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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 40 章 파양호(播襄湖)의 괴인(怪人)들.
2.
잠이 오지 않았다. 몸을 뒤척이던 그녀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
공력을 조절했다. 벌써 초경이 지났는데도 도일봉의 방에는 인기척
이 없다. 아직도 술을 마시고 있는 모양이다. 따분하고 지루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한 번도 심심한 것을 느껴보지 않던 그녀에겐
실로 이상한 일이었다.한나절 동안 도일봉을 보지 않으면 괜시리
짜증이 나고 지루하다.
"못된 녀석!"
초무향은 털고 일어나 후원을 거닐었다. 달빛이 은은했다. 안채에
서는 요란한 악기 소리와 노래소리, 여인들의 교태스런 웃움소리가
요란했다. 그런 소리들을 듣자니 비위가 상했다. 방으로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그때 도일봉의 호탕한 웃움소리가 들여왔다.
안채의 삼층 어느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그런데 도일봉의 웃
움소리만 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몇 명의 사내들과 여인들의 웃움
소리가 한데 뒤섞여 있었다.
"저 녀석이 누구와 술을 마시고 있는거지? 친구라도 만났나?"
초무향은 갑자기 호기심이 생겼다. 도일봉의 친구들이 누군지 궁
굼했다. 그녀는 본래 남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이 아닌데,
근래들어 도일봉에 대해서만은 예외가 되었다. 시간이 갈수록 도일
봉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이 늘어났다. 어떤 친구들을 사귀고 있는
지 알고 싶었다. 그녀는 한참이나 망설이다가 참지 못하고 안채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안채로 들어서고 보니 교태스런 웃움소리와 음탕한 수작들이 더
똑똑이 들려왔다. 초무향은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기왕지사(旣往之
事)라고 생각하며 삼층으로 올랐다. 방문을 열어본 그녀는 그만 입
을 딱 벌리고 말았다.
기가 막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 친구들을만났는지 4-5명의
청년들이 있었다. 그들은 너무 커서 방의 반을 차지한 호화판 술상
을 앞에 놓고 각기 한두명씩의 여인들을 옆에 끼고 히히덕 거리고
있었다. 세명의 여인들이 한쪽에 앉아 금을 타고 피리를 불어댔으
며, 두명의 여인은 상 앞에서 반쯤 발가벗고 교태스런 춤을 추고
있었다. 이런 꼴을 보기는 정말 처음이었다. 갑자기 구토가 치밀어
올랐다.
방안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표정이 워낙 싸늘하여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지 못했다. 도
일봉은 양 옆에 여인을 끼고 히히덕 거리다가 게슴추레한 눈을 들
어 초무향을 올려다 보았다. 도일종이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초무
향이 보기엔 매스꺼운 미소였다. 도일봉이 손을 들어 보였다.
"어이, 그대가 왔구만! 어서 오라고. 술을 마시지 않겠다기에 부
르지 않았어. 어서 와서 앉으라니까. 술 맛이 기감 막혀. 하하핫."
이미 술이 과해 혀 꼬부라진 소리였다. 초무향은 싸늘한 눈으로
청년들을 돌아보았다.
"이 쓰레기들은 누구냐?"
"어이,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친구들이 화를 내겠다. 모두 조금전
에 사귄 친구들이야. 사해동포(四海同胞)라고 하잖아? 우리 모두
친구야. 자자, 그런건 따지지 말고 앉아 술이나 마시자고. 그래야
사내지. 핫핫."
도일종이 옆에 있는 여인에게 눈짓을 보냈다. 여인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몸을 일으켜 초무향에게 다가가 팔에 매달렸다.
"상고옹. 나무 나무라지만 마시고 앉으시지요. 소녀가 술을 따르
겠사옵니다."
"저리 꺼져!"
초무향은 거칠게 여인을 밀어버렸다. 여인은 꼴사납게도 엉덩방아
를 찧고 말았다. 초무향이 도일봉을 노려보았다.
"쓰레기 같으니! 난 이대로 가겠다. 다시 내 눈에 띈다면 네놈을
처죽이고 말겠다."
"이봐, 이봐. 너무 딱딱 거리지좀 마. 어째서 노인네처럼 잔소리
를 늘어놓고 그래? 마시고 싶지 않으면 가서 자면 될 것 아냐? 쓰
레기 좋아하네. 자기는 뭐가 잘났다고...흐음."
초무향은 이미 문을 꽝 닫고 나가버린 후였다. 도일봉은 술을 들
이키며 투덜거렸다.
"제기... 불알도 없는 사내놈이!"
"누가요?"
"누구긴 누구야, 너지! 자자, 친구들. 상관말고 술이나 마십시다.
자, 드시오. 들어요!"
그들은 다시 아무일 없다는 듯 히히덕 거리며 서로 끌어안고 지분
거렸다. 도일봉은 몸을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취해서 기녀들에게
떠안겨 방으로 옮겨졌다.
"더 부어라, 더 부어! 삼백잔을 마셔보자. 실컷 놀아보자!"
떠 안겨 가면서도 호기롭게 소리를 질러댔다.
오줌보가 터져 나가는 것 같아 눈을 떠보니 골이 깨지는 것 같았
다. 도일봉은 변소를 찾아 소변을 보고 세수를 했다. 속이 쓰리고
뒷골이 아팠다. 도일봉은 하녀를 불러 꿀물과 시원한 해장국을 주
문해 먹었다. 그제서야 속이 풀리는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린 도일봉은 초무향의 방으로 향했다. 분명 뭔가 실수를
한 것 같은데무슨일이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녀를 불러 물어보니 아침 일찍 나갔단다.
"나가? 어딜?"
"몰라요. 말을 타고 나가셨어요."
옷보따리도 없는 것을 보면 정말 가버린 모양이다.
"엇저녁에 내가 큰 실수를 했나보군!"
도일봉은 서둘러 준비하고 객점을 떠나려 했다. 객점의 장방이 앞
을 막았다.
"계산은 하고 가셔야지?"
"계산? 친구가 합지 않았던가? 난 돈이 없는데?"
돈은 모두 초무향에게 맡겨 두었다. 그녀는 일부로 골탕을 먹이려
고 계산도 않고 가버린 모양이다. 돈이 없다는 말에 장방은 문 옆
에 앉아있는 사내들을 향해 눈짓을 보낸 후 당장 시비조로 나왔다.
"돈이 없다? 어쩔건데?"
네명의 사내들이 은근히 도일봉을 에워쌌다. 도일봉은 이자들의
태도에 화가 치밀었다. 하짐난 계산을 못하는 자신의 잘못이라 뭐
라 할 수도 없었다. 그는 허리춤을 더듬었다.
"못된 것! 나를 골탕먹여. 자, 이건 얼마나 하겠는지 보게."
유성표다. 장방은 암기를 꺼내주며 놀리는줄 알고 화를 내려했다.
하지만 잘 살펴본 장방은 눈을 크게 떴다.
"이건, 순금인데요? 열냥은 되겠습니다."
"어제 먹은 술 값이 얼만가?"
장방이 장부책을 뒤적이며 놀라 말했다.
"어젯밤에 먹은 술 값... 허. 백 칠십냥 하고도 여섯냥 인뎁쇼!"
하룻밤 먹은 술 값으로는 지나치게 많았다. 하긴 기녀만 여섯을
불렀으니 그 값이 오죽하랴.
"많군. 그 금은 적어도 열두냥은 나갈 게야. 열두냥이면 이백냥
하고도 사십냥이니 백 칠십냥 은자를 빼면 칠십냥이 남는군. 여섯
냥이 더 있으니 육십냥만 넘겨주게. 나머진 자네 몫이고."
"네, 네. 그러합죠."
장방은 땡 잡았다고 생각하며 급히 육십냥의 은자를 내주었다.
도일봉은 서둘러 말을 타고 거리를 빠저 나왔다. 하루를 꼬박 수
소문 해보니 초무향은 남쪽으로 내려간 것 같았다.
"정말 가버린 거야 뭐야?"
미안하고 섭섭한 마음을 금할길이 없었다. 석달여 동안 함께 여행
하며 정도 많이 들었다.
"계집이란..."
속 좁은 계집이라고 욕을 하기엔 자신의 실수가 너무 컸다. 도일
봉은 계속 그녀의 흔적을 좇아 남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녀의 모
습은 볼 수 없었다. 화가 단단히 난 것은 분명했지만 아주 가버린
것은 아닌 것 같아 일단 안심이 되었다. 애 타는 모습을 지켜보려
는 속셈이 분명하다. 그녀의 뜻이 자신을 놀리는 것임을 안 도일봉
은 마음을 놓았다.
걱정할 것이 없어지자 길을 늦출 필요도 없었다. 되도록 빨리 문
국환을 만나려고 다시 배에 올랐다. 초무향이 언제나 주위에 있다
는 것을 알고는 미소를 짓기도 했다. 그는 새로 만든 회환구를 장
난감 삼아 익히며 여행을 즐겼다.
양자강에 이를 무렵이었다. 도일봉은 자신을 미행하고 있는 자가
초무향 뿐만이 아님을 느낄 수 있었다.
"금빛 벼룩들이 기어이 좇아 오는군!"
도일봉이 홍택호에 갔던 것은, 대원들에게 자신이 무사한 것을 알
리고, 돈을 구하는 한편 뒤르르 좇고 있는 하대치의 졸개들을 떨처
버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대원들이 하대치의 졸개들을 막기에는
역시 역부족인 모양이다. 도일봉은 미행자를 어떻게 따돌려야 할지
궁리했다. 남창에 도착하기 전에 미행자를 따돌려야 한다. 하지만
혼자서는 그들을 막을 힘이 없다.
초무향도 이젠 지쳤는지 뒤로 처져 따라오고 있었다. 기분은 아직
풀리지 않았는지 불러도 대답이 없고, 코웃움만 쳤다. 그렇게 미적
미적 파양호까지 오게 되었다.
중원오대호(中原五大湖) 가운데 동정호(東庭湖) 다음가는 대호(大
湖)일 뿐만아니라, 풍광이 뛰어남은 물론 수 많은 명승고적들이 산
재해 있는 곳이다. 특히 소(溯), 상(湘) 두 물줄기를 따라 펼처진
소상팔경(溯湘八景)은 예로부터 시인들의 입에 오르내린 천하의 절
경이었다. 파양호를 지나면 곧 남창이다.
안개낀 파양호의 풍경은 독특하고도 아련했다. 아침마다 자욱하게
깔린 안개는 정오(正午)쯤이 되어서야 걷히곤 했다. 안개의 절경이
다. 도일봉은 안개가 걷히기 시작할 때 파양호변을 걸었다. 바쁠것
도 없다는 듯 말 등에서 끄덕끄덕 몸을 흔들었다.
"경치가 참 좋기도 하지! 만천이 이곳에 있었다면 필시 멋진 시
한수 ㅇ었을 거야. 아! 파양호 변을 홀로 거닐어, 걷히는 안개는
별경을 이룬다... 에이. 졸작이로다. 난 역시 학문과는 거리가 멀
거든. 빌어먹을!"
홀로 걸으며, 홀로 지껄이다, 홀로 화를 내기도 했다.
"이럴 때 그 얼음덩어리라도 있으면 한결 나을텐데..."
도일봉은 홍택호의 기생집에서 주워들은 음탕한 소곡을 흥얼거렸
다. 그때 안개가 긷히는 호수 저쪽 편에서 배 한척이 빠르게 호변
으로 다가왔다.
"참 빠른 배도 있구나!"
도일봉은 감탄하며천천히 말을 몰았다.
한참 가고 있노라니 이번엔 뒤쪽에서 급한 말발굽 소리가 들려왔
다. 무슨 일인지 상당히 바쁜 모양이다. 도일봉은 그들의 길을 방
해하지 않으려고 한쪽으로 비켜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달려오는 사
람들은 모두 전포를 받쳐 입은 군사들이다.
"저기 한놈 있다! 천하를 어지럽히는 악적!"
"마교(魔敎)의 졸개를 당장 처죽여라!"
군사들은 지독한 욕을 해대며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도일봉은
우선 날아오는 화살들을 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
앉기도 했다. 하대치란 놈이 미행하는걸 포기하고 군사들을 시켜
죽이려는 수작이 분명한 것 같았다. 이렇게 대놓고 달려드는 것을
보면 준비도 단단히 한 모양이다. 당하고만 있을 수 없는 도일봉은
말 옆구리를 걷어차 도망치면서 박닥나무 회환구를 하나 꺼내 날아
드는 화살들을 처냈다.
"잡히면 끝장이다! 달려라, 달려!"
도일봉은 전력을 다해 말을 달렸다. 한참을 달렸는데도 거리는 좁
혀지지도, 넓혀지지도 않았다. 씨익! 씨익! 화살들은 계속해서 날
아들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길이 좁혀지고 양 옆에는 키 큰 나
무들이 많았다.
"죽엿!"
막 좁은길로 접어 들었을 때 호통 소리와 함께 키 큰 나무 위에서
누런 그림자들이 떨어져 내리며 칼빛이 번쩍 거렸다. 도일봉은 깜
짝 놀라 회환구를 들어 칼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누런 그림자들은
그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 타고 있는 말이 양쪽에서 들이닥친 칼을
맞아 길게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 통에 도일봉도 말과 함께
나뒹굴었다.
땅에 곤두박칠쳐 뒹굴면서도 도일봉은 누런 그림자를 향해 회환구
를 날렸다. 누런 그림자는 한둘이 아니었다. 오른쪽에서 칼빛이 들
이닥쳤다. 도일봉은 재빨리 새로 구입한 단검을 빼들어 들이닥치는
칼을 막았다. 단검을 잡은 손이 오른손이라 칼과 부딪치자 휘청 밀
려나며 찌르르한 통증이 전해졌다. 오른손이 아직 다 낳지 않았던
것이다. 도일봉은 되돌아 오는 회한구를 받아들고 뒤로 훌쩍 물러
섰다. 그제서야 상대를 살필 수 있었다. 절로 욕이 터졌다.
"빌어먹을 하대치! 못된 바얀놈!"
세명의 금포인들이었다. 세명은 도일봉을 둘러싸며 소리쳤다.
"도일봉. 항복해라!"
도일봉이 욕을 해주려는데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군사중 한명이
버럭 호통을 내질렀다.
"마교와관계 없는 자들은 즉각 물러서라. 항명(抗命)하면 죽움
뿐이다."
제법 당찬 호통이다. 금포인들이 놀라 소리쳤다.
"마교라니? 누가 마교도란 말이냐?"
"시간 끌 것 없다. 시비는 나중에 가리고 모두 잡아들여라!"
군관차림의 사내는 말하기도 귀찮다는 듯 명령을 내리며 일장 길
이의 방천화극(方天畵戟)을 꼬나잡고 도일봉을 향해 달려들었다.
군사들 역시 창검을 꼬나잡고 도일봉과 금포인들을 향해 우루루 달
려들었다. 위에서부터 공격을 당하니 밑에있는 네 사람은 크게 불
리한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금포인들이 뒤로 밀려나며 소리쳤다.
"뭣들하는 것이냐! 우리가 누군줄 알고. 썩 물러서라!"
신이나서 달려드는 군사들 귀에 그런 호통이 먹혀들리 없었다.
"이놈아. 무슨 객쩍은 소리냐. 우선 창부터 받아라!"
"에이, 못된것들. 모두 처라!"
이쯤 되고보니 금포인들도 화가 치밀어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다.
금포인들은 각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칼을 들어 군사들을 막아나
갔다.
이 상황은 실로 우숩고도 이상했다. 금포인들은 그동안 도일봉을
미행해 왔다. 이곳까지 추적해 오면서 굳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
던 것은 도일봉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갑
자기 군사들이 나타나 도일봉을 죽이려 했다. 도일봉을 군사들에게
죽게 둘 수 없었던 그들은 도일봉을 사로 잡기위해 기습을 감행했
다. 하대치에게서 조심하라는 당부를 받긴 했지만 그동안 미행하면
서 본 도일봉의 꼴은 장난치는 어린애에 불과했다. 얼음덩어리 같
은 자가 마침 떨어져 있으니 일단 잡아놓고 영패를 보이면 군사들
은 물러설 것이라 생각하고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웬걸!
급작스런 기습에도 불구하고 도일봉은 몸하나 다치지 않고 피해냈
다. 상처를 입혀 사로 잡으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더욱이
군사들까지 시비는 가리지 않고 창검부터 휘두르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군사들, 금포인 셋, 도일봉은 한데 어울어져 이상한 사ㅣ파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금포인들은 군사들을 젖혀두고 도일봉만 잡으려
했고, 도일봉은 군사들 틈에 숨어 요리조리 피하는 한편 기회만 있
으면 몸을 빼내 도망치려 했다. 군사들은 이놈저놈 가리지 않고 닥
치는대로 공격하며 좌충우돌 했다.
이들 무리는 어느새 좁다란 길을 빠저나와 넓은 갈대밭으로 접어
들었다. 그동안 군사들 몇이 상하긴 했지만 싸움 양상은 달라지지
않았다. 세 쪽 모두 죽어라고 힘을 써야 했다.
이렇게 반시간 정도 좌충우돌 하고 있을 때. 저쪽에서 한무리의
인물들이 혹은 말을 타고, 혹은 맨 몸으로 치열한 격전을 벌이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쪽의 상황도 이쪽과 비슷했다. 군사
들이 있고, 초무향이 있고, 금포인들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무리
의 흑의인들이 더 있었다. 그쪽은 사파전(四派戰)이었다.
도일봉은 어리둥절 하기만 했다. 세상에는 이상한 일이 많기도 많
지만, 이처럼 요상하고 야릇한 싸움판은 보기를 처음이다. 대체 누
가, 무엇을 노리고 이런 싸움을 시작했단 말인가? 애매모호(曖昧模
糊)하여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찌되었든 우선 이 자리를 빠저
나가야 했다.
"무향, 무향. 난 다 죽게 되었다. 어서 이쪽으로 와서 날좀 구해
줘!"
도일봉의 부르짖음을 들었을 텐데도 초무향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
았다. 아직도 화가 덜 풀린 모양이다. 그녀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이면 군사든, 금포인이든, 흑의인이든 가리지 않고 모조리 처
죽였다. 그녀의 무공이 워낙 으시시 해서 누구도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 그러나 육십여명이 한꺼번에 뭉쳐 움직이는지라 몸을 빼내
기도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녀는 왼손으로는 한빙장을, 오른손은
회환구를 들고 마구 휘둘러 댔다.
그녀에게 신경 쓰느라 잠깐 정신이 분산되어 뒤에서 찔러오는 창
을 보지 못했다. 창 끝이 옆구리를 할퀴고 지나갔다. 도일봉이 눈
꼬리를 치뜨고 회환구를 날리려 할 때 그보다 더 빠른 회환구가 있
었다. 바로 초무향이 날린 회환구였다. 그녀의 회환구는 군사의 목
을 반쯤 자르고 되돌아 갔다. 도일봉은 환호성을 지르며군사가 놓
친 창을 주워들고 시체를 말 등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는 대신 말
등에 올라탔다.
"이놈들아. 이제 맛좀 봐라. 으하하핫!"
도일봉은 오래전부터, 소림사에서 얻은 홍옥죽봉을 들고다니며 창
법을 익히기도 했다. 그는 왼손으로 창을 잡아 휘두르고, 찌르고,
때리고, 후려치면서 군사들 틈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창을 휘두르며 초무향 쪽으로 달려갔다. 도일봉은 간신히 그녀 옆
으로 다가가 소리쳤다.
"무향. 그동안 어디 있었어? 혼자 돌아다니자니 심심하더군!"
초무향은 화난 표정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못된 녀석! 아는체 하지마라."
"헤헤헤. 말은 그렇게 해도 날 구해주는걸 보면 그래도 옛 정이
생각났던 모양이야?"
"입닥쳐!"
"이것봐. 벌써부터 우리끼리 싸울 필요는 없잖아? 우선 이 나쁜놈
들을 먼저 처치하고 보자고."
"누가 다시 너를 본다던?"
"제기랄. 딱딱 거리긴. 이봐. 그대는 금포인들을 처부수라고. 난
군사들을 처부술테니. 자, 간다!"
도일봉은 껄껄 웃으며 긴 창을 풍차 돌리듯 휘두르며 군하들 틈으
로 뛰어들었다.
그런 도일봉의 모습을 보며 초무향은 반가움과 미운 생각을 동시
에 느꼈다.
홍택호에서는 미운 생각에 막상 홀로 떠나왔지만 그녀는 갈 곳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더욱 미웠다. 늘 혼자 다니던 그녀는 도
일봉을 만나고부터 마음의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처음엔 단순히
빚을 갚기 위해 도일봉을 구출하여 돌봐주었다. 의혈단에 대해 아
는 것이 많다고 느끼고는 괴수를 알아내기 위해 함께 다녔다. 그러
나 이제와서는 의혈단의 괴수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도일봉과 함께
있고 싶었다. 도일봉과 오래 있을수록 마음이 허물어져 자신의 일
을 해나가기 어렵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곁을 떠나기 싫었다. 이제
혼자 있으면 외롭다는 것을 느껴버렸다. 홍택호에서 헤어진 이후
멀찍이 떨어져 오면서도 몇번이나 다가가 말을 걸고 싶었다. 자존
심이 허락지 않았을 뿐이다. 도일봉이 먼저 말을 걸어오지 않는 것
이 서운할 뿐이었다.
이런 생각을 함녀 천천히 말을 몰아오고 있을 때 앞쪽에서 싸움판
이 벌어졌다. 그녀는 눈살을 찌뿌리며 한쪽으로 비켜가려 했다. 그
런데 군사들중 몇이 앞을 막아서며 다짜고짜 화살을 날리며 공격해
왔다. 도일봉 때문에 속이 상해 있던 그녀가 도발해 오는 싸움을
피할 까닭이 없었다. 더군다나 군사들은 몽고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당장에 한빙장을 뻗어내어 한명을 처죽이고 싸움판에 끼어
들었다.
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섯명의 금포인들이 나타나 그녀를 노렸
다. 다른 쪽에서 도일봉을 잡으려고 뛰어든 동료들을 보고 이쪽도
호응했던 것이다. 그렇게 되고보니 이쪽도 도일봉쪽 처럼 이상한
싸움판이 벌어졌다.
이들 모두가 한 곳에 집결하자 갈대밭은 사람과 말들로 꽉 들이차
일대 접전이 벌어졌다. 인원만도 백명이 넘었다. 군사들이 육십여
명, 흑의인들이 이십여명, 금포인들이 여덟이었다. 군사들은 숫적
으로 압도적이었고, 흑의인들의 무공은 괴이무쌍하고 필사적이었
다. 금포인들은 무공이 강했고, 도일봉과 초무향은 이들 틈에 끼여
별 피해를 입지 않았다.
신변에 큰 위험이 없는 한 두 사람에게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우선 서먹했던 관계가 다소간 해소될 수 있었고, 미행하던 자들이
제발로 나타났으니 떨쳐버리려 애 쓸 필요도 없다. 둘은 금포인들
이 다가오는 것을 막으며 여유있게 싸움을 관전할 수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자들은 흑의인들이었다. 그들의 싸움은 정말 필사
적이었다. 그들은 군사들에게 당해 다 죽어 가면서도 기어이 한명
이라도 물고 늘어져 함께 죽는 처절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큰 부상
을 당하면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을 하는 자
도 있었다. 정말 무서운 자들이다. 흑의인들의 이런 치열함에 군사
들의 사기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반시간 여를 투닥거리자 싸움의 승패가 갈리기 시작했다. 흑의인
들은 벌써 7-8명이 죽어 넘어졌다. 군사들은 이십 여명이나 쓰러졌
다. 금포인 둘이 죽었고, 한명은 부상 당했다. 군사들이 먼저 겁을
집어먹고 흑의인들을 피했다. 금포인들도 괜한 싸움에 말려들어 손
해만 보았으니 이쯤에서 물러서려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쉬운일은
아니었다. 흑의인들은 여전히 필사적이었고, 금포인들이 물러 서려
하면 초무향이 길을 막아 싸움판으로 몰아넣었다.
"미행을 하려면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초무향은 물러서는 금포인 한명을 노리고 말 등에서 도약하여 한
빙장을 후려갈겼다. 그자가 급히 물러서자 다른 자가 옆에서 칼을
찌러왔다. 초무향은 허리를 비틀어 피하고 그자의 옆 얼굴에 한빙
장을 먹여주었다. 도일봉이 다른 자에게 달려들어 창을 찔렀다. 금
포인들은 도망치기에 바빴다. 그중 한명이 달리다 말고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 복수는 반드시 해주겠다. 얼음덩어리!"
그냥 도망이나 쳤으면 무사할 수도 있었을 것을! 그자는 죽고 싶
어 환장을 했던 모양이다. 초무향이 그자를 향해 힘껏 말을 달리며
회환구를 날렸다. 암기 날아오는 소리를 듣었으면 우선 피하고 볼
일인데 그자는 고개만 돌렸다. 아무래도 죽고 싶었던 모양이다. 회
환구는 그자의 한쪽 어깨를 싹 잘라버리고 지나갔다.
"아이고, 부처니. 감사합니다!"
당장 죽지 않은 것만도 천행이라 생각했는지, 그자는 오히려 부처
님께 감사하며 잘린 어깨를 부여잡고 아픈줄도 모르고 숲 속으로
뛰어들었다.
초무향은 회환구를 받아들고 더 좇지 않았다. 도일봉이 슬그머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이봐, 무햐이 저 검은 놈들은 누구야?"
"몰라."
"같이 왔잖아? 군사들이 마교 어째고 하면서 욕을 하던데, 마교가
뭐야?"
"너도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아니, 난, 그저... 그나저나 저놈들 정말 지독하지? 내 여직 저
런 독종들은 보지 못했어. 아예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꼴이야. 어
떤 놈들이기에 저렇듯 죽움을 두려워 하지 않을까?"
초무향이 말을 출발시켰다. 도일봉이 다시 물었다.
"어딜 가려고?"
"어딜 가든 무슨 상관이야! 넌 이미 몸이 다 나았으니 나 같은게
필요하겠어?"
도일봉이 눈을 똥그랗게 떴다.
"무슨 소리야! 난 아직 다 나은게 아냐. 그리고 그대가 암중으로
나를 보호해 주지 않았더라면 벌써 금포인들에게 당해 죽었을 거
야. 그러지 말고 함께 가자고. 내 잘못했어. 다신 안그런다니까.
정말이야, 맹세해!"
"시끄러!"
첫댓글 잘보았어요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합니다,
즐감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인간성좋은도일봉이 고개숙여야지 ㅎㅎ
rkatkgkqslek
즐독입니다
잘밨어요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 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었습니다
시끄러 ?????
남 여 란 함깨 하다보면 정들기 마련 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