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3, 4월,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기온이 50도를 웃도는 역대급 폭염이 닥쳤다. 대단히 격렬한 몬순 우기가 폭염의 뒤를 이으면서 홍수가 발생해 파키스탄 주민 1,700명이 사망하고 지역사회가 큰 피해를 입었다. 기후변화가 야기한 것으로 생각되는 이처럼 파괴적인 기후 현상에 대응하여 국경없는의사회는 다두(Dadu)의 외딴 지역에 지역사회 기반 영양실조 프로그램을 마련했으며, 해당 프로그램을 통해 1,236명의 2세 미만 아동과 224명의 임신부 및 수유모를 지원했다.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학자 바르다 아메드(Vardah Ahmed, 26세)는 빈곤이 만연하고 평균 임금은 국내 최저 수준인 다두 시골 지역에서 남쪽으로 4시간 거리에 있지만 여러모로 매우 다른 번화한 대도시 카라치(Karachi) 출신이다.
세계 기아 문제는 TV나 신문에서만 접했을 뿐, 전에는 이 문제가 직접 피부로 와닿은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배고픔이라는 것은 질병은 물론 가족 간 문제까지 초래하더군요. 단순히 음식을 먹는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내면 깊은 곳까지 영향을 미치는 감정적 문제였습니다.”_바르다 아메드 / 국경없는의사회 임상심리학자
다두 지역은 몬순 계절 장맛비, 녹아내리는 빙하, 인더스강 범람과 같은 요인이 개별적 또는 종합적으로 작용하는 홍수 다발 지역이다. 작년 6월-10월, 5개월간 다두 지역의 대부분은 외부세계와 완전히 단절되고 말았다. 수확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 다두 시골 지역 주민들은 대부분 땅을 소유하지 않고 노동력을 팔아 생존하기 때문에 수확 실패는 결국 영양가 있는 식량을 구하기 위한 소득이 없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계속되는 높은 인플레이션이 고통을 가중시켰다.
2023년 2월, 다두 지역에서 발생한 홍수로 범람한 밭의 전경 ©FLAVIA PERGOLA/MSF
국경없는의사회는 홍수 발생 이전부터 피부 리슈마니아증 소외 질병을 앓는 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다두 지역에서 운영하며 지역 당국을 지원해 왔다. 홍수가 발생하자 활동은 자연스럽게 긴급 대응으로 초점이 바뀌었다. 수위가 낮아지고 두 달이 지난 12월,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은 말라리아 환자가 증가하고, 급성 중증 영양실조를 앓는 아동이 2022년 9월에서 2023년 2월 사이에 3배로 증가하는 상황을 목격했다. 이에 따라, 국경없는의사회는 활동 방향을 바꿔서 말라리아 환자 치료와 5세 미만 아동 환자 및 임산부, 수유모를 위한 영양 활동 위주로 프로그램을 설계했다.
한 남성이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를 데려온 적이 있습니다. 아이는 심한 빈혈을 앓고 있었고 굉장히 위독한 상태였어요. 아이의 아빠한테 딸이 입원해야 한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딸이 입원하는 동안 보호자가 도시에서 지내면서 필요한 식비나 숙박비가 없다면서 집안 어른들이 반대했어요. 결국 딸은 입원하지 못했죠. 그 아이가 어떻게 됐는지는 모릅니다. 굉장히 힘든 날이었어요. 그날 많이 울었습니다.”_바르다 아메드
작년 국경없는의사회는 전 세계 입원 치료식 센터(ITFC)에서 중증 영양실조를 앓는 아동 127,400명을 치료했다. 하지만 파키스탄의 경우, ITFC는 현지 보건부가 관리하기 때문에 국경없는의사회는 외래 환자 치료에 집중했다. 매일 아침, 국경없는의사회 팀은 운영 차량을 타고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몇 시간을 운전해 10개의 외래환자 급식 센터(ATFC) 중 한 곳에 도착했다. ATFC는 일반적으로 지역 보건지소에 마련되어 있는데, 시설 상태가 네 개의 벽과 지붕을 갖춘 정도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곳에서 환자들은 영양 지원 및 보건 증진 상담, 심리적 지원을 받을 수 있다.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 세션에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다. ©FLAVIA PERGOLA/MSF
지역 보건 당국과 교류하고 긴밀히 협력한 끝에, 우리는 접근성이 떨어져 도움의 손길이 절실한 지역에 활동을 집중하기로 했고, 가장 외지고 빈곤한 지역에서 중증 영양실조를 앓는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습니다.”_리나코 우에니시(Rinako Uenishi) / 국경없는의사회 다두 프로젝트 코디네이터
활동 시설을 최대한 환자 가까운 곳에 마련하긴 했지만, 다두 지역이 넓고 인구가 많이 분산된 탓에 일부 환자는 집에서 가장 가까운 ATFC가 15-20 km는 떨어져 있는 상황이다. 다두 지역에는 오토바이와 택시 몇 대를 제외하면 대중교통도 없기 때문에 환자들은 치료식을 얻기 위해서 왕복 마라톤을 하는 만큼 걸어야 한다.
이런 방법은 취약 인구에게 지속 가능하지 않고, 우리는 환자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안겨주기 싫었어요. 그래서 멀리 사는 환자들에게는 치료식 2주 치를 제공했습니다.”_리나코 우에니시
본래 하이데라바드(Hyderabad) 출신인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팀 책임자 아니스 비비(Anis Bibi)는 다두 ATFC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전한다.
진료를 시작할 때 가끔 눈물이 맺힐 때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식단에 고기나 생선처럼 값비싼 재료를 포함하라고 말해서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들도 무엇이 건강에 좋은지 알지만, 그런 걸 구매할 형편이 안 됩니다. 한 여성한테 어떤 음식을 먹어야 영양가를 높일 수 있는지 조언했는데, 가만히 다 듣고 나더니 ‘하루 한 끼 식사도 어렵다’고 말했어요. 정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_아니스 비비 / 국경없는의사회 보건증진팀 책임자
ATFC에 입원한 아동 4분의 3은 2세 미만이다. 이는 임신부가 임신 중 영양결핍 상태였거나 모유수유가 비효과적이거나 부재하는 등 미흡한 수유 관행 문제를 보여주므로, 임신부 및 수유모 273명을지원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아이들이 모유수유로 필요한 영양분을 얻을 수 있다.
밭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모유수유를 할 수 없습니다.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죠. 그 어떤 엄마도 기온이 50도가 넘는 밭으로 아이를 데려가진 않을 겁니다. 그래서 엄마들은 첫째 아이나 시어머니한테 소량의 설탕물을 병에 넣어서 건네 주면서 낮 동안 아기에게 먹이라고 합니다.”_아니스 비비
치료식 배급은 활동의 초석이지만 단순한 일이 아니다. 보건증진과 심리적 지원은 국경없는의사회의 의료 활동의 중요한 부분이다. 아니스 비비 박사는 이러한 활동 없이는 프로그램이 실패할 위험이 있다고 말한다.
영양 프로그램 초기에 완치 환자 비율이 굉장히 낮아서 놀랐습니다. 일부 주민들이 우리가 배급한 치료식을 누구나 즐겨 먹을 수 있는 일종의 사탕처럼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우리는 마을에서 작은 보건 자원봉사 위원회를 마련해서 사람들에게 이 치료식은 중증 영양실조를 앓는 아이들을 위한 치료제라는 점을 거듭 강조해서 설명했습니다. 이러한 위원회 활동의 효과가 상당히 좋았고, 실제로 프로그램 환자 완치율이 개선되었습니다.”_아니스 비비
국경없는의사회 의료팀이 영양실조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FLAVIA PERGOLA/MSF
임상심리학자 바르다 아메드는 특히 감동을 안겨줬던 일화를 떠올렸다.
한 여성은 남편이 치료식을 영양실조를 앓는 자식한테 먹이지 못하게 하고, 그 치료식을 사망한 첫 부인 사이에서 낳은 건강한 아이들에게 대신 주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부부상담을 제공해 아내의 정신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남편에게 알려줬습니다. 아내가 행복하지 않고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않으면 가족을 보살피지 못할 거라는 점을 상기시켰습니다. 상담이 끝나고 3주 후에 그 여성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녀는 자신을 돌보고 있었고 아이는 잘 걷고, 본인도 체중이 늘었죠. 정신 질환과 관련된 하나의 성공 사례입니다.”_바르다 아메드
중증 급성 영양실조 환자가 감소하면서 이러한 활동도 줄어들고 있지만, 이러한 경험은 바르다 아메드 박사의 마음속에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현장에서 돌아오고 나면 먹먹한 기분이 듭니다. 지금까지 일종의 사치스러운 삶을 누렸던 저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제가 해 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에 커다란 죄책감도 들고 마음이 매우 답답해집니다.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저는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나눠서 리스트를 만듭니다. 그리고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힘을 좀 빼고자 노력하죠. 그들의 상황을 제가 바꿀 수는 없습니다. 빈곤도 제가 없앨 수 있는 게 아니죠. 대신 저는 깊은 심호흡을 하거나 자기관리 루틴을 만들고 동료와 대화하는 등 스트레스 관리 기법을 활용해서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습니다.”_바르다 아메드
영양실조는 여전히 다두 지역의 공중 보건 문제로 남아 있으며, 주로 모성 및 아동에게 영향을 미친다. 모성 및 아동 영양실조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문제고, 적절한 의료서비스(산전후 치료, 예방접종, 기본적 위생, 정신건강 지원 등)의 부재 및 접근성 부족과 같은 여러 요인에 의해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는 기상 이변이 발생하면 가장 취약한 인구를 대상으로 보다 심화되어 나타난다.
첫댓글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