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의 야휘스트 텍스트를 보면,
문학적인 대비(對比;contrast)를 이룬다.
창세기 3장에 인류의 첫 사람의 원죄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되고,
4장의 카인과 아벨의 관계와 9장의
노아와 자식들의 관계속에서
인간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되는
이야기가 나오고,
11장의 바벨탑 이야기 속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파괴되는
이야기가 대비되어 나온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 중에 위의 야휘스트
텍스트만 뽑아 하나의 글로 묶었을 때,
하느님-인간(하느님과 아담)/
인간-인간(형제간)/인간-인간(부자간)/
하느님-인간(바벨탑)이라는
문학적 대비를 살펴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창세기 1장에서
11장까지를 원역사라 하는데,
인간이 사는 곳이면 누구든지 체험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카인이 곡물을 바치고 아벨은
양떼의 맏배들과 굳기름을 바치는데,
하느님은 믿음과 정성에 있어서
마음에 드는 제물로
아벨의 것을 받으신다.(히브11장 4절)
인간도 자유가 있지만
하느님도 자유가 있으시다.
둘 중에 하나를 택하시는 것은
하느님의 자유이다.
하느님의 자유는 절대 선과 절대 진리에서
나오는 자유이기 때문에 그르침이 없는
자유이다. 카인은 하느님의 이러한
자유 행사에 못마땅해져서,
자기 동생 아벨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살인을 저지른다.
야휘스트 저자는
이렇게 형제간의 관계가 깨어진 것은,
먼저 카인과 하느님과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이니,
형제간의 관계를 회복하려면,
무엇보다도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다.
노아와 세 자녀의 이야기속에서도,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벌거벗고
천막안에 누워 있었을때,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수치스런 부분을
형과 동생에게 이야기하며 놀렸고,
셈과 야펫은 차마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볼 수 없어서 겉옷을 집어 어깨에 걸치고
뒷걸음으로 들어가
아버지의 알몸을 덮어드렸다.
야휘스트 저자는 노아와 함,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깨어진 것은,
함 자신과 하느님과의 관계가
먼저 깨어졌기 때문이니,
그것을 회복해야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도
제자리로 돌아옴을 가르친다.
노아는 술에서 깨어나 이 모든 사실을 알고,
맏아들 함과 막내 야펫에게는 축복을,
둘째 아들 가나안의 조상 함에게는
저주를 내림과 동시에
형과 동생의 종이 되라며 가장의
축복권을 행사한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 형성은, 사실
인간의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전제로 한다.
생각하고 판단하는 나(주관적인 나)와,
생각과 판단의 대상이 되는 나
(객관적인 나)와의 화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온갖 허물과 죄악과 실수로 가득찬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것을
하느님 앞에 온전히 보여드릴때,
하느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어루만져 주시고 치유해 주시고,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회복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형제간의 관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가 다
자동적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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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 고-임언기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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