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5일 성주간 월요일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11 1 예수님께서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로 가셨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가 살고 있었다. 2 거기에서 예수님을 위한 잔치가 베풀어졌는데,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라자로는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은 이들 가운데 끼여 있었다. 3 그런데 마리아가 비싼 순 나르드 향유 한 리트라를 가져와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 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하였다. 4 제자들 가운데 하나로서 나중에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 이스카리옷이 말하였다. 5 “어찌하여 저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가?” 6 그가 이렇게 말한 것은, 가난한 이들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도둑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고 있으면서 거기에 든 돈을 가로채곤 하였다. 7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이 여자를 그냥 놔두어라. 그리하여 내 장례 날을 위하여 이 기름을 간직하게 하여라. 8 사실 가난한 이들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나는 늘 너희 곁에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님께서 그곳에 계시다는 것을 알고 많은 유다인들의 무리가 몰려왔다. 예수님 때문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일으키신 라자로도 보려는 것이었다. 10 그리하여 수석 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결의하였다. 11 라자로 때문에 많은 유다인이 떨어져 나가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발에 입 맞추며
나의 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쪽을 짓고 곱게 짓고, 한복을 입으시고 평생을 그렇게 사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쪽을 지으실 때는 긴 머리를 잘 땋으신 다음 비녀를 꽂아 쪽을 지으시면 그렇게 잘 어울릴 수가 없었습니다. 가끔 두통이 심하여 고통스러워하실 때 나는 쪽을 지으시기 때문이라고 성화를 대도 어머니는 그 머리를 고집하시고 열아홉에 지으신 머리를 변함없이 매일 쪽을 지으셨습니다. 까만 머리가 전부 하얗게 변하시고, 그 많던 숱도 다 빠져서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쪽머리를 볼 때마나다 속이 상하였습니다. 내가 어려서 할머니께서 이모할머니 댁에 다녀오실 때면 의례적으로 동백기름을 가지고 오셨는데 그 기름을 아주 소중히 조금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어머니는 그 동백기름을 몰래 감춰두시고 외출을 하실 때 조금씩 머리에 바르곤 하셨습니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쪽을 지은 머리가 왜 그렇게 촌스럽게 느껴졌는지 항상 파머 머리로 다니는 다른 애들의 어머니가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머리를 파머 한다고 하면 우리 형제들이 이구동성으로 반대를 하였습니다. 우리들에게는 그렇게 어머니의 쪽 지으신 머리와 동백기름이 친숙해 졌습니다. 어머니는 그 머리를 하시고 한복을 입고, 꽃신을 신고 로마로, 파리로 성지순례를 다니시며 많은 사람들의 모델이 되기도 하였답니다. 그 것을 우리는 아주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가 순 나르드 향유 한 병을 예수님의 발에 다 붓고 자신의 머리칼로 닦아 드렸다는 묘사를 대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짜릿한 사랑의 느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더구나 그 자리는 나자로가 예수님의 기적으로 다시 살아나서 예수님을 위해서 잔치를 베푼 자리였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사랑과 감사의 표현을 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런 사랑의 표현을 받고 싶은 것은 숨길 수 없는 감정이며 느낌일 것입니다. 아무리 목석과 같은 사람이라도 그런 사랑의 표현을 받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나자로와 마르타, 마리아를 질투를 느낄 만큼 끔찍이 사랑하셨던 것 같습니다.
향 기름을 바르는 곳은 머리에 바르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여인들은 향 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남자들도 머리에 바르는 것이 관습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사랑하는 예수님의 머리에 바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발에 쏟아 붓습니다. 다른 복음사가는 아예 병을 깨뜨렸다고 표현합니다. 깨뜨렸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향유는 아주 고급 향수보다 더 고급인 것 같습니다. 냄새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밀봉하였을 것입니다. 밀봉한 향유를 뜯기 위해서 모든 것을 뜯어내야 했을 것이고 마개를 뽑아내거나 병마개를 깨뜨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깨뜨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건 모든 것을 온전히 봉헌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한 리타르는 성경의 주석에 보면 약 320그램 정도 한다고 합니다. 꼭 1/3 리터입니다. 대충 잡아서 콜라 한 병보다 조금 적은 양이 되는 많은 양입니다. 그러니까 아주 비싸고 3백 데나리온이나 나갔을 것입니다. 한 데나리온이 농장의 자유노동자의 하루 일당이었다니 지금 일당으로 7만원만 잡아도 2,100만원이나 되는 거금의 향유였을 것입니다. 나도 유다와 같이 돈으로 향유를 따지는 그런 사람이 되었네요. 나자로가 부자였다고 하지만 그렇게 비싼 향유를 부을 정도로 마리아는 예수님을 사랑하였답니다. 그리고 머리로 그 향유를 발랐습니다. 머리칼로 향유를 바르기 위해서는 고개를 숙이는 것 가지고는 안 될 것입니다.
발에 입 맞추고 머리칼로 향유를 바르는 모습은 완전한 순종과 완전한 헌신을 해야 하는 동작이며 그 모든 것을 상징합니다. 자신을 예수님의 발보다 더 낮추어야 하는 겸손이고, 사랑입니다. 마리아의 그런 사랑을 생각하면서 자신이 주님께 바치는 사랑과 순종과 헌신을 생각해보면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주님께 바치는 사랑은 어떤 모습인지 다시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자주 예수님의 머리 꼭대기에 올라앉기를 좋아합니다. 세례자 요한이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부족하다.”는 말을 아주 쉽게 생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말로는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처럼 자신이 가진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릴 준비도 되어있지 않고, 자신을 납작 엎드려 주님 앞에 모두를 헌신할 준비도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냥 대등한 위치에서, 그 분이 벗이라고 부르겠다고 하시니,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허용하셨으니 하느님의 자녀로 버젓이 행동하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비싼 향유를 바를 만큼 우리는 부자가 아니라도 가난한 사람들은 항상 우리 곁에 있어도 아주 작은 부분도 나누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우리에게 강조하십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을 표현하는 시간은 아주 짧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루에 얼마나 주님을 생각하고 그분께 사랑을 드리고 있나요? 아주 잠깐 그 것도 의무적인 기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사람에게 말씀하신 진의는 이제 곧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그 향유를 장례를 위해 그냥 두라고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듣는 우리에게는 그 분을 사랑하는 기회가 너무 적음을 안타까워하시고, 하느님과 이웃의 사랑을 다시 강조하시고 계십니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을 다하여 헌신적으로 주님과 이웃을 사랑하여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