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합에서 나온 151만 240원!
오늘 70대 후반의 어르신에게 꾸깃한 봉투에 들어 있는 150만원과 비닐 봉지에 들어있는 천원 짜리 지폐 몇 장과 세 종류의 동전 여러 개를 받았다.
어르신은 키와 체구가 왜소하였으나 단정하였다. 눈가에 주름이 많고 피부가 검은 편이었으나 기색이 밝고 명랑하였다. 팔십에 가까운 나이에도 허리가 곳곳하였고 걸음걸이도 나보다 빨랐다. 옷차림이 우중충하지 않고 화사하였고 스카프도 멋지게 둘렀다.
어르신은 후원금 봉투를 주시면서 "제 생애에 이런 기쁜 날이 있다니 꿈 같습니다. 참으로 감사합니다. 내 인생에 이렇게 기쁜 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를 연발하며 눈시울을 훔쳤다.
봉투에 "장학금"이라는 단어가 눈에 확 들어와서 어르신께 장학금이 필요한 여러 명의 학생들을 소개해드렸더니 내가 선정해주는 학생을 무저건 후원하겠다고 하였다.
함께 차를 마시고 식사를 나누면서 3시간 동안 어르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남편이 죽은 후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거칠고 험한 일을 하며 살았다. 알콜 중독자인 남편이 남겨놓고 간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성남으로 아들 세명을 데리고 무작정 올라갔다가 덜컥 중병에 걸렸다. 그는 성남 어느 교회의 도움으로 견디다가 결국 두 아들을 보육원을 통해 외국인에게 양자로 보내고 자신은 요양소(기도원)에 들어갔다.
병이 나은 후, 그는 성남으로 돌아와서 몸으로 할 수 있는 험한 일을 다하였다. 파출부, 식당 설겆이, 폐지 줍기, 빈병 모으기, 건물 청소 등 안해 본 것이 없다고 하였다. 억척스레 빚을 갚은 그는 지친 몸을 쉬고 싶은 마음에 지방 소도시로 내려갔다. 그러나 손에 쥔 것이 없으므로 24시간 간병하는 요양보호사로 20년 세월을 병원에서 보내다시피 하였다. 덕분에 그는 작은 아파트를 마련했다며 자신의 고되었던 삶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그의 이야기에는 불평이나 원망이 한 마디도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고난과 고통의 시간을 잘 이겨냈고 외국으로 입양 간 두 아들이 믿음이 있는 양부모를 만나 훌륭하게 자랐고 다 잘 되어서 더 이상 바라는 것이 없다고 하였다.
코로나 전에 요양보호사를 그만 둔 그는 노인 일자리에 취업을 하였고 비로소 의식주 고통에서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하였다. 마음이 가볍고 자유롭고 행복해 하는 자신에게 그 동안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과 도움을 살아 있는 동안 갚자고 약속하였다. 그리고 마음 먹은 대로 집중하여 작년에 100만원을 만들었다. 그러나 마음이 여린 그는 돈이 급한 사람에게 빌려주었다가 찔끔찔끔 받는 대로 써버렸다. 그리고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 커서 몹시 화가 났다고 하였다. 그 때 그는 속이 너무 상한 나머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러나 주변의 지인에게 소개를 받은 적이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속이 아프다'는 말을 하며 담에 꼭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과 실패의 과정을 모르는 나는 "하나님께서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이미 권사님의 마음을 다 받으셨습니다. 너무 자신을 꾸짖으며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라고 위로하였다. 그러나 나는 그 때 그가 '장학금'을 만들어서 나를 찾아 올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하지 않았다.
어르신을 배웅하고 ATM에 가서 후원금을 무통장으로 입금하였다.
봉투 속에서 땀에 절은
1000원 짜리 지폐 70장,
5000원 짜리 지폐 4장,
10000원 짜리 지폐 16장,
5만원 짜리 지폐가 25장이 나왔다.
100만원을 그 분 이름으로 무통장입금을 하고 나머지 50만원은 내 이름으로 입금하고 사무실에 그분의 후원금임을 밝혔다.
비닐 봉지에 들어 있는 돈은
1000원 짜리 지폐 6장,
500원 짜리 동전 4개,
100원 짜리 동전이 20개,
50원 짜리 동전이 4개,
10원 짜리 동전이 4개 였다.
그 분이 일 년 동안 안 먹고, 안 쓰고, 안 입으면서 모은 피같은 돈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틈틈이 폐지, 공병, 프라이팬, 쇠 제품, 도토리, 밤을 주워서 팔았으니 돈은 돈이 아니고
그의 땀과 눈물과 정성이었다. 그 분의 마음이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고 세상 사람들에게 받은 사랑의 빚을 누군가에게 돌려주고 싶은 그의 절절한 사모심이었다. 그의 희망이고 꿈이었다. 그의 전부였다.
어르신이 깬 옥합에서 향유가 흘러나와 천지에 향기가 가득하였다. 그윽한 향기에 취해서 기분이 업되었다. 세상이 아름답고 거룩하게 보였다. 낙심의 기운이 사라졌다.
사랑으로 깨어진 그의 옥합이 주님의 사랑을 증언할 것이다. 세상에 위로가 될 것이다. 희망이 될 것이다.
맑은 영혼이 깨트린 그의 옥합이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낼 것이다. 하나님의 기쁨이 되며 약한 사람들에게 힘이 될 것이다.
어르신의 후원금을 두 명의 학생에게 전하기로 하였다.
어르신으로 말미암아 두 명의 학생이 진리의 빛을 보리라!
사랑의 빛을 보리라!
믿음의 길에 굳게 서리라!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주님의 음성이 귓가에 아련하다.
2024년 11월 24일 자시
우담초라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