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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5장 1-11절. 율법 문제로 최초 총회를 함
1. 사도 바울과 바나바가 성공적으로 일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 전도 여행에서 바울은 이방인도 율법이나 할례가 없이 에수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설교했습니다.
사도행전 13:38-39.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가 알 것은 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이 사람을 힘입어 믿는 자마다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이것이라.
이처럼 바울은 분명히 모세의 율법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지만,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의롭다함을 얻는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교회의 바리새파 신자들이 안디옥 교회에 와서 안디옥 교회의 이방인 신자들도 유대인 신자들처럼 할례받고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는 바울 사도의 가르침과 예루살렘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이 정반대 되는 것을 알고, 교회에 큰 분란이 일어났습니다.
실로 이 율법 문제와 할례 문제는 이방인 신자들의 신앙적 생사를 가르는 중대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를 대표해서 예루살렘 교회로 갔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로 제 1차 예루살렘 교회 총회가 열렸습니다.
여기서 율법주의 신자들은 예수 믿는 이방인도 할례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나 바울은 이방인에게 할례나 율법의 짐을 지우주어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총회장격인 야고보 장로가 중재인을 내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나 율법을 지키게 하지 말고, 다만 네 가지(우상숭배, 음행, 목메어 죽인 것, 피: 20절)를 지키게 하자고 결정했습니다.
1절.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New American Standard Bible: Some men came down from Judea and began teaching the brethren, "Unless you are circumcised according to the custom of Moses, you cannot be saved."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Καί τινες κατελθόντες ἀπὸ τῆς Ἰουδαίας,
and certain ones having come down from the Judea,
‘내려와서’(κατελθό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 확실히 내려온 과거 사건을 가리킵니다.
형제들을 가르치되
ἐδίδασκον τοὺς ἀδελφοὺς ὅτι
were teaching the brothers that
‘가르치되’(ἐδίδασκον)는 기동의 미완료과거로서(inceptive impf), 가르치기 시작해서 계속 가르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they began to teach and kept it up).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Ἐὰν μὴ περιτμηθῆτε τῷ ἔθει τῷ Μωϋσέως,
if not you are circumcised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Moses
‘할례를 받지’(περιτμηθῆτε)는 부정과거 가정법 수동태로서(you are circumcised) 확실하고 단호하게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이란 뜻입니다.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οὐ δύνασθε σωθῆναι.
not you are able to be saved
여기 ‘능히 구원받지 못하리라’(δύνασθε σωθῆναι)에서 앞의 동사는 현재형으로서(you are able) 앞의 부정어(οὐ:not)와 더불어 언제나 할 수 없다는 뜻이고, 뒤의 동사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로서(to be saved) 확실하게 구원을 받는 것을 뜻합니다.
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어떤 사람들’이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들’(행 15:5)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유대로부터 내려왔다’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왔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2.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예루살렘 교회의 바리새파 신자들이 유대로부터 안디옥 교회까지 와서 구원받는 것도 좋고 예수 믿는 것도 좋지만,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만일 할례를 받지 않고 모세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참된 신자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잘 되어가는 안디옥 교회에 율법주의자들이 와서 자기들도 메지 못했던 율법의 멍에를 지우려고 했습니다.
3.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할례를 받게 할 뿐만 아니라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하여, 기독교를 유대교로 되돌리려고 한 것입니다.
4. 왜 유대인들은 할례를 꼭 받아야 된다고 주장했을까요?
우리가 세상에서 보면,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면 사랑한다는 표로 문신을 하는 경우를 봅니다.
서로 똑같은 데다가 표를 해서 <너는 내 것이고 나는 너의 것이다>는 문신을 하는 것을 가끔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할례를 행하게 하셔서 <너는 내 것이다>라는 싸인을 하게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할례의 표가 있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자부심을 갖게 되고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5. 그러나 유대인들은 육신의 할례만 행하고 많은 우상을 숭배해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하고, 이방나라에 포로로 잡혀가서, 이방인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마음에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명기 10:16.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신명기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
로마서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예레미야 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내면을 보시고 계십니다.
정말 네 마음 깊은 곳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있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있느냐, 네 심령 깊은 곳에 예수님이 계시냐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6. 구약 때까지는 할례가 의미가 있었고 제사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속죄 제사를 완성하시고 부활하시고 난 다음에는 짐승 제사시 필요 없어졌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더 이상 육체에 할례를 받는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5:2-4.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오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탄식했습니다. (롬 7:24)
그러나 예수님이 율법을 다 이루시고, 우리가 율법을 어긴 죄를 다 속죄하였으므로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의인이냐 죄인이냐를 묻지 않으십니다.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를 물으십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한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다시 부활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바나바와 바울이 목회하는 안디옥 교회는 이 복음 신앙에 굳게 섰습니다>가 설립되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 신자들이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참된 구원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은 큰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들을 것인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율법주의 신자들의 말을 들을 것인가?
2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when Paul and Barnabas had great dissension and debate with them, the brethren determined that Paul and Barnabas and some others of them should go up to Jerusalem to the apostles and elders concerning this issue.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γενομένης δὲ στάσεως καὶ ζητήσεως οὐκ ὀλίγης τῷ Παύλῳ καὶ τῷ Βαρνάβᾳ πρὸς αὐτοὺς,
Having been brought about then commotion and discussion no small by the Paul and the Barnabas with them
‘일어난지라’(γενομένη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been brought about) 다툼과 변론이 많이 일어난 과거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형제들이--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보내기로 작정하니라.
ἔταξαν ἀναβαίνειν Παῦλον καὶ Βαρνάβαν καί τινας ἄλλους ἐξ αὐτῶν
they appointed to go up Paul and Barnabas and certain others out of them
‘작정하니라’(ἔταξαν)는 부정과거로서( they appointed) 확실하게 작정한 것을 가리킵니다.
‘보내기로’(ἀναβαίνειν)는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go up) ‘올려 보내기로’란 뜻입니다.
이 문제에 대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πρὸς τοὺς ἀποστόλους καὶ πρεσβυτέρους εἰς Ἱερουσαλὴμ περὶ τοῦ ζητήματος τούτου.
to the apostles and elders in Jerusalem concerning the question this
1.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선교 여행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을 전하고, 놀라운 부흥과 기적을 체험했고 이방인 교회들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 교인들이 안디옥 교회에 찾아와서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주고 유대인의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 지도자들인 바울 바나바와 예루살렘 율법주의자들 간에 적지 않은 다툼이 생겼습니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기독교의 가장 본질에 대한 문제였고, 이방인 교회의 존폐가 달린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진리 문제에 있어서는 위대한 바울이나 바나바도 양보하지 않고, 목숨 걸고 싸웠습니다.
예수님이나 바울은 진리 문제에 있어서는 단호하게 저항하고, 항거했습니다.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을 통해서 설립한 갈리디아 교회에 동일한 율법주의가 침투하자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아주 격렬하게 율법주의를 타도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1-6.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과연 헛되냐.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의 일이 율법의 행위에서냐 혹은 듣고 믿음에서냐.
갈라디아서 5ㅣ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2.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1) 그래서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이 문제를 예루살렘 교회에 보고하고, 교회 회의에서 지침을 결정해주도록 안디옥 교회의 대표자로 바나바와 바울과 몇 사람을 총대로 파송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즉 가룟 유다와 야고보를 제외한 10 사도들이 있었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같은 장로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2) 처음에 예루살렘 교회는 모든 교회를 지도 감독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립의 전도로 사마리아 지방에 교회가 설립되었을 때, 예루살렘 교회는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해서 사마리아 교회를 지도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안디옥 교회 사건이 발생했을 때도 예루살렘 교회가 지도적 위치에서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습니다.
3절.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refore, being sent on their way by the church, they were passing through both Phoenicia and Samaria, describing in detail the conversion of the Gentiles, and were bringing great joy to all the brethren.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Οἱ μὲν οὖν προπεμφθέντες ὑπὸ τῆς ἐκκλησίας
they indeed therefore having been sent forward by the church
직역하면 ‘그러므로 그들이 교회에 의해서 전송을 받고’란 뜻입니다.
‘전송을 받고’(προπεμφθέντες)는 부정과거 분사 수동태로서(having been sent forward) 여행을 위한 음식이나 돈 같은 것들의 편의를 제공받은 것을 가리킵니다(to help on one’s journey with food, money ets).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διήρχοντο τήν τε Φοινίκην καὶ Σαμάριαν
were passing through the both Phoenicia and Samaria,
‘다니며’(διήρχοντο)는 미완료과거로서(were passing through) 계속 통과해 다니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ἐκδιηγούμενοι τὴν ἐπιστροφὴν τῶν ἐθνῶν,
relating in detail the conversion of the gentiles
직역하면 ‘이방인들의 회심을 자세히 말하며’란 뜻입니다.
‘말하여’(ἐκδιηγούμενοι)는 현재분사로서(relating in detail) 계속 자세히 설명하면서 말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καὶ ἐποίουν χαρὰν μεγάλην πᾶσιν τοῖς ἀδελφοῖς.
and they were bringing joy great to all the brothers
직역하면 ‘그들이 큰 기쁨을 모든 형제들에게 주었다’는 뜻입니다.
‘주었다’(ἐποίουν)는 미완료과거로서(they were bringing) 계속 기쁘게 한 것을 가리킵니다.
1. 그들이 교회의 전송을 받고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 성도들에게서 잘 다녀오라고 전송을 받았습니다.
이 때 전송을 받는 것은 여행을 위해서 음식이나 돈을 마련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to help on one’s journey with food, money ets).
당시에 각 지방을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순회전도자들’(itinerant preachers)도 각 지교회들에서 숙식을 제공받고 또 떠날 때는 여행 채비를 제공받곤 했습니다.
2. 베니게와 사마리아로 다니며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교회에서 남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머나먼 약 500km의 긴 여행을 했습니다.
베니게는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서 이미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설립되어 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1:19.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그리고 더 남쪽의 사마리아 지방은 빌립 집사의 전도와 베드로 요한의 방문으로 교회들이 굳게 서 있었습니다. (행 8장)
3. 이방인들이 주께 돌아온 일을 말하여
바울과 바나바는 이 베니게 교회들과 사마리아 교회들을 들러서 자신들의 1차 선교 여행을 통해서 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교회들이 많이 설립된 것을 보고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선교 보고를 한 것과 같습니다.
뿐만 아니라 바울과 바나바의 이런 선교 보고는 이방인 지역 교회들이 순전히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써만 구원받는 순수 복음 신앙을 굳건하게 다지는 역할을 했습니다.
4. 형제들을 다 크게 기쁘게 하더라.
바울과 바나바의 순수한 복음 신앙과 그로 인한 이방인들의 구원 소식은 베니게 교인들과 사마리아 교인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습니다.
바리새적 율법주의는 사람을 얽매고 노예처럼 억압하기 때문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순수 복음은 성령님의 은혜가 있어서 큰 기쁨을 줍니다.
로마서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4절. 예루살렘에 이르러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New American Standard Bible: When they arrived at Jerusalem, they were received by the church and the apostles and the elders, and they reported all that God had done with them.
예루살렘에 이르러
παραγενόμενοι δὲ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Having come then to Jerusalem
‘이르러’(παραγενόμενοι)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come) 확실히 도착한 과거의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παρεδέχθησαν ἀπὸ τῆς ἐκκλησίας καὶ τῶν ἀποστόλων καὶ τῶν πρεσβυτέρων,
they were welcomed by the church and the apostles and the elders,
‘영접을 받고’(παρεδέχθησα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they were welcomed) 확실하게 영접을 받은 과거의 분명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ἀνήγγειλάν τε ὅσα ὁ Θεὸς ἐποίησεν μετ’ αὐτῶν.
They reported then all that the God did with them
직역하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모든 것을 그들이 보고했다’는 뜻입니다.
‘말하매’(ἀνήγγειλάν)는 부정과거로서(They reported) 확실히 보고했다는 뜻입니다.
‘행하신’(ἐποίησεν)은 부정과거로서(did) 과거에 확실하게 행하신 틀림없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1. 교회와 사도와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고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 교인들과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영접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이란 예루살렘 교회가 공적인 모임을 갖고, 공식적으로 안디옥 교회의 대표자들이 바나바와 바울을 환영했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처음에 공적인 모임에서는 이방인의 할례나 율법 문제가 의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2. 하나님이 자기들과 함께 계셔 행하신 모든 일을 말하매
바울과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대표자로서 안디옥 교회의 공식적인 문안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 여행을 통하여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구브로와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와 더베에 교회가 설립된 일들을 보고 했습니다.
즉 구브로에서 박수 엘루마가 눈 봉사가 된 것과,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온 성 사람들이 복음을 들은 것과, 이고니온에서 하나님이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해주신 것과, 루스드라에서 앉은뱅이가 살아나고 바울이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난 것과, 더베 사람들이 많이 예수님을 믿고 제자 된 것들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핍박했던 것도 말했고, 교회에 장로들을 세워서 조직 교회로 만든 것도 말했습니다.
3. 베자 사본(D)에는 ‘이방인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했다’가 구체적으로 첨부되어 있습니다.
이 문구는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 1차 선교 보고를 할 때 말한 내용입니다.
사도행전 14:27. 그들이 이르러 교회를 모아 하나님이 함께 행하신 모든 일과 이방인들에게 믿음의 문을 여신 것을 보고하고
5절.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말하되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some of the sect of the Pharisees who had believed stood up, saying, "It is necessary to circumcise them and to direct them to observe the Law of Moses."
바리새파 중에 어떤 믿는 사람들이 일어나
Ἐξανέστησαν δέ τινες τῶν ἀπὸ τῆς αἱρέσεως τῶν Φαρισαίων πεπιστευκότες,
Rose up now certain of those of the sect of the Pharisees who believed
‘일어나’(Ἐξανέστησαν)는 부정과거로서(Rose up) 벌떡 일어난 모습을 가리킵니다.
말하되.
λέγοντες ὅτι
saying that
‘말하되’(λέγοντες)는 현재분사로서(saying) 계속 말하는 모습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에게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라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δεῖ περιτέμνειν αὐτοὺς, παραγγέλλειν τε τηρεῖν τὸν νόμον Μωϋσέως.
It is necessary to circumcise them, to command [them] then to keep the law of Moses
직역하면 ‘그들에게 할례를 행하고, 그 후에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그들’(αὐτοὺς, them)이란 한글 번역처럼 이방인 신자들을 가리키는데, 바울과 함께 동행했던 디도처럼 예수님을 믿지만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Linguistic Key.
‘할례를 행하고’(περιτέμνειν)는 현재 부정사형으로서(to circumcise) 언제나 할례를 행하는 것을 가리키고, ‘지키라’(τηρεῖν)도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keep) 언제나 지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명하는 것이’(παραγγέλλειν)도 현재 부정사형 동사로서(to command) 항상 명하는 것을 가리키고, 이것은 군사적인 용어인데(orders of military commander), 맨 앞의 동사(δεῖ)와 연결되어 할례를 행하고 모세 율법을 지키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마땅하다(δεῖ)는 현재형으로서(It is necessary) 언제나 마땅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바울과 바나바가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 것과, 교회가 설립되어 장로들을 세운 것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때 바리새인파 중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들이 일어나서, 이방인 신자들에게 유대인들처럼 할례를 받게 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예수 믿은 이방인에게 할례나 율법준수가 필요없다고 주장했고, 율법주의 유대인 신자들은 이방인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율법도 지키게 해야 한다고, 많은 논쟁과 토론이 계속되었습니다.
2.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설립할 때, 불신 유대교인들이 말할 수 없는 핍박과 방해를 했습니다.
그래서 복음 전도를 못 하게 만들고, 사람들이 못 믿게 만들고, 바울에게 돌을 집어던지고, 권력자들을 선동해서 성에서 쫓아냈습니다.
이처럼 유대교와 기독교는 병립할 수 없는 적대관계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의 방해꾼이 예루살렘 교회 안에 있었습니다.
소위 예수님을 믿지만 유대교식으로 믿는 ‘율법주의자들’(legalistic christians)
1960년대에는 우리나라도 예수님을 믿었어도 과거에 유교를 버리지 못하고 교회 안에 유교식 율법주의를 가르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맨날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이 십일조 해라, 주일성수 해라, 우상숭배 하지 말라, 이런 율법 조항들만 설교한 율법주의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었어도 과거에 무당주의를 버리지 못하고, 신비주의로 믿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또 과거에 미륵불교와 천도교인들처럼, 예수님을 믿었어도 자꾸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서 예수님이 언제 재림한다는 주장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동학교인들처럼 산속 기도원에 모여 신앙촌처럼 합숙 생활 하려고만 하고, 자기가 정도령처럼 재림한 예수라고 주장하면서 새 나라를 이룩하려고 하니까, 재산을 다 바치고 목숨까지 바치라고 하는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 율법주의자들처럼 과거에 비기독교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었어도 성경적인 기독교인이 되지 못하고, 유대교적 비기독교 문화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중생의 체험을 할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과 성령님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2. 예루살렘 교회의 율법주의자들은 아마 안디옥 교회에 가서 할례와 율법으로써 말썽을 일으켜서 교회를 분란하게 만들었다가, 다시 예루살렘 교회로 돌아와서,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 개종과 이방인 교회 설립을 말하자, 즉각적으로 일어나서 바울과 바나바의 말을 반대하고, 다시 이방인 할례와 율법 준수를 주장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따라온 이방인 디도도 할례를 받게 하고,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디도에게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2:1-3. 십 사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노니, 계시를 인하여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저희에게 제출하되 유명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 하는 것이나 달음질 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라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아니하였으니
3. 바울은 원래 누구보다도 철저한 바리새인이었는데(빌 3:5), 이런 바리새적 율법주의에서 벗어나는데는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극적인 변화를 체험했고, 그 후에 아라비아와 다소에서 13년의 수련생활을 통해서 오랜 기간에 걸쳐서 신학적인 변화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신자가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순간적이지만, 오랜 불신앙의 악습에서 벗어나는 것을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4. 율법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선한 것이지만, 율법의 기능은 사람이 죄인인 것을 깊이 깨닫게 하고, 그래서 예수님을 간절히 찾고 믿게하는 가정교사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일단 예수님을 믿은 후로는 성령님과 성경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중요하고, 사람을 얽어매는 율법주의나 제사 행위는 탈피해야 합니다.
6절.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New American Standard Bible: The apostles and the elders came together to look into this matter.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Συνήχθησάν τε οἱ ἀπόστολοι καὶ οἱ πρεσβύτεροι ἰδεῖν περὶ τοῦ λόγου τούτου.
Were gathered together then the apostles and the elders to see about the matter this
직역하면 ‘그리하여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일을 알아보려고 모였다’는 뜻입니다.
‘의논하러’(ἰδεῖν)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인데(to see) 확실하게 알아보려고 한 것을 가리킵니다.
‘모여’(Συνήχθησάν)는 부정과거 수동태로서(Were gathered together) 속히 다 모이도록 소집된 것을 가리킵니다.
1.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인 것’은 소위 예루살렘 총회입니다.
오늘날 노회로 목사와 장로가 모이는 것이나 총회로 각 노회 총대들이 모이는 것과 같습니다.
AD 50년(많은 학자들은 49년이라고 함)에 모인 예루살렘 총회가 율법주의 문제로 모인 것입니다.
안건은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고 율법을 지키도록 할 것이냐 말 것이냐 문제였습니다.
2. 안디옥 교회에서 이 문제로 싸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의 총대로 바울과 바나바가 참석했고, 예루살렘 교회에서도 사도들과 장로들이 총대로 모였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가 이방인의 회심과 교회들이 설립된 것과 장로들을 세운 것과 표적과 가사가 일어난 것을 말하자, 안디옥 교회에 와서 말썽을 피우고, 교회를 시끄럽게 했던 율법주의 신자들이 일어나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주고 율법을 지키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3. 이런 중요한 회의는 모든 성도들이 참석하지 않고 교회의 총대들이 모여서 의논했습니다.
일반 성도들은 이런 회의에 참석하면, 시험에 들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때는 심각하게 싸우고 대결을 하기 때문입니다.
단지 12절과 22절을 볼 때, 일반 교인들은 방청객으로서 모두 참여한 것 같습니다.
직접 회의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주재했고요.
초대 니케야 회의 때(325-787년)는 삼위일체 논쟁으로 수백 년 동안 회의를 하면서 여러 사람들을 이단으로 정죄하기도 했습니다.
7절.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fter there had been much debate, Peter stood up and said to them, "Brethren, you know that in the early days God made a choice among you, that by my mouth the Gentiles would hear the word of the gospel and believe.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Πολλῆς δὲ ζητήσεως γενομένης
of much now discussion having taken place
‘있은 후에’(γενομένη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taken place) 아주 많은 변론이 있은 것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ἀναστὰς, Πέτρος εἶπεν πρὸς αὐτούς
having risen up, Peter said to them
‘일어나’(ἀναστὰ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risen up) 베드로가 분연히 일어난 것을 가리킵니다.
‘말하되’(εἶπεν)는 부정과거로서(said) 단호하고 확실하게 말한 것을 가리킵니다.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Ἄνδρες ἀδελφοί, ὑμεῖς ἐπίστασθε ὅτι
men brothers, you know that
‘너희가’(ὑμεῖς you)가 강조되어 있습니다.
‘알거니와’(ἐπίστασθε)는 현재형으로서(know) 계속 알고 있다는 뜻인데, 이 동사는 익숙히 알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be acquainted with).
하나님이---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ἀφ’ ἡμερῶν ἀρχαίων ἐν ὑμῖν ἐξελέξατο ὁ Θεὸς
from days early among you chose the God
‘나를’이란 단어가 원문에는 없으나, 의미상 첨가한 옳은 번역입니다.
‘택하시고’(ξελέξατο)는 부정과거로서(chose) 단호하게 택하신 역사적인 사실을 가리킵니다.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διὰ τοῦ στόματός μου ἀκοῦσαι τὰ ἔθνη τὸν λόγον τοῦ εὐαγγελίου καὶ πιστεῦσαι.
by the mouth of me to hear the gentiles the word of the gospel and to believe
‘들어’(ἀκοῦ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으로서(to hear) 확실히 듣는 것을 가리키고, ‘믿게 하시려고’(πιστεῦσαι)도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lieve) 확실하게 믿게 하시려는 것을 가리킵니다.
1.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요즘에 노회를 할 때도 중요한 안건이 대두되면, 몇 시간도 논쟁하면서 회의를 하곤 합니다.
그래서 많은 총대들이 의견들을 말하고, 다 들어본 후에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물론 합의가 안 되면, 표 대결로 결의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초대 예루살렘 총회도 결론을 내기 전에 많은 변론이 있었습니다.
2. 베드로가 일어나 말하되
여기서 베드로가 <형제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라고 말한 것은 고넬료 집 구원 사건을 말하려고 한 것입니다.
즉 베드로가 사도행전 10장에서 이방인 고넬료 집에 가서 전도하고 세례 주고 오니까, 그 때도 사도행전 11장에서 예루살렘 교인들이 베드로가 이방인의 집에 가서 함께 먹었다고 정죄하고 치리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자세히 설명하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이방인에게도 구원받는 믿음을 주셨는가보다’라고 인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과거 자기의 경험을 말하면서, 전에도 예루살렘교회 율법주의자들이 베드로를 정죄하려다가 하나님의 역사인 줄 알고 인정해준 것처럼, 하나님이 바울과 바나바를 사용해서 이방인에게 구원을 주시고 교회를 설립했으니까, 이방인 성도들에게 할례나 율법을 강요하지 말라고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3. 하나님이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 오래 전부터 너희 가운데서 나를 택하시고
(1) 여기서 베드로가 이방인에게 할례나 율법을 강요하지 말라고 주장한 발언은 굉장한 무게감을 주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는 사도들 중에 수사도였고, 지금까지 예루살렘 교회를 주도적으로 지도했던 인물일 뿐만 아니라, 베드로 자신이 할례받고 율법을 지켰던 사람으로서 유대인 신자들의 우두머리였기 때문입니다.
그런 베드로가 유대인편이나 할례나 율법주의 편을 들지 않고, 바울의 편을 들어서 이방인에게 할례나 율법을 강요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유대인 율법주의 신자들이 주장을 단호하게 꺾어버렸던 것입니다.
(2) 여기서 ‘이방인들로 내 입에서 복음의 말씀을 들어 믿게 하시려고’란 베드로가 이방인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서 복음을 전해서 고넬료 집 사람들과 친구들이 많이 예수님을 믿은 사실을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10:30-33. 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
8절.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언하시고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God, who knows the heart, testified to them giving them the Holy Spirit, just as He also did to us;
또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증언하시고
καὶ ὁ καρδιογνώστης Θεὸς ἐμαρτύρησεν αὐτοῖς
and the heart-knowing God bore witness to them
직역하면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증언하셨다’는 뜻입니다.
‘증언하시고’(ἐμαρτύρησεν)는 부정과거로서(bore witness) 확실하게 증언하신 것을 가리키고, ‘확증하고 동의하신 것’(confirmation and approval)을 가리킵니다.
우리에게와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어
δοὺς τὸ Πνεῦμα τὸ Ἅγιον, καθὼς καὶ ἡμῖν,
having given [them] the Spirit the Holy, as also to us
‘그들에게도’란 단어가 원문에는 없으나, 의미상 첨가한 것입니다.
‘주어’(δοὺ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given)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확실하게 성령을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1. 유대인 신자들에게만 성령을 주신 줄 알았는데 이방인에게도 성령을 주셨다고 했습니다.
사도행전 10:44-46.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1) 이것은 굉장히 놀라운 일입니다.
베드로는 사도행전 11장 15-18절에서 이방인 고넬료 가족도 성령받았다고 하니까, 율법주의자들이 ‘그러면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다’고 인정했습니다.
이처럼 성령 받는 것은 참된 신자임을 확증해주는 증거였습니다.
(2) 성령님은 영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예수님으로 오신 것처럼, 예수님이 영의 모습으로 오신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성령님(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계 3:20)
그런데 이 성령님을 유대인만 체험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도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동등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 받으면 참된 회개와 거듭남과 참된 하나님의 자녀됨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예수님이 성령으로 교회의 성도들을 통치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9절.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and He made no distinction between us and them, cleansing their hearts by faith.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καὶ οὐθὲν διέκρινεν μεταξὺ ἡμῶν τε καὶ αὐτῶν,
and not one He made distinction between us both and them
직역하면 ‘그가 우리와 그들 간에 하나도 차별하지 않으셨다’는 뜻입니다.
‘차별하지 아니 하셨느니라’에서 동사(διέκρινεν)는 부정과거로서(He made distinction) 전혀 차별하지 않으신 것을 가리킵니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τῇ πίστει καθαρίσας τὰς καρδίας αὐτῶν.
by the faith having purified the hearts of them
‘깨끗이 하사’(καθαρίσας)는 부정과거 분사로서(having purified) 완전히 깨끗이 해버리신 것을 가리키고, 여기 분사는 ‘인과관계나 설명’(causal or explanatory)을 뜻합니다.
1.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마음을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전혀 차별이 없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믿음을 주셔서 유대인과 똑같이 깨끗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믿음’이란 예수님(성령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어떤 사람은 "일제 36년을 생각하면 일본 사람들은 예수 좀 안 믿었으면 좋겠어요. 6.25를 일으킨 북한은 멸망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합니다.
바로 예루살렘 교회 유대인 성도들이 이런 못된 집단적 이기주의에 빠졌던 것입니다.
2.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예수님을 믿어서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심으로써, 그들의 마으을 똑같이 깨끗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이면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을 전혀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헬라인이나 야만인의 차별이 전혀 없다고 여러 번 선언했습니다.
로마서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골로새서 3:11.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갈라디아서 3:28.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10절.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New American Standard Bible: "Now therefore why do you put God to the test by placing upon the neck of the disciples a yoke which neither our fathers nor we have been able to bear?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νῦν οὖν, τί πειράζετε τὸν Θεόν,
now therefore, why are you testing the God
‘시험하여’(πειράζετε)는 현재형으로서(are you testing) 계속 시험하고 있는 것을 가리킵니다.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ἐπιθεῖναι ζυγὸν ἐπὶ τὸν τράχηλον τῶν μαθητῶν,
to put york on the neck of the disciples
‘두려느냐’(ἐπιθεῖν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put) 완고한 의지로 두려고 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ὃν οὔτε οἱ πατέρες ἡμῶν οὔτε ἡμεῖς, ἰσχύσαμεν βαστάσαι;
that neither the fathers of us nor we, have been able to bear?
맨 마지막 두 단어 중에서 앞의 동사(ἰσχύσαμεν)는 부정과거로서(have been able) 부정사(οὔτε)와 더불어 과거에 확실히 할 수 없었던 사실을 가리키고, 뒤의 동사(βαστάσαι)는 부정과거 부정사형 동사로서(to bear) 부정사(οὔτε)와 더불어 과거에 조상들이나 우리가 그 멍에를 도무지 메지 못했던 확실한 사실을 가리킵니다.
1. 그런데 지금 너희가 어찌하여 하나님을 시험하여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그런데, 율법주의자들은 하나님을 시험해서 이방인에게 율법을 지키게 하려고 했습니다.
율법은 유대인도 지키지 못한 것인데, 율법주의자들이 이것을 잘 알면서도 이방인에게 율법의 멍애를 씌워서 시험하려고 했다는 뜻입니다.
2.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두려느냐?
‘멍에’는 소의 목에 걸어두어서 주인이 소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려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주의자들은 이방인 신자들에게 율법이란 멍에를 매어두어서, 자기들 마음대로 이방인 신자들을 부려먹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악랄한 속샘이었습니다.
마치 이방인 신자들을 율법주의자들의 노예로 삼으려는 악한 속샘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을 ‘종의 멍에’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5:1-4.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3.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할례와 율법 준수는 유대인들과 유대인의 조상들도 못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의 조상들도 율법을 어기고 우상숭배 하여 이방 나라에 포로가 되어 종노릇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방인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려고 하느냐는 것입니다.
율법은 있어야 하지만 어떤 인간도 율법을 다 못 지킵니다.
예수님께서는 형제를 가리켜 미련한 놈이라고 했다면 살인한 것과 똑 같다고 말했습니다. (마 5:22)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은 자는 이미 간음한 자와 똑같다 그랬습니다. (마 5:28)
그러니 누가 율법을 피해갈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아브라함도 못 하고, 유대인들도 못 하고, 우리도 못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방인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냐는 말입니다.
내가 실수하면 다른 사람도 실수할 수 있다고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율법으로 남의 목에 멍에를 매고,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마태복음 7:1-3.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의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게 될 것이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11절.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New American Standard Bible: "But we believe that we are saved through the grace of the Lord Jesus, in the same way as they also are."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받는 줄을 믿노라 하니라.
ἀλλὰ διὰ τῆς χάριτος τοῦ Κυρίου Ἰησοῦ, πιστεύομεν σωθῆναι καθ’ ὃν τρόπον κἀκεῖνοι.
but by the grace of the Lord Jesus, we believe to be saved, in (the) same manner (as) they also
직역하면 ‘그러나 주 예수의 은혜로, 그들도 동일하게 구원받는 것을 우리가 믿는다’는 뜻입니다.
‘구원받는 줄’(πιστεύομεν)은 부정과거 부정사형 수동태 동사로서(to be saved) 확실하게 구원받는 것을 가리킵니다.
‘믿노라’(πιστεύομεν)는 현재형으로서(we believe) 항상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1. 베드로가 한 말의 결론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이다.’
은혜란 율법 행위와 같은 인간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고, 거저 값없이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받는 것을 말합니다.
2. 이처럼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진리는 베드로와 바울이 아주 일치하는 신앙 사상입니다.
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로마서 4:4-6.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에베소서 2:5.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율법과 할례가 더 필요한 것이 아니고,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 완전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가 공짜로 은혜로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나 성경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멍에를 지우지 않기를 바랍니다.
마태복음 7장 3절에는 자기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다른 사람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라는 말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절대 남 고치려고 맘을 먹지 마십시오.
남편 고칠 생각을 말고, 아내를 고칠 생각을 마십시오.
그를 만드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율법 조항에 얽매어 자신도 괴롭고 다른 사람도 정죄하는 생활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고 성령 충만하여 날마다 주님 모시고, 주님의 은혜로 모든 일을 복되게 이루어가는 행복한 생활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