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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를 받자
히브리서 12장 28-29절 / 차명권 목사
➤“28. 그러므로 우리가 움직일 수 없는 왕국을 받을진대 은혜를 소유하자. 이 은혜를 힘입어 우리가 공경하는 마음과 하나님께 속한 두려움을 가지고 받으실 만하게 [하나님]을 섬길지니 29. 우리 [하나님]은 소멸시키는 불이시니라.”
공경함(아이도스, reverence)과 두려움(worship)
여러분은 성도입니다. 성도는 눈에 보이는 것을 본질로 붙잡고 사는 자들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영원한 하나님을 믿음의 눈으로 보며 사는 자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목숨을 걸어, 흔들리는 삶을 살다가 멸망에 이르지만 성도들은 보이지 않는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중심에 둠으로써,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고, 영원한 생명의 삶을 삽니다.
무지한 자들은 보이는 것들에 갇혀 그 속에서 전쟁을 벌이며 살지만 성도들은 보이는 것 뒤에 실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들의 전쟁이 있음을 알고, 그 영원한 것을 주목하며 살아갑니다. 여기에 눈에 보이는 마이크가 있습니다. 보이는 마이크는 일시적입니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영원합니다.
고린도후서 4장 18절입니다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여러분은 무엇을 주목하며 살고 있습니까? 보이지 않을수록 영원성을 가지고 있죠. 여러분의 영혼도 보이지 않습니다. 영원합니다. 여러분의 영혼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육신은 일시적이고 결국 사라지지만, 여러분의 영혼은 천국에서 영원하든 혹은 지옥에서 영원하든 영원성을 가집니다. 여러분의 육신은 사라지지만 새로운 몸을 입게 됩니다. 부활의 몸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몸을 입고 주님과 함께 영생을 살게 됩니다.
바위 같은 것은 영원할 것 같지만, 그것마저도 보이는 것이기에 일시적일 뿐입니다. 일시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해 목숨 걸지 마십시오. 소멸하는 불이신 예수님의 재림의 때가 되면, 일시적인 모든 것을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살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의 영원성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시내산은 보이는 시내산이어서 사람들을 두려워 떨게 만듭니다. 천둥과 번개가 있고, 어둡고 두렵고 떨리게 하는 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도착한 시온산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예루살렘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성을 나타냅니다. 그곳을 주목하며 살 때 떨림과 두려움이 정복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손에 재물이 없다고 해서 재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아직 통증이 있다고 해서 치유가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보이는 것에 마음이 흔들려 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면에 계신 영원한 주님을 주목하기 시작하면, 성도들은 영원한 승리를 깨닫게 되고, 그리하여, 풍성한 치유가 왔고, 풍성한 공급이 왔고, 무엇보다도 예수님 자신을 소유한 자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중요한 것이 바로 믿음으로 걷는 법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법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낙심하고 비관하고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담대히 사는 것입니다. 기쁨과 평화로 사는 것입니다. 승리한 자처럼 사는 것입니다. 이미 치유된 자처럼 생각하고 걷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음을 잘못 있는 경우가 많은데 믿음은 소망과 다릅니다. 소망은 미래이지만, 믿음은 현재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세계 속에서 이미 완성된 형태로 하나님의 나라가 왔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대로 될지어다.”라는 것입니다. 도착한 것에 깨어 있으면, 도착한 아버지의 집의 것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에 깨어 있으면, 하나님 나라의 모든 권세와 영광이 여러분을 통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의 경험세계 속에 역사하시는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믿음의 기도입니다. “의인이 될거야”가 아니라,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의인이 된 것을 알고 하는 기도에 기적의 문이 열리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나타나셨을 때, 도마가 의심합니다. 예수님의 못 자국을 만져볼 수 있느냐고 질문하면서 의심합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만져보게 하지만, 본질적인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 29절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 되도다 하시니라”
성도들은 믿음의 눈으로 먼저 보고, 그 믿음으로 보이는 세계를 다스리는 자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인지를 구별하기 위해서 구름을 원하고, 현상과 싸인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인도하시고 말씀하시는 본질적이고 파워풀한 길은 도마와 같은 방식이 아니라, 성경 말씀을 묵상하는 일어나는 그리스도의 임재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더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시내산은 천둥과 번개가 있었습니다. 율법을 받으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멀어졌습니다. 그래서 천둥과 번개가 있고, 소리쳐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내려온, 여러분이 도착한 영원한 시온 산에서는 하나님과 여러분 사이의 막힌 담이 허물어지고 가까워졌습니다. 사랑하는 자는 소리치지 않고 속삭입니다. 멀리 있는 자는 소리치지만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자는 부드럽고 온유한 속삭임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1-12절입니다.
“11. 그분께서 이르시되, 앞으로 나아가 {창조주}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니라. 보라, {창조주}께서 지나가시는데 {창조주} 앞에서 크고 강한 바람이 산들을 가르고 바위들을 산산조각으로 부수었으나 {주}께서 바람 가운데에 계시지 아니하였으며 바람이 지나간 뒤에 지진이 있었으나 {창조주}께서 지진 가운데에도 계시지 아니하였고 12. 또 지진이 있은 뒤에 불이 있었으나 {창조주}께서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아니하였으며 불이 있은 뒤에 고요한 작은 음성이 있더라.”
위대한 선지자 엘리야가 아합 왕을 물리치고서 영적 침체에 빠져서 호렙산에 숨어 지낼 때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십니다. 아합 왕을 물리치실 때는 큰 불로 임하셨지만, 엘리야가 낙심과 영적 침체에 빠졌을 때, 엘리야를 위로하고 살리시며, 새로운 길로 인도하실 때에는 달랐습니다.
강한 바람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 가운데서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 가운데에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이 나타나신 것은 세미한 소리 가운데였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사랑하는 성도들 가운데 말씀하시고 인도하시고 지혜를 주시는 방식입니다. 시온 산의 삶의 방식을 배워야 합니다. 여전히 시나이 산에서의 천둥과 번개를 추구하며,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에서 그리스도의 임재를 구하고 있습니까? 임재묵상의 방식이 이제 이해가 되실 겁니다.
우리는 멈춰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하고, 내 안에서 말씀으로 들려주시는 그리스도의 임재로 돌아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육신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는 것을 멈추고, 은혜로 돌아가고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훈련입니다. 시나이 산을 만지면 불화살을 맞는 것 같은 영적인 공격과 어둠을 느끼게 됩니다.
히브리서 12장 20절입니다.
“이는 짐승이라도 그 산에 들어가면 돌로 침을 당하리라 하신 명령을 그들이 견디지 못함이라”
율법을 달라고 했고, 그 아래로 들어가게 되자 하나님은 짐승이라도 이 산에 들어오면 돌에 맞아 죽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돌로 번역이 되어 있지만, 원어로는 화살에 맞을 것이다, 라는 뜻도 됩니다. 돌과 화살이 어원이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킹제임스 버전 성경에는 돌에 맞거나 혹은 화살에 맞을 것이다, 라고 ‘또는’을 넣어 둘 다에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습니다. 둘 다의 의미를 포함하게끔 하나님께서 쓰신 것으로 저는 봅니다.
에베소서 6장 16절에 이 불화살이 다시 나옵니다.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사단이 불화살을 쏜다는 것이고, 그것을 막아서는 것은 믿음의 방패라는 것입니다. 시내산을 만지면 불화살들이 여러분에게 날아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롭게 되었다는 믿음을 가지면, 주님이 여러분의 방패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율법적인 설교를 듣고 돌아갈 때면 마음에 불화살을 맞은 것 같습니다. 어둡고 불붙는 시나이 산에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둠을 느끼고, 두려움을 느끼고, 보호가 아닌 화살에 맞는 느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이른 곳은 시온 산이고 하늘의 예루살렘이며, 천만 천사가 있는 곳입니다.
시온산은 땅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은혜의 땅입니다. 아벨보다 나은 피가 뿌려진 안식의 땅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시나이 산에는 없는 천만천사가 있습니다. 셀 수 없는 천사들이 여러분과 함께 걷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천사들이 함께 갑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영을 가지십시오.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부르는 영입니다.
구약에서는 죄인에 대한 해결책은 죄를 가진 사람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시나이 산이 그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에는 예수님은 변화 산에서 내려오셔서 귀신에 들린 소년을 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내쫓으셨고, 소년은 구원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시나이 산에는 답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여러분을 결코 죄를 해결해주지도 못하고, 여러분을 거룩하게도 만들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지키려 들수록 더 죄에 빠지게 만드는 기능을 합니다.
로마서 6장 14절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죄가 여러분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는 비밀입니다. 죄가 여러분의 자녀를 다스리지 못하게 하는 비밀입니다. 무엇?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율법 아래에 있으려고 할수록 죄가 여러분을 다스릴 것입니다. 그러나 은혜 아래에 있음을 알고 믿을수록, 은혜를 받을수록, 죄가 여러분을 다스리지 못하고 여러분이 죄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도 아직도 많은 곳에서는 십계명을 전가의 보도처럼 중심에 두고, 십계명을 열심히 지키는 것이 신앙의 본질인 것처럼 가르치고 배웁니다. 시내산을 만지는 것이고, 법 아래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십계명인 율법 안에서 의로움을 얻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4절입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을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멀어진 자로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주소에서 빠져나와야 합니다. 시온산, 그 은혜의 자리에 주소를 두고 머물러야 합니다. 왜 그리스도인들이 능력이 없습니까? 죄 때문입니까? 신약성경은 죄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도말하셨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없는 이유는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힘과 행위로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흔들리지 않는 시온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은혜의 땅으로 초청하고 계십니다. 복수와 심판과 정죄를 말하는 피인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예수의 피가 뿌려진 땅입니다. 용서와 사랑의 땅입니다. 이 좋은 소리를 거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히브리서 12장 25절입니다.
“너희는 삼가 말씀하신 이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이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 보냐?”
은혜를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죄 사함의 말씀을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의롭게 하셨다는 말씀을 거절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심판과 정죄의 소리를 좋아하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더 좋은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더 때려달라고 합니다. 학대의 영입니다. 그러한 자들은 아벨의 피보다 더 나은 예수님의 피의 소리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위해 모든 것을 했다. 내가 너의 모든 죄를 사하였고, 의롭게 하였다, 너는 나의 사랑이고, 나의 아들이다, 라고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그것 필요 없어. 나는 나의 삶을 내 뜻대로, 주체적으로 살아갈 수 있어, 라며 거절합니다. 그 유일하고 위대한 참 선물을 내팽개칩니다. 하나님의 경고는 이것입니다. 이 은혜를 거절하는 한 다른 구원의 길은 없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구원 못받아, 라는 경고가 아니라, 은혜를 거절하면 그것은 정말 마지막이야, 라는 경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6절입니다.
“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이르시되 내가 또 한 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때에는 율법 아래로 들어감으로 하나님의 어조가 변하여 시내산이 진동한 것처럼 땅이 흔들리게 하셨지만, 이제 은혜의 때가 왔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을 때, 땅만이 아니라 하늘도 흔들렸습니다. 이 하늘은 하나님이 계신 삼층천 하늘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악한 영들이 있는 하늘을 말합니다. 은혜의 해가 선포되었을 때, 악한 영들이 흔들리면서 패했고, 만일 여러분이 은혜를 거절한다면 소멸할 하늘과 함께 흔들리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7절입니다.
“이 또 한 번이라 하심은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을 영존하게 하기 위하여 진동할 것들 곧 만드신 것들이 변동될 것을 나타내심이라”
자, 보세요. 하늘을 흔드실 때에는 만드신 보이는 것들은 흔들리고 소멸하는 반면, 진동하지 아니하는 것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영원한 것들은 흔들리지 않고 변동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게 속한 모든 것들입니다. 은혜의 것, 영의 것, 그리스도의 것, 아버지의 것은 흔들리지 않고 영존할 것입니다.
저는 원합니다. 우리 성도들, 우리 교회, 우리의 결혼과 우리의 가정, 우리의 사역, 우리의 일터 등 모든 것이 흔들리지 않는 기초 위에 있기를 기도합니다. 소멸하고 흔들릴 눈에 보이는 것을 맹인처럼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은혜에 머물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기도합니다.
히브리서 12장 28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은즉 은혜를 받자 이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지니”
너무나 기쁘고 감격스럽지 않습니까? 우리가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여러분이 은혜로 받았기 때문입니다. 실패하고 넘어져도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다는 은혜를 여러분이 계속 받고, 소유하고, 머물면, 실패도 여러분을 성장시키고 아름답게 자라게 하는 양식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은혜 안에 있으면 실패도 우리에게 지혜를 가르칩니다.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은혜를 받자. have라는 의미를 가진 에코라는 헬라어입니다. 은혜를 받고 빼앗기지 말고 간직하고 소유할 것을 명하십니다. 나는 도착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그렇게 임재묵상을 통해 24시간 은혜를 꼭 소유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9절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
하나님은 은혜가 아닌 것은 결국 소멸에 이르게 합니다. 은혜가 아닌 것은 소멸하는 것입니다. 은혜에 속한 것은 소멸하지 않고 영원합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천국이 오면 선악과는 사라지고, 생명나무만 존재한다고 나옵니다. 계시록 22장 2절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선악과에 속한 것은 다 소멸됩니다. 예수의 피로 여러분의 모든 선악의 죄가 용서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다는 이 은혜만이 남게 됩니다.
시나이 산을 주목하지 않고, 여러분이 이른 시온 산을 주목하며 사십시오. 선악과를 먹으며, 내 생각, 내 힘을 신뢰하며 살아가는 것을 멈추고, 모든 죄에서 구원하시고 생명나무 되게 하신 은혜를 주목하는 인생이 되십시오. 행위로 존재에 이르려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의로운 자가 된 존재에 머물러, 여러분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하십시오. 그 은혜를 받고, 소멸할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주목하고 추구하는 인생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