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한상원목사
PW : 믿음 BIW : 거룩하게 살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야"
어느 신앙인의 고백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자만심을 없애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그것은 내가 없앨 것이 아니라 네가 포기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불구가 된 내 아들을 고쳐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몸은 잠시일 뿐이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인내를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인내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얻는 것이지.”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행복을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나는 복을 줄 수는 있지만 행복을 느끼는 것은 너에게 달렸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고통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고난은 너를 세상의 염려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너를 나와 더 가깝게 만든단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내 영혼의 성장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아니야, 너는 스스로 자라야 해. 나는 네가 열매를 많이 맺도록 너에게서 쓸데없는 것들을 잘라 낼 뿐이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나를 사랑하십니까?’라고 물었는데, 하나님은 “그렇단다. 너를 위해 내 외 아들을 죽게 할 만큼 너를 사랑한단다. 그리고 네가 그를 믿어서 언젠가 하늘나라에서 살게 될 것이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만큼 내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하나님은 “아하, 네가 이제야 제정신이 들었구나.”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원하는 것에 정반대로 응답해 주실 때가 많습니다.
그것은 더욱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영성을 성장시켜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뜻과 의지와 계획과 마음을 따라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감동주시는 은혜를 따라서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P4.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삼위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어떤 자세로, 어떤 가치관과 인생관과 세계관과 국가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질문하면서 살아야 한다.
자기 자신에게 ‘왜 사는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멈추어 버리면 더 이상 살아야 할 의미를 잃어버리게 된다.
사도바울은 로마서 12:1-2절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적어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으로 살아가려는 신앙인이라면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원리나 사상이나 전통이나 문화를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법, 하늘의 신령한 법, 예수그리스도께서 살아가셨던 삶의 흔적과 말씀을 따라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다.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2:15에서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거룩한 신앙인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언약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어떻게 살아가기를 원하고 계실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답게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일까?
D4
① 군대 진영도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9-1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적군을 치러 출진할 때에 모든 악한 일을 스스로 삼갈지니,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영 밖으로 나가고 진영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 질 때에 목욕하고 해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요, 네 진영 밖에 변소를 마련하고 그리로 나가되, 네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볼 때에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려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장소 불문하고 정결하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부정한 상태를 용납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고고고고고대시대의 군대 진영은 남자들의 세계이다.
여자들은 군대 진영에 들어갈 수 없다.
남자들의 세계에서 다양한 생리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얼마든지 몽설도 일어날 수 있고, 대소변의 현상도 일어난다.
남자들의 세계이지만, 몽설로 인해서 부정하게 될 수 있고, 대소변으로 인하여 부정하게 될 수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부정한 상태는 인정받을 수 없다.
하나님 앞에서는 정결한 상태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남자들의 세계, 군대 진영에서도 반드시 정결한 상태만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온전할 수 있는 것이다.
몽설은 남자들이 잠을 자는 중에 정액을 사정하는 행위이다.
정액을 사정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계속 진행시켜 나가는 아주 중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정액을 발산하는 것 자체를 부정하다고 정의 내리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몽설한 자는 급히 진을 빠져나가서 하루해가 지나면 물로 씻고 들어오라고 하신다.
물은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씻어야만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라야 정결하게 되는 것이다.
대소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오늘날처럼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포장하지도 않았고, 화장실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맨 땅 위에 천막을 쳐서 살던 시절이다.
소변은 땅이 그 소변을 빨아들이고 흡수해 버리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대변인 경우에는 땅위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흔적이 남아 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다.
보이기 때문에 대변을 놓은 후에 흙으로 덮어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보이지 않도록 흙으로 덮어야 진영을 걸어 다니시는 하나님께서 그 대변을 보지 않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하나님께서 그 진영을 걸어 다니고, 전쟁터를 다니시면서 적군을 거룩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넘겨주셔야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만약에 대변을 흙으로 덮지 않아서 보이게 되면 그 자체가 부정이고, 악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진영과 전쟁터에서 계시면서 거닐 수 없게 되고, 하나님께서 그 전쟁터에 계시지 않으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절한 패배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9절에서 군대 진영에 모든 악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고 말씀하신다.
모든 악한 일들 중에 몽설과 대변도 포함된다는 말씀이다.
모든 악한 일들이 군대 진영에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14절에서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구원하시고 적군을 네게 넘기시려고 네 진영 중에 행하심이라. 그러므로 네 진영을 거룩히 하라. 그리하면 네게서 불결한 것을 보시지 않으므로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군대 진영에 임재하셔서 구원하시고 적군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에게 넘겨주기 위해서라고 한다.
② 하찮은 종에게도 인격을 인정해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5-16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종이 그의 주인을 피하여 네게로 도망하거든 너는 그의 주인에게 돌려주지 말고, 그가 네 성읍 중에서 원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너와 함께 네 가운데에 거주하게 하고 그를 압제하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보편적으로 종이란 신분은 인격이 존재하지 않는다.
종은 주인의 예속물에 불과하다.
종이란 주인에게 딸려 있는 물건이나 동물의 하나로 인식하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주종관계는 서로 잘 만날 때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주인이 종을 잘 만나지 못해도 고통스럽고, 종이 주인을 잘 만나지 못해도 고통스러운 것이다.
종이 주인을 잘 만나면 너무나 좋은 일이겠지만, 종이 주인을 골라서 만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주인이 종을 골라서 종으로 사용할 수 있지만, 종이 주인을 골라서 그 주인의 종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아주 괴팍하고 고약스런 주인을 만난 종이 너무나 고달파서 도망가는 종들도 더러 있다.
어떤 종이 주인의 핍박과 압제를 견딜 수 없어서 도망쳐 나왔는데, 다른 사람에게 간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로 가지 않으면 그 종은 굶어 죽을 수밖에 없다.
살고 싶어서 도망쳐 나왔는데 굶어 죽으면 안 되는 것이다.
굶어 죽지 않으려면 또 다른 주인을 찾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찾아온 종이 있다면 그 종을 본 주인에게도 돌려보내지 말고 종이 살아갈 수 있는 삶의 터전을 마련해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본래 인격이 인정받지 못하는 종일지라도 그에게 최소한의 인격을 인정해 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종이 그 주인의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고 해서 종의 신분이 바뀌어서 자유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종이라는 신분은 바뀌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도 똑같은 인격체임을 보장해 줘야 한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이다.
종은 자신의 인격이 인정받게 되면 그야말로 목숨 바쳐 충성한다.
종이나 일꾼은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는 만큼 주인에게 충성하는 것이다.
③ 추잡한 종교 행위를 하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하나님.
17-18절에서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남창이 있지 못할지니, 창기가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어떤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여자는 창기, 남자는 남창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창기와 남창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면서 “몸을 성의 대상으로 팔아서 먹고사는 여자, 남자”라는 성적인 행위에 초점을 맞추려는 경우가 더러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미보다는 좀 더 중요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가나안의 종교는 농업신으로 알려져 있는 남신인 바알과 여신인 아세라가 집요한 성행위에 의해서 농사에 필요한 기후를 조정해 주어야 농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바알의 신당과 아세라의 신당에서 바알을 섬기는 남자 제사장들과 아세라를 섬기는 여자 제사장이 서로 성교하면서 성의 쾌락을 누리면 농사에 필요한 바람과 비와 구름과 같은 기후들을 조정해 주어서 농사가 잘된다고 믿는 것이다.
이런 관계에서 아세라신의 여인들이 창기가 되고, 바알신의 남자들이 남창이 되는 것이다.
곧 창기와 남창은 이방신들을 섬기는 우상숭배의 전형적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기 때문에 이들이 우상숭배하면서 얻어진 것으로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와서 드리는 헌물을 성막이나 성전에서 받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헌물은 우상숭배의 부산물이기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가증하고 추잡하고 패역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은 거룩한 하나님만을 믿고 섬기며,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향하여 제사를 올려드리고 예배드리는 백성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사람은 오직 죽으나 사나 여호와 하나님만을 위해서 헌신하고 섬기고 경배하고 예배하면서 살아야 할 거룩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음으로 섬기는 신앙의 사람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야 한다.
④ 동족을 배려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19-20절에서 “네가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지니 곧 돈의 이자, 식물의 이자, 이자를 낼 만한 모든 것의 이자를 받지 말 것이라. 타국인에게 네가 꾸어주면 이자를 받아도 되거니와 네 형제에게 꾸어주거든 이자를 받지 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들어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형제는 동족을 의미한다.
같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가리킨다.
씨족사회, 대가족제도, 민족공동체로 살아가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그 당시에 화폐 개념으로 통용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빌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같은 동족, 씨족, 대가족에게는 이자라는 이득을 취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동족, 민족공동체가 아니라 타국인, 이방인에게는 이자를 비롯하여 이득을 취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다 받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 백성 중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 백성에게는 배려하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이방인, 타국인은 배려의 대상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과 타국인을 철저하게 구별하시는 분이다.
가능한 범위 안에서 최대한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들에게 배려하고 긍휼과 자비를 베풀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답게 살기를 원하신다.
⑤ 서원했다면 반드시 이행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21-23절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이라. 네가 서원하지 아니하였으면 무죄하리라. 그러나 네 입으로 말한 것은 그대로 실행하도록 유의하라. 무릇 자원한 예물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 네가 서원하여 입으로 언약한 대로 행할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절대로 서원하면서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내세우지 않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살면서 서원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그럼에도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은 무언가 독특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내세우기를 원하면, 그래서 서원했다면 반드시 그 서원을 이행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한 말에 대하여 어떤 경우에도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야 한다는 말씀이다.
누군가에게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독특하고 특별한 사람이라고 내세우기만 하고, 실제로 자신이 서원한 것을 지키지 않았다면 그것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라고 말씀하신다.
자신이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무언가 특별하고 독특한 사람이라고 자기 자신을 내세웠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말만 앞세우고 행함이 뒤따라오지 않는다면 그것이 곧 죄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죄를 범하기를 원하지 않는 분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누구라도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고 온전하고 정결한 하나님의 언약백성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⑥ 절도(竊盜)는 하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
24-25절에서 “네 이웃의 포도원에 들어갈 때에는 마음대로 그 포도를 배불리 먹어도 되느니라. 그러나 그릇에 담지는 말 것이요. 네 이웃의 곡식밭에 들어갈 때에는 네가 손으로 그 이삭을 따도 되느니라. 그러나 네 이웃의 곡식밭에 낫을 대지는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땅, 중동지역에는 보리, 밀, 귀리, 무화과, 포도원, 대추야자, 올리브, 석류 등등 많은 농작물이 자라는 지역이다.
지나가던 나그네가 너무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은데, 밭에 잘 익은 포도들도 있고, 무화과도 있고, 보리나 밀도 있다면 들어가서 포도도 따 먹고, 무화과도 따 먹고, 보리나 밀도 따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사하여 죽는 것보다는 아무 것이라도 먹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너무 배가 고파서 포도를 비롯하여 여러 과일 열매를 따 먹고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말씀하신다.
보리나 밀을 따서 손으로 비벼 먹으면서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으로 만족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좀 더 욕심이 생겨서 그릇에 담아간다면 그것은 남의 소중한 재산을 탐내는 것이요 흠치는 것이요 절도하는 것이다.
그릇에 담아서 가져가는 것이나 낫을 대는 행위는 절도이다.
포도를 손으로 몇 개 따먹는 것이나 보리나 밀을 손으로 따서 비벼 먹는 것은 너무 배가 고파서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베푸는 은혜와 긍휼이지만, 그 은혜와 긍휼의 범주를 벗어나면 남이 애쓰게 농사한 농산물을 약탈하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약탈해 가면 본 주인의 가족들은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없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제10계명에서 “네 이웃의 것을 탐내지 말라.”라고 가르치신다.
그런데 욕심, 탐심, 탐욕으로 인하여 낫을 내거나 그릇에 담아간다면 하나님 앞에서 제10계명을 범하는 죄악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 “세 끼 굶으면 군자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사흘(3일) 굶어 도둑질 아니 할 놈 없다.”라는 말도 있다.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양반.”이라는 말도 있다.
제아무리 점잖은 양반이라도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것이다.
지난 과거에는 흔히 ‘서리한다.’라는 문화가 있었던 때가 있었다.
오늘날 같으면 말이 안 되는 상황이지만, 가장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시절에는 종종 있었던 일들 중에 하나이다.
학교 다녀오면서 너무 배가 고파서 주인 몰래 길가에 있는 밭에 들어가서 고구마도 캐 먹고, 무도 뽑아먹고, 수박과 참외도 따 먹고, 감귤도 하나씩 따 먹었던 서리문화가 있었다.
너무 배가 고파서 살던 때에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최소한으로 이웃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이렇게 서리했다면 곧바로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절도범이 될 수 있다.
하나님은 언제나 거룩하고 온전하고 정결하신 분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은 장소를 불문하고 거룩하고 정결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하나님 앞에서 정결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웃들, 형제들을 배려하고 조금씩이라도 베풀고 나누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분이다.
L4 & B4
시대와 문화와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시대가 바뀌고 문화가 바뀌고 상황이 바뀌었으면 법과 제도들과 규례들도 자연스럽게 변화할 수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자유는 법과 규례와 질서를 잘 지킬 때 자유함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법과 규례와 질서를 파괴했을 때는 자유함을 누릴 수 없는 것이다.
법과 규례와 질서를 파괴하면 방종이 되는 것이고, 죄가 된다.
법과 규례와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신앙으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법과 규례와 규칙과 절차를 잘 지킬 수 있어야 한다.
법과 규례와 규칙과 절차를 잘 지키지 않으면 질서가 세워질 수 없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법과 규례와 규칙의 테두리 안에서 질서를 잘 지키면서 신앙인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서로 으르렁거리면서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하는 짐승들처럼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들의 의견이나 주장이나 사상에 맞추어 주지 않으면 죽일 듯이 달려드는 하이에나처럼 살아간다면 야생 맹수나 다름없지 어찌 인간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동성애를 인정하고 장려하는 법을 만들려고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사회공산주의, 한민족의 원흉인 김일성 3부자를 추앙하는 주체사상을 위해서 투신하는 좌파들이 될 수 있겠는가?
저는 적어도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요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동성애도, 공산 사회주의 사상도, 주체사상도 따라갈 수 없다고 확신한다.
군대 진영에서 거룩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심지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생리현상까지도 부정하게 여기시는 정결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에게서 동성애도, 공산사회주의도, 주체사상도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름께나 있다는 정치인들을 보면 정말 한심스럽기 한이 없다.
어쩌면 그들을 정치인으로 뽑아준 이들도 똑같지 않을까 싶다.
초록은 동색이라는 말이 있듯이 똑같은 사람들이니까 그런 류의 사람들에게 표를 몰아주어서 정치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식인이요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사상이나 이념도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는 이들로 인해서 국민들만 힘들고 고달프게 살아가는 현실이다.
이제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율례와 법도와 규례와 규칙과 말씀을 따라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믿는 신앙인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여호와 하나님을 중심으로, 믿음으로, 은혜로 살아가는 신앙인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하나님 말씀 따라 살아나기 http://cafe.daum.net/GRACEOF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