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運;①글씨본을 보지 않고, 쓰는 사람의 마음대로 붓을 옮기는 일 ②또는, 그렇게 쓴 글씨 臨書또는 臨古의 상대어다. ♥. 自運은 臨古에 있고 임고는 모름지기 我가 있어야 하며 반드시 법을 따라야 한다. 양자가 합해지면 모두 아름답고 遊離되면 모두 상하게 된다.
♥.臨古는 모름지기 我가 없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我가 있으면 다만 자기의 뜻에 불과 해서 반드시 古人과 뜻을 통할수 없다.
* 전문에서는 "臨古須有我"라 말하고 본문에서는 "臨古須無我"라고 말한다.완전히 정 반대이다.이것이 동양철학의 논리이다. 書에서는 때때로 이 논리를 사용한다. 臨古에 만약 我가 있으면 임고가 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의 뜻에 의해서 썼을 뿐이다. 그래서는 古人과 통할 수 없다. 전문의 我는 主觀이고 본문의 我는 分別心이다. 古名跡을 보고 감상하여 그 묘취에 감동하는 것은 주관이다. 이 주관이 없어서는 어떠한 고명적도 단순한 모양에 지나지 않는다. 주관을 작용시켜 筆을 잡고 임서할때는 無我에서 고인을 따라야만 한다. 고인을 따르지 않으면 고인의 마음으로 될 수 없는 것이다.그곳에는 조금의 분별력도 있어서는 안된다.
☞.生熟生 발전과정설
‘守’란 ‘가르침을 지킨다’라는 의미. 스승의 가르침을 받들어 정해진 원칙과 기본을 충실하게 몸에 익히는 단계를 말하고,
‘破’는 守 즉 원칙과 기본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틀을 깨고 자신의 개성과 능력에 의존하여 독창적인 세계를 창조해 가는 단계이며, 그렇지만 이 시기의 수련은 다분히 의식적이고 계획적이고 작위적인 수준에 행해지는 것이 특징이다.
다음 단계인 ‘離’는 파의 연속선상에 있지만, 그 수행이 무의식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단계로 질적 비약을 이룬 상태로 自運의 단계라 할 수 있다. 자신도 모르게 ‘破’를 행하되, 모든 면에서 법을 잃지 않고, 규칙을 벗어나지 않는 경지에 이름을 뜻한다. 수련의 최후단계이다
서주시기 금문의 작품은 풍부하고 다채로우니 유형별로 골라보면 주요 풍격으로는 다음과 같이 6종류가 있다.
첫째, 멋대로 내치면서 아름답고 기이한 것[恣放?異]의 대표작은 <天亡?銘>,<何尊銘> 등이다.
도판 1. <天亡?銘>
둘째, 질박하고 치밀한 것[質朴縝密]의 대표작은 <利?銘>,<作冊令方彛銘>이다. 이상 두 종류의 풍격은 대부분 서주초기에서 많이 보이며, 은상시기 서예의 유풍을 더욱 많이 보유하고 있다. 서체로 보면, 전형적인 대전과 또한 일정한 거리가 있다.
도판 2. <利?銘>
셋째, 굳세고 아름다우면서 응축되고 정련된 것[?麗凝煉]의 대표작은 <墻盤銘>,<大克鼎銘>이다. 이런 종류에 속한 풍격은 서주중기에 비로소 나타났다. 글씨는 정미하고 굳세고 아름다운 가운데 전아하고 중후함이 깃들어 있고, 응축되고 정련된 가운데 풍요롭고 넉넉함이 나타난다. 형태는 전아하고 기운은 화려하고 진귀하니, 이는 서주시기 금문의 법칙이다.
도판3. <墻盤銘>
넷째, 둥글고 윤택하며 단정한 것[圓潤整飭]의 대표작으로는 <靜?銘>,<??銘>.<頌鼎銘> 등이다. 이는 대부분 서주중기와 말기에 보이며, 필획은 둥글고 고르며 결구는 고른 조화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셋째 유형 풍격의 작품처럼 신채가 빛남에 이르지 못하고 격식화의 경향이 있다. 서체는 이미 비교적 전형적인 대전이다.
도판 4 <靜?銘>
다섯째, 배열하고 장식한 것[排比裝飾]의 전형적인 작품은 『?季子白盤』이다. 이는 서주말기의 금문에서 비교적 특수한 풍격 양식의 일종이다. 서사자는 동일한 종류의 필획을 같은 거리로 배열하여 형태가 마치 도안과 같다. 이러한 필획 조합은 선의 형식감을 과장하여 글씨가 현대미술에 가깝다. 춘추전국시기 진국 계통의 『秦公?銘』ㆍ『石鼓文』은 이러한 풍격 양식을 답습한 것이다.
도판 5. 『?季子白盤』
여섯째, 거칠고 제멋대로인 것[荒率恣肆]의 대표작은 『散氏盤銘』『毛公鼎銘』이다. 현대 서예가들은 이 작품을 특별히 좋아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종류의 기이하고 제멋대로인 글씨는 서주시기에서 아주 드물게 보이기 때문이다. 결자에서는 대칭과 평정의 관례를 타파하여 가로로 넓혀 기울고 쏠린 형세를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글자 형세도 오른쪽 아래로 향해 기울였다. 서주시기 금문의 변천은 대체로 초기의 상나라 옛 제도를 연속한 것으로부터 중기의 자립체제로 전향했으며, 도판 6 . 『散氏盤銘』 성숙한 서예 형태는 세 번째와 네 번째 풍격의 작품이다. 말기는 격식화를 향해 나아가 정교함이 탈바꿈되어 생기가 없어짐과 동시에 개별적으로 극단적인 풍격도 나타났다. 비록 서주시기의 금문 풍격은 다양하나 이러한 형태는 모두 장엄하고 정중한 경우에 사용되었고, 또한 아름답게 가공하는 제작 과정이 있었다. 이것이 반영한 것은 묘당에 처한 서예 주류의 형태이다.
短線點?;동양화에서 쓰이는 준법(?法)의 하나.
가늘고 뾰족한 붓끝을 화면에 살짝 대어 끌거나 점을 찍듯이 하여 짧은 선이나 점의 형태를 이룬 것이다. 산이나 언덕의 능선 주변 또는 바위 표면에 집합적으로 가하여 질감과 양감을 나타낸다. 중국의 각종 준법과 다른 한국적인 것으로 조선 초기의 화풍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단선점준은 원래 개별적인 필획이나 필흔이 드러나 보이지 않던 안견(安堅)의 필법이 계승되어 15세기 후반경부터 그의 영향을 받은 화가들에 의해 점차 필획이 개별화되면서 16세기 전반, 특히 1530년대에 가장 유행하면서 그 전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안견). 단선점준의 시원형은 15세기 후반 안견화풍을 따라 그리다 일본으로 건너간 문청(文淸)의 〈연사모종도〉와 〈동정추월도〉 쌍폭 및 〈누각산수도〉에서 찾을 수 있다. 짧고 거친 필획들이 윤곽선 주변에 여러 겹으로 가해져 있다. 가장 전형적인 단선점준은 안견화풍의 영향을 받은 16세기 전반 작품에 나타난다. 1531년작으로 추정되는 일본 개인 소장의 〈독서당계회도〉를 비롯해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첩인 〈소상팔경도〉, 양팽손(梁彭孫)의 〈산수도〉, 일본 다이겐 사[大願寺] 소장의 〈소상팔경도〉, 홍익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1535년작으로 보이는 〈중묘조서연관사연도〉, 조금 시대가 뒤지는 〈명묘조서총대시예도〉가 이에 속하는 그림이다. 대개 짧고 날카로운 단선점준이 구사되어 있으나 16세기 후반에는 가늘고 길며 부드러운 필선에 가까운 형태로 변모하면서 힘이 빠지는 경향을 보인다. 이흥효(李興孝)의 화첩 〈팔경도〉, 1572년작인 〈의순관영소도〉에서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향은 16세기말까지 어느 정도 지속된다. 17세기에는 일부 작품에만 변형된 모습이 보이는데 조속(趙涑)의 〈금궤도〉, 한시각(韓時覺)의 〈북새선은도〉 등 전통적인 화풍에 사용되었다. 이밖에도 각종 궁중행사도 등 보수성이 강한 기록화에는 17세기 후반까지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선점준은 15~16세기 조선시대 회화에 있어서 한국적인 화풍 형성에 큰 역할을 했으며, 연대판정과 양식의 변천을 추정하는 데 하나의 중요한 단서가 되고 있다.
朴廷蕙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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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범고래 원문보기 글쓴이: solp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