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정직하게 살아가는 중국인 이민자 저우와 영수의 이야기! 「마지막 시가(The last Cigar) 1권 - 전설의 해변」 (진광열 저, 보민출판사 펴냄)
장편소설 「마지막 시가」 시리즈는 총 2권으로 구성된 진광열 작가의 첫 소설이다. 제1권 ‘전설의 바다’는 죠앤 할머니가 남긴 막대한 유산으로 부자가 된 중국인 이민자 저우, 그리고 그의 아들 리차드의 이야기와 한국전쟁 후 격변하는 정치 이데올로기 상황 속에서 고뇌하는 영수의 이야기를 담았다. 작가는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삶을 섬세하고 다정한 문체로 서술한다. 마치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를 들으며 내용을 상기하듯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한다. 작가가 그려낸 죠앤 할머니의 집은 엽서 속의 수채화 같았고, 피난생활 속의 어린 영수와 이웃들의 모습은 드라마를 보는 듯 정감스럽다.
저우는 가족을 위해서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우리들의 아버지와 닮았다. 죠앤이 유산과 함께 남긴 당부의 유언은 저우에게는 삶의 나침판이었으리라. 언어도 서툴고 모든 게 낯선 미국 땅에서도 욕심 없이 순리에 따라 정직하게 살고자 노력하는 저우를 보여줌으로써 죠앤의 당부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라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또 다른 자아인 영수는 무능력한 방관자처럼 보인다. 한국전쟁 직후 나라는 남북으로 갈라지고, 국민은 좌우로 분열되는 혼란 속에서 어느 누가 이데올로기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었을까? 어쩌면 영수는 그 시대 대다수의 보통 사람의 모습임을 작가는 대변하고 있다.
<작가소개>
소설가 진광열(秦光烈)
⦁ 1947년 경기도 인천 출생(현 77세)
⦁ 네 살 적 표류 끝에 영종도로 피란
⦁ 홍익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
⦁ 방위병으로 육군 제대
⦁ 인천 전문대학에서 건축학 강의
⦁ 결혼 후 1남 1녀
⦁ (주) 한샘 상무이사
⦁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최고경영자 교실) 수료
⦁ (주) 토탈키친 대표이사
⦁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거주
<이 책 본문 中에서>
오두막 옆의 빈터에 광이 나는 승용차 한 대가 서 있다. 벤츠에서 내린 신사는 중절모를 벗고 리차드에게 다가선다.
― 안녕하세요? 이 농장의 주인이시죠?
고급 승용차, 잘 다려진 옷매무새에다 공손한 말투, 친밀함을 표시하는 표정까지 나무랄 데가 없다.
― 아니요, 제가 아니고 아버님이 저기…
― 아, 그러시군요. 아버님을 좀 만나 뵐 수 있을까요?
리차드의 마음이 왠지 설렌다. 밭 가운데에서 오동나무를 바라보던 아버지가 오두막을 향하여 걸음을 옮긴다. 티셔츠는 땀에 젖어 얼룩이 져 있고, 바짓가랑이에는 먼지에 섞인 양배추 조각들이 엉겨 붙어 있다. 모자를 벗어 툭툭 털어내며 다가온다.
― 아버님이십니다.
신사는 아버지의 흙 묻은 손을 덥석 잡고 인사한다.
― 처음 뵙겠습니다. 저우 선생님.
― 무슨 일이신가요?
아버지의 영어는 아직도 서툴다.
― 리차드야, 이분이 뭐라고 하는지 통역을 해라. 천천히 더하지도, 빼지도 말고…
― 네, 아버지.
― 어디 조용한 곳에서 말씀 좀 나눌까 해서요.
신사는 벗어든 모자로 앞을 가리며 공손한 태도로 말한다. 아버지는 오두막 앞의 오동나무 아래에 있는 간이용 플라스틱 의자로 신사를 안내한다.
― 누추해서요.
― 리차드, 차를 좀 내오렴.
신사의 공손하고 품위 있는 태도를 보아 무언가 잘못된 일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 혹시 아이들 방을 철거하라고 하는 것은 아니겠지.
리차드가 차를 내올 때까지 아버지와 신사의 대화는 멎어 있다.
― 이 일대가 상업지구로 변경된 것은 알고 계신지요?
― 네, 지난달에 카운티(County)에서 통지는 받았습니다만.
― 축하드립니다, 저우 선생님.
아버지는 생전에 처음 들어보는 「선생님」이란 말이 낯설다.
― 그냥 저우라고 불러주시면 편하겠군요.
― 저우 선생님, 이제 수고를 더실 때가 됐습니다.
신사는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며 명함 두 장을 꺼내 아버지와 리차드에게 내민다.
― 아버지, 쉘가스(Shell Gas) 회사 영업담당 이사라고 하네요.
아버지에게는 쉘가스는 무엇이고, 영업담당 이사는 무엇인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신사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남쪽과 북쪽 그리고 서쪽에서 동쪽까지 그림책을 넘기듯이 천천히 훑어본다.
아버지는 말이 없다.
― 농사일은 잘 되시는지요?
― 뭐, 그다지 어렵지는 않습니다. 마침 큰아이도 돌아와서 도와주고 있고…
신사는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면서 아버지에게서 말을 끌어 내려 애쓴다. 아버지에게도 담배를 권한다.
― 고향을 떠나올 때 끊었지요.
아버지는 거절하며 그가 속히 속내를 드러내기를 기다린다.
<추천사>
장편소설 「마지막 시가」 시리즈 1권에서 제1부에서는, 격변의 시간 속에서 저우는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가족과 땅을 지키고, 제2부에서는, 영수는 이순신과 거북선을 그리며 세상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항변하고 있다. 너무나 다른 것 같은 두 사람 삶의 모습은 묘하게 겹쳐진다. 결국 땅을 팔고 건물을 짓는 저우와 붓을 놓고 사업을 선택한 영수가 세상의 흐름에 같이 흘러가며 흥망성쇠를 모두 맞닥뜨리는 이야기는 너무나 안타깝다. 영화의 복선처럼 작가가 책 곳곳에 숨겨놓은 이 마을 해변의 전설과 조앤 할머니의 유언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가는 것도 이 책의 묘미이다. 이후 사업에 망해 미국으로 건너온 영수와 아버지 저우를 대신해 가족을 이끄는 리차드의 등장으로 이 책 시리즈 1권은 끝이 난다. 장편소설 「마지막 시가」 시리즈 2권 제3부에서 영수와 저우, 리차드가 어떤 선택을 하며 살지, 그리고 또 어떤 인물들의 다양한 삶이 그려질지 시리즈 2권을 기대해본다.
(진광열 저 / 보민출판사 펴냄 / 228쪽 / 신국판 변형(152*210mm) / 값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