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란 교수는 <조선일보>에 의해 오염된 언어를 바로잡기 위해 안티조선운동에 참여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시인다운 접근이었다. 그렇다. <조선>은 언어를 오염시키고 왜곡해서 퍼뜨리는 총본산이다. 그리고 <중앙>과 <동아>는 그 아류다. 이들 세 신문이 오염시켜 놓은 언어에 대한민국 국민들 절대다수가 중독돼 있다.
이 현상을 레이코프는 '프레임'이란 기호로 설명한다. 요즘 진보진영 일부에서 회자되고 있는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미국의 진보 세력은 왜 선거에서 패배하는가>에서다.
'조중동 프레임'에 갇힌 대한민국
레이코프는 "프레임(frame)이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형성하는 정신적 구조물"이라고 정의한다. 은연중에 우리가 안경처럼 걸치게 된 이 프레임이란 놈이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 우리가 짜는 계획,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 그리고 우리 행동의 좋고 나쁜 결과를 결정한다." 레이코프가 주장하는 포인트는, "그러므로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 바로 사회적 변화"라는 것이다.
김정란 교수가 말하는 언어의 문제가 바로 프레임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지금까지 <조중동>이 짜놓은 프레임에 갇혀 있었다. '조중동 프레임'을 통해 세상만사를 인식해왔다는 얘기다. 그것은 다름 아닌 반공 이데올로기, 경제성장, 한미동맹, 지한파(知韓派), 빨갱이, 좌파, (반)시장주의, 세금폭탄, 북핵위기, 아마추어 정권, 국가안보, 사학 자율, 친노방송(언론), 친노단체 따위가 그런 것이다.
이 프레임에 갇혀서 할 말 못하고, 행동에 나서기를 주저한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1987년의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개혁, 통일, 화해, 협력, 자주, 평화, 인권 등의 새 프레임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신구 프레임은 치열한 헤게모니 투쟁을 겪어야 했다.
이 싸움의 결과는 진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오로지 힘의 역관계만이 존재한다. 정권이 두 번 바뀌었지만 아직 재벌과 메이저신문, 부패사학, 종교집단, 한나라당으로 형성된 기득권세력의 힘이 막강하여 프레임의 교체가 위험한 지경까지 이르렀다. 새 프레임이 결국 꺾이고 다시 구 프레임으로 후퇴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러나 천우신조로 전세가 다시 역전의 호기를 만난 듯 요동을 치고 있다. 세 가지 터닝 포인트가 있다. 6자회담 합의에 이은 북미관계 정상화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는 점, 부동산(강남) 불패신화가 깨지고 있다는 점, 사학비리의 백태가 밝혀진 점 등이다. <조중동>과 한나라당의 완강한 반대에도 새롭게 싹을 돋우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풍경을 확인해본다.
[풍경①] 한미동맹 프레임
<조선>의 양상훈 논설위원은 3월 7일자 칼럼 '미국의 임포턴스'에서 미국을 임포턴스(impotence)에 걸린 "고개 숙인 남자"로 표현해놓았다. 그는 또 1994년 10월 18일의 제네바 합의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합의를 어기면 단호히 응징할 것"이라고 했는데, "북한이 이제 핵실험까지 했는데도 응징은커녕 얻는 게 더 많다"며 북핵을 없애려면 한·미는 정치 쇼부터 그만둬야 한다"고 불평했다.
김대중은 2월 26일자 칼럼 '언제까지 북핵에 끌려다닐 것인가'에서 "2·13 6자회담 합의로 한국의 안전보장은 잠재적 위기를 맞고 있다"며 "우리는 부시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토로했다.
미국에 대한 배신감은 무늬만이라도 카멜레온처럼 바꿔보려는 한나라당에 대한 질책으로 이어진다. 대북정책 변화를 공언한 한나라당에 대해 "김칫국부터 마시는 여권도 문제지만, 야당도 남이 장에 간다고 제가 지게 지고 나서듯 할 게 아니다"(3월 16일자 사설 '허겁지겁 옷 바꿔 입는 한나라 대북정책')라고 한 것이다. 한미동맹, 반공, 국가안보, 반북 따위의 프레임이 깨지는 건 시간문제다.
[풍경②] 사학비리 비호 프레임
사학법 (재)개정을 놓고 여야가 줄다리기를 하는 사이 감사원이 '사학비리 감사 결과'를 어제(3월 15일) 발표했다. <조선>은 과감하게 관련기사를 싣지 않았고, <중앙> <동아>는 무슨 내용인지 알아보기 어렵게 편집을 했다. <한겨레> 기사와 비교해보자. 특히 <중앙> 기사는 법대 교수들의 개인 비리로 오인하게 제목을 뽑아 놓았다. 사학비리를 은폐하고 비호하려는 프레임의 몰락을 예견할 수 있다.
감사원 사학비리 감사 결과 관련 언론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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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비중 |
제목 |
한겨레신문 |
1면 제2톱 |
팔짱낀 교육당국 사학비리 키웠다
- ‘불법 복마전’ 학교인지 범죄기업인지
- 감사원 조사결과 최종발표 |
중앙일보 |
제12면 톱 |
법대 교수들, 허술한 법규 악용
- 12개 사립대 56명 법무법인 변호사 겸직
- 감사원 사학특감서 적발 |
동아일보 |
제14면 하단 |
감사원, 3개 비리사학 등 20곳 추가 고발
- 교비횡령-리베이트 수수 등 혐의 12명 수사 요청 | |
ⓒ 김동민 | |
[풍경③] 강남불패신화 프레임
<조중동>이 세금폭탄론을 퍼뜨리며 정부의 부동산정책에 저항해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한나라당이 부동산대책의 대미를 장식할 주택법 개정안을 언제까지 묶어둘지도 두고 볼 일이다. 종부세 관련 <한겨레>와 <중앙>의 메인기사를 비교해본다. 아직은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지만, 2% 부자들의 신문이 집착하던 시장주의, 강남불패신화의 프레임도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2007년 개인주택 공시지가 관련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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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
면/비중 |
제목 |
한겨레신문 |
3월16일 |
1면 톱 |
종부세 10집 중 9집은 다주택자 소유
- 올 주택분 대상인원 15만명 늘어날듯
- 종부세액 71% 2채 이상 보유자가 부담 |
중앙일보 |
3월15일 |
1면 톱 |
서울 은마 34평 250만원 → 631만원
- 올 아파트 공시지가 급등 ··· 보유세 충격파
- 종부세 대상자 35만명서 70만명으로 늘듯 | |
ⓒ 김동민 | |
뭐니 뭐니 해도 결정적인 계기는 북미관계의 개선이다. 철석같이 믿던 미국이 북한과의 수교를 밀어붙이고 있으니 대중의 사고가 바뀌고 구시대 프레임이 깨지는 건 당연지사다. 그러면 진보진영이 할 일은 무엇인가? 새 프레임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김동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