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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및 관련 단어 소개 2≫
◆예수 그리스도◆
1.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누가 말하고 있는가 : 그리스도교의 창립자로 통하는 나자렛 출신 예수란 분이 전통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린다. 예수란 단어는 "하느님이 살리신다"는 뜻인데, 유태교 문화권에서 흔히 쓰이던 사람의 본명(本名)이며, 그리스도란 그리스말은 히브리어 ‘마샤’(메시아)를 번역한 것인데 기름 부음을 받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인물을 가리킨다. 구약성서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탓으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기 어렵게 된 까닭에 한국에서는 예수를 단순히 ‘예수님’이라고 부르는 것이 관례가 되었지만, 예수의 정체와 역할을 드러내는 호칭(하느님의 아들, 주님, 구세주 등)을 사용하는 교회의 전통은 예수가 단지 예수님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주장해 왔다. 다른 종교의 창설자(모세, 마호멧, 석가모니 등)와 달리, 그리스도교에 있어서 예수는 그분이 계시해 주신 하느님 아버지 못지않게 신앙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예수냐 예수 그리스도냐 하는 문제는, 예수란 인물이 자기 자신에 대하여 인간의 신앙적 결단과 증언을 요구한다고 하는 사실을 처음부터 보여 주고 있다. 따라서 누구나 이 문제에 대한 스스로의 입장을 밝히지 않는 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말한다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환기시켜 둘 필요를 느낀다.
신앙인으로서의 입장을 떳떳하게 밝혀 놓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인데 그들은 예수를 인류의 구세주이며 하느님의 참된 아들로 고백하고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하느님의 생명으로 죽음을 이기고 인간으로서도 살아 계시다는 부활 신비를 통해서, 그분의 지상생활을 이해하고 소개하는 복음서와 신약성서의 다른 저서를 바탕으로 해서, 그들의 각 문화권의 요구에 따라, 인류의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세상에 계실 때 아버지라고 부르시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명시해야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소개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려면 그들이 지상 예수께로 돌아가는 독특한 방법을 고려해야 하고, 삼위일체 교리로 정리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사이에 기본 부자(父子)관계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그리스도교가 동양문화권에 진출하자, 그리스도 교인들은 우선적으로 하느님을 명명(命名)해야 하였다. 그들은 전통사상[天사상]을 무시하지 않고 잡신[천지신명]들과 혼동하는 일도 없이 하느님의 초월성을 살리기 위하여, 예수께서 아버지로 모시던 하느님을 천주(天主)라고 불렀다. 천주님이라고 불린 하느님은 철학가들의 신과 민간 종교인들의 이신(理神)과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을 명시했어야 했는데, 이 과정에서 이상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위치가 희미해졌다. 그래서 그분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 역할을 맡은 뛰어난 현인 내지, 불쌍한 중생을 위하여 고생하는 선각자 정도로 생각될 위험이 있다. 오늘날 한국 천주교회는 선배교회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예수와의 관계를 밝힐 과제를 안고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거니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말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예수의 주장과 정체가 신인(神人)관계를 기본적으로 새롭게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인 이외에도 수많은 현대인들이 예수에 대해서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순수한 종교의 범위를 떠나서도 나자렛 예수처럼 인류사에 영향을 끼친 사람이 드물 것 같은데,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부당하게 독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의 소리가 들린다. 사실상 오래 전부터 예수란 인물이 많은 사색가나 철학가들을 매료시켜 왔고, 하느님과 교회를 거부하면서도 예수에 대한 존경과 공경을 표한 사회개혁가들이 많았다. 심지어는 막다른 길에 빠진 공산주의 철학가들도 예수께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예수의 진면목을 흐리게 하고 자기네들의 세속적인 싸움터에 예수 그리스도를 끌어들이려는 속셈은 고발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인의 주장대로 예수께서 참으로 인간이시고 우리 역사 속에 인류의 구원을 마련하시고 온갖 악에서 인류를 해방시켜 주시는 인물이라면 신앙 말고도 예수께 접근하는 다른 길, 즉 역사적인 방법이 당연히 트여야 한다는 견해도 검토해 볼만하다.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 관한 역사학적인 연구방법에 대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이유인즉, 성서의 독특한 성격을 배려하지 않고 부활교리를 제외하고 즉음으로 끝나는 지상생활만 연구한다면, 예수의 신비를 제거하고 예수의 주장과 활동을 변질시킬 수 있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9세기에 역사의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대립시켜 놓고, 신자들이 모시는 그리스도가 초대 교회의 조작품이라느니 바울로 사도가 그리스 신화를 본떠서 예수를 신격화했다느니 하는 터무니없는 비방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헌 분석 방법을 정리한 역사학자들의 요구를 거절할 이유는 없다. 그리스도인들 이 예수에 관한 자료[복음서]를 거의 다 신앙인으로서 전수했다 하더라도 예수는 분명히 가상인물이 아니고 역사적인 인물이기 때문이다. 성실한 사학가들은 19세기에 나돌던 허황한 가설들은 일축하고 예수 시대의 환경을 재발견하면서 예수의 설교, 주장, 활동의 독특함을 잘 드러냈다는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
19세기 작가들의 기분에 따라 무기력한 몽상가로, 혹은 예리한 사회개혁자로 통하던 예수는 하느님 나라에 전념하고 죽음을 각오하는 자로 나타났다. 다시 말해 종교사회학적으로 간단하게 풀이해 낼 수 없는 신비로운 그 인물의 언행을 신중히 검토할 필요가 뚜렷하게 느껴졌다. 전세기의 작가들이 남긴 문제를 떠나서 예수의 역사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도 있다. 예수의 인간성을 규명하던 전통적인 인간학이 무너지자 우리 구원에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으로 전제되는 인간성을 되찾는 길은 역사뿐이다. 예수가 정말 역사적인 인물이라면, 즉 우리 인간사회 속에서 부대끼고 죽음까지 당한 인물이라면 그분일 참된 인간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마지막으로 역사와 신앙이 서로 상반되기는커녕 역사의 한계성과 신앙의 특징, 즉 역사와 신앙의 차이점과 연관성을 제대로 직시하면 예수에 대한 적절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것은 추상적인 진리의 체계가 아니라 독특한 의미를 띠는 역사적인 사건이기 때문이다.
2. 역사가 예수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 자유주의 선입관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렀던 성서의 문학비판을 통해서 예수의 역사성을 뒤흔들었던 19세기의 역사주의를 벗어나서 현대의 성서해석학자들은 사학적인 방법으로 예수의 진면목을 재발견하였다. 역사가 예수의 궁극적 비밀을 드러내보여 주지는 못하고, 모든 삶을 예수께 내거는 신앙생활의 동기를 제공하지도 못하며, 하물며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쪽으로 이끄는 확증을 제시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것이 예수를 이해하게 하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음은 사실이다. 역사의 한계성과 신앙의 특징을 제대로 파악하고 신앙의 불가피성을 증명하려는 호교론을 피하며 전근대적 방어태세를 버리면 역사는 그 나름대로 대단히 귀중한 도움을 준다.
예수에 관한 문헌을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남긴 기록들이며,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 밖에서 당대 일반 사학가들이 남긴 글들이다. 후자부터 살펴보면, 유태인 사학가 요셉 플라비우스는 로마제국의 ‘판무관’ 본시오 빌라도시대에 낳은 제자를 가진 현인으로 보이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증언[유태교 고대사기 18, 63-64]을 남겼고, 로마제국의 사학가들은 그리스도란 이름으로 알려진 인물이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에 본시오 빌라도에 의해 처형되었다는 기록을 남겼다[타치투스, 연력 15.77.3, 수에도니우스,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생애 25, 4]. 소(小)프리니우스가 110년쯤 비티니아 총독으로 지낼 때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본시오 빌라도 치하에 처형된 그리스도를 하느님처럼 신봉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초대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남긴 저서들은 복음서들(마르코 : 70년, 마태오와 루가 : 80년, 요한 : 90년 이후)과 바울로의 서간(50∼60년)과 다른 작가의 서간으로 형성된 우리의 신약성서를 말한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면서 초기 공동체들은 지상에 계시던 인간이신 예수에 대한 정보를 전하는 복음서를 작성하였다. 복음서를 구성하는 여러 전승 중에서 가장 오래된 전승이 사실과 가장 가까운 전승이라는 문학비판의 단순한 주장을 떠나서 보다 확실한 사학적인 원칙에 따라 현대 사학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예수의 모습을 추궁할 수 있다. 예수에 관한 사학적인 연구방법의 원칙이 이른바 ‘차이의 원칙’이다. 초대 공동체가 자기 관심사에 따라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조작하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 있으나 초기 공동체가 도저히 조작할 수 없는 장면과 발언들은 이를 예수의 지상시대에까지 소급시킬 수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당시 유태교의 배경으로 보아서, 당대 사상과 맞지 않는 부분도 역시 배척할 수 없는 증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신약성서가 예수의 일생에 일어난 사건들에 관해서 제공하는 자료들을 분석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뜻 깊은 사실을 발견한다. 즉 그분의 죽음을 기점(基點)으로 하여,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 공생활을 거쳐 그분의 탄생에로 소급해 올라갈수록, 역사적 확실성의 정도가 점점 줄어든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께서 돌아가신 날짜에 관해서는 우리가 거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 요한 복음서를 바탕으로 하여 연대기적 계산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서기 30년 4월 7일 금요일에 돌아가셨다고 할 수 있다. 죽음과 관련하여 최후만찬의 날짜에 있어서는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서 사이에 차이가 있는데, 전자에 따르면 예수의 최후만찬이 유태교 과월제 때에 주행사로 여겼던 식사 도중에 이루어졌던 것 같고, 반면에 요한에 따르면 예수께서 과월절 전날에 돌아가신 것으로 되어 있어서(요한 19:17-36) 최후만찬은 물론 그 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공생활에 대하여는 4개 복음서의 증언으로 보아서 서기 27∼28년에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셨다는 결론이 타당하다. 그러나 활동경위에 있어서는 복음서의 기록들을 조화시킬 수 없다. 공관복음서에 따라 예수께서 갈릴레아에서 대중을 상대로 활동하시다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제자들의 양성에 전념하시고 마지막으로 겨우 일주일 사이에 성도에 입성하시기도 하고 성전을 정화하시기도 하며 유태교의 장상과 잦은 충돌 끝에 잡히시어 처형되셨다는 복음서의 순서가 문학적 기법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예수께서 여러 차례에 걸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고 마르코 복음서에 기록된 것과는 달리 예수의 여정이 무척이나 복잡하였다. 예수의 탄생 연도에 대하여는 복음서의 기록과 일반 역사가 전해주는 자료들을 맞출 수가 없다.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4년에 사망했다는 사실과 마태오 2:19과 루가 3:1에 언급된 퀴리니우스 시리아 총독이 실시한 인구조사(기원전 7년)로 미루어 보아 서른 살 가량 되어(루가 3:23)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의 탄생 연도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복음에서 장소와 시기에 관한 언급이 많은 데도 불구하고 예수의 전기를 일일이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을 해석할 필요가 있다. 복음사가들은 예수의 일생이 특정한 장소와 일정한 사회 속에서 이루어졌음이 틀림없으나 평범한 공간과 시간을 능가하는 차원에서 예수의 비밀을 암시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 듯하다.
예수의 죽음 이후부터 예수를 주님으로 모시는 공동체들은 지상에 계시던 예수에 대한 자료를 전하려고 애썼던 것이 사실인데, 그 자료를 사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 보면 예수의 인물 윤곽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문헌에 의하면 공생활을 시작하신 무렵에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그 당시에 퍼져 있던 종교단체(바리사이파, 사두가이파, 엣세파) 중 특정한 사조인 세례운동에 참여하셨다는 사실은 예수께서 당연히 예언자의 모습을 취하시고 종말론적 사상에 역점을 두셨다는 의미이다. 세례운동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 즉 심판과 구원의 시기를 선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례운동의 배경으로 미루어 보아 이런 상황 속에 나서신 예수께서는 구원을 얻기 위해 필수적인 방법으로 여겨졌던 유태교제도의 주축을 이루는 성전예식과 율법의 엄수문제와 부딪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의 기본제도에 대하여 융통성 있는 태도를 취하셨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에 관한 기본사상을 받아들이고 회당에 다니시면서도 전통적인 규칙과 거리를 두고 유태교에 대하여 굽힐 줄 모르는 자유를 보이셨다. 유혈제사를 올리던 장소의 의미를 새롭게 하시고(마르 11:15-19) 성전의 파괴를 예고함으로써 하느님을 만나는 새 장소를 마련할 의사를 표시하셨다. 안식일에 관한 규칙을 상대화시켰고(마르 2:23) 율법을 재해석 하면서도 새 가르침을 선포하셨다(마르 1:27). 구원의 유일한 방법으로 통하던 예식과 율법에 도전함으로써 예수께서 새로운 구원제도의 선포자와 창설자로 나타나셨다. 예언자라고 자처하지 않으면서도 실제로는 예언자로서 행동하시던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임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폭력을 배제하였는데, 이는 권세를 떨치며 하느님 나라와 부합하는 이스라엘의 왕국을 수립하리라는 다윗의 후손인 메시아사상에 변화를 초래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당시 대중들의 기대와 종교계의 지배적인 사상에 비해 예수께서는 이색적인 인물로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새 시대의 예언자로 나서신 예수께서는 자기 삶속에서 하느님 나라에 해당하는 표징을 보이려고 계획적으로 행동하셨다. 악령을 쫓아내는 구마행위와 치유활동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선포자 뿐 아니라 그 나라를 이룩해 주시고 실현시켜 주시는 분으로 나타나려고 하셨다.
역사학적인 입장에서 무시할 수 없는 여러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 보면 첫째로 구원문제와 관련하여 예수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예식제도와 율법에 도전함으로써 예수께서는 이미 지나간 옛 제도를 거부하였고 죄의 용서를 베풀고 하느님 나라의 도래를 선포함으로써 다가오는 구원, 즉 완성에로 발전하는 구원을 향하게 하셨다. 그러나 현재에 있어서 구원이란 새 인간관계는 지금 당장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활동하는 예수께서 당신 가르침과 행동, 제자들에게 즉각적이고 전폭적인 추종을 요구하시는 태도를 통해서 지금 바로 이 순간에 구원을 실현한다는 인상을 주셨다. 둘째로 예수의 언행을 보면 예수의 정체문제가 제기되게 마련이다. 예수는 누구이길래 이런 권위를 발휘할 수 있었을까? 당대인들이 예수를 세말의 예언자로 보고 있었지만 이미 본 바와 같이 너무 막연한 견해였다. 구약성서에 나오는 여러 호칭(메시아, 다윗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들을 거부하거나 소극적으로 묵인하는 예수께서는 당대인들이 전통적인 사상과 통념을 버리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시려는 듯한 인상을 주셨다. 사람의 아들이란 신비로운 명칭을 이용함으로써 예수께서는 자기 자신을 하느님 나라의 절대적인 봉사자와 담당자로 암시하려 하셨다. 셋째로 예수께서는 세월이 갈수록 유태교의 장상과 빈번한 충돌로 인하여 죽음을 의식하고 각오하셨다는 사실을 빠뜨릴 수 없다. 권위를 발휘하고 신인관계를 새롭게 한다는 주장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 활동의 초기부터 죽음의 위협을 받다가 마침내는 순교하던 예언자들의 운명을 당하리라고 의식하고 계셨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당신 권위를 절대화한 일이 없었고 오히려 스스로 아버지라고 부르던 하느님께 얼마나 철저히 의존해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
요약해서 말하면 구원에 있어서 엄청난 권위를 주장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하느님과 친밀한 관계를 주장하신 예수의 모습은 아직도 많은 질문을 야기시킨다.
3. 믿는 이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한다 : 굳어진 사회에 도전하는 용기를 칭찬하거나 신인관계를 배경으로 하여 인생문제를 직시하는 사색에 공감하는 태도는 그리 어렵지 않으나, 문헌들이 ‘단순한 예수’를 능가하는 예수를 소개한다 해도 예수를 인류의 구세주이며 하느님의 참된 아들로 고백하는 차원은 다르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것은, 하느님이 우리 역사 속에 온 인류를 위하여 인간으로서 살았던 그 예수를 통해서 개입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다. 예수의 주장은 유태교를 위협하는 공격으로 이해될 수 있고, 신자들의 고백은 신인관계에 입각하는 대인 관계를 요구함으로써 정치를 상대화시키는 도전으로, 전통이나 어떤 철학에 따르는 인간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모험으로 보인다. 하느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시는 신이 아니고 인간의 존엄성을 상상 외로 들어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주장과 신자들의 고백이 위험하고도 매력 있는 공상으로 타락되지 않기 위하여서는 끔찍한 장애물을 극복해야 한다. 이는 곧 예수 죽음의 장벽이다. 다시 말해서 사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앞지르고 있다면, 예수란 인물이 모든 이념의 기수가 된다면 그분의 신분과 역할이 무의미하게 되고 만다. 그렇다면 지상의 예수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넘어가는 과정은 어떻게 해서 이루어졌는가? 과거의 예수와 현재의 그리스도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를 고백하는 신앙이다. 제자들은 지상에서 활동하시는 예수에 대하여 신뢰심을 가졌고, 그분을 따르기로 결정했으며, 그분을 위하여 투신(投身)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승의 수치스런 죽음과 함께, 그들이 삶을 내걸고 생명을 바칠 만한 근거도 같이 사라졌다. 유태교 사회에서 하느님의 모독자로 처형된 자가 구원의 길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리운 인물에 집착한 나머지 예수의 사상을 퍼뜨렸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왜 사상보다 그분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유일한 구세주로 받들었을까? 선의와 신뢰로 시작된 애착이 순수한 신앙으로, 즉 그분의 신비를 알아 모시는 유일한 접근 수단으로 변했던 것일까? 그것은 예수께서 죽음을 당하신 뒤에 그들이 예수를 살아 계신 분으로 체험했기 때문이다. 예수 부활의 표징 정도밖에 못 되는 발현에서 뿐만 아니라, 온 생활 속에서 예수의 현존을 느꼈다. 자기들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 예수를 살아 계신 인격체로 체험했는데, 이는 그들의 새 생활이 지상 예수 곁에서 느끼고 체험했던 것과 부합했다는 뜻이다. 그들은 생활 속에 바로 그 예수를 체험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죽음의 포로가 아니라 부활하신 몸으로 계신다고 믿었다. 현존하시는 예수께서 제자들로 하여금 그 전에 쌓아두었던 경험에로 되돌아가게 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예수께 대한 기억을 악몽처럼 깨끗이 잊어 버렸을 것이다. 예수의 주장과 지상생활을 무효화시키는 죽음을 극복하는 이변이 없는 한, 그들은 단순한 추억 속에 예수께로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시어 새 형태로라도 인간으로서 살아 계신다고 고백하는 제자들은 예수의 정체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하느님이 이 세상에 임하시어 인간들에게 죄의 용서와 새 생명을 베푸신다는 복음을 골자로 하는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하느님의 현존에 해당하는 표징(치유 · 구마 · 죄의 용서)을 보여 주신 예수께서, 옛 예언자와 달리 선포가 뿐만 아니라 구원의 첫 수혜자(受惠者)로 나타나셨다. 죄의 결과인 죽음에서 구제를 받으신 예수께서는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3:16에 따라 ‘의화’되셨다. 죄 있는 자가 죄에서 벗어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이 예수의 의로움을 드러내 보이셨고 죄의 결과를 취소하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하느님은 인간인 예수를 위하여 구원의 능력을 결정적으로 행사하셨다. 그리고 끝나기도 전에, 즉 최후 심판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런 혜택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인류의 구세주로 드러나셨다. 시간 속에, 바로 이 세상에 살아야 할 우리들에게 하느님이 찾아 주시는 길을 터 주신 예수께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하시는 유일한 중개자(仲介者)로 나타나셨다. 지상에 계시던 예수의 언행에 입각하여 다른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한층 더 나아가서 구원이 있다면 오직 하느님이 마련하신 구원밖에 없다. 그렇다면 예수를 위하여, 예수를 통하여 이루어진 이 구원사건을 보고 예수와 하느님의 관계를 재검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상에서 하느님을 ‘아빠’로 부르시던 그 예수를 당연히 하느님의 친아들이라고 고백해야 했다. 영원토록 하느님으로 계시고 시간 속에 인간으로 계시는 변함없는 그 아들이 우리 구세주이며 하느님의 계시자이시다. 아드님은 인간이 되신 과정과 죽음에서 부활하신 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도 성신의 역할을 드러내 보이셨다(로마 8:9-11). 하느님과 아들 사이에 맺어진 부자관계, 그리고 아들과 그 인간 예수의 동일성을 보장하시는 성신께서 계시됨으로써 하나이신 하느님이 삼위일체로 계시다는 신앙내용이 가능하게 되었다. 하느님이 우리를 위한 하느님,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으로 고백되면서 인간의 구원이 이루어졌다. 신앙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은 인간 예수를 부활시키신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초기 교회가 제자들의 깨달음을 정리하고 예수의 정체와 역할, 즉 구원자이신 예수와 하느님의 관계를 명시하는 과제를 맡았다. 메시아와 의인들에게 적용되었던 구약성서의 전통적인 호칭을 재개발하여 예수의 정체와 역할을 규명하는 초대 교회가 예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렀다. 이 복합호칭을 분석해 보면, 원래 하느님께만 적용되었던 주님이란 호칭은 인간을 위하여 역사 속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활동방식을 잘 드러내는데 원래 이스라엘을 구해 주는 자를 뜻하던 그리스도라는 단어가 이제 온 인류의 구세주라는 의미로 통한다. 하느님의 아들이란 호칭은 본성문제에 앞서 하느님이신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친밀한 관계를 말해 주고 있는데, 히브리 사고방식대로 부자관계는 종적 관계보다 횡적 관계, 즉 동등한 입장을 뜻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호칭은 신성에 있어서 예수의 위치를 알맞게 말해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이란 단어는 예수의 아버지이신 천주 성삼 제1위를 가리키는 것이 신약성서와 특히 바울로 서간의 통례이다. 호칭에 못지않게 초대 교회는 예수의 인간성과 신성을 표현하는 도식(靈-肉, 前-後, 上-下 등)을 개발했다(로마 1:3-4). 변함이 없는 아들이 하느님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계시다는 사실을 표명하는 이 도식들은 나중에 발전하는 그리스도론의 기초라고 할 수 있다.
신약성서에 담긴 내용을 보존하며 설명하는 교회는 희랍문화권에 접근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간성을 재확인하고 신성과 인간성의 상호관계와 이 두 본성의 주체이신 아들의 위치를 밝히는 업무를 수행해 왔다. 인간이고 하느님이신 아들이 마련하신 구원의 조건을 거울로 삼아 교회가 소위 ‘구원론적 원칙’에 따라 우리 구세주의 정체를 명시하였다. 구원을 물질세계에서의 해방으로 잘못 이해하는 이단을 공박하는 교부들이 예수의 참된 인간성을 재확인하는 작업을 시작하였다. 아들과 동일시해야 하는 말씀이란 호칭을 우주의 이치란 의미로 이해하고 예수를 뛰어난 피조물로 보는 아리우스 같은 자가 있었는가 하면 예수를 말씀과 육체의 결합으로 형성되었다고 주장하고 인간인 예수의 영혼을 부정하는 아폴리나리스 같은 자도 있었다. 현대 인간학의 개념과 맞지 않다고 해서 문제의 심각성을 잘못 파악할 수도 있으나 예수 그리스도가 죄 외에 우리와 같은 인간이 아니시면 우리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상기시켜 주었던 점이 교부들의 공로이다. 예수의 신성을 중심으로 삼위일체 교리를 재표현하는 작업이 필요하였다. 본성보다 관계와 역할을 따지는 히브리문화권과는 달리 희랍문화권에서 성부, 성자, 성신이 유일한 신성을 공유한다는 니체아 공의회(325년)의 결의문을 통해서 교회는 예수의 신성을 재확인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를 신성과 인간성의 단순한 결합으로 이해하기 쉬운데, 이런 경우에는 두 주체, 즉 하느님의 아들과 인간인 예수를 대립시킬 위험이 있는가 하면(네스토리우스의 이단) 인간이 신성 안에 흡수되다시피 하여 예수의 신성에만 기울어지는 에우티케스의 이단이 생길 우려도 있다. 에페소 공의회(431년)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모친이라고 선포함으로써 하느님이신 아들이 유일한 주체이며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셨고 그 하느님의 아들은 신성과 인간성의 결합의 원인이지 결과가 아니라는 결의를 채택하였다. 칼체돈 공의회(451년)는 신성과 인간성이 혼동되지 않고 분리되지 않아 하느님의 아들이며 우리의 주이신 예수께서 두 본성의 유일하고 동일한 주인이시라고 선포하였다. 나중에 이단이 생기는 대로 제2차(455년)와 제3차(68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들이 이 주요 결의문의 결론을 내렸다. 우리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이시고 인간이신 성자라고 함으로써 교회가 계시에 또 다른 교리를 첨가시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성서 내용에 대하여 유권해석을 내렸을 뿐이다. 성서적 용어가 아닌 단어나 개념을 이용했다 해도 계시를 변질시켰다기보다 계시의 내용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을 택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4.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장소 :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몸으로 이제 끝없이 인간으로 계시고 우리 세상에 개입하시는 하느님의 얼굴이라서 바로 이 세상에서 우리를 만나 주시는 장소를 마련해 주셨다. 예수께서는 죽음으로 인하여 부재상태에 계시니 이제 더 이상 육안으로 볼 수는 없지만, 부활로 인하여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니 이제 인격적인 차원에서 우리를 찾아 주신다. 당신 몸인 교회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세례자들과 유기적인 관계를 맺으시고 이 교회를 통해서 성서를 당신의 말씀으로 활성화하신다. 교회를 통해서 당신 몸과 피를 나누어 먹이심으로써 우리를 찾아 주신다. 교회를 통해서 당신 몸과 피를 나누어 먹이심으로써 우리를 당신 생명에 참여케 하신다. 빵과 포도주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어 먹이심으로써 우리를 당신 생명에 참여케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아들을 통해서 성신에 의하여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들은 물질세계를 돋보이게 하고 물질에 상징적 가치를 부여 하시어 우리 구원의 실제성을 암시해 주신다.
하느님의 아들은 인간이 되심으로써 만민 가운데 한 민족에 속해 있는 몸으로 시간 속에 짧은 기간 동안 이 세상에 살다가 죽음을 당하셨으니 인간성의 제한성을 취하셨고, 죽음을 넘어서 살아 계시는 부활한 몸으로 각 인간의 침해할 수 없는 자유와 유린할 수 없는 존엄성을 보장해 주신다. 태어나고 죽고 부활한 그 몸이 하느님의 계시이며 인류의 구원이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신인 관계를 완성시킴으로써 인간의 최후 목적과 동시에 인간성의 절정에 달하는 길을 밝히셨다. 사람과 함께 살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오늘의 인간 사회를 새롭게 하는 유일한 구세주이시다. 따라서 신자들은 과거의 예수를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함으로써 현재의 예수를 추종하고 있다. 신자들이 과거의 예수를 모방하는 것은 부활을 부정하는 것임과 동시에 예수를 이용하는 것이 되는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것은 물질세계와 인간사회와 각 개인이 하느님과 의존관계를 맺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하느님과의 의존관계가 피조물의 상대적인 자율성을 보증하면서 각 인격자의 자유를 살린다. “이 세상도 생명도 죽음도 현재도 미래도 다 여러분의 것이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것이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것”(1고린 3:22-23)이기 때문이다. (文世華)
◆예수부활 대축일◆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 모든 그리스도교 축일 중 가장 오래되고 큰 축일. 그리스도께서는 인류 구원과 하느님의 완전한 현양의 사업을 주로 당신의 파스카 신비로 완성하셨다. 즉 당신이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죽음을 소멸하시고 당신이 부활하심으로써 생명을 되찾아 주셨다.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파스카 3일은 전례주년의 정점으로 빛난다. 주일이 주간의 정점을 이루듯이 부활 대축일은 전례주년의 정점을 이룬다.
이 날은 구약의 파스카 축제와 연결되는데, 신약의 부활절은 이 날의 뜻을 더욱 심오하고 완전하게 만들었다. 유태인들은 그들의 음력으로 계산하여 초봄의 만월인 니산(Nisan)이라는 달의 14일을 파스카 축제일로 지냈으며 동방교회도 이를 따르는데, 서방교회는 니산달의 14일을 지내지 않고 그 다음날인 일요일을 부활절로 지냈다. 오늘날에는 성 빅토리오(St. Victor, 재위 : 189∼199) 1세 교황의 선언에 따라 춘분(3월 21일)이 지나고 만월이 되면서 맞이하는 첫 주일을 부활절로 지내고 있다. 부활주일부터 성신강림주일까지의 50일간은 하나의 축일같이, 하나의 ‘큰 주일’ 같이 기쁨으로 요약하며 지낸다. 이 50일간은 특히 알렐루야를 노래한다. 이 기간은 부활시기라 한다. 이 시기의 주일들은 하루의 부활주일처럼 여긴다. 그래서 부활주일 다음 주일들을 부활 제 2, 3, 4, 5, 6, 7주일이라고 부른다. 이 50일간의 부활시기는 성신 강림주일로 끝맺는다. 부활시기의 첫 8일을 부활 8부로서 주님의 대축일로 지낸다. 부활 후 40일에 예수 승천을 경축한다. 그러나 예수승천이 의무적 대축일이 아닌 지역에서는 부활 제7주일에 예수 승천을 지낸다. 예수 승천 다음 성신강림 전 토요일까지의 평일에는 파라클레토(Paracletus, 위로자) 성신의 강림을 준비한다. 이때는 성수예식 아스페르제스(Asperges)와 통상 삼종 안젤루스(Angelus) 대신에 비디 아쾀(Vidi Aquam)과 레지나 첼리(Regina Coeli)가 낭송된다. 이날의 중요성은 40일간 지속되는 사순절 기간과 성주간, 그리고 뒤따르는 부활시기에서 보여진다. 고대 교회에서 예비신자는 부활전야, 즉 성 토요일 밤을 지새운 뒤 부활절 아침 일찍 세례를 받고 성체를 영하였으며 부활주간 내내 흰 옷을 입고 지냈다. 부활 전야는 교회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전 도시를 등불로 장식하여 이 날을 기념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이전의 전통에 따라 전야미사를 드렸으나 10세기경 서방에서는 오후 미사로, 14세기경에는 성 토요일 아침미사로 당겨졌으며 그래서 로마 가톨릭에서는 부활 첫 미사를 토요일에 봉헌하였었다. 그러나 1951년부터 부활 첫 미사를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넘어가는 밤에 드리는 것이 허가되었으며 1955년에는 이것이 의무화 되었다.
교회는 전례서에 나와 있는 대로 성3일과 함께 부활절을 경축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성3일은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정점에 이르며 부활 주일 저녁기도로 끝난다. 주의 수난 금요일과 할 수만 있다면 성 토요일 부활 전야까지 파스카 단식을 지킨다.
주께서 부활하신 밤에 지내는 부활 전야제는 “모든 전야제의 어머니”와 같은 것으로서 이로써 교회는 밤을 새워가며 주님의 부활을 기다리고 부활을 성사적으로 경축한다. 그러므로 이 전야제 예식은 전부 다 밤에 거행된 것이다. 즉 예식을 밤이 시작된 다음에 시작하고 주일 새벽 전에 끝마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4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다(마태 28:1-15, 마르 16:1-14, 루가 24:1-12, 요한 20:1-21). 서방에서의 ‘이스터’라는 말은 새벽과 밤을 관장하는 튜튼족의 여신의 이름에서 나왔으며, 크리스마스의 경우처럼 그리스도교 축일이 이교도의 축제를 대신한 예이기도 하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이 날을 기념하여 새 옷을 입고 부활 달걀을 주고받았으며, 부활 때 먹는 양고기, 부활 토끼, 부활 과자, 부활 햄 등과 관련된 관습은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출처 : [가톨릭대사전]
◆성주간◆
부활대축일 전의 한 주간을 말한다. 성주간은 메시아로서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으로 시작하여 수난하시는 주님을 기억하고 부활하시는 구세주에게 한 걸음 나아가기 위해 설정되었다. 성목요일 아침에는 주교가 자기의 사제단과 함께 미사를 공동집전하면서 성유(聖油)를 축성하고 저녁에는 만찬미사로 성주간은 활기를 띤다. 이 만찬미사는 다음날의 예식과 필연적인 관계와 명백한 일치를 이루어 성삼일의 서곡을 장식한다. 이 최후의 만찬과 십자가와의 일치는 예식에 잘 드러난다. 그 일치성 때문에 성금요일에 미사를 거행하지 않는다.
성주간은 교회력에 있어 1년 중 가장 의미 깊은 주간이다. 초세기에는 수난의 사건을 기념했기 때문에 '수난주간'(passion week)으로 알려졌으며, 또한 그리스도교에 있어 수난에 대한 관념은 항상 부활에 포함하고 있었기에 '빠스카 주간'(paschal week)으로도 알려졌다. 밀라노 전례에서는, 이 기간 동안 기념되는 사건의 중대성을 암시하기 위해 '권위 있는 주간'(authentic week)으로도 불려졌고 몇몇 지역에서는 성목요일에 죄수들이 사면(赦免)되었기 때문에 '사면 주간'(the week of remission)으로도 불려졌다. 또한 동방교회 신자들은 '구원의 주간'(the week of salvation)으로 불렀다. 이 주간에 교회는 예수의 체포와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며, 모든 의식(儀式)은 슬픔을 표현하나 동시에 하느님이 인간이 되시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한 엄청난 사랑에 대한 기쁨의 태도도 보여 주고 있다. 성주간에 대해 언급한 최초의 기록은 성 아타나시오(St. Athanasius)의 에서 보여지나 성주간의 기원은 고대 니체아 교회(ante Nicene)가 기념하던 파스카 축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당시 파스카 축제는 금요일에서 시작하여 부활주일 아침에 끝나는 3일로써 기념되었던 것이다. 4세기에 성목요일이 추가되고 1주일로 연장되어 5-6세기에는 비로소 성주간이 완성되었다. 그 전례규정은 4세기에 열심한 순례자 에테리아(Etheria)가 서방교회에 전해 준 예루살렘에서의 전례형태를 모방한 것이었다. 중세에 와서 성지 행렬, 십자가 경배, 무덤 조배, 새 불과 파스카 초 의식 등 복잡한 전례가 도입되었다.
1951년 교황 비오 12세는 부활 전야제를 재조직하고 1955년 성주간 전례를 폐쇄하였으며 1969년에 성주간 순서가 약간 다시 개혁되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부활 축제의 근본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부활성야 미사를 도입한 것이다. 성주간의 각 날에는 고유한 전례가 있는데, 성주간이 시작되는 '예수수난 성지주일'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파스카의 신비를 완성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입성하신 사실을 기념한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미사에 있어서 이러한 주의 입성(入城)을 기념하는데, 중심 미사 전에는 행렬이나 혹은 성대한 입당식으로 또 다른 미사 전에는 간단한 입당식으로 이 사실을 기념한다. 행렬은 두 번 할 수 없지만 성대한 입당식은 교우들이 많이 참석하는 미사 전에 두 세 번 반복할 수 있다. 또한 이날 미사 중에는 긴 수난복음이 낭독되는데 복음 후에는 보통 때처럼 '그리스도께 찬미'를 말하지 않는다. 성주간 월요일에는 라자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었으며, 예수께서는 그 일이 예수의 장례일을 준비하는 것임을 설명해 주시는 내용의 복음(요한 12:1-11)이 낭독된다. 화요일에는 예수께서 배반당하실 것과 베드로가 부인하리라는 것을 예고하시는 내용의 복음(요한 13:21-23 · 36-38)이, 수요일에는 예수께서 파스카 축제를 지키신 내용의 복음(마태 26:14-25)이 낭독되며 그 밖의 다른 특별한 의식이 거행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의 성삼일에는 고유한 전례가 거행된다. (⇒) 성목요일. 성금요일, 성토요일, 예수수난성지주일
◆예수성탄 대축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리는 전통적인 기념일. 흔히 ‘크리스마스’로 불린다. 아르메니아 교회들을 제외하고 모든 가톨릭 교회와 대부분의 그리스 정교회, 프로테스탄트 교회는 이 기념일을 12월 25일에 지킨다. 그러나 예수의 실질적인 탄생일에 관하여 구약전승과 신약성서에는 기록된 바가 없고, 예수의 정확한 탄생일의 날짜나 교회에서 성탄의 의식(儀式)을 실제로 시작한 시기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2세기 말경에 알렉산드리아의 성 글레멘스는 5월 20일의 특별한 축일에 관해 언급하고 있으나 4세기 말까지는 기념일의 의식이 시작되지 않은 것으로 보여진다. 336년, 성탄 축일을 12월 25일로 지키는 관습이 서방교회에 널리 퍼져 있었다. 이는 로마인들의 이교적인 국가 축제일이었던 ‘무적의 태양의 탄신일’(Natale Solis Invicti)을 그리스도교화 시킨 것으로 보인다. 로마에서는 274년, 아우렐리아누스(Aurelianus) 황제 때부터 태양을 최고신으로 공경하여 태양신의 신전을 건립하고 그 건립일을 축제일로 지정했던 것이다. 이 태양신에 그리스도를 대치시켜 354년 로마의 리베리오 주교는 이날을 성탄으로 판정하여 그해 로마 축일표에 기록했고 5세기 초에 이 날을 예수성탄 축일로 정식 선포한 것이다. 특히 교회는 4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정하는 이단 아리아니즘에 대항하여 성탄축제를 통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임을 고백하고 정통 교리를 고수하고자 하였다.
동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세례자 요한에 의한 그리스도의 세례 등을 공동으로 기념하기 위한 특별한 예배의식을 채택하여 처음에는 이러한 의식이 ‘주의 공현 축일’(1월 6일)에 거행되었다. 그러나 점차 12월 25일의 성탄 축일이 서방교회에서 동방교회로 퍼져 나가 안티오키아에서는 386년 그리스도의 신성을 반대하는 이단에 맞서 지켜졌고, 콘스탄티노플 · 소아시아로 전해져 5세기말에는 대부분이 12월 25일에 예수성탄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집트와 예루살렘은 6세기에 네스토리우스주의와의 논쟁과 관련되어 지켜졌다. 단 아르메니아 교회는 오늘날까지 1월 6일을 성탄일로 지키고 있다.
예수성탄 축일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외에 예수의 탄생을 단순히 기념한다는 의미보다 연중 다른 기념일과 성인들의 축일에서처럼 완전한 인격과 업적을 축하한다. 즉 이 축일은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본질을 갖고 계셨으며 예수는 이 세상에 주님으로서, 심판자로서 오셨고, 땅과 하늘을 화해시켰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탄 축일의 성격은 기쁨과 감사의 축제이다. 중세에는 예수를 하느님이 인간을 위해 보내 준 중개자라기보다는, 인간 가운데 나타난 영원한 하느님의 아들로 공경했기에 부활절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도 하였다.
서방교회 전례에서는 이 날 밤중과 새벽, 본일 낮의 세 대의 미사를 드린다. 이는 5세기의 교황 순회미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카롤링거왕조시대에 로마 이외 지역에서도 행해지다가 13세기 이래로 모든 사제는 이날 세 대의 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성탄축제가 시작되던 4세기에는 로마에서도 다른 축일과 같이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단 한 번의 미사가 성대하게 이루어졌었다(지금의 성탄 낮미사). 그러나 여기에 부활 성야의 축제와 예루살렘의 성탄축제를 모방하여 밤중 미사가 추가되었다. 즉 예루살렘에서 한밤중에 베들레헴의 성탄동굴에서 드리던 미사를 모방하여 로마에서도 마리아 대성전에 베들레헴 구유의 모형을 갖다 놓고 성탄 밤중에 미사를 드리게 된 것이다. 두 번째 미사는 교황이 바티칸으로 돌아오는 도중, 로마에 살던 그리스인들 구역인 팔라틴(Palatin) 언덕 기슭의 성 아나스타시아 소성당에 들러 미사를 드리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이날은 동방교회의 유명한 성녀 아나스타시아의 치명 축일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여러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는 성탄의식에는 교회가 이교도의 관습들을 그리스도교화한 것이 많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이 나무는 에덴동산의 생명의 나무를 상징하고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전형(典型)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일은 성 니콜라오 축일에서 유래된 것이다.
◆예수 성심 호칭 기도◆
이 호칭 기도는 1718년 가경자 안나 마들렌 레무짜가 쓴 호칭 기도에서 유래한다. 여기에는 27개의 호칭이 있는데 그 가운데 17개는 크로와세 신부(1691년)의 호칭 기도에서 유래한다. 예부성성은 여기에 1686년 디종의 마들렌 졸리 수녀가 쓴 호칭들 가운데 6개를 첨가하였다. 1899년 교황 레오 13세는 이 호칭 기도를 공적 경배 때 사용하도록 인준하였다. 예수 성심을 부르는 33개의 호칭은 각기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이 지닌 몇 가지 측면들을 표현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그분의 아드님이시고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사람이 되시고 죽으신 예수님의 물리적 마음으로 상징된다. 이 호칭 기도는 「로마 예식서」와 「대사 편람」에 실려 있다. 연도(連禱 Litanies) 참조.
◆공생활◆
공생활이란 예수께서 가정 생활(私生活)을 떠나 공적으로 복음 선포를 시작한 이후의 예수님 일상 생활을 말한다. 이는 30세 가량부터 십자가에서 세상을 마칠 때까지 3년간으로, 유다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 37~100년)의 유다 전기에서 추정하였다.
출처 : [용어사전]
◆예수 그리스도 상징◆
교회 전례는 예수님 이름의 그리스어 철자 “JHSUS”에서 ‘JHS’만 따내어 제단에 새기기도 하고 흔히 전례복(제의) 등(背) 쪽에 수를 놓기도 한다(위 그림).
또한 그리스어의 그리스도(Χριστος)의 처음 두 문자를 따서 꾸민 ‘키로’ 역시 제단, 제구, 제의 등에 널리 사용된다. 따라서 이를 피엑스(PX)나 팍스(Pax) 등으로 읽지 말고, 반드시 ‘그리스도’로 읽어야 한다(중간 그림).
또한 알파(Α)와 오메가(Ω)도 있다. 알파는 그리스어의 알파벳의 첫 글자이며 오메가는 끝 글자이다. 이는 일반적으로 시작과 끝을 나타내며, 그리스도께서 세계와 역사의 시초부터 종말에 이르기까지 지배하시고 다스리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묵시 22, 13; 이사 41, 4). 알파는 오늘의 로마 문자 ‘A’에 해당하며 오메가는 ‘Z’에 해당한다(아래 그림).
출처 : [용어사전]
◆구세주◆
구세주란 세상을 구제하는 자, 인류를 구원하는 자를 일컫는다. 이는 구체적으로 세상을 불행과 고통, 죄악과 파멸의 상태에서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말한다. 구약 시대 구세주 상(像)은 선택된 백성, 이스라엘 민족을 이민족의 압제와 수탈로부터 해방시키는 메시아(Messiah)였다.
그리고 신약 시대의 구세주 상은 인류를 해방시키고 구원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의로운 자를 세우시고 악한 자를 벌하시는 심판자(審判者)였다. 오늘날은 인간이 악과 불행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의 노력은 물론 절대자(救世主)의 손길이 필요한데, 그가 바로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출처 : [용어사전]
◆묵주 기도◆
묵주알을 굴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복음 선포와 수난, 부활과 승천, 성령 강림에 이르는 신비들을 성모 마리아와 더불어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
묵주 기도를 의미하는 라틴어 로사리움(rosarium)은 ‘장미 화원’이라는 뜻이 있다.
◆강생구속◆
천주교 4대 교리의 하나.
인간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게 되었으나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됨(강생)으로써 인간의 죄를 대신 보속했으므로 누구든지 믿고 세례를 받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교리.
출처 : [천주교용어자료집]
◆사순 시기◆
예수 부활 대축일 전 40일 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참회와 희생, 극기, 회개와 기도로써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는 시기.
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로 시작하며, 날짜는 부활 대축일을 기준으로 역산해서 정한다.
출처 : [천주교용어자료집]
◆예수수난성지주일◆
부활절 바로 전의 주일로 예수가 수난전에 예루살렘에 입성한 것을 기념하며, 이날부터 성(聖)주간이 시작된다. 이날 교회는 성지 축성과 성지 행렬의 전례를 거행하는데, 이는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 때 백성들이 승리의 상징으로 종려나무 혹은 올리브나무 가지로 예수가 가는 길바닥에 깔았던 일에서 연유한다. 원칙적으로 성지 축성과 분배는 성당 밖에서 행해지며 성지 행렬의 복음 낭독(루가 19:28-40) 후 향을 피우며 십자가를 앞세우고 성지를 손에 든 사제와 신자들이 행렬을 이루어 성당에 들어 가 미사는 개회식이 생략되고 본기도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성당 밖에서 행렬을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성당 안에서 중심 미사 전에 성대한 입당식을 하며 그 외의 미사에는 간단한 입당식으로 기념한다. 이 날 축성된 성지는 1년 동안 잘 보관하였다가 다음 해에 태워서 재의 수요일 예절에 사용된다. (⇒) 성지2, 성주간
◆예수성심 대축일◆
예수성심을 특별히 공경하는 축일. 성체성혈 대축일 다음 주의 금요일에 지켜진다. 예수성심에 대한 공경은 중세기에 와서, 이전에 소수의 신비주의자나 성인들에 국한되던 것에 비해 상당히 일반화되어 성 요한 에우데스(St. John Eudes)는 예수성심 신심과 그 축일 제정의 신학적이고 전례인 기초를 확립하기에 이르렀다. 또한 1673년 12월 27일, 프랑스 방문회 수녀였던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St. Margaret Mary Alacoque, 1647∼1690)에게 예수께서 발현하시어 성심 공경과 성심이 공적으로 세상에 전파되었다. 이후 1765년 교황 글레멘스 13세는 폴란드 주교단의 청원을 받아들여 제한된 지역에서 예수성심 공경 지향의 미사와 기도문을 바칠 것을 허용하였다. 이후 1765년 교황 글레멘스 13세는 폴란드 주교단의 청원을 받아들여 제한된 지역에서 예수 성심을 공경할 것을 지시하고 예수 성심 대축일을 제정하였다. 또한 1928년 교황 비오 11세는 이 축일을 8부 축일(이것은 1960년에 폐지됨)로 하고 회칙 <극히 자비로운 구원자>를 통하여 예수성심 축일을 위한 기도문과 취지를 규정하고 세계를 예수성심께 봉헌하는 예절을 매년 그리스도 왕 축일에 경신할 것을 지시하였다.
한편 축일 제정 100주년을 기념하여 1956년 비오 12세는 예수 성심 공경에 관한 회칙 을 발표하여 예수성심 공경을 더욱 구체화하였다. 1969년 이래로 대축일로 지켜지고 있는데 그 날짜가 성체성혈 대축일 다음 주 금요일로 지정된 것은 예수성심이 성체성사와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예수성심 공경을 전파하신 분 중에는 예수 마리아 성심회의 마테오 크롤리(Mateo Crawley) 신부가 유명하며 우리나라에 다녀간 일이 있다.
◆메시아◆
히브리어의 ‘masih’(mashiah)라는 동사에서 온 말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가리킨다. 그리스어에선 ‘Christos’ 즉 그리스도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는 말로서 번역되었다(요한 1:41, 4:25). 구약시대에 예언자, 사제, 왕들은 즉위할 때 머리에 기름을 붓는 의식을 행하는 관습이 있었으며, 그리스도는 예언자, 대사제, 왕 중 왕으로서 신으로부터 기름부음을 받았고, 인류 구제를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신 ‘구세주’(救世主)이므로, ‘메시아’라는 말은 구세주를 뜻한다. 유태교, 그리스도교의 종말사상(終末思想)과 결부되어 ‘종말론적 구원자’를 나타내기도 한다.
고대 이스라엘 왕조시대에 다윗왕 이후에는 신망 있는 왕을 갖지 못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다윗왕의 이미지와 결합된 이상적인 왕의 재래(再來)를 대망하는 이른바 ‘메시아 대망’의 경향이 풍미하게 되었다. 이때의 메시아 대망은 현실을 부정(否定) 매개로 하는 종말론과 결부되어 종말적 메시아 대망으로 바뀌었다. 정치적인 독립을 잃은 유다이즘 시대로 들어오자, 묵시문학적(默示文學的)으로 천상의 메시아가 생각의 대상이 되거나, 다른 한편에서 2세기 때 로마에 대한 저항의 기수 바르 코크바(Bar Kochba)를 메시아라고 호칭하는 경우와 같이 민족주의와도 결부되었다. 하지만 후기 유다이즘에 있어서는 메시아사상이 오늘까지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큰 위치를 차지하지 않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아’라는 명치 사용을 보면, 구약성서에 39회 나타나지만, 그중 29회는 이스라엘 또는 유대 왕을 지칭한 경우이고, 1회는 페르시아왕 키로스(Kyros, 기원전 600경-529)[고레스]를 가리켰다(이사 45:1). 신약성서에 나타난 메시아라는 용어는 요한복음서에서만 2회 뿐이다(1:21, 4:25). 그리고는 거의 그리스어 번역인 ‘Christos’(그리스도)로 나와 있다. 기타 메시아와 유사한 명칭으로서 ‘사람의 아들’(人子), ‘다윗의 후손’, ‘유태인의 왕’, ‘하느님의 아들’로서 표현되었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아관념은 종교사적인 관점에서 보아 본질적으로는 유다이즘의 메시아관념을 발전시킨 것이나, 사상적으로 중요한 것은 ‘고난받는 종’으로서의 메시아상(像)(이사 53)과 예수와의 결합에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 즉 메시아임은 그가 왕적인 권력을 가지고 이 세상을 통치하기 때문이 아니다. 스스로 종으로서 고난의 길을 걷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며, 이 세상은 자기 나라가 아니라고 전제한 것이다. 이 고난을 받은 자로서의 메시아사상은 그리스도교의 독자적인 메시아사상을 형성하였다. 유다이즘의 ‘메시아’ 행위는 정신적인 구제행위 즉 신에 대한 속죄와 동시에 정치적 사회적인 구제를 가져오는, 이른바 정치적인 메시아로서 만민을 정복하고 그들을 무릎 꿇게 하는 이 세상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도교의 '하늘의 왕국'은 신이 직접 지배하는 나라이며,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 나라이고, 바울로가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에서 메시아에 관한 일반적인 정의를 개정하여,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능력으로서, 또한 하느님의 지혜로서, 하늘로부터 온 사람인데, 부활의 첫 열매라고 하여 ‘신의 아들’이라는 데서 신성(神性)을 얻었다고 생각하며, 신앙의 대상임을 밝혔다. 따라서 그리스도교와 유태교의 메시아관(觀)은 종말관과 마찬가지로 그 내용에 있어 결정적으로 서로 다르다.
메시아를 단순한 구제자라고 해석한다면, 메시아 사상이나 메시아 대망은 다른 종교에서도 적지 않게 눈에 띈다. 가령 조로아스터교(Zoroaster敎) 이단설에 의하면 조로아스터 사후 3천년이면 구제자가 출현하리라고 믿고 있으며, 세계 여러 곳 각 시대에서 볼 수 있는 ‘천년왕국설’(千年王國說, millennium) 운동에서도 구제자가 대망되고 있고, 기적이나 예언을 행하는 천부적인 재능의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를 구제자로 착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게 있다. 이 때문에 ‘메시아’는 광의의 뜻으로, 개인 내지는 특정 집단을 그 고통스런 지경으로부터 해방하여,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구제자, 더구나 신적인 권위와 성격을 띤 구제자로서 이해하려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그리스도교에서는 로마서 1장에서 갈파하였듯이 예수는 부활에 의하여 하느님의 메시아가 되었으며 모든 원수, 모든 죽음을 정복할 때까지, 그리스도 즉 메시아의 통치는 지속된다. 예수는 때로는 ‘메시아’ 칭호를 뜻밖에도 사양하였으며, 또 정치적인 ‘메시아주의’(Messianism)를 단호하게 거부하였다. 그리스도교의 메시아는 구세주 즉 고난의 메시아 사상으로 일관하여 그리스도교의 독창적인 것으로서 전개되어 나온 것이다.
◆십자가의 길◆(성로선공 (聖路善功))
가톨릭 신심행사 중에서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것 중 하나. 예수 그리스도가 사형 선고를 받으신 후 십자가를 지고 갈바리아 산에 이르기까지 일어났던 14가지의 중요한 사건을 성화(聖畵)로 혹 조각으로 표현하여 축성된 십자가와 함께 성당 양벽에 걸어둔 곳(14처, stations)을 하나하나 지나가면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를 말한다. 이것은 초기 교회시대에 예루살렘을 순례하던 순례자들이 실제로 빌라도 관저에서 갈바리아 산까지의 거리를 걸으면서 기도드렸던 데서 유래한다. 이 순례지가 지리적 정치적인 장애를 받게 되자 15세기, 16세기에 유럽에서는 성지 모형의 십자가의 길을 만들어 기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각 처의 숫자와 기도의 구체적인 형태는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다.
이 기도는 특히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널리 전파되었는데 1688년 교황 복자 인노첸시오(B. Innocentius) 11세는 이 수도회의 모든 성당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했고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이 기도를 바치는 자에게 전대사(全大赦)를 허락하였다. 1694년 교황 인노첸시오 12세는 이 특전을 확증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토(Benedictus) 13세는 모든 신자들이 이 특전을 얻을 수 있게 하였다. 1731년 교황 글레멘스(Clemens) 12세는 모든 교회에 십자가의 길을 설립하는 것을 허용하였고 곳의 숫자도 14처로 고정시켰다.
19세기에 이르러 이 신심은 전세계에 퍼져 예수의 수난을 묵상하는 가장 좋은 기도로 특별히 사순절에 널리 행해지고 있다. 성당이나 그 밖의 공적(公的)인 기도 장소에서 개별적으로 혹은 사제와 함께 단체로 행해진다. 각 처를 순례하듯 옮겨가는 것이 원칙이나 단체로 할 때는 대표만 움직이고 다른 분들은 움직이지 않고 해도 무방하다. 각 처마다 정해진 기도문과 함께 주의 기도, 성모송, 영광송을 외며 묵상한다. 14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처 : 예수, 사형선고 받으심. 제2처 : 예수, 십자가 지심. 제3처 : 예수, 기진하시어 넘어지심. 제4처 : 예수와 성모 서로 만나심. 제5처 :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 제6처 :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 씻어 드림. 제7처 : 기력이 쇠하신 예수, 두 번째 넘어지심. 제8처 : 예수, 예루살렘 부인들을 위로하심. 제9처 : 예수, 세 번째 넘어지심. 제10처 : 악당들이 예수의 옷을 벗기고 초와 쓸개를 마시게 하였음. 제11처 : 악당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음. 제12처 : 예수,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 제13처: 제자들이 예수의 성시(聖屍)를 내림. 제14처 ; 예수, 무덤에 묻히심. 파스카의 신비를 생각하여 제15처 : 예수 부활 장면을 묵상하기도 한다.
◆십자가◆
가로와 세로의 십자(十字) 모양으로 교차되는 2개의 나무로 이루어진 것으로 십자가는 원래 이집트, 카르타고 등의 고대 동방(東方)에서 죄인의 양 팔과 발에 못을 박고 매달아 처형하던 도구였으나 이 형벌이 로마제국에 유입된 뒤 그리스도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자 그 후로는 십자가는 인류의 속죄를 위한 희생 제단, 죽음과 지옥에 대한 승리, 그리스도를 신앙함으로써 당해야 하는 고통 등을 상징하게 되었다. 그러나 십자표시(十)는 그리스도교 이전의 원시 종교들에서부터 태양, 별, 생명의 나무, 종합, 중심, 완전 등 영원한 생명력을 가진 존재의 상징이었다. 신학적으로 십자가는 계시(啓示)의 신비로 파악되며, 예수 자신도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마태 16:24)고 말하며 죽음과 부활에 대한 십자가의 신비를 깨우치도록 가르쳤고, 또한 사도 바울로도 그의 서한들(로마 5:8, 고전 1:17, 갈라 4:16, 필립 2:6-11) 속에서 십자가의 신비를 주요한 테마로 다루었다.
십자가에 대한 공경은 4세기초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뒤부터 시작되었는데, 성녀 헬레나(Helena)에게 십자가가 발현하고, 이어 320년에서 345년 사이에 골고타에서 예수가 2명의 도둑과 함께 못 박혔던 2개의 십자가가 발견되어 이를 안치할 십자가성당과 부활성당이 예루살렘에 건축되었고, 335년 9월 14일이 양 성당의 헌당식 축일로 제정되자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공경 대상으로 인정되기 시작했고, 그레고리오 대교황 때엔 로마교회에도 전해졌다. 그 뒤 692년 트룰라눔(Trullanum) 교회회의를 통해 십자가 공경은 강화되었고 787년 제2차 니체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십자가의 모양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매우 다양한데, 먼저 동방과 그리스도교 고대 미술에 존재했던 卍형 십자가, 소아시아의 원형십자가, 이집트의 콥트교회에서 사용하던 십자가(♀), 그리스십자가(+), 라틴십자가(†), 안토니우스십자가(T), 베드로십자가, 안드레아십자가(X), Y형십자가, 켈트십자가 등과 이밖에 많은 복합적인 십자가 등이 있었고 또 많은 왕족, 귀족, 교황들의 문장(紋章)으로 사용된 십자가들과 15-16세기에 나타난 교황십자가, 대주교십자가 등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