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많이도 내렸다. 이 나라의 날씨도 국민성을 닮는가 보다. 모 아니면 도이다. 중간적인 태도가 실종된 듯 하다. 봄철에 그토록 가뭄을 일으키더니 한 번 오니까 걷잡을 수 없이 퍼붓는다. 그동안 어디에 가 있었는지. 그리고 요즘은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이 극심한 반대현상을 보이고 있다. 중부는 폭우에 남부는 폭염에 그리고 남부에서는 가뭄으로 아직껏 모내기도 못한 곳도 존재한다고 한다. 극과 극을 오고 가는 상황이다.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며칠새 가공할 집중호우가 퍼부었다. 이틀동안 500mm란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엄청난 폭우속에 선진국대열에 올랐다는 한국의 민낯이 여기저기서 드러나기 시작했다. 한국 수도 서울에서 최고로 비싸다는 서울 강남역 일대는 바다가 됐다. 차들이 둥둥 떠다닌다. 시민들은 가슴까지 차오르는 도로를 지나 위험을 무릅쓰고 귀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자칫 감전사고가 나면 어쩔까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그야말로 금싸라기라는 그곳에도 여지없이 폭우는 들이닥치고 있었다. 쓰레기는 떠 다니고 한 대에 수억원한다는 외제차가 힘도 못쓰고 일엽편주 신세가 되고 만 것이다. 공무원들은 어디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500mm이상 대폭우가 온다고 이미 며칠전부터 예보가 되었는데도 말이다. 그냥 하늘에서 퍼부은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곳에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대통령의 집이 있다. 대통령은 퇴근해서 집으로 가는데 이미 조금씩 침수가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대통령은 차를 돌리지 않았다. 집무실이나 중대본으로 가야하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냥 집에서 전화로 지시했다고 한다. 알려진 주된 지시사항은 다음날 출근시간을 오전 11시로 늦추라는 것이었다.
같은 시간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도 험한 폭우 강물이 밀어닥쳤다. 두 자매와 어린 딸은 밀려드는 물을 빠져나가려 출입문을 열었지만 워낙 많은 물이 한꺼번에 지하로 들이닥치니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다급히 119에도 연락했지만 당시 500건 이상의 신고가 몰리는 바람에 연결이 되지 못했다. 서울 강남에 비해 정말 말도 안되는 환경속에 사는 이들에게도 폭우는 비정하게 생명을 위협하고 있었다.
비슷한 시간 서울 마포구 일원에서는 그 지역 구청장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역시 비 오는 날에는 파전이 제격이라는 사진을 올리며 멋진 포즈를 취했다고 한다. 그시각 이미 주변일대가 물에 잠기며 시민들은 피곤함속에 목숨을 내건 퇴근길에 오르고 있었다. 요즘 물가는 미친 듯이 오르고 집값은 요동을 쳐서 이사갈 때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시민들이 상당수이다. 게다가 코로나는 다시 대확산 기세로 번지고 있다. 과학방역이라는 요상한 주장을 하던 인물은 도대체 뭐하는 지 모르겠다는 시민들에게 비오는 날 파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무심한 폭우는 이 나라 대한민국의 숨겨져 있던 이런 저런 치부를 송두리채 까발리고 있는 형국이다. 평온할 때는 전혀 몰랐던 사실이 이틀동안의 폭우로 백일하에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 비상사태 매뉴얼은 있기나 한 것인지.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하는 것인지 본인과 주위 관계자들은 알고나 있는 것인지. 아직도 지하실같은 곳에서 힘든 나날을 보내는 가난한 시민들이 얼마나 되는지 파악이나 하고 있는 것인지. 비가 어느정도 오면 비상시스템을 가동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숙지하고 있는 것인지. 이번 이 상황을 겪어보면서 이런 저런 깊은 우려와 아울러 이런 상황이 과연 선진국 대열에 올랐다는 나라에서 일어나도 되는 것인지를 스스로 묻게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며칠전부터 귀가 아프게 들었던 엄청난 집중호우 예보에도 이럴진데 정말 북한의 도발같은 예상치 않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떤 모습이 이 나라 수도 서울에서 벌어질까 정말 가슴이 답답하고 눈앞이 깜깜해질 정도이다. 국민의 안보와 안전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수도 서울의 배수시스템이 이렇게 허술할 줄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물론 엄청난 폭우라는 것을 감안해도 그렇다. 서울시의 그 잘난 행정을 믿은 죄로 힘없는 자매와 어린 아이는 맥없이 수장되고 말았다. 대통령이 물길을 헤치며 중대본에 당도해 해당 공무원들을 독려하고 진두지휘할 것이라고 굳게 믿은 국민들의 실망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 500mm의 폭우가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상상외로 너무 크고 두려운 것이었다.
2022년 8월 10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