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 채재순 시집 “집이라는 말의 안쪽”
‘칡꽃 향기가 가득한 칠월’에 채재순 교장선생님이 다섯 번째 펴낸 그의 시집을 보내주셨다. “객지밥 뜨다가 집 쪽으로 목 길게 뺀 마음들을 모아” 시집을 묶었다고 했다.
‘집이라는 말의 안쪽에는 햇살이 있지/ 집집마다 다른 나무들 자라고/ 집 앞에 나무 이름들 붙지’ 은행나무집, 감나무집, 대추나무집도 ‘제자리에 서서 양지쪽으로 뻗어나간 시간들’, ‘나무 내력만큼 집의 역사 깊어가고/ 객지밥 뜨다가 집 쪽으로 목 길게 뺀 마음들이/ 등을 켜고 있는 해질녘’ 다른 집들도 햇살로 자란 그들만의 삶, 빨주노초파남보에 제 무늬로 그려진 이야기 궁금해하며 먼저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햇살이 있었기에 북향집, 두고 온 집, 원추리꽃집, 둥근 집, 산 아래 그 집은 ‘흔들리며 흔들리며’ ‘양지쪽으로 뻗어나간 시간들’을 믿음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바깥쪽과 안쪽은 다르다. 어디에 있느냐, 오감 육감으로 느끼는 겪음이 답은 아니기에 빛이 드는 곳 향해 나아갈 때 생명된 참 모습 보게 된다. ‘공중엔 봄이 산벚나무 높이로 지나가는 기척으로 환하다’ 나도 그의 시선 따라가며 “바라는 것들의 실상”을 보게 될 것이기에 그의 정진 응원하며 축복기도 드렸다. 시집 안쪽으로 발을 딛을 수 있도록 청함 받은 것도 당연한 것 아니기에 은혜, 더불어 누린 햇살에 감사^^
요한복음 1장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집이라는 말의 안쪽
채재순 시집
저자 채재순
출판 북인 | 2023.7.14.
페이지수 156 | 사이즈 129*211mm
책소개
1994년 『시문학』에 「아버지의 풍경화」 외 6편으로 신인상을 받은 후 한국시인협회, 설악문우회, 물소리詩낭송회, 관동문학회 회원으로 활발한 작품활동을 한 공로로 2013년 강원문학작가상을 수상했던 채재순 시인이 다섯 번째 시집 『집이라는 말의 안쪽』을 현대시세계 시인선 150번으로 출간했다.
채재순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집이라는 말의 안쪽』의 테마는 ‘집’이다. 채재순은 왜 ‘집’에 대해 길고 긴 호흡을 하고 있는지 서두에서 밝히고 있다. “내 삶의 따스한 집이 되어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며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몸을 나눠준 동생 미순과 가족에게 이 시집을 바칩니다”라고 뜨거운 보은의 마음을 얹는다.
채재순 시인은 이번 시집을 출간하기 전부터 ‘집’에 대해 말해 오고 있었다. 그러다 이번 연작시 형태로 아흔아홉 구중궁궐, 그리고 그 궁궐들에 울타리를 둘러 완공한 백 칸째 집이 『집이라는 말의 안쪽』이다. 첫 시집의 시 「마당 너른 집」에서 ‘우리의 마당은 어디에 있는 거니?’라며 이번 『집이라는 말의 안쪽』 집필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었다. 두 번째 시집에서는 「그 집」, 「집」, 「굴피집」으로 집터들을 둘러보고 있었으며, 세 번째 시집에서는 ‘집’이라는 제목은 보이지 않지만 「벼랑학교」, 「링」, 「고비사막」 등의 작품에서 공간적 의미의 ‘집’을 그려내고 있다. 네 번째 시집에서는 ‘장미성운’이 바라보이는 집을 짓기 위한 순례에 나서서는 ‘복사꽃 소금’을 한 짐 지고 와 올봄 복사꽃 만개할 때 다섯 번째 시집 『집이라는 말의 안쪽』을 탈고한다.
집은 울기 좋은 자리다. 울음은 울고 나야 멈출 수 있다. 그 울음 속에서 걸어나오는 것은 울음 우는 자신을 바라보는 또 다른 ‘나’들이다. 나와 또 무수한 내가 울음으로 만난다. 채재순의 ‘집’은 곳곳이 눈물자국이고 손수건이다. 천장에서 창문에서 벽에서 깊은 구석 곳곳에서 걸어나오는 또 다른 채재순을 울음 우는 채재순이 만난다. 또 ‘집’ 이야기를 하면서 고독과 아픔, 울음을 울고 있지만 멈춤 없이 희망을 쏘아올리기도 한다. 주변의 아픔들과 같이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이번 시집 근원적 아픔들이 자욱하다. “저녁 어스름녘 사무치는 게 있는지 한 곳을 응시하고 있는” 산비둘기는 파안대소를 꿈꾸는 채재순이다. 몸을 추스르는 일, 정든 시어머니와의 이별, 급작스럽기만 한 교단 풍경에 대한 적절한 대처 등 여러 어려움을 잘 이겨낸 채재순은 이제 파안대소로 날아오르는 비둘기다.
채재순 시인과의 문연(文緣)은 ‘시마을사람들’, ‘갈뫼’ 동인으로 최명길 시인의 사사(師事) 아래 여러 아름다운 사람들과 활동하는 모습을 「배롱나무 꽃등」(집 31), 「메밀국수」(집 54) 등의 시로 표현하고 있다. 지금 채재순 시인은 ‘물소리詩낭송회’ 동인으로 열정적으로 동인들의 시합평회를 주관하는 학구파 시인이다.
현재 고성 진부령 아래 광산초등학교 교장으로 근무 중인 채재순 시인은 부단한 교학상장을 통해 사람은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가르치며 배움에도 게으...
저자 : 채재순
원주에서 태어나 춘천교육대학과 강릉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1994년 『시문학』에 「아버지의 풍경화」 외 6편을 발표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 끝에서 시작되는 길』, 『나비, 봄 들녘을 날아가다』, 『바람의 독서』, 『복사꽃소금』이 있다. 2013년 강원문학작가상을 수상했으며, 한국시인협회, 설악문우회, 물소리詩낭송회, 관동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속초, 고성, 양양 지역에서 40여 년간 아이들을 가르쳐왔으며 현재는 고성 진부령 아랫마을에 위치한 광산초등학교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1부 북향집
매화나무 · 13
시집 · 14
바람이 오는 곳 향해 · 15
배롱나무 꽃등 · 16
망망대해만 바라보던 · 17
집이라는 말의 안쪽 · 18
집의 말 · 20
북향집 · 21
조팝나무 울타리집 · 22
출렁거리는 집 · 23
낙엽 몇 장 · 24
크나큰 허공을 가진 · 25
발자국 가득한 · 26
산벚나무 높이로 · 27
노랑이라는 집 한 칸 · 28
감자만 남았다 · 29
이곳에 들어서거든 · 30
우두커니가 된 · 31
꿀벌 · 32
마음 가녘에 새겨진 · 34
탁본, 2022 동해안 산불 · 36
2부 두고 온 집
바깥에 세워두고 · 39
너울도서관 · 40
제 말에 골몰했던 · 41
부은 발목을 만져주는 · 42
집에 당도하느라 · 43
쩔쩔 끓는 이마로 · 44
연근조림 먹는 저녁 · 45
이름 골짜기 · 46
그 마음 받아 왈칵 · 48
입김 서린 창 · 49
네가 있는 쪽을 향해 · 50
나무 그늘 어룽지는 서쪽 · 51
뜨겁게 피어나는 순간 · 52
아무리 · 53
옆구리 받힐 때마다 · 54
마음만 부쳐놓고 · 55
대한 아침 · 56
찔레꽃 필 무렵 · 57
새 발자국 · 58
3부 원추리꽃집
원추리꽃집 · 63
그늘까지 평수 늘린 · 64
구름 한 송이 머무는 · 65
노간주나무 푸르러가던 · 66
수없이 지었다 허무는 · 67
글썽이는 집 · 68
두고 온 게 있는지 · 69
기어이 · 70
오동나무집 · 71
국수물 펄펄 끓던 · 72
한 사흘 앓다가 · 73
모로 누워 잠들던 · 74
백일홍 환한 · 75
돼지 잡던 날들 · 76
집채만 한 그리움 · 77
코뿔새 집 짓듯 · 78
동쪽 끝으로 · 79
생강나무에 기댄 채 · 80
그 언덕을 오르고 나서의 일 · 81
봄꽃 피어나는데 · 82
빨랫줄 감정 · 83
산사나무인가요 · 84
4부 둥근 집
적막이 살고 있는 · 89
집에 가야 한다는 말 · 90
어디 아픈 데 없냐고 · 92
사람에 기대어 · 93
달빛 가득 · 94
메밀국수 · 95
담장에 스미는 중 · 96
여기까지 오느라 · 97
윤희순 의사 · 98
어떤 집을 만났을 때 · 100
가을 빨래 · 101
전부였던 순간들 · 102
눈가 짓무른 집 · 103
저 너머에서 마중하고 있는지 · 104
이야기하는 지도 · 105
공중, 거기가 집 · 106
봄날 · 107
불 켜놓...
해설 : 북향집에서 파안대소를 꿈꾸다/ 박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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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집이라는 말의 안쪽
- 집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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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나무집 앞에 그 나무가 서 있게 된 건
아주 오래 전부터라고 들었지
마을 어디서나 다 보일 만큼 자라기까지
제자리에 서서 양지쪽으로 뻗어나간 시간들
제 안의 물소리 잦아들 무렵이면
나무 꼭대기부터 물들기 시작하는 이파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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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말의 안쪽에는 햇살이 있지
집집마다 다른 나무들 자라고
집 앞에 나무 이름들 붙지
옆집은 감나무집
반질반질 닳은 마루,
맛있게 익어가는 장독 있는 뒷집은
대추나무집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랑 같은 상사화
뒤란에 피어나는 외딴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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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내력만큼 집의 역사 깊어가고
객지밥 뜨다가 집 쪽으로 목 길게 뺀 마음들이
등을 켜고 있는 해질녘
다음엔 어떤 나무가 서 있는 집에 태어날까
이런 생각으로 저물어가는 늦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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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시]
북향집
- 집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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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은 북향집입니다
영하의 겨울 어느 날 떠올리며
온몸에 서리 내려앉은 듯 시려올 테지만
햇살 플러그를 꽂고 싶어지는 날
당신 얼굴이 문득 생각나
한낮에도 등을 켜고
설렘을 주소로 적은 후
여기에 시를 쓰지요
추위 가득 들어찬 그 집에선
서로를 안으로 들여놓으며
새로 생긴 별들과 가스구름이 함께 만든
깃털 구름 모양 장미성운 얘길 하다가
작은 창으로 뒤늦게 간신히 깃든 빛줄기를
시 행간에 담아 낭독하고
구름 한 잎, 한 잎 정독하는 배롱나무
정원 가득 홍단풍이 머금은 온기라든가
마음까지 온전히 스며드는 저녁노을을
필사하는 집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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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필 무렵
- 집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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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집사람이라
처음 말하던 때가 생각나
벌써 며칠째
그 시절 번지수를 기억해내려고 안간힘인데
그러지 않으면 살 수 없을 것 같은 날들
요즘 부쩍 꽃덤불 주위를 서성이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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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튼 발 따스한 물에 씻고
나란히 한잠 자고 싶은
찔레꽃 필 무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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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아내된 지 얼마나 되었나
얼굴에 번져오던 그늘
찔레순 먹여주며 걸어온 길
때론 가시에 찔려 눈물 떨굴 때
가시 빼내주며 한 봄밤 약속으로
겨우 안해가 되어가는 중
웃는 모습까지 닮아가며
서로의 집이 되어가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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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