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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서울 도로명의 유래
어느 나라나 각각의 도로에 명칭을 부여하고 있다. 인구 증가에 따라 도로가 많이 생기고, 이 도로들에 각각 이름을 붙인다.
서울 도로명을 통해 조선시대 이전의 역사를 되새겨 볼 수도 있다.
광복 이듬해인 1946년에 정부는 가로명제정위원회를 설치하고 일단 일제강점기 일본식 도로 명칭인 ‘○○통(通)’을 ‘○○로(路)’로 모두 변경했다. 또 이름들을 다시 지어 일제의 잔재를 지워냈다.
일제강점기 가장 번창했던 현 충무로는 일본인이 가장 번성했던 곳이기에 일본을 크게 무찌른 충무공 이순 신의 아호를 따와 충무로라 작명됐다. 본정통(本町通)을 없애고 이순신 장군의 아호를 따서 충무로라고 고쳤다. ‘본정(本町)’이란 이름은 일본에서는 그 ‘도시의 중심이 되는 곳’을 뜻하고, 통(通)은 ‘길’을 뜻한다. 본정통은 우리나라 주요 도시마다 있는 지명이다. 광주(光州)의 본정통도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김덕령의 아호를 따서 ‘충장로’라고 변경했다.
또한 일제의 명칭을 지운 대표적인 또 다른 곳이 충정로이다. 이 일대는 강화도조약 이후 처음으로 일본공사관을 현 지하철 서대문역 인근의 동명여중 자리에 세움으로써 일본의 조선 진출에서 교두보가 된 곳이다. 따라서 일제는 이 일대를 일본공사 다케조에 신이치로의 이름을 따서 다케조에마치(竹添町·죽첨정)라 했다. 따라서 이 역시 을사늑약에 분개하며 자결한 민영환의 아호를 따서 충정로라 지은 것이다.
미국대사관(왼쪽 건물)에서 정도전의 집터인 옛 종로구청을 지나 조계사 방향으로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을 기리는 의미로 그의 호를 따서 작명된 삼봉로(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조계사 앞 교차로)가 있다.
세 번째는 현 소공로이다. 이곳에 있는 황실영빈관 대관정을 당시 일본군 사령관 하세가와가 차지했을 뿐만 아니라 이 일대 지명을 자기 이름을 따서 하세가와초(長谷川町·장곡천정)라 한 것을 이곳의 옛 지명인 소공동을 지나는 길이라 하여 소공로로 바꾸었다. 이곳이 소공동인 것은 조선 태종의 둘째 딸 경정공주가 이곳으로 출가하여 작은공주골이라 불리던 것을 한자로 소공동이라 표현한 것이다.
한편 중국과 관련한 도로명은 을지로다. 이곳은 본래 을지로 1가와 2가 사이에 나지막한 고개가 있어 먼 곳에서 이곳을 보면 구리가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것 같다고 하여 ‘구리개’라 불렀는데, 일제강점기에는 이를 한자로 바꿔 ‘황금정’이라 했다. 하지만 해방 뒤 이를 을지로로 변경했다. 왜냐면 을지로3가의 수표교 일대가 화교가 한반도에 진출하며 처음 화교촌을 형성했던 곳이라 중국 수나라의 침략을 크게 물리친 살수대첩의 주인공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지하철 서대문역 일대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 처음으로 진출했던 곳이다. 이에 을사늑약으로 자결한 민영환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의 아호를 따서 충정로라 작명했다.원본보기
지하철 서대문역 일대는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때 처음으로 진출했던 곳이다. 이에 을사늑약으로 자결한 민영환을 기리는 의미에서 그의 아호를 따서 충정로라 작명했다.
이처럼 외세와 관련한 명칭이 생겨난 것과 달리 그 일대 살았던 역사적 인물을 따서 이름이 붙여진 대표적인 곳은 율곡 이이가 인사동에 거주했다고 붙여진 율곡로다. 이 밖에도 삼봉 정도전이 살았던 곳이라 하여 삼봉로(미국 대사관~조계사 교차로), 백과사전 <지봉유설>의 집필자 이수광이 살았던 지봉로(보문역~동묘앞역), 도산 안창호의 묘가 있는 곳이라 하여 도산대로(신사역~영동대교 남단)라 부르게 됐다.
또한 해당 인물이 실제 살았던 적은 없지만 그 일대 들어선 기관·학교 등의 상징성으로 지어진 도로명도 있다. 예컨대 1970년 남산 기슭에 어린이회관이 건립되고, 이듬해 어린이운동의 창시자 소파 방정환 동상도 세워지자 그 앞을 지나는 도로를 소파로라 했다. 또 서초구의 초등교사를 양성하는 서울교육대학 앞을 지나는 도로는 이율곡을 키워낸 신사임당을 따서 사임당로로 정했다. 한편 남산 소월로는 도로명 제정 당시 그 도로변에 김소월의 시비가 있다는 점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퇴계 이황과 지리적 인연은 없지만 율곡 이이를 기리는 율곡로가 생기는 상황에서 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인 퇴계 이황을 기리는 도로명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지어진 퇴계로(서울역~신당역). 사진은 퇴계로에서 가장 번화한원본보기
퇴계 이황과 지리적 인연은 없지만 율곡 이이를 기리는 율곡로가 생기는 상황에서 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인 퇴계 이황을 기리는 도로명도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 지어진 퇴계로(서울역~신당역). 사진은 퇴계로에서 가장 번화한 신세계백화점(왼쪽) 일대다.
하지만 이러한 상징적 건물이나 동상조차 없었음에도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차용한 도로명도 있다. 서울 도심을 지나는 퇴계로는 퇴계 이황의 호를 땄지만 이 도로와 이황은 아무런 인연이 없다. 이황 동상 역시 남산에 있다. 하지만 이 도로를 퇴계로라 정한 것은 해방 뒤 율곡로를 제정하며 율곡 이이와 함께 조선 유학의 양대 산맥인 퇴계 이황의 이름을 가진 도로명도 가져야 한다는 이유에서 지어졌다.
그런데 더욱 황당한 것은 원효로다. 누구나 이 명칭을 듣는 순간 원효대사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원효로는 원효대사와 아무런 인연이 없다. 이 명칭은 1946년 가로명제정위원회가 지은 이름인데 충무로, 을지로 등과 달리 어떠한 작명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굳이 그 근거를 상상해본다면 일제강점기 이 일대를 모토마치(元町·원정)라 했는데 여기서 ‘원’자와 인근 효창원의 ‘효’를 합성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혹은 당시 가로명제정위원회 팀장이던 초대 서울시장 김형민이 독실한 불교 신자였는데, 그가 불교계의 대표 인물인 원효대사를 기린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편법을 쓴 것이 아닌가 상상해본다. 서울시는 이런 비판에 대해 뒷수습하는 형태로 1969년 효창공원에 원효대사 동상을 건립했다.
정부 수립 후에는 용산구에서 마포로 이어지는 길을 한때 용산과 마포를 잇는다고 해서 용마로(龍馬路)라고 했었다. 그러나, 이 글 중간에 백범 김구 선생의 기념관이 있어서 1984년에 ‘백범로’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 도로 용마루고개가 있는데 마포구와 용산구의 경계가 된다.
테헤란로는 강남의 대표적 도로이다. 이 도로는 1972년 선정릉(선릉과 정릉)에 묘가 3개 있다고 하여 ‘삼릉로’라 지은 것을 1977년 서울시와 테헤란시(이란의 수도)가 자매결연을 하며 테헤란과 서울에 각각 서울로와 테헤란로를 작명하기로 하며 생겨난 도로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