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초석: 교회신문 > 제 1280호 물 떠난 고기는 죽을 수밖에 없다 (마13:1~9)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길가에 씨가 떨어지거나, 흙이 얇은 곳에, 혹은 가시떨기 위에 씨가 떨어지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씨가 옥토에 떨어져야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씨앗은 토양과 환경이 좋을 때 실한 열매를 맺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도 환경이 좋아야 행복하고, 성공할 수 있는데, 환경 중 으뜸은 바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사람과 일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가르침을 받느냐’에 따라 내 삶의 성취도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고, 아예 제로(0)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모세와 동행한 여호수아가 가나안에 들어가는 복을 누렸고, 야곱을 만난 라반이 부요하게 되었으며, 요셉을 만난 바로가 애굽을 위경에서 건졌을 뿐 아니라 나아가 대국으로 만들 수 있었습니다. 고아인 에스더가 사촌 오라버니를 잘 만나 왕후가 되었고, 시어머니를 잘 만난 룻이 마침내 재벌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을 볼까요. 사도 바울은 제1차 전도여행 때 실라와 디모데(행16:1)와 동역했고, 제2차 전도여행을 떠나면서는 루디아와의 만남(행16:14)을 통해 유럽 최초로 빌립보 교회를 탄생시켰습니다. 이후에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경건한 헬라인들과 귀부인들(행17:4)을 통해 데살로니가 교회를 이루고, 또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남으로 고린도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느브갓네살에게 다니엘이 있어 깨달음이 있었으며(단4), 다윗에게 나단 선지자가 있어 바른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삼하12). 디모데는 바울을 만나 훌륭한 목회자가 되었고, 엘리사는 엘리야를 만나 갑절의 능력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세벨을 만난 아합은 이세벨로 인하여 우상을 숭배하다 결국 그 피를 개들이 핥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고, 아합과 사돈을 맺은 여호사밧은 전쟁에 나가 목숨은 부지하나 생고생하고 돌아와야 했고(대하20:35~37), 역대하 21장에 기록된 대로 여호사밧의 아들인 여호람이 즉위한 후에 그의 아우들을 다 죽이는 비참한 가족사를 기록했습니다.
그렇다면 좋은 환경인 모세, 모르드개, 요셉, 바울, 다니엘, 엘리사의 공통점이 뭡니까? 그들은 바로 복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경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말씀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1:1~2). 즉,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복 있는 자가 가정에 들어오면 가정이 복을 받고, 그런 자가 회사에 들어오면 회사가 흥합니다. 그런 자와 동업하면 사업이 절로 잘 되고, 그런 자와 결혼하면 그야말로 행복이 넘치게 됩니다.
그 샘플이 바로 요셉 아니겠습니까? 요셉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한 마디로 복 있는 자였습니다. 그가 집에 있을 때 그의 가정에 복이 있었고, 그가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보디발의 집이 복을 받았으며(창39:5), 그가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 애굽이 가장 번성하고 강성케 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창47:13~26). 그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1:3)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그런 복 있는 자를 만나거든, 그런 자와 연이 닿거든 붙들고 늘어지세요. 바짓가랑이를 붙들고서라도 붙드세요. 롯이 큰 복을 받았던 것은 롯이 잘나서가 아니라 아브라함의 복이 넘쳐 함께 있던 롯에게까지 갔기 때문 아닙니까? 엘리야를 잡고 늘어진 엘리사, 시어머니 나오미를 꽉 붙잡은 룻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한시라도 빨리 그의 곁을 떠나야 할 자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말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 함이라”(고전5:11). 이런 자와는 아예 연을 맺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
하나님이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시1:4~5)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와 사업하고, 그런 자와 사귀고, 그런 자와 결혼하면 다시스로 가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던 요나의 배에 함께 있던 사람들 꼴이 됩니다. 그들은 요나 때문에 이유도 모른 채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게 되고, 안 겪어도 될 풍파를 타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누구입니까? 일천번제를 드려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귀와 영광을 받은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의 환경이 악화일로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처첩들이 그의 주위에 포진하고 있었고, 더욱이 처첩인 이방 여인들이 들여온 우상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니 솔로몬이 미끄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는 물이 점차 오염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물이 오염되면 물고기는 기형이 됩니다. 내 환경이 세상 것들로 둘러싸이면 나도 모르게 기형이 되고 맙니다. 그러니 얼른 그 환경에서 나와야 합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환경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 환경이 조금 답답할 수 있습니다. 그게 좀 좁아 보일 수 있습니다. 나만 시대에, 유행에 뒤진 것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복 받는 길입니다.
그들은 잘 나가는 것 같지만, 그들이 정말 복 받은 것 같지만, 아닙니다. 그들은 낭떠러지로 미끄러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시편 기자가 그들이 잘 나가는 것을 보고 부러워했으나 깨달은 것이 있으니 바로 이것입니다. “주께서 참으로 저희를 미끄러운 곳에 두시며 파멸에 던지시니 저희가 어찌 그리 졸지에 황폐되었는가 놀람으로 전멸하였나이다”(시73:18~19). 자고로 기형인 물고기는 다 폐기처분을 하거든요.
가끔 결혼할 상대를 데리고 인사를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상대가 예수를 믿지 않는 자일 때 저는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들은 “믿게 하면 돼요.”라고 쉽게 말하지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거든요. 제가 괜한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도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메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후6:14~17)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사업도, 결혼도 지양하라는 말씀입니다. 멍에를 같이 멨으면 지향점이 같아야 쉽게 갈 터인데, 가고자 하는 방향, 목적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앞으로 제대로 나갈 수조차 있겠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의 환경 안에 거하세요. 물 떠난 물고기는 죽습니다. 하나님 안에 평강이 있고,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 주님과 하나 되면 삶 속에서 많은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성공의 열매, 승리의 열매, 부활의 열매, 영생의 열매, 풍요의 열매, 지혜의 열매가 우리 삶에 열리게 됩니다. 나오미가 모압이라는 환경을 벗어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을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있지 않았습니까?
혹시 씨를 뿌렸는데 열매가 없습니까? 토양이 안 좋아서 그런 겁니다. 인생이 실패했습니까? 인생 전체를 실패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토양을 바꿔 씨를 뿌리면 됩니다.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 (잠13:20). 할렐루야!
물과 기름은 하나가 될 수 없다
뚝배기보다 장맛이 좋아야 한다
♣ 은혜로운 찬양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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