 기다릴까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그곳에서 커피 자판기와
나란히 서 있는,
평생 듣도 보도 못한 책
자판기를 만났습니다.
어찌나 반가웠는지
‘진즉 나왔어야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다 몇 십
년 만에 고향 친구를 만난 것처럼 이리저리 둘러보았습니다.
신기함에 툭 쳐보고
들여다보며 승차시간이 다 되도록 자판기 앞을 떠나지 못했지요.
나처럼 책을 음료처럼
판다고 감탄하며 자판기 앞에서 시간을 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분홍빛 도는 책표지들은
≪유머≫,
≪관상≫,
≪연애≫
등 부담 주지 않는 책들로
가격도 2천 원,
3천
원이었습니다.
커피 한 잔
값도,
아이스크림 하나 사먹을
돈도 안 되는 값이었습니다.
김훈 소설가는
“사람들아,
책 좀
사라.”라고 외쳤는데 정말 자판기에서 책 한 권씩은 사야
하지 않을까요.
본문 내용을 잠깐
소개해주는 자막도 뜹니다.
기다림으로 무료할 때 한
잔씩 빼먹는 커피 자판기처럼 “내가 쏠게.”
부담없이 자판기로 달려가
동전을 먹이고 책을 꺼내는 일에 신이 나야 합니다.
미국 유타주 코린시에서는
이혼서류를 자판기에서 팔기도 했다는데 책 자판기는 언제라도 환영입니다.
글 한 편을 자판기에서
뽑아 주고,
한 권씩 사서 돌리는 책
자판기가 많아지기를 꿈꾸는 날이었습니다.
세계 최초 우리나라
순수기술로 개발한 책 자판기는 출판컨설팅회사 김&정에서 수억 원을 들였고 설명회도 가졌다는데
가치있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김영사,
범우사 등 대형 출판사에서
병원 로비나 터미널 등에 자판기를 세워 홍보용으로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그 후 이 프로젝트가
전국적으로 우후죽순처럼 돋아났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책은 나에게 사랑이고 외딴
농가에서 자라던 소녀의 절친이었습니다.
책이 귀했던 그때 아버지는
책을 사겠다고 하면 묻지도 않고 돈을 주거나 시내 나가는 길에 사다 주기도 했습니다.
도시락을 싸들고 자전거로
30분쯤 달려간 곳에서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늘
농사에 관련한 책을 보았습니다.
종종 시내를 나가 종자
관련 책이나 신품종 농법 책을 사들고 와서 농사연구를 했던 아버지는 덕분에 지금의 벤처농업인 같은 ‘신농부’
‘우수영농인’으로 뉴스에 소개되고 인터뷰도 하며 유명세를
탔습니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2017년 통계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는 뉴스가
나옵니다.
물론 종이책만 책은
아니지요.
전자책도 많아지고
SNS
검색을 통한 독서도
읽기입니다.
하지만 책 안 읽는
좀비세상이라고 평한 점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회식 자리 식당 풍경인데도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쥐 죽은 듯 조용하여 들여다보니 모두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 검색을 하고 있습니다.
거리를 걸으면서도
스마트폰에 얼굴을 묻고 걷다가 전봇대에 부딪히고 식당홍보용 입간판과 같이 넘어지기도 합니다.
토론토 대학 인지심리학
키스 오틀리 석좌교수는 종이책을 ‘기적 같은 소통’
효과를 가져오고 독서가
실제 인간관계만큼이나 공감능력을 키워준다고 했습니다.
한 집에 있어도 할 말이
있으면 건넌방에서 부르거나 오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카톡을 보냅니다.
기적 같은 소통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요즘 대형 건물 앞에는
조각품이 있고 로비에는 미술작품이 걸려 있는 걸 발견합니다.
건축법에 있는 의무조항
때문이지요.
종이책도 꿈을
꿉니다.
건물마다 로비는 도서관을
꾸미는 일입니다.
책 자판기도 의무적으로 몇
개를 설치해야 하고요.
동네 서점은
사라지고 카페가 점령한 도시 상가와 골목들,
자판기를 세워 커피만큼
책을 팔아달라고 부탁하는 일은 무리일까요?
국제백만장자박람회에는
세계적인 부자들이 수만 명씩 몰려든다고 합니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부자들은 돈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나 별의별 상품을 거액을 주고 사들입니다.
남들과 달라야 한다는
강박증으로 이불 한 채 값에 아파트 한 채 값을 지불하며 자부심을 느끼는 중국 부자의 집 구경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서재는 있는
것일까?
박람회에는 요트가 싫증난
갑부를 위해 잠수함을 팔고 전체를 금으로 만든 키피메이커,
자동차 보닛에 다이아몬드를
박은 벤츠승용차도 불티나게 팔린다고 합니다.
책표지를 금으로 씌우고
종이처럼 얇게 편 금에 수필 한 편씩을 써서 자판기에서 판다면 팔릴지도 모릅니다.
헌법에도 명시된 행복
추구권을 위해 종이책의 기꺼운 변신을 그려봅니다.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문구나
이상형의 연인을 만날 수 있다는 글 한 줄에 다이아몬드를 박아 판다면 자판기를 통째로 사가는 부호도 있겠지요.
아이들이 신나하는 무한
변신 로봇처럼 책 자판기의 무한 변신,
그날을
상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