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ste Liebe Meines Lebens (내 인생의 첫사랑) - Monika Martin
계방산은 해발 1579m로 남한 5번째 고봉으로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주목에 핀 상고대가 멋진 산으로 겨울철 눈꽃산행의 메카같은 곳이다.
산행 시발지는 내륙의 섬같은 홍천과 평창을 잇는 고개마루에 항상 구름이
끼어있다는 해발 1089m 운두령에서 시작한다
몇년전 토요일 추위가 절정에 다다른 날 평창 계방산에 다녀온적 이 있다.
코발트빛 하늘아래 순백의 산과 나무가지에 핀 상고대~
가뿐 오르막을 넘고나면 마치 히말라야 설산처럼 정상에
하얀 눈이 쌓인 봉우리가 보이는데 바로 그곳이 계방산이다
날씨는 너무 추워 카메라조차 얼어붙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환상적인 풍광에 감탄하였다.
그리고 하산길에 들른 계방산 계곡에 깊이 자리잡은 이승복생가는
정말 자그마한 화전민 가옥이었다. 그작은 집에 젊은 부부와 4명의 어린 자녀들이
손바닥만한 화전밭에 의지하여 가난하지만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68년 겨울 어느날 학교앞에서 머리깎다가 라디오에서 들은 이승복의 소식~
그후로 까맣게 잊고 지내다 강원도에서 살때 몇차례 이승복기념관을 가족들과 간적이 있었다.
그리고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그의 형 학관씨를 강릉에서 여러 차례 만난적이 있었다.
크지 않은 체격에 늘 온화한 모습 눈 앞에서 어머니와 어린 동생 3명의 비참한 죽음을
목격한 사람답지않게 보였지만 거의 말이 없었다.
한여름 해수욕장에서도 반팔을 입지 않는 그의 몸엔 36군데나 칼에 찔린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
그후로 55년이나 세월이 흘렀지만 그날의 비극은 지금도 끝나지 않고 있다.
아직도 계속되는 그들의 도발 ~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들은 변한게 하나도 없다.
다만 이쪽 사람들의 정치적성향에 따라 그들을 다르게 바라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을 중단할수 없는게 이땅에 살아가는 우리들의 현실이다
매운 계절(季節)의 채쭉에 갈겨
마츰내 북방(北方)으로 휩쓸려오다.
하늘도 그만 지쳐 끝난 고원(高原)
서리빨 칼날진 그 우에 서다.
어데다 무릎을 꿇어야 하나
한 발 재겨 디딜 곳조차 없다.
이러매 눈 감아 생각해 볼밖에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이육사/절정
첫댓글 카메라 조차 얼어붙는 그추운날
설경과 상고대를 보기 위해서 산에 가는 사람
올 여름들어 제일 폭염이라고 하는날
무거운 배낭매고 산에 가는 사람
산에 그기 뭐시라꼬 연골 닳아가면서 산으로산으로 가는지
그사람들 지금 멀쩡한 다리로 잘살고 있을까
궁금합니다^^
근데 저 사진 두장은 정말정말 멋집니다
새벽에 동네 목욕탕 때밀러 와서 한 껍데기 홀라당 베끼고 동거할매 나오기를 기다리는중입니다
오늘도 유쾌한 하루보내세요^^
홀라당 베끼지말고 대강 베끼슈.
피부가 몸살을 앓습니다요.
반갑습니다 산꾼들은 눈오기만 기다린답니다
어차피 죽으면 연골뿐 아니라 모두 필요없게 되지요
88세드신 분도 백두대간을 몇십번째 한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때는 미는게 아니고 샤워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
제가 첫 발령받은 80년대 초엔 어느 학교 운동장에나 이승복 동상이 있었어요.
지금은 여행길에 지나다 들르는 국도변 폐교 운동장에나 남아 있지요.
이육사 시인의 이 절창, 제목 그대로 강철 같은 시상의 절정에 도달한 명작,
시인 자신이 실천한 항일 독립의 심지 굳은 삶에서 쓰여진 작품이라서 더 귀하겠지요.
그들은 달라지지 않았고 이쪽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 다양할 뿐,
맞는 말씀입니다.
요 며칠 북한 김정은의 전쟁 운운 엄포가 그냥 엄포만으로 그치길
간절히 간절히 기도하는 요즘입니다.
달항아리님도
절창입니다~♡♡
@정 아 우리 정아님 청담동 마님 까꿍ㅎㅎ
집옆 초딩에 가면 본관 옆 화단에 이승복동상이 있습니다 청동재질인지 암튼 녹슨 새까맣고 짜리몽땅한 덩어리가 명판도 없이 서있어 보기 안쓰럽습니다, 우리 나이는 척보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하다가 입이 째진채 죽은 이승복동상이란걸 압니다, 근데 요즘 교과서에는 있는지, 요즘도 방공교육이 철저한지 모르겠어요
내 개인적으로는 철거를 해버리든지 아님 형태를 알수있게 녹도 제거하고 누군지 알수있는 안내판을 제작해서 동상밑 받침대에 달아두던 하지 쫌 황당했어요, 어디 교육부에다가 건의해야겠어요^^
반갑습니다. 지금도 폐교된 학교나 오래된 시골학교 귀퉁이에 가면
이승복기념상이 있습니다. 지금 어린이들은 뭔지도 모를겁니다
이육사시인은 대다수 문인이 변절했거나 숨어지냈던 일제말에도
붓을꺾지않은 위대한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얼마전 김정은이 남침은 결정했고 시기만 남았다고 위협을 주더군요
저도 이땅에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질 않기를 간절하게 염원합니다 !
이승복군을 생각하면
저 하늘에도 슬픔이 서려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 저하늘에도 슬픔이의 김수용 감독님이 별세하셨던 기사를 봤는데
주인공 이윤복님도 이승복군처럼 고생만 하시다 요절하셨다 합니다
부디 이승복군의 영혼이나마 편히 잠들기를 바랍니다 !
평화를 위한 노력은
이땅뿐만 아니라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끊임없이 무장하고
있어야 가능한게 평화인가합니다
자원이 많아도 선진국의 쟁탈전으로
전쟁터가 되니까요
진정 산꾼입니다
어느해 영천 천문대를 갔다가 상고대를 만났는데 땡잡은 날이었노라고 ㅎ
반갑습니다 사람을 때리거나 실수로 사망시켜도 감옥을 가는데
전쟁은 허가난 살육극이고 인류의 역사가 있는한 멈추지 않는것 같습니다
영천전문대에도 상고대가 아름다운가 봅니다. 추울수록 하늘은 파랗고
상고대가 예쁩니다. 눈내린 다음날에 가까운 산이라도 올라가 상고대를 보고 싶습니다 ^^
난 공산당이 싫어요
바로 그님 1959년 우리보다 두살어렸던
승복군은 59년생으로 당시 만 아홉살에 불과했지요
그형 학관씨는 54년(또는 56년)으로 우리보다 약간 위에요
함께 고등 학교 검정 고시 본 친구가 평창에서 송어 횟집을 하는데 아마
이승복 기념관 지나서 였지 싶어요 길 쪽에 있는데 지금이야 길도 좋고
집도 현대식으로 군데군데 잘 지었지만 그 옛날엔 어디 그랬나요 첩첩 산중이던
평창이지요 그 사건 났을 때가 제 나이 14세였나 그랬을 거 같아요 까마득하지요
그때 동해시 묵호에 살았을 때 지요 전 가까이 살고 진부 평창에 자주 가지만 산쪽으론
안가 봐서 이렇게 멋진 절경이 펼쳐지는 걸 모르고 살았네요 감사합니다 그산님
이렇게 평창 아름다운 겨울 산을 선물로 주셔서
반갑습니다. 운두령 가는길에 송어장이 있고 계방산갈때마다 그곳에서 뒤풀이를 했지요.
혹시 그곳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68년이니 55년전의 일인데 당시 묵호에 사셨군요.
당시 계방산은 길도 없고 화전민만 살았던 첩첩산중이었습니다
늘 따스한 댓글 감사드리며 즐거운 한주 보내시기 바랍니다 !
아 눈이 오는 한라산 그리워요
네 계방산 못지않게 한라산 셜경도 아름답습니다
무게감 있는 글
아주 훌륭합니다.
한참을 머물면서
이승복의 불행했던 역사에
갑자기 한때 다대포 간첩 전충남과
한 사무실에 있었던 일도 떠오르고요.
아름다운 농촌 풍광을 배경으로 흐르는
에르스테 리베..이곡들으니 오늘 하루가
맑게 정리 되고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얘기말고는 특별한 내용도 없는 제글을 항상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대포간첩의 주범 전충남과 한사무실에 근무한 인연이 있으시군요
흐르는 음악인 내인생의 첫사랑은 오스트리아 출신 모니카 마틴의 노래로
알프스를 배경으로 아주 청아하고 시원하여 자주 듣습니다
행복한 한주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