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호박
손 원
나는 단호박을 좋아한다. 달고도 파삭한 전분이 밤 맛과도 같아서다. 동네 수퍼만 가도 쉽게 구입 할 수가 있고, 한 두개 사다가 삶으면 요긴한 간식꺼리가 된다. 단호박은 담장에 심는 호박과는 크기, 맛 등에서 확연히 차이가 난다. 호박과 단호박은 씨도 비슷하고 특히 줄기와 잎은 구별하기 조차 어려울 정도로 비슷하지만 그 열매는 확연히 다르다. 두 종류 모두 애호박 때는 연두색으로, 그냥 호박이 익으면 황색의 바가지 만큼이나 큰 늙은호박이 되지만, 단호박이 익으면 진녹색으로 크기도 밥공기 정도로 작을 뿐만아니라 워낙 단단하여 식칼로 토막내기도 싶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맛의 차이가 크다. 두 종류의 잘 익은 호박을 푹 삶으면 단호박은 밤 같은 식감과 꿀처럼 당도가 높고, 호박은 달기는하나 물렁하고 덤덤해서 그냥 먹기는 그저 그렇다. 그래서 호박죽을 쑤든지 호박전을 붙혀 먹는 경우가 많다. 어느 것이 더 양질인가는 용도에 따라 다르기에 언급 할 여지는 없지만 간식용으로는 단호박인 것 같다.
마트의 진열장에는 오래 전부터 뉴질랜드산 단호박이 흔해서 가끔 사먹었으나 근년에는 국산 단호박도 같이 진열되고 있다. 국산 단호박을 발견하고 기쁜 마음으로 구입하여 삶아보니 물렁하고 맛도 떨어졌다. 그래서 나는 뉴질랜드산 단호박을 선호하고있다.
다 같은 호박이기에 파종시기는 4월로 동일하다. 올 해는 뉴질랜드산 단호박씨를 준비했다. 공들이지 않고 마트에서 산 한덩이 단호박 속의 씨앗이다. 외국산 식물 씨앗을 그대로 심는 경우는 흔치않아 긴가민가 하면서 시험 해 보기로 했다. 국내 적응이 안 된 외국산 단호박씨를 심으면 어떻게 될까 궁금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파종을 했다. 넉넉한 양을 파종을 했기에 호박과 단호박 수 십 포기의 모종을 확보했다. 모종이 튼튼하게 자랐고 파종할 땅도 많아 모종 모두를 본밭에 옮겨 심었다. 지나친 욕심으로 많은 수량을 심은 듯 했으나 올 가을에 넘치도록 많은 호박을 딴다면 이웃에 선심이라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많은 수확을 기대했다.
호박은 많은 포기를 심기 보다는 수량을 적게 하더라도 퇴비를 많이하면 줄기가 무성해져 많은 양을 수확할 수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초보 농사꾼인지라 많은 포기를 심긴 했지만 퇴비를 적게 하니 줄기가 충분히 뻗지 못하여 호박도 적게 달렸다. 게다가 김메기도 소홀히 하여 잡초밭이 되었고, 우거진 잡초 속에 그나마 달린 호박도 대부분 짓물러 떨어졌다. 단호박도 마찬가지였다.
뒤늦게 잡초 속을 뒤져보니 고맙게도 늙은 호박이 어느정도는 눈에 띄였다. 그 중에 단호박도 제법 있었다. 수입 단호박에서 적출한 씨에서 수확한 단호박이다. 마트진열상품보다 훨씬 컸고 모과처럼 못생겼다.
기후와 토양이 다른 환경에서 수확한 외국산 단호박이라 기대를 아예 하지않았기에 아니면 버리자는 생각을 했다. 못생긴 단호박이지만 맛은 어떨까 궁금했다. 이튿날 아내는 찜솥에 단호박 몇 개를 삶았다고 맛을 보라고 했다. 맛을 본 순간 대만족이었다. 마트에서 구입한 뉴질랜드산 단호박과 거의 같았다. 전분이며 당도가 그대로인 것 같았고 식감도 좋았다. 단호박 두 박스를 땄는데 성공적이어서 뿌듯했다. 이번에는 단호박 재배를 알뜰히 하지 않아 다수확을 못한게 아쉬웠다. 내년에는 보다 많이 심어 다수확을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그 밭에 아버님은 온갖 밭작물을 경작하셨다. 산짐승이 들새라 간이 울타리도 꼼꼼히 손봐서 그런대로 작물을 재배하셨다. 내가 이어 받아 다소 소홀히 한 까닭에 허술한 울타리를 뚫고 산돼지, 고라니가 작물을 노리기 시작했다.
올 해는 일부작물을 망쳤다. 고구마와 옥수수는 수확을 며칠 앞두고 산돼지가 들이닥쳐 흔적도 없이 먹어치운 것이다. 하지만 호박은 피해가 없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산짐승 피해가 적은 작물을 심기로 했다. 마늘, 들깨, 호박, 고추는 피해가 없거나 있어도 경미한 정도다. 내년 부터는 단호박을 많이 심을 생각이다. 올해 무 배추가격이 고공행진을 했는데 작황이 괜찮아 김장을 하고도 남아 이웃에 선심을 쓰기도 했다. 내년에는 단호박 농사를 잘 지어 이웃들에게 나눠 주고 싶다.
올 해 단호박 수확량이 적었지만 이웃에 몇 개 씩 나눠 주었는데 무척 좋아했다. 국산이라며 그러려니 했는데 막상 먹어보니 뉴질랜드산 같다고 했다. 마트에서 사먹은 외국산 단호박에서 적출한 씨를 그대로 파종해도 될 것 같았다. 초보농사꾼의 경험을 다른 사람과 공유해 볼 생각이다.
작황은 안 좋았지만 호박을 많이 심은 덕에 늙은 호박을 제법 따서 창고에 보관 해 두었다. 아내는 수시로 한 덩이씩 가져다 호박전을 구워낸다. 식구들 모두가 잘 먹어 겨울철의 별미가 되고 있다. 단호박을 다 먹고 나니 내년 농사가 기다려진다.(2021. 12. 14.)
첫댓글 코로나 사태로 외출 하기도 꺼려지는 때에 텃밭을 가꾸며 유유자적 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입니다. 저도 한 때는 제법 많은 과수 농사를 지으며 간작으로 각종 채소를 재배한 경험이 있습니다. 한 여름 땀흘려 지을땐 힘들지만 추수 할때의 기쁨은 최상입니다. 경제적 유 불리를 떠나 뿌린데로 거둔다는 자연의 신비가 경이롭다 할까?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