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에 덮고 있던 매끄러운 감촉의 책을 가슴께로 내리고 가늘게 실눈을 떠서 귓가에 왱왱되는 티브이 모니터를 바라본다.
티브이에는 통조림캔에 들은 음식물을 먹은 사람들의 기억력이 많아 나빠졋다는 기사와 함께 한 미국 가족이 나온다. 피해자는 남자 아이인 듯 하다. 약간 정신지체아인 듯한 소년은 그러나 밝은 얼굴로 마이크를 대하고 카메라를 향해 환하게 웃는다.
가족들의 말로는 소년은 통조림캔에 들은 음식물을 먹기를 좋아했으며 그 때부터 기억력이 현저히 떨어지는가 싶더니 현재는 이렇다 저렇다 말이 많다.
"흐음" 갑자기 영화 메멘토와 또 냉장고 안에 쌓아둔 참치캔이 번갯불에 콩 볶아지듯 짧은 찰나에 기억력 저편 어딘가로 휙 하고 떠올랐다 사라진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냉장고 문을 열고 낮에 밥을 비비려고 땃다가 결국은 김치찌개를 해버리고 만, 남은 참치캔을 바라다 보았다.
그 안에 남은 참치를 손가락으로 짚어 입 안으로 가져갔다. 역시 그냥 먹기엔 좀 뻑뻑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정말 이 것이 내 기억력을 나쁘게 만든 원인이 되는 것인가?
냉장고의 쾌쾌한 냉기가 몸에 베일까 싶어 문을 닫고 내 방으로 갔다.
방 안에는 컴퓨터가 켜진 채 티브이 아나운서의 뉴스보도 소리, 냉장고의 모터 돌아가는 소리와 함께 본체 어디쯤에서 돌아가고 있을 하드가 윙윙 대고 있었다.
인터넷을 휘휘 돌아보다가 깔딱이는 마우스, 눈으로만 훅 훑고 마는 의미빠진 우스갯 글들, 그 안에 내 기억력을 나쁘게 한 놈이 숨어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하여 나는 탐정이 되어 내 기억력을 소진시키는 이 나쁜 균들의 정체를 빠르게 검색하기 위해 손가락을 놀려대기 시작했다.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검색대 위의 손가락들과 마우스로 휠을 내렸다 올렸다 하면서 촘촘한 글들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얻어낸 자료라고는 현대의 사람들이 어느 만화가가 그려낸 실없는 단편만화에서 처럼 기억력이 나쁘다는 사실.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입을 모아 '맞아 맞아 나도 그런 적이 있었지 늘 그러는 걸 ' 이라며 그 만화에 맞장구를 친다는 사실. 그리고 모두가 모니터 가까이에 얼굴을 들이밀고 단시간에 몇 자를 아무런 생각없이 곧 잊어버려도 상관없을 만한 글귀 몇 자를 적어 올린다는 사실. 또 다른 검색 페이지를 향해 마우스를 깔딱인다는 사실.
나는 그 사실들을 토대로 이 병적인 건망증이 어쩌면 기계의 전자파에 의한(나는 전에도 뉴스에서 기계들의 전자파가 사람들에게 매우 치명적으로 암을 유발시키기도 하며 그것들은 핸드폰, 전자레인지 , 티브이, 컴퓨터 할 것 없이 우리 생활속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 들은 바 있다)것인지도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하여 또 한번 부리나케 컴퓨터를 끄고 전원 스위치를 내리고 티브이를 끄고 냉장고는 끄는 스위치를 찾을 수가 없으므로 해서 전자파를 신경질적으로 내 뿜는 그것들을 피해서 골방으로 몸을 처박은 채 아까의 예의 내 얼굴을 덮고 있던 매끄러운 책의 페이지 한 부분에 파묻혀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러한 피신은 소용이 없었던 듯 하다. 금단 현상이 이는 것만 같았다.
시계가 초칵이는 소리가 귓가에 넓게 울려퍼기지 시작했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했고 안 방으로 달려간 내가 그 전화벨 소리가 핸드폰 벨 소리라는 것을 자각했을 때 소리가 끊기는 가 싶더니 다시 울었다. 전화는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었다. 빨래는 널었느냐 밥은 해 두었느냐 설거지 거리는 없느냐 방 청소좀 하고 공부좀 하라는 그리고 연락온 곳은 없었느냐고 하는 예의 그 안부식의 마르고 신경질 적인 소리가 핸드폰의 작은 구멍을 통해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공포스러웠다. 무엇보다 아주 짧은 시간안에, 그래 그것은 어쩌면 이 핸드폰이라는 기계의 플립을 달칵하고 접는 순간에 일어날지도 모르는 건망증과 또 그 기계를 하는 수 없이 내 몸 가까이에 소지하고 있어야 하는 그리고 이미 방 안으로 그 거대한 녀석의 얼굴에 비치는 내 몸뚱이를 본 순간 손가락이 자동적으로 부팅키에 살짝 닿고 윙-. 소리를 내며 켜지는 그 녀석의 거대한 몸뚱이에 점점 녹아드는 그 하는 수 없는 일상의 일들이 공포스러웠던 것이다.
다음날 나는 피곤에 절은 몸뚱이를 일으키고 아직 반쯤 감긴 눈을 비비대며 아주 자연 스럽다는 듯이 검은 모니터에 비친 내 부시시하고 형편없는 인간상을 바라보고 섰다. 그리고 손가락은 시키지 않아도 자동으로 컴퓨터 전원을 눌렀으며 모니터에 비친 형편없는 인간상은 스스스 하고 밝은 전자파 속으로 녹아들고 있었다.
나는 아침 여섯시면 자동으로 켜지는 티브이 화면을 멀뚱 바라다보다가 뜬금없이 윙 소리를 내는 냉장고의 모터 소리에 놀랐다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갸우뚱 거리며 밖으로 나간다. 대야에 물을 받으면서도 칫솔에 약을 뭍히면서도 전혀 어제의 기억을 찾을 수가 없다.
내 컴퓨터는 286인가봐.. 사람의 뇌도 빌게이츠를 주인공으로 한 어느 우스개 유머 처럼 포맷 시켜 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을 하며 수건으로 젖은 얼굴을 닦는다.
그리고 삐걱이는 의자에 구부정한 등을 기대고 원시인처럼 아무것도 없는 그 화면에 무언가 툭 하고 튀어나올 것 같은 기대감을 채 버리지 못 한 멍한 얼굴로 모니터 어느 한 구석에 시선을 떨군 채로 서성인다.
나는 나의 기억력 상실의 이유를 사고에 의한 후유증으로 단정하고 있지만, 의사의 말로는 시간이 지나면 서서히 뚜렷해질 것이라는 기억력을 의심하고 돌팔이 의사라고 욕을 하고 지금도 짧은 망상을 가지고 멍 하니 세상을 바라보고 있지만은 어쩌면 어느날 갑자기 떠올린 생각이라며 검색창에 빠른 손동작으로 '건망증'이라는 검색어를 치면서 마우스 휠을 아래 위로 분주하게 깔딱여 대며 마지막으로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기시감'을 건망증의 동료로 생각하며
또 어느 골방에서 매끄러운 페이지 속에 뭍혀 있다가 핸드폰 울음 소리를 듣고 나와 벌벌 떨며 공포스럽다고 생각하게 될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