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 마태복음 25:37-40
제목 : "그리고" 결국 남는 것은?
일시 : 2017. 12. 24
장소 : 라이프찌히 교회
I. 크리스마스가 되면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소품들이 다양하다. 지금 교회예배당 안에도 다양하다. 탄넨바움, 헤른후트의 별, 촛불, 밖으로 나가면 바이나흐트마크트, 글리바인 등이 있다. 그러한 장식물 홍수 속에서 종종 예수 그리스도는 실종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린시절 성탄절이 되면 목사님들은 종종 장식을 절제하고 성탄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말씀을 전하고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런데 요즘 한국에는 전혀 성탄 분위기가 없다고 하고 반면 독일에 와서 보면 한껏 고조되는 성탄분위기는 생각을 달리하게 한다. 크리스마스의 심벌들을 그렇게까지 낮출 필요가 있었을까?
II. 오늘날 한국 사회에 보면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고 한다. 크리스마스의 분위기가 없어서 섭섭하고 옛날 크리스마스 장식과 심벌들이 그립기까지 하다. 성탄의 진정한 의미와 본질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심벌들을 없애고 축소시켰더니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도 잊어버리는 것 같다. 오히려 한국 사람들은 유럽의 바이나흐트 장을 멋지다고 관광을 오기도 하는 판이다. 크리스마스의 심벌들을 보라. 그것들 자체가 본질은 아니지만 본질로 우리들을 이끌어 주는 좋은 도구가 된다.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그 심벌들 속에 서려 있고 그것을 통해서 더 깊은 믿음의 여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내 차를 타면 7080년도에 유행했던 노래들이 있다. 그러한 노래를 들으면 타임머신이 따로 없다. 어느새 과거로 돌아가고 대학캠퍼스를 거니는 것 같고 낭만이 많았던 시절로 돌아간 듯하다. 옛 사진 한 장만 가지고도 과거의 수많은 스토리를 생각해 낼 수 있는 시간여행의 도구가 된다. 사람들이 주로 찍는 사진은 먹는 사진을 올리지만 저는 옛 사진을 올린다. 우리 누님과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내가 찍혀진 옛 가족사진을 볼 때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거실에 아내의 어릴 때 사진이 있다. 아내의 어릴 때 사진이 있다. 여대생 사진이 있다. 아내가 결혼하기 전 사진이 있다. 타임머신이다. 옛 사진이나 옛 노래가 나를 그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가게 한다.
그러한 소품들이 나로 하여금 크리스마스를 추억하게 하고 신앙을 추억하게 한다.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선물교환을 위해서 일정한 액수 내에서 선물을 고르던 생각, 교회 안에서 예쁜 여학생이 내 선물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골랐는데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사람이 받게 되어 기분이 안 좋았던 생각, 선물교환을 하면서 벌칙까지 써서 엉덩이로 이름을 쓰던 일들, 성가대 칸타타를 한다고 늘 헨델의 메시야를 불렀던 시간들, “또 주가 길이 다스리시네”하는 테너의 가장 힘든 부분을 하던 생각, 청소년부 시절 올나이트를 하기 위해 친구들이 엄격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던 일들, 캐롤송을 준비해서 집집마다 돌면서 선물을 주는 싼타가 아니라 선물을 수집하는 산타가 되고 금일봉까지 받을 때는 신나던 생각, 그렇게 돌다가 우리 집 앞에서는 그냥 들어와 버린 일들... 아침에 크리스마스 축하 예배 때에 올나이트를 해서 다들 졸려 예배 시간 거의 실신 상태로 있던 생각들...
그러한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다. “상술이 어떠네” “본질이 어떠네”하면서 너무 우아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러한 추억의 소품이 있기에 우리는 신앙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추억이 있기에 과거 순수했던 시절을 회상하게 되고 절기 속에 주신 하나님의 그 메시지를 묵상하게 된다. 수많은 크리스마스의 심벌들, 많은 행사와 이벤트들, 그러한 것들은 본질적인 것들이 아니라 할찌라도 우리의 신앙의 추억이 되어 믿음의 본질로 이끌 수 있는 재료가 되어야 한다. 연말 오늘 어린이들이 발표를 하고 청소년들이 찬양을 하고 이어지는 전교인수련회, 그리고 청소년 수련회는 우리 모든 이들에게 신앙의 추억을 줄 것이다. 자녀와 함께 하는 새벽기도, 수학캠프,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그러한 모든 것들이 신앙의 추억이 타임머신과 같아서 신앙의 추억으로 여행하게 될 것이며 참된 진리를 묵상하게 하는 귀한 도구가 된다.
III. 물론 크리스마스의 수많은 소품들이 정작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가리키기보다 오히려 예수님의 탄생을 가리워버릴 수 있다.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정작 중요한 주제를 잃어버리고 연료로 쓰다가 버려야 할 심벌들에게 집착하고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빼앗길 수 있다. 따라서 심벌들을 소중하게 여기되 더 중요한 핵심은 놓치지 말아야 한다.
독일에 아드벤트 칼린더가 있다. 아드벤트가 시작하는 때부터 하루 하루 그 칼린더를 열면 초코렛도 나오고 작은 선물들이 들어있다. 아드벤트 칼린더 선물은 아드벤트 4주가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메시야의 오심을 하루씩 기대하고 기다리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드벤트칼린더가 끝나고 바이나흐트 시장이 끝나면 모든 것이 끝나 버린 듯하다. 화려했고 분주하던 바이나흐트 시장이 파장하여 다 철수하고 빈 광장만 있듯이 예수 그리스도 바로 앞에 와서 우리의 관심이 끊겨서는 안된다. 아드벤트 절기 매일 매일의 선물들이 있는데 그 선물들을 하나씩 꺼내보다가 크리스마스에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선물임을 알아야 하는데 예수님을 놓치지 않는가?
바이나흐트에 있는 수많은 소품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심벌들이다. 이러한 심벌들은 그 자체가 최종목적이 아니다. 심벌은 실어 나르는 것이다. 그 실체에 도달하기 위한 연료이다. 그 연료가 다 소진되면 이제 사라져야 한다. 궤도에 올라가면 연료통은 떨어져 없어져야 한다. 연료를 잘 활용하여 소비한 이후 실제적인 진리만 남아야 한다.
오늘 본문을 보라. “의인”들이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하나님께 묻고 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답은 40절에 나온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다. 이 의인의 삶속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마지막 남는 것은 “하나님”과 “나” 뿐이었다. 그것이 내가 삶속에서 연료를 다 불태우고 도달한 경지이다. 바이나흐트의 모든 소품들을 태우고 마지막 남는 것은 “하나님”과 “나”뿐이어야 한다.
이전에 모시던 담임목사님은 성도들이 무슨 선물을 가지고 오는 것을 거절하셨다. 그것이 깨끗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아주 칼트한 관계를 만들어 내었다. 선물은 주고 받고 하는 것이다. 그때 “마음”을 받는 것이다. 그 마음이 아름다운 것이다. 매개체에 관심이 아니라, 남는 것은 그 사랑하고 관심을 갖는 아름다운 마음이다. 우리가 받은 선물이나 주는 선물이나 서로 다 쓰지 않고 못한다. 그러한 것이 돌고 돈다. 그러면 남는 것은 무엇인가? “사랑하는 마음”이 남는 것이다. 푸근함이 남는 것이다. 따뜻한 인정이 남는 것이다. 1988년도에 필리핀에서 공부를 할 때 인디아 나갈랜드 친구 꼬뻬가 있었다. 그는 노래를 잘 하였다. 그런데 그는 내가 가지고 있던 기타를 무척 갖고 싶어했다. 한국으로 떠나올 때 그 친구는 자신들의 특산물인 손으로 직접 짠 쇼울을 내게 보이면서 서로 사고 팔자라는 제안을 했다. 그것은 외투와 같고 잘 때 이불과 같고 아주 유용하고 아름다운 색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Nein 이라고 하면서 기타를 그냥 선물로 주고 그는 그 쇼울을 그냥 선물로 주라고 했다. 선물로 어느 것이 더 비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주고 받는 것에서 남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의 이득이 아니라, 친구간의 우정이었다.
매개체는 하나님과 우리 관계를 아름답게 해주는 소모품이요 연료일 뿐이다. 우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선물을 주고 받는다. 전교인수련회와 청소년 수련회도 있다. 오늘처럼 크리스마스 성탄축하발표도 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도 많은 스토리들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한 일들은 “지극히 작은 자”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마시게 하고 영접하고 옷을 입혀주고 찾아가 위로하는 것과 같다. 남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 나”인 것이다. 삶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로 우리를 이끄는 축복의 통로요 신앙의 추억으로 이끄는 연료가 되어야 한다.
IV. 이제 어린아이들이 찬양하고 준비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연습한 대로 못하기도 하고 실수도 할 것이다. 그리고 청소년들이 준비한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성가대칸타타로 찬양으로 영광을 돌린다. 남는 것은 성공적인 “행사”가 아니요 “하나님과 우리”의 축복된 관계이다. 수련회를 한다. 그렇게 해서 남는 것은 “하나님께 영광”이요 우리 안에서는 “주안에서 교제요 기쁨”이다. 수많은 삶의 심벌들 속에서 살지만 마지막 남는 것은 하나님과 나와의 가장 복된 관계이다. 선물을 주고 받을 때 마음을 받는 것처럼 다른 모든 인생의 선물들은 연료로 사용하라. 성탄이브의 이 주일예배를 통해서 신앙의 아름다운 추억들을 잘 만들어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