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영혼을 병들고 파괴하는 죄(갈5장16-26)
성경본분/갈라디아서 5:16-26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찌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찌니라
++++++++++++++++++++++++++++++++++++++++++++++++++++++++++++++++++++++++++++++++++++++++++++++++++++++++++++++++++
어느 목사님의 딸이 안 믿는 남자와 연애를 했습니다. 아버지 되는 목사님이 눈물로 극구 말리는 데도 그 딸은 듣지 않고 기어이 자신의 뜻대로 결혼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10여년 동안 그녀 자신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물론 교회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그녀의 외아들이 병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 앞에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하지 않고 끝끝내 불신앙의 사람으로 살았습니다.
결국 아들이 죽자 그녀는 그제서야 교회를 찾아가서 너무나 괴롭고 답답한 마음을 목사에게 하소연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하나 뿐인 내 아들이 왜 죽어야 합니까?" 회개를 하지 않고 도리어 원망을 합니다. 자기가 목사의 딸이라는 사실도 고백하면서 갖은 넋두리로 원망을 늘어놓았습니다.
듣다 못한 목사가 한마디 했습니다.
"당신과 같은 사람은 그 정도 얻어 터져야 10년만에라도 교회에 나오는 것을 어떡합니까?"
웬만하면 좋은 말로 위로하고 싶었는데 줄곧 못 된 말로 원망하는 것을 보고 신중하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가 아니고는 당신이 제발로 교회를 찾아오지 않으니까 하나님께서 그런 방법을 취하신 것입니다. 당신을 부르시려고 이 사건이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사람의 몸과 바이러스에 의해서 질병에 걸리듯이 인간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는 '이기심'과 '변명'입니다.
전형적인 '일요신자'가 드리는 형식적인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님이 제게 십자가를 지라고 하시면 기꺼이 지겠습니다. 그 대신 짐꾼을 사서 대신 지도록 해주십시오. 제게 정직하게 살라고 하셨지요. 단 장사할 때만은 예외로 해주세요.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대신 원수의 항복부터 받아내고 용서하겠습니다. 주님이 물질을 바치라고 하면 기꺼이 바칠것 입니다. 그러나 액수가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요. 체면을 유지할 정도의 헌금을 드릴테니 주보에 꼭 이름을 넣어 주위 사람들에게 알려 주세요."
종은 울려야 종입니다.
북은 쳐야 북입니다.
신앙은 실천해야 빛이 납니다.
마틴 루터 킹은 자신을 '북치는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진정한 신앙은 자신을 희생시켜 진리의 소리를 발합니다. 건강한 양은 목자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 기쁘게 달려갑니다. 그러나 병든 양은 아무리 불러도 반응이 없습니다.
'이기심'과 '변명'은 영혼을 병들게 하는 바이러스입니다.
올해는 독감이 일찍 찾아와 작년보다도 2배 이상 전국에 확산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독감이 전국에 퍼졌다면, 모든 사람들이 다 독감에 걸려야 하는데, 걸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감기나 독감은 바이러스 질환이기 때문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우리 몸이 건강하면 활동하지 못하고 쥐 죽은 듯이 우리 몸에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의 몸이 약해져서 면역성이 떨어지면 맹렬하게 활동을 하여 감기라는 병을 유발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건강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평상시에 건강에 신경을 쓰고 건강을 잘 유지한 사람은 이번 독감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독감은 유행성이지만 우리의 몸에 항상 잠복해 있는 바이러스가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는 ‘헤르페스’라는 바이러스입니다. 이 바이러스는 평소엔 쥐 죽은 듯이 우리 몸에 도사리고 있다가 과로로 우리 몸이 피곤해져서 면역성이 떨어지면 맹렬하게 활동을 하여 결국 우리 입술에 물집이 생기게 만듭니다.
따라서 과로로 입술이 부르텄을 때는 그것이 바이러스성 질환이기 때문에 아무 약이나 마구 바르면 오히려 입술이 더욱 부르틉니다. 전문가에 의뢰하여 치료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몸에 항상 잠복해 있는 병균은 단지 헤르페스 바이러스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는 병균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결핵균입니다.
이 결핵균은 건강한 사람에겐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 육체의 면역기능이 떨어진 연약한 사람에게선 결핵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비듬균도 누구에게나 다 있답니다. 그런데 두피의 어떤 균형 체계가 무너지면 비듬균이 활성화되어 비듬을 만들고 가려움증을 유발시킨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문제는 어떤 바이러스나 나쁜 병균 자체가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우리 몸의 면역성 정도인 것입니다.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에겐 그 많은 온갖 나쁜 세균들의 존재 자체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면역 기능이 떨어진 사람에겐 별 하찮은 균이 다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그것으로 인해 중병으로 발전될 수 있고 끝내 육신이 그놈을 이기지 못해 아주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하는 영혼의 바이러스도 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영혼 속에 잠복하고 있는 “원초적 죄성(罪性)”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것을 “육체의 소욕”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17).
우리는 육신의 건강은 끔찍하게 생각하지만, 영혼의 건강에 대해선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영혼의 건강임을 알아야 합니다. 육체의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의 건강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건강이 없이는 육체의 건강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딤후 4:8)고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각종 영양분의 지속적인 공급과 맑은 공기와 물, 적절한 활동과 운동, 그리고 적절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도 꼭 같은 요소들이 필요합니다. 만약 그러한 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제대로 채워지지 못하면 영혼의 건강에도 이상이 생겨 곧 영적 바이러스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육체의 소욕’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파괴하는 영적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을 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권면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여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16-18)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육체의 욕망과 성령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서로 대적하여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좇아 사는 것이 구체적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약속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에 우리는 육체의 본성과 악한 영에 의해 다스림을 받았고 조종되었습니다.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는 죄가 죄로 보이지 아니하였고 그저 자연스런 삶일 따름이었습니다. 미움이 생기면 미워했고 분노가 생기면 분노했고 증오심이 생기면 보복을 했습니다. 욕이 나오면 욕을 했고 살기 싫다는 생각이 들면 죽을 결심을 했습니다. 오직 내 자신의 유익과 즐거움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로 인해 다른 이들이 입을 피해나 고통엔 관심이 없었습니다. 물론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실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그동안 우리의 인생을 다스리고 조종하던 악한 영(사탄)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창조주 하나님의 새로운 통치권 아래로 귀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게 됨으로써, 진노의 자녀에서 축복의 자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즉, 애초에 인간이 창조되었을 때 그 영혼 가운데 심어두신 하나님의 형상을 점차 회복하게 된 것입니다. 죄로 일그러지고 파괴되었던 우리의 영혼이 점차 건강을 되찾게 되었습니다. 미움 대신 화평이, 증오 대신 용서가, 절망 대신 소망이, 욕설 대신 평화의 말이 우리의 삶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미워하던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회복되었고 무엇보다 우리 자신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인생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해서 우리의 죄성 마저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 죄성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다스림을 받음에 따라 힘을 잃고는 우리 속에 웅크린 채 잠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육체의 껍질을 벗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될 그 때까지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과 다스림을 통해 지속적으로 우리 영혼의 건강을 유지하지 못한다면, 우리 속의 그 죄성이 활성화되어 맹렬히 활동을 재개하고 마침내 바깥으로 튀어나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혼의 바이러스입니다. 일단 이것에 감염이 되면 우리 영혼이 사탄의 조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심층적인 무지입니다. 만일 사람들이 순결과 공의의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감히 죄짓는 생활을 계속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지와 육욕은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벧전 1:14), 무지는 육욕의 모태입니다. 수증기는 밤에 가장 많이 일어나며, 죄의 검은 수증기는 어두운 무지의 영혼 속에 가장 많이 일어납니다. 사탄이 죄인 앞에다 안개를 뿌려놓으므로 그는 하나님의 진노의 화염검을 보지 못하게 됩니다.
모든 죄는 하나님에게서 물러가는 것입니다(렘 2:5). 하나님은 최고선이시며 우리의 축복은 그와의 연합에 있습니다. 그러나 죄는 강한 편견처럼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떼어놓습니다. 죄인은 하나님에게 작별을 고하고, 그리스도와 긍휼에게도 고별 인사를 합니다. 죄 가운데 일보 전진하는 것은 언제나 하나님에게서 일보 후퇴하는 것이기에, 사람이 태양에서 더 멀어질수록 그만큼 더 어둠에 가까워지는 것과 같습니다.
영혼이 하나님에게서 더 멀리 떠날수록 그만큼 더 그는 불행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회개 없는 죄는 최후의 지옥 파멸로 향해 있습니다. 장미가 자생한 암종병으로 시드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들의 영혼 속에 자생하는 부패로 인해 시듭니다. 죄는 기름과 같고 하나님의 진노는 불과 같습니다.
죄(罪)라는 것은 마치 나쁜 병균과도 같습니다. 병균이 우리 몸 안에 들어와 우리의 몸의 세포들을 변형시키거나 파괴하여 세포와 세포, 기관(器官)과 기관 사이의 정상적인 관계를 파괴시킴으로써 마침내 육체를 무너뜨리는 것처럼, 죄는 가장 먼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차단시키고, 우리 자신을 파괴시키며, 타인들과의 관계를 파괴시킵니다.
바른 관계가 무너진 상태가 곧 영적으로 병든 상태이며 죽음의 상태입니다. 사탄이 하는 일은 우리 영혼 속에 그 죄를 계속 활성화시켜서 마침내 우리의 영혼이 이런 병든 상태에 이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령의 인도함을 잘 따르면 우리 속에 있는 죄성은 힘을 잃게 됩니다. 사탄이 그것을 끊임없이 충동질하고 조종을 하려들지만 기를 펼 수 없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삶 하나, 하나 모두에 영향을 끼치시고 그분의 통치가 우리 삶 전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상태, 그래서 죄의 세력이 제대로 활동할 수 없는 상태를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혹 어떤 이는 이상한 방언을 하고 예언을 하고 환상을 보며 입에 거품을 물고는 앞뒤로 넘어지는 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진정한 성령 충만은,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영혼을 잘 다스리셔서 우리의 영혼에 질서가 잡힌 상태를 말합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면,
그로 인해 우리가 평안을 누리며 하나님과의 교제로 인한 사랑과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아름답게 이루고 자기 자신도 사랑하고 존중하게 됩니다. 우리의 영혼이 매우 건강한 상태가 바로 성령 충만한 상태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건강을 유지하면, 우리 속에 잠복해 있는 죄성이 힘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원수를 보면 혈압이 오르고 마음속에서 독기가 올라와야 하는데 그 죄성을 억누르는 힘이 워낙 강해서 그 죄성이 끽 소리 못하고 억눌려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분노케 하는 사람을 보면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는 게 당연한데 우리의 그 죄성이 바깥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욕설 대신 성령의 언어인 평화와 화해의 언어가 튀어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영혼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영적인 건강이 무너지게 됩니다.
날마다 성경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예배와 경건 서적들을 통해 영혼의 양식을 계속 공급해 주지 못하면
영혼의 바이러스가 활동하기 쉬워집니다.
영혼의 호흡인 기도와, 성도들 간의 교제와 전도, 봉사 같은 영적인 활동을 적절하게 해 주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은 죄성에 대한 면역력이 점차 약해집니다.
드디어 그 면역력이 한계에 이르면
우리 속에서 기회를 엿보고 있던 죄성이 사탄의 조종을 받아 증식(增殖)과 변형을 거듭하면서 활성화되고, 마침내 그것이 자라 우리의 영혼을 장악합니다. 사탄의 지시와 조종이 마침내 우리의 영혼을 움직이는 상황에 이르는 것입니다.
바이러스가 그 기능을 활성화하여 사람 입술에 물집을 생기게 하거나 독감을 유발하면, 그것은 몸 전체의 면역기능이 무너지고 있다는 중요한 신호입니다. 다시 말하면 몸이 지금 적절한 영양분의 공급과 적절한 충전과 휴식을 절대로 필요로 하고 있다는 신체적 싸인이요 비명소리인 것입니다. 그 신호를 무시하면 더 큰 화를 자초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영혼에도 '바이러스'가 있어서 우리에게 경고를 합니다. 이상 징후가 없는지 잘 살펴볼 일입니다. 혹시 요즘 짜증과 신경질이 늘어나고 있지 않습니까? 음란함을 쫓으며 시기심 불평이 늘고, 울컥울컥 분노가 자주 폭발하지는 않습니까?
왜 그럴까 잘 살펴보면 틀림없이 원인이 나옵니다. 영혼의 영양 섭취의 문제일 수도 있고, 영혼의 호흡의 문제나 영적인 운동과 활동의 문제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영혼의 싸인에 민감합니다. 곧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고 영혼의 경건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런 사람이 바로 복된 사람입니다.
나무가 병들면 식물학자는 뿌리부터 점검합니다. 식물의 병의 원인은 대부분 뿌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생기는 것도 영혼의 질병이 근본 원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건강한 영혼, 건강한 신앙관리에 우선 순위를 두어야 합니다.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고 친교하는 곳이며 하나님의 활동장소요,무대입니다. 그런데 하나님보다는 사람을 의식하며 환경과 상황을 바라보면서 살다보면 종종 영혼이 병들 때가 있습니다.
나무 뿌리에 병이 생기면 새로운 뿌리를 이식해야 되는 것처럼 영혼이 병든 성도들 역시 뿌리를 새롭게 이식하는 본성의 새 판짜기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신앙의 뿌리를 다른 토양으로 옮긴다고 결코 그 병이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본성의 새 판짜기란 무엇일까요?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 아래에서 겸손하게 말씀부터 잘 받는 것입니다. 먼저 은혜 받는데 치중하고 생명과 은혜를 선택하는데 우선 순위를 두는 것입니다. 그것이 날마다 우리를 새로워지게 하는 것이요, 건강한 영혼을 관리하는 방법입니다.
성도 여러분! 영혼의 건강을 잃으면 하는 일도, 그리고 결국 육체의 건강까지 다 잃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까지 영육간의 강건함을 유지하는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바울의 권면으로 말씀을 맺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기도:
나의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 나로 하여금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들을 밝히 알아 멀리하게 하소서. 또한 주님을 더욱 가까이 하여 주님을 깊이 알아가게 하시고 그리하여 주님을 점점 닮아가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출처: 한태환목사(하나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