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하는 민시야
오늘 예배는 근본적인 하나님 자녀의 삶에 대해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요시야와 향유를 깬 여인을 통해서 말이다. 은혜로운 선생님은 이 말씀을 읽기 전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다. 이해가 되지 않지만, 말이 되지 않지만 하나님을 안다면 이것을 실천할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한 사람이 요시야와 향유를 깬 여인이다.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았다.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 예수님이 돌아가실 것을 유일하게 알았던 사람들이다. 즉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어떨까? 나는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겠다. 모두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지는 게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믿어 나아가기 위해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을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 뜻을 아는 게 즐거워야 한다. 하지만 요새는 말씀을 읽는 게 너무 힘들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고 지루하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렇기에 더욱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원한다. 하나님의 관계 회복을 위해 기도해야겠다. 다시 하나님과 함께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도와주는 정예은
은혜로운 선생님께서 예배를 해주셨다. 예배를 하며 하나님께 나아갈 때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해 변화해야 한다. 나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는 예배드릴 때 알 수 있다. 이런 예배를 통해 구할때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다.
자신있는 김준호
오늘 말씀에서 20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20절에서는 요시야왕이 아버지와는 다르게 우상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요시야의 시대에 재앙을 내리지 않고 요시야는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게 해주셨다. 하나님은 자신을 기쁘게 해준 사람에게는 기쁜 마음으로 보답을 주신다. 그래서 율법을 읽고 성전을 다시 지었던 요시야에게 평안함을 주셨다. 마가복음에 나왔던 여자 또한 예수님을 위해 자신의 옥합을 깨고 향유를 선물했다. 이 여자에게도 예수님께서 보답을 주셨다. 이들 모두 보답을 받았지만 보답을 바라지 않았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더 기쁘게 받으신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보답을 바라고 행동하는 경우가 많다. 무언가를 바라고 했다가 만약 보답이 없을 때에는 주님께 화를 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이 보답을 기다리고 선한 일을 한 사람에게 보답을 주고 싶을까? 하나님 또한 마찬가지이실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보답이 아닌 나의 행실이 우선시 되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내가 되길 바란다.
담대한 고이든
오늘 은혜로운님이 열왕기하 22장과 마가복음 14장을 가지고 강의해 주셨다. 열왕기하 22장은 요시야가 자신의 태도를 반성하고 회개하는 내용이고, 마가복음 14장은 향유 옥합을 깨고 예수님께 기름 부은 한 여인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마가복음 14장, 향유 옥합의 여인에 대한 내용이 가장 인상깊었다. 이 여인은 다른 사람들이 무어라고 한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였다. 이 말씀이 가장 인상깊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의 시선과 개입에 대해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예수님께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드렸기 때문이다.
연구하는 정재훈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근원이 되셨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12제자를 만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순종을 갖고 우리를 죄에서 사하여 주셨다. 마지막에는 순종하는 자에게 은혜를 내려주셨다. 오늘 말씀 중, 나는 향유를 깨트리는 여인이 가장 기억에 남았다. 다른 사람들은 향유를 깨트리는 것을 보고 그 기름을 팔아 가난한 자에게 기부하면 더 값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난한 자는 언제나 이곳에 있어서 돕고자 하면 언제든 도울 수 있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이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이 구절을 듣고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가난한 자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다. 또한 언제든 우리는 도울 수 있다. 하지만 그냥 지나치고, 다른 사람이 하겠지라며 무시하고 지나간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말씀을 들을 때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과연 향유를 깨트리는 여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내 답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행실에 내 답을 적어 나가고 싶다.
슬기로운 민시은
오늘 말씀에 나오는 요시야와 여자는 모두 주님께 무릎을 꿇은 사람이라는 공통점이 있었다.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거나 귀한 향유를 드리기 위해 옥합을 깨뜨렸다. 오늘 말씀을 읽으며 요시야왕이 두루마리의 말씀에 관하여 주님의 뜻을 여쭈어보는 것이 기억에 남았다. 요즘 들어 말씀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하며 읽지 않으면 읽는대로 생각한다는 말을 종종 들으며 더욱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에 대한 생각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지만 오늘 요시야왕을 보고 분명히 깨달았다. 주님의 뜻이고 말씀이니 모르겠으면 다시 기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은 여자의 이야기는 이미 자주 들어 알고 있었지만 오늘따라 향유를 부은 것보다 옥합을 깨뜨린 행동이 와닿았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향유 옥합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주님 앞에 깨뜨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향유가 아무리 비싸고 귀하다 한들 주님께 비할 수 있을까? 결국 예수님께서는 옥합을 깨뜨리고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린 마음을 보신 것 아닐까?
마음에 있는 옥합은 믿음과 순종으로 드리는 예배를 방해하는 것 같다. 그것을 깨뜨리며 나아갈 때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요시야처럼, 그리고 여자처럼 세상의 가치를 따르기보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분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보다 나의 옥합을 깨뜨리고 내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기뻐하는 김담희
말씀을 들을 땐 매번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나와 주님의 사이를 고민하게 된다. 오늘 은혜로운 선생님이 전해주신 말씀은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들을 알 수 있었다.
요시야왕과 주님께 향유를 드린 여자는 주님께 믿음과 순종을 보여드렸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보다 더 즐거워 보이는 것들을 제공한다. 그럼 나는 늘 그것에 넘어가는 것 같다. 말씀 없이 일주일을 살다가 주일 하루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내가 죄를 짓고 있음을 알면서도 매일 주님을 찾고, 기도하며 순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말씀에 나온 요시야왕처럼, 주님께 향유를 부어드린 여자처럼 나와 내 귀한 것을 드릴 수 있는 주의 자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