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아브라함 계약
이스라엘의 옛 성읍인 브에르 세바와 헤브론 같은 유적지를 순례하다 보면, 그곳에 정착해 살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떠올리게 됩니다. 창세기는 11장까지 전 세계적 범주에서 이야기를 이어가다가 12장부터 아브라함에게 집중합니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뒤 타락의 길을 걷던 인류가 홍수의 재앙을 겪을 때 노아가 등장하였듯이, 11장의 바벨탑 사건 뒤에는 하느님께서 당신에게서 멀어진 인류를 위하여 아브람을 택하시고 구원 역사를 다시 시작하시는 대목이 이어집니다.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가나안 땅과 많은 후손을 약속하시는데, 이 계약은 이후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는 시나이산 계약의 기초가 됩니다. 그 결과, 가나안족은 영토를 빼앗기게 되지만, 이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편애하신 탓이 아니라 가나안족의 죄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며(창세 15,16; 신명 9,4-5 등)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계약이 이루어지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아브람과 계약 맺으시는 창세 15장의 의식이 매우 특이합니다. 아브람이 암송아지, 암염소, 숫양, 산비둘기 등을 마련한 뒤 날짐승을 제외한 짐승을 절반으로 자르자(9-10절) 하느님께서 그 사이를 지나가신 것입니다. 아브람은 짐승을 왜 절반으로 잘랐고, 하느님께서 그 사이를 지나가셨을까요?
이 행위의 본래 의미는 세월 속에 묻혔지만, 사실 이는 고대근동에서 일반적으로 행하던 계약의 방식입니다. 지배국과 피지배국은 자신들의 주종 관계를 설정할 때 짐승을 잘라 계약을 맺곤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계약을 어기면 두 토막 난 짐승처럼 되리라는 위협이었는데, 여기엔 피지배국의 반란을 막으려 한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다 이스라엘에서는 이 계약이 종교적 차원으로 승화하여 하느님과 그 종들 사이에도 맺어지게 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창세 15장에서는 짐승을 자르는 의식에 담긴 위협이 사라지고 행위만 반영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계약의 당사자가 주군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7절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횃불과 연기의 모습으로 짐승 사이를 통과하시는데요, 횃불과 연기는 신현(神顯)에 자주 동반되던 현상입니다(탈출 19,18; 24,17 등).
창세 15,18의 “계약을 맺으시며”는 히브리어로 ‘계약을 자르다.’로 직역됩니다. 따라서 이 대목 역시 당시의 계약 방식을 잘 암시해줍니다. 옛 가나안의 도시국가 가운데 하나였던 알랄라크에서도 ‘양의 목을 잘라 계약을 맺었다.’라는 표현이 발견되고, 예레미야서에는 “나는 ··· 내 앞에서 송아지를 두 토막으로 가르고 그 사이로 지나가면서 맺은 계약의 규정들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을 그 송아지처럼 만들어 버리겠다.”(34,18-20)라는 신탁이 등장합니다. 이때 송아지 토막 사이를 지나며 계약 준수를 맹세한 측은 이스라엘 백성이므로, 결국 그들은 토막 난 송아지처럼 되리라는 선고를 받게 됩니다.
세월 속에 묻힌 옛 표현을 다시 이해하며 읽는 성경 말씀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약을 이루시기 위해 어떤 충실함을 보이셨는지 새삼 깨닫게 줍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3월 16일(다해) 사순 제2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