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지일관, 항구정진(初志一貫, 恒久精進)'
가슴 속의 진리는 그렇게 외칩니다.
저 글귀를 따라 무한히 죽도를 휘두르며 달려가고 싶은 정신의 무한,
저 글귀에 역행하여, 다치고 지치는 육신의 유한,
'인간'이라는 존재 안에 함께 공존하나, 또한 대립하는 양자와의 싸움.
어제, 오늘은 정신이 무참히도 패한 날이 아닌가 합니다.
작지만, 그러한 하루 하루 안에서 느끼는 좌절의 조각들.
관장님은 검든 병아리, 저에게 말씀하십니다.
검도는 결코 조급하거나, 앞서갈려는 마음으로 나가선 안되는 운동이라고.
육신의 한계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나를 어떻게 비울 것인가,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개미가 되라, 그래서 계단 안에 존재하는 작디 작은 계단을 걸어라'
가슴 속의 진리는 그렇게 외칩니다.
학문이든, 이 '검도'라는 무도의 길이든, 무엇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계단이 존재하는가 봅니다.
이 계단이 쾌히 밝혀질 때를 '지혜, 혹은 경륜, 연륜'이라 이르고 싶습니다.
노력과 세월의 결정체...
'단'이라는 계단, 그 안에 '급'이라는 계단, 그 안에 '몇개월 수련'이라는 계단, 또 그안에 '몇 날 수련'이라는 계단,
아주 잘게 쪼개고 쪼개서 '죽도 한번 휘두르는 일초, 일각'이라는 계단까지 개미가 되어 기어보면,
육신의 한계에 그리 분노할 일이 아니란 것을 느낍니다.
몹집이 좁쌀만한 개미가, 육신에 무리를 느끼지 않으려면, '몇 분'의 계단을 올라야 하는데,
'하루'라는 계단을 몇계단씩 점프하며 뛰어 올랐으니, 당연히 몸에 무리가 가기에, 쉴 수 밖에 없기 마련.
다만, 그것이 정상을 향한 '이보(二步)혹은 그 이상의 전진을 위한 일보의 후퇴' 가 되어야지,
안주의 자리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의지'의 끈 하나는 붙잡고 있어야 함을!
이렇듯, 크든 작든 피로, 무력감,부상 속에서, 육신의 한계를 느껴 몸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을 때는
개미가 되어 봅니다.
요새는 대입 준비에 앞서 '대망'이라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일본의 영웅,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소설을 줄줄 읽어나가고 있습니다.
그가 한 명언이 이 검도에 딱 들어맞을 듯 하네요.
'인간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나가는 것과 같기에 결코 서둘러서는 안된다.'
첫댓글 요새는 대입 준비에 앞서 ..." ??? 고등학생이란 말씀이신지..아님...사회생활하다 대입을 준비 하신다는 것인지...? 참으로 묵직한 글 입니다...!
동운님 명쾌한 지적입니다..동감^^*
아...가슴이 찌릿한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