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시아축구연맹(AFC)의 ‘X배짱’ 이 아시아 전역에 걸쳐 화제다. 한번 마음먹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강력한 추진력(?)은 결국 국제적인 망신과 비웃음까지 샀으니 이를 어찌하랴.
이상스럽기 짝이 없는 AFC 내부규정이 처음 드러난 시기는 지난 11월 초순이다. AFC는 대한축구협회에 공문을 보내 박지성을 포함한 10명의 올해의 선수 1차 후보 가운데 성적과 지명도 등을 감안해 최종 후보 3명을 선정하는데 여기에 적용할 잣대가 ‘시상식 참석여부’라고 못 박았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다고 느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필자는 ‘설마’ 했다. 한 대륙의 최고 선수를 가리는 권위 있는 상인데 그런 유치한 규정을 뒀을까 하며 마음을 달랬다.
그런데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도대체 협상이고 뭐고가 없었다. AFC는 자신의 내부 규정대로 밀어붙였고, 결국 박지성을 탈락시킨 채 고만고만한 후보 3명을 추렸다. 엄청난 비난이 뒤따랐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며칠 후엔 또 한명의 후보가 참석할 수 없다고 전하자 곧바로 퇴짜를 놓고 후보를 2명으로 줄여버렸다. X배짱도 이런 X배짱이 있을까.
여론이 가만있을 리 만무했다. 특히 외신들은 “유력한 후보들을 탈락시키더니 결국 웃음거리가 됐다”며 비아냥거렸다. 최종 후보 2명 중 한명인 샤츠키흐(우즈베키스탄) 조차 “요즘은 경기가 많아 시상식 참가가 어렵다. 모든 선수들이 참석할 수 있는 때로 시상식 날짜를 바꿔야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상식 있는 집단이라면 일이 이쯤 되면 뭔가 변화를 꾀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AFC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재미를 붙였는지 더욱 가관이다. 내년에도 시상식에 불참하면 올해의 선수 후보에서 제외시키겠다는 원칙을 재천명했다.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상황까지 온 느낌이다.
이번 일로 AFC 올해의 선수상의 권위는 땅바닥 까지 떨어졌고, AFC는 정말 못말리는 왕따 집단이 돼버렸다. 유럽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 참석할 수 있도록 날짜를 조금 조정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려운 일이기에 이 지경까지 왔는지는 한심스럽다.
물론 AFC 나름의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수상자 없는 시상식장의 썰렁함을 걱정한 것은 물론이고 국제축구연맹(FIFA)이나 유럽축구연맹(UEFA) 처럼 후보들이 현장에 참석한 가운데 수상자를 발표하는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를 부러워했을 법도 하다. 이를 위해 AFC는 프리미어리그측은 물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등과도 접촉하는 등 후보들의 참석을 위해 뛰어다닌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점은 충분히 이해할만하다. 필자의 회사에서도 매년 연말에 프로축구대상을 실시하는데 항상 수상자의 출석 여부가 항상 걱정거리이기 때문이다. 수상자가 참석하지 않을 경우 괘씸한 생각이 드는 것 또한 AFC와 별반 다를 바 없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최소한 수상자를 바꾸는 일은 없다.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그런 감정에 쏠린다면 시상식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AFC가 가장 잘한 선수에게 줘야할 상을 ‘출석상’으로 격하시킨 데는 분명 이런 감정적인 배경이 깔려있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AFC 내부에서 조차 ‘코미디’라며 자조하는 분위기가 만연한 것을 보면 두고두고 씹힐 만한 잘못을 저지른 셈이다.
AFC의 이해할 수 없는 결정으로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서 탈락한 박지성 ⓒKFA 홍석균
그렇다면 AFC가 왜 이처럼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고, 어느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을까. 그냥 감정적으로 잘못했다고 한마디 하기엔 일이 너무 커져버렸기에 한번 따져봐야한다.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45개국 회원으로 이뤄진 AFC의 회장은 카타르 출신의 모하메드 빈 함맘(56)이다. 그는 엄청난 재력과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중동과 이슬람권을 대표하다보니 추종세력도 많다. 그에게 반기를 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는 일로 여겨진다. 특히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 겸 FIFA 부회장과는 껄끄러운 관계이다. 중동과 동아시아를 대표하는 선두주자인 이들은 지난 2002년 FIFA회장 선거 때 완전히 갈라섰다.
함맘은 현 FIFA회장인 블라터와 손을 꼭 잡았고, FIFA 내의 부패척결과 개혁의 기치를 내건 정 회장은 하야투 아프리카 회장을 지지했다. 당시 블라터의 승리로 함맘의 위세는 커질 수밖에 없었고, AFC를 완전히 틀어쥘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다보니 그의 한마디는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필자는 그의 그런 오만함이 이번처럼 미숙한 행정력을 낳지 않았나하고 생각해본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난해 말 함맘 회장은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열린 성남종합운동장을 찾았다. 당시 기자회견을 통해 그는 충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당시 최대의 관심사는 아시아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 출전할 수 있느냐 여부였다.
그런데 함맘 회장은 “2005년 세계클럽선수권대회에는 2004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이 아니라 내년도 우승팀이 출전하기로 두달 전에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결정됐다”고 말했다. FIFA의 중요 결정사항이 AFC를 거쳐 각국 협회로 통보돼야 했지만 전혀 그렇지 못했다. 물론 정 회장도 잘못했다. FIFA 집행위원이면서 그런 사실을 몰랐다는 것은 분명 지적받을 부분이다.
하지만 AFC가 보여준 태도는 직무유기에 다름 아니었다. 이미 두달 전에 FIFA에서 결정된 사항을 각국 축구협회에 통보하지 않았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하더라도 잘못된 부분이다. 의도적인 따돌림은 아니었을 지 몰라도 그가 보여준 행동은 오만함 그 자체가 아닐까.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 상당한 간극을 보였던 경기력은 지난 2002월드컵을 통해 많이 줄어들었다. 특히 한국과 일본의 성장에 세계 축구계가 놀랄 정도였다. 그런데 아시아축구의 행정은 제자리 걸음, 아니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닌 지 우려스럽다.
함맘 회장은 “나의 바람은 아시아축구가 세계 무대로 도약하는 것을 보는 것이다.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지난 10년간 많이 발전을 이뤘다. 머지않아 아시아축구는 세계 축구계에 큰 충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고 말한 바 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세계 축구 수준을 따라잡기 위해 AFC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AFC 올해의 선수상 시상은 내년에도 열린다. 더 이상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AFC 집행위원들이 나서야한다.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원칙을 정하는 것은 좋지만 최소한의 융통성이나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원칙은 단지 고집에 불과할 뿐이다.
첫댓글 이제 신경안쓴다~
죠낸 공감..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