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동이족과 터키
[ * 알타이산맥]
고비사막에서 서시베리아 평원까지 2,000㎞ 길이다. 알타이산맥은 고비알타이· 몽골 알타이· 소비에트 알타이로 나뉜다.
알타이산맥에는 빙하기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3,500개가 넘는 호수가 곳곳에 있다.
기후는 겨울은 길고 춥지만, 낮은 경사지의 여름은 따뜻한 대륙성기후를 보인다.
서쪽 산봉우리는 강수량이 많지만, 동쪽으로 가면서 줄어든다.
식물대는 준사막· 스텝· 삼림· 고산 지대로 구분되며 소비에트 알타이 지방은 70% 정도가 삼림이지만,
몽골 알타이와 고비 알타이에는 삼림이 존재하지 않는다.
알타이산맥은 아름다운 경관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고 있다.
알타이산맥은 고비사막에서 서시베리아 평원까지 남동에서 북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있으며 높이는 4,000m가 넘는다.
들쑥날쑥한 이 산계 山系의 이름은 터키 몽골어로 ‘황금으로 이루어진’이라는 뜻의 ‘알탄’ (altan)에서 유래했다.
* 튀르키예 지도
터키의 큰 성씨 姓氏 중에 알랜(ALREN), 앨란(ALRAN)이란 굴지 屈指의 대 부족 大 部族
성씨 姓氏도 여기서 기원 起源한다.
‘알랜’이 김씨 金氏다.
‘앨란’도 김가 金家다.
같은 성씨 姓氏인 것이다.
터키가 대한민국을 보고 ‘형제의 나라’라고 고대 古代부터 친밀감을 보이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다.
돌궐의 전신 前身이 흉노다.
돌궐의 적손 嫡孫이 터키다.
동이족이 인류 최고 最古의 문명인 홍산 문화의 배달 신시에서 형성되었으며, 동이족의 후예가
단군조선과 흉노이며, 단군조선의 맥을 부여, 낙랑, 고구려가 이어왔다.
부여. 고구려가 흉노와 같은 혈통이고, 신라의 귀족층도 신나라 멸망 후, 새로이 한반도로 도래 渡來한 흉노다.
앞서 한반도에 자리한 단군조선의 주민 住民도 흉노와 같은 핏줄이고, 후에 도래한 이주민 移住民도 흉노다.
선, 후 주민 先, 後 住民 모두가 동이족 흉노와 같은 혈통이다.
갓 태어난 아기 엉덩이의 푸른 몽골 반점이 이를 증명한다.
삼신할미께서 “너희들은 모두 내가 점지해 준 귀한 아기이며, 같은 피가 흐르는 형제다”라고 선명하게
도장을 찍어 표시해 두셨다.
그러니 터키와 대한민국은 같은 핏줄이 흐르는 형제지국 兄弟之國이라 한다.
[ * 삼신할미 (三神 할머니)]
삼신할머니는 가장 널리 알려진 우리 여신 女神이다. 우리 여신의 특성을 생명 존중과 너그러움이라고 할 때,
삼신할머니야말로 우리 여신의 특성을 가장 잘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아이를 점지하고, 무사히 태어나도록
돌봐 주고, 올바른 인간으로 성장할 때까지 보살피는 삼신할머니는 가장 원초적인 말 그대로 인간을 탄생시키는
포근한 어머니의 이미지를 가진 신이다. 할미는 할머니라는 뜻이 아니라 ‘큰어머니’라는 뜻이지만,
현대에 와서는 할머니의 이미지로도 묘사된다.
이능화 선생은 <조선무속고>에서 ‘삼’은 한자의 삼(三)이 아니라 태(胎)를 뜻하는 우리 고유의 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맞는 말이다. 요즈음 말로도 탯줄을 자르는 것을 ‘삼 가른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의 선조들은 우주의 모습을 크게 셋으로 나누었다. 바로 하늘(天) · 땅(地) · 사람(人)이다. 셋으로 나누어진
삼신이지만 셋은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바로 삼신 일체요, 삼신 상제다.
우리 문화에서 ‘3’이라는 숫자는 성스러울 수밖에 없다. 3을 길수 吉數로 믿는 탓에 우리 문화는 3을 기본으로 하는 홀수 문화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기수 문화 奇數 文化라고 한다. 중국은 음양론을 기반으로 하는 짝수 문화, 곧 우수 偶數 문화다. 한글의 모음도 천, 지, 인 셋을 기본으로 만들었다. 우리의 전통음악도 3박자다. 춤도 3박자다. 우리의 전통 무예인 택견도 3박자이다.
태극도 삼태극이다. 서원의 대문이나 왕릉의 홍살문에도 삼태극 문양이 많이 남아 있고 사찰에도 가끔 보인다.
빛이든 색이든 모두 삼원색 三原色(적색=天=圓=○, 청색=地=方=□, 황색=人=角=△)이 기본이 되어 있다.
삼원색을 섞으면 곧 백색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 민족이 왜 흰색을 좋아하는지, 농악꾼들이 왜 삼색 띠를
매는지, 부채에 왜 삼태극을 그리는지 이해하게 된다.
원, 방, 각에서 가위(인), 바위(천), 보(땅)가 나오고 씨름의 삼세판이 나온다. 놀이판의 점수 계산도
1, 3, 5, 7, 9 홀수로 한다. 축의금도 홀수로 낸다. 초가도 3칸을 기본으로 짓고 집을 더 크게 지어도
5칸, 7칸, 9칸으로 늘려가지 짝수 칸으로는 짓지 않는다.
* 우매한 한국의 실수
1950. 6. 25.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터키에서는 무장한 전투병 14,000여 명이 한국전쟁에 참전 參戰하였고, 900여 명의 많은 젊은이가
피를 흘리며 희생하였으며, 일선에서 상당한 전공 戰功을 세웠다.
터키 말 ‘칸 가르데쉬(kan kardesi)’는 피(kan)와 형제(kardes)의 합성어로 ‘피를 나눈 형제’라는 뜻이다.
한국전쟁 참전으로 ‘칸 가르데쉬, 코리아’ 즉 ‘피로 맺어진 의형제, 한국’으로 불리게 되었다.
터키는 미국, 영국, 캐나다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인 4년간 연인원 14,936명의 병력을 파병했다.
전쟁 말기에도 최대수준 5,455명을 유지했으며 전사 741명, 부상 2,068명, 실종 163명,
포로 244명으로 합계 3,216명의 피해를 보았다.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자유 진영의 도움과 지원으로 공산주의의 남침을 막아내었다.
휴전 후,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 廢墟에서 기적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1990년대 초, 터키는 형제국인 한국에게 경제 투자를 해달라며 몇 차례 경제지원을 요청하였다.
여기에서 한국은 큰 실수를 저지르고 만다.
사대주의와 식민사관에 사로잡혀 지나온, 제 나라의 역사도 제대로 모르고 또한,
경제성장에만 치중했던 한국은 이역만리 6.25전쟁에서 고귀한 젊은 피를 흘린
혈맹의 동맹국 터키의 경제 지원요청을 냉정하게 거절하였다.
이에 실망하고 빈손으로 조국에 돌아간 터키 외무장관은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하자 바로 기자 회견을 가졌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칸 가르데쉬'(kan kardesi. 피로 맺어진 형제국)이라는 망상 妄想을 버려라”
그 후로 자존심 강한 터키 국민들은 한국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차가운 시선으로 일관하였다.
그리고는 일본과 더욱 가깝게 지내게 된다.
그 이유는 러시아는 부동항 不凍港을 확보하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남하 南下정책을 취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리적으로 그 북태평양 北太平洋의 길목에 자리하고 있는 일본이 러시아의 남하 정책을
저지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터키가 흑해와 지중해에서, 동양에서는 일본이 손을 맞잡고, 러시아의 남하 南下를 막는
공동의 연합전선을 구축한다는 것이다.
적 敵의 적 敵은 나의 아군 我軍이라는 보편적인 논리가 적용된다.
그러니 그 막강하다고 소문이 자자한 러시아의 '발틱 함대' (Baltisky Flot)가 부동항을 얻지 못해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나지 못하니 만사휴의 萬事休矣다.
그렇게 양국은 동서양의 먼 거리에 떨어져 있으나, 서로가 군사적. 경제적으로 상호간 정보를 교환하며,
아주 친밀하게 협조하며 잘 지내고 있다.
한편,
2002년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개최되어 한국과 터키가 대구 월드컵 축구장에서 3, 4위 전에서 맞붙게 되었다.
이날은 아주 특별한 날이 되었다.
국가 간에 벌어지는 축구대회다.
더구나 단일 경기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대회인, 축구의 제전 祭典이라 불리는
월드컵 (FIFA World Cup)에서 벌어지는 대회다.
그러면 자국 自國 내에서 벌어지는 경기인 만큼 자국 선수들을 격려하는 일방적인 응원전 應援戰을
펼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데, 이날은 아니었다.
아주 공정한 응원전이 되어 그야말로 축제의 날이 되었다.
역사의식이 뚜렷한 재야 사학자 在野史學者 분들의 노력과 홍보로, 터키와 한국이 혈맹의 형제국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젊은이들이 일방적인 자국 自國의 응원을 포기하고 공정하게 응원전을 펼쳤다.
한국 선수들이 공을 차면 그 축구공이 가는 방향으로 응원기를 흔들고, 터키 선수들이 한국 진영으로 공을 몰고
가면 그 공이 가는 방향을 향하여 응원기를 돌리면, 관중석에서도 구호에 맞추어 일사불란하게 응원의 함성을 질렀다.
이미 우승과 준우승을 놓쳐 승부의 의미가 덜한 3, 4위전이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관중들이 대형 터키 국기와
수많은 소형 터키 국기로 터키의 선수들을 응원했고, 경기 결과는 3대2로 터키가 이겼다.
승부는 뒷전이고 모두가 열심히 양 국가의 골대와 선수들을 따지지 않고, 동일하게 공평하게 같이 응원한 것이다.
역대 어느 경기에서도 볼 수 없었던, 화기애애한 축제의 광경이 연출 된 것이다.
그 응원전을 본 세계인들이 감동하였다.
국가 간에 벌어진 월드컵 경기에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즉, 승부와는 관계없는 공정하면서도 함께 즐기는
감동적인 응원광경들이 계속 펼쳐지고 있었다.
자국 自國에서 TV로 이를 지켜본 터키 국민도 동시에 연대감 連帶感을 느끼며 감동하였다.
이를 계기 契機로 대한민국을 형제국으로 혈맹국으로 다시 여기는 터키인이 상당수 늘어났다.
남 달리 애국심과 자존심이 강한 튀르키예(Türkiye) 국민도 이를 계기로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어느 정도 부드러워지고 있다.
또, 초기 돌궐과 고구려는 서로가 영토 팽창 膨脹 주의를 표명 表明하는 경쟁상대였지만, 당나라가 들어서고
이세민 황제가 북방을 공략하며 위세를 떨치자, 고구려와 돌궐 양국은 결맹을 맺고 연합군을 결성하여
당에 맞서 싸웠다.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