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사이에 시골의 아침은 확연히 달라졌습니다.
장독대 뚜껑에 울릉도나물이파리에 내려 앉았던 서리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으니까요.
제법 몸집이 있는 새들은
앞집의 50년 넘은 옻나무를 울림통 삼아 "퉁퉁퉁~" 열심히 살 집을 마련중이고요.
작은 새들의 재잘거림을 권농가 삼아
돌담너머 친척할매들의 손놀림도 분주합니다.
머리에 수건을 쓴 모습은 어릴 적 늘상 봤던 할매의 모습과 똑같은데
일바지를 입은 농촌의 할매는 약간 어색하기도 합니다.
고향은 언제나 저의 어린시절 기억속의 광경과 비교를 당하고 있습니다.
앵두며 매화가 움을 틔우며 계절을 반기고 있습니다.
언덕위 농부의 너른 과수원에도
그 아래 작은 밭에 사과묘목을 심는 집안할배의 손길에도
고향의 봄은 성큼 내려 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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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4일(토)
10시 40분 기차를 타고 청량리에서 영주로 갑니다.
봉화 직행버스는 11시 50분에 있고
영주로 가는 버스는 그 보다는 자주 운행하지만
날씨가 좋으니 봄철 행락객들이 많을지도 몰라서
기차편을 택했습니다.
영주에서 채소 씨앗을 살까 하다가 점심을 사 먹고는
바로 봉화행 버스를 탔습니다.
봉화장에서 가지며 양퍄 등 몇 가지 작물의 씨앗을 샀습니다.
작년에 모종을 사서 심을 때
올해에는 직접 씨를 뿌려 봐야 겠다고 생각을 해 뒀던 터였습니다.
내려오기 전 날 종로5가쪽에 즐비한 종묘상에 들렀었는데
가격이 조금 비싼 것 같고 어차피 봉화에도 종묘상이 있으니까
궅이 서울에서 살 필요는 없었기에 그냥 발길을 돌렸었습니다.
씨앗을 바로 뿌려도 된다고 해서 샀는데
나중에 자세히 읽어보니 기온을 일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하는 것도 있고
파종후에 따로 이식을 해야 하는 것도 있고
어쨌든 밭에다가 그냥 뿌려서는 안 되는 것이 대부분이라
조금 수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모종은 4월 중순은 되어야 나올 것 같고
고추씨는 이미 지난 주에 작년에 받아 둔 것을 뿌려 두었는데
아침기온이 10도를 넘어야 어린 모종이 냉해를 입지 않는 답니다.
냉해는 커녕 싹도 올라 오지 않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고추는 시기가 맞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잘 안되면 나중에 모종을 사서 심어야 하겠네요.
옥수수와 참외도 작년에 받아 두었던 씨를 뿌렸는데
어떻게 될지 궁금하네요.
물야장터 농협에서 산 꽈리고추를 찌고
지난 주에 캔 나물(이름은 모르고 냉이곁에 나는 장미꽃 모양)도 쪄서
저녁반찬 준비를 합니다.
그렇게 헹구었는데도 흙이 씹혀서 이 장미꽃 닮은 나물은
먹다가 조금 남은 건 버려야 했습니다.
들기름과 집된장으로 잘 버무렸는데 아깝네요.
콩가루에 버무려 삶아 낸 냉이도 지난 주에 너무 오랫동안 물에 담가 두었었나 봅니다.
콩가루에 버무리면 오히려 냉이의 향이 더 잘 살아 나는데 향이 진하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구수한 것이 맛은 좋더군요.
누나가 가져다 놓은 김치로 김치볶음을 하니 저녁 상이 아주 풍성합니다.
나물버무린 그릇은 양념이 아까우니 밥그릇으로.
3월 25일(일)
아침밥부터 먹고 시작해야지요?
멸치조림을 햇는데 기름에 너무 오래 튀겨서 맛이 조금 씁니다.
그래도 먹을 만 합니다.
3월 중순경
안마당의 수도가 동파된 것으로 알고
시골집 지붕이며 세면장 황토방 철대문 등 공사를 많이 하신
영주의 설비업자한테 연락을 했더니 땅이 녹으면 보자고 하더군요.
마음도 급하고 불편도 하고 해서
어제 오는 길에 고향장터의 설비집 간판을 보고 전화를 해보니
일요일은 교회에 가니 오후에 보자고 했다가
다시 토요일 저녁늦게 한번 와 보겠다고 했었는데
답이 없어서
직접 한번 상태를 보고 싶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난 재작년 봄인가에
수도계량기를 열었더니 갑자기 온 마당에 물이 비산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도 참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었습니다.
윗부분 청테이프를 두른 부분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임시조치를 하고 수도꼭지 대신 관에 달린 원형 손잡이로 열고 잠그고 있는데
그 마저도 뭔가가 잘못되어 물이 나오지 않아서
불편을 겪고 있었습니다.
해체를 해보니
아래에서 올라 온, 굵은 철사같은 가느다란 대가
원형손잡이로부터 빠져 나와 수도꼭지쪽으로 끼어 있었던 것이었으니
아무리 손잡이를 돌려서 열고 잠그고 해봐야 전혀 통제가 안되는 상황이었네요.
간단히 손을 봐 시원스레 물줄기가 쏟아져 나오게 되었습니다.
마당을 파헤치게 되면 25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는데 다행입니다. ㅎ
밥값을 멋지게 해냈으니 점심은 푸짐하게 먹어 봐야겠습니다.
달걀 5개를 넣고 양파 파 마늘 미역? 잔뜩 넣고 요리를 하는데
양이 너무 많아서 그런지 타고 말았네요.
다행히 기름을 많이 두른 덕에 심각할 정도까지는 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심각한 건가?
도시락을 싸듯이 밥과 반찬을 같이 담아 봤습니다.
파종을 해볼까요?
과연 제대로 된 모종을 얻을 수 있으려나?
당근은 일단 제외하고
맨 아랫쪽은 작년에 받아 둔 고추씨를 뿌리고
나머지는 봉화장에서 산 씨앗들을 씁니다.
옆집과 담장을 맞대고 있는 서쪽 감나무 아래에 거름이 있습니다.
음식물쓰레기들을 부지런히 갖다 버렸더니 어느새 거름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너무 짠 거름이 아닐까?
파종한 모종잔에다가 거름을 나눠 담아 방앗간자리로 옮겨 두었습니다.
감나무 그늘때문인지는 몰라도 작년에 이 두 고랑에 배추며 열무 총각무를 갈았는데
잘 되지 않더군요.
이 번에는 양퍄와 배추씨를 뿌려 봤습니다.
작년에 담은 김장이 어찌나 짠 지 무 다섯 개를 따로 사서 버무려 놓았는데
먹어보니 여전히 너무나 짠 상태.
볶음김치로 만들면 나을까 싶었으나 못 먹을 정도로 짰습니다.
아~ 소금을 내가 그렇게 많이 넣었나?
3월 26일(월)
오늘 아침은
밭을 갈다가 본 달래를 상에 올리기로 합니다.
샘가 화분을 엎어서 흙들을 정리한 다음에
당근씨앗을 뿌렸습니다.
이 중 네 개는 비닐을 대충 씌워서 비교를 해보기로 합니다.
어제 방앗간자리에 냉해를 피해서 보관해 두었던 파종들은
밭으로 옮겨서 비닐작업을 한번 해보기로 합니다.
창고를 둘러 보다가 큰 비닐봉투가 보여서 가져다 대어보니
크기가 좀 작네요.
지지대를 가지치기한 나무의 잔가지로 바꾸어서 엉성하나마
집을 지어 봅니다.
이 비닐에 구멍을 내서 분무기롤 물을 줄 수 있게 해놓았습니다.
며칠마다 물을 줘야 하는 건가?
검색을 좀 해봐야 하겠네요.
일단 다음 번 갈 때까지야 문제없겠죠?
어묵과 닭고기 양파가 추가된 점심밥상입니다.
점점 더 상다리가 휘어집니다. ㅎ
앞밭에는 세 개의 칸으로 나뉘어진 17개의 고랑이 있고 직각으로 닿은 2개의 고랑이 있습니다.
2개의 고랑은 어제 배추와 양파씨를 뿌려 놓았었고
옆담장쪽 네 고랑 중 두 고랑은 작년가을에 배추와 무를 심었었으니 콩을 심기로 하고
남은 두 고랑은 나물을 갈기로 하고 일단 통과.
창고에 보니 작년에 뿌리고 남은 파종용 콩이 조금 있었네요.
싹이 나려나?
거름도 듬뿍 줬습니다.
중앙의 여섯고랑에도 콩을 심었습니다.
한 구멍에 2알씩.
어김없이 거름을 투입하여 기대감이 증폭되었습니다.
혼자서 엄청 뿌듯해 합니다.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점점 농사실력이 느는 것 같습니다.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는 김장김치는 물을 모두 따루어 내고
혹시 모를 불순물이 가라 앉았다고 보고 어제 받아 둔 수돗물 들이 부었습니다.
물러 버릴지 작품이 될지는 다음 번에 와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3월 27일(화)
재비꽃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어릴 때 삽작 돌담아래에 할미곷과 함께 많이 피었던 꽃입니다.
어느쌔 찾아 왔을까요?
눈치도 못 챘는데 작고 여린 꽃 하나가 삐죽 솟아 나왔습니다.
어제 배추와 양파를 갈아 둔, 미나리꽝쪽 두 고랑에도 거름을 주었습니다.
앞밭의 제일 오른쪽, 옆집과 닿은 쪽 네 고랑에도
두 고랑은 어제 콩을 심었었고, 남은 두 곳에 브로콜리, 열무, 배추, 무, 총각무를 뿌렸습니다.
배추는 너무 큰 종이라 엄마께서 지브종(?)을 구해서 심으라셨는데 깜빡했네요.
방앗간자리에 작물재배도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대문쪽 일곱고랑은 아직 땅을 갈아 엎지 않았기도 하고
콩심을 자리인데 아직 작년에 추수한 콩을 털지 않아서 심을 콩도 부족하고
재작년 것 말고 그 보다 더 오래된 것 같은
벌레먹고 있는 파종용콩을 쓰자니 그렇고 해서 아직은 그대로 뒀습니다.
다음 번에 와서 돋은 곳과 고랑을 바꿔서 갈아 엎고 나서 비닐작업을 해야 합니다.
마당에 지천인 민들레도 말리고.
좀 더 있으면서 밭도 마저 갈아야 하고
마당의 보도블럭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서울에 일이 있어서
일단 상경채비를 합니다.
떠나는 길에 초등학교 철봉대에 매달려도 보고
목과 허리에 모두 추간판탈출증이 있어서
일을 하다보면 통증이 와서 조금 고생은 되지만
좋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마음은 부자네요.
다음 번 할 일이 벌써 기다려지는
오늘도 바람처럼.
첫댓글 귀농활동 같은 밭일의 결과물을 같이 맛보는 그날을 그리며~~
바람님의 글은 먼옛날 관리생활을 끝내고 향리로 돌아가며 읊은 도연명의 <귀거래사>를 닯았네요. 전원이 황폐해지니 돌아갈수밖에 없다는....
자연에 대한 애정이 물씬 풍기는 서사시에요~
워낙 용량이 큰 그림파일(휴대전화롤 찍은)을 올리니 다 깨져 버렸나 봐요. ㅠ
의무감도 있고 한데 농사준비를 하는 몸은 고달퍼도 마음은 참으로 기쁘답니다.
조만간 뵙지요.
울릉도나물 전 먹고싶어요.
비오는 툇마루 부침개 막걸리 누리고 싶어요
재취업이 늦어져서 4월중순전까지는 가능할 것 같은데ㅡ
그 이후는 그샹 상상으로 ㅡ
음...요리 솜씨가 날로 능숙해지시는 거 같고...
농삿일도 점점 능숙해지시는 듯해 보이고...
건강만 잘 유지되신다면 농부도 겸한 주부
흐흐ㅡ
낙동정맥길 걸으러 농꾼 일탈.
새벽 세시에누워 뒤척이다가ㅡㅡ
누가 시키면 못 할 일ㅡ
봉화역에서 석포행
@바람처럼 오, 안 시켰는데 혼자 벌떡...?
@걷고 한군데를 빼먹어서 내일 다시 ㅎ
@바람처럼 ㅋㅋㅋ...벌써 여름
@걷고 석포역ㅇㅔ서 승부역으로 오는 길은 낙동강상류와 나란히 걸으 므로 수량도 풍부하고 시원하지요.
찻길이라 좀 신경써야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