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간 많은 미국인들을 만나고 친구도 꽤 된다. 젊은 시절 거의 매일 붙어 살다시피한 Vickie Shea, 20년 넘게 거의 매년 한국의 우리집을 찾아준 Pauline White, 우리집서 1년간 홈스테이하고 작년엔 마누라 자식들까지 데리고 나를 찾아준 Ryan Park, 허물없이 속엣말까지 털어놓는 사이인 Gail Sybley. 캐나다나 영국 친구들도 있었지만 주로 미국인들과 우정을 나누었었다.
전생의 인연인지 몰라도 미국은 물론 세계의 다른 나라들에 여행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유독 아메리카 친구가 많았다.
텔레비젼에서가 아닌, 실제 미국사람을 만나서 가졌던 인상은 아주 오래 전이었으나 또렷하다. 아메리카란 어떤 나라일까에 대한 호기심이 컸던 만큼 기억에 아직 남아있는 모양이다.
중학교에 들어갔을 때이니 1968년이다. 윗 학년을 가르친다는 미국인 영어 선생이 있었다. 키도 크고 코도 크고 눈은 파랗고 머리는 금발에 호리호리한 남자였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 유심히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사람 실물은 처음이었으니까.
''얌전하고 단정하다. 살짝 미소 띤 얼굴에 친절하다''가 아메리카에 대한 첫인상이었다.
대학 들어가서 이태원 부근에 가게되었다. 미국인들이 무수히 길을 오가고 있었다. 그때 내 앞에 중년의 남녀가 걸어가고 있었다. 어찌나 뚱뚱한지 어기적어기적 걷는데 그렇게 비만인 인간들은 처음 보았다. 엉덩이들이 어마어마했다.
두번째 인상은 ''엄청나구나, 갈 길을 막아버리네''였다.
그 뒤 대학 2학년 쯤에 갖게 된 세번째 인상도 잊을수 없다. 미군부대 사령관 부인에게 한국말을 가르치는 알바를 하게 되어서 부대 내 식당에서 식사 대접을 받았다. 메뉴를 고르면서 식당 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 미국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큰 식당이었고 백명도 넘는 사람들이 접시에 놓인 고기를 먹고 있었다. 모두들 고기를 먹는데 스테이크 크기가 아기 베개 만했다. 많이 굽지도 않은 상태의 고기들을 썰어서 씹는데 입가에 고기 피도 보이고 더욱 놀라운 것은 많아야 서너번 씹고 꿀꺽 삼켜버리는 것이었다. 모두들 그랬다.
''많이도 먹는구나. 숨이 막힌다''가 나의 아메리카에 대한 세번째 인상이었다.
폴린은 몇년전에 대장암으로 죽었고 게일은 딸네미가 한국 여행왔을 때 우리집서 한밤 자고 간 뒤로 연락해보지 못했으니 메일 한통 보내봐야겠다. 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