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26일 (수)
제목 : 잡히시는 예수님
오늘의 말씀 : 마가복음 14:43-54 찬송가: 155장
43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곧 열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이르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 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그들이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서 있는 자 중의 한 사람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중심 단어: 예수, 유다, 파는 자, 잡다, 제자들, 도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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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의 행동
43-45절: 유다가 무리와 짜고 예수님께 나아와 입을 맞추어 표시함
47절: 한 사람(베드로)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침
50절: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함
51-52절: 한 청년(마가)이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함
54절: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쬠
도움말
1. 몽치(43절): 길이가 짧고 단단한 나무 몽둥이로, 당시 예루살렘 성전 수비대의 치안용 무기였다.
2. 군호(44절): 군대에서 작전을 위해 사전에 약정한 신호나 암호를 가리킨다.
3. 대제사장(53절): 산헤드린 공회의장을 겸임했다. 원래 레위 지파 아론 계열의 장자가 승계하는 종신직이었으나, 당시는 이를 무시하고 헤롯이나 로마 정부가 임명했다.
말씀묵상
준비되지 못한 제자들
예수님께서 극도의 고민과 고통 가운데 기도하시는 동안 함께 깨어 기도하지 못했던 제자들은 위기의 순간에 결국 한결같이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갔습니다(50절). 그리고 베드로는 자신의 감정과 혈기대로 행동했습니다(47절; 요 18:10). 그것은 예수님을 위한 의리 있는 행동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사실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는 행위였습니다(마 16:21-23). 예수님은 그에게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 18:1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게 됩니다. 즉, 기도의 실패는 곧 사역의 실패입니다.
준비되신 예수님
간절히 기도하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죽기까지 순종하기로 결심하신 예수님은, 당신을 잡으러 온 무리에게 아무런 저항 없이 순순히 붙잡히셨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가셔야 할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곧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의 손에 팔려 범죄자 취급을 당하셨습니다. 여기서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49절)는 말씀은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사 53:12)는 말씀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묵묵히 순종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제자들의 행동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급박한 상황에도 예수님께서 평정을 유지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49절)?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여러분은 죽기까지 순종하신 예수님처럼 십자가의 길을 걸을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어쩌면 우린 예수의 길을 착각하고 잘못된 길을 걷고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래서 JMDC 훈련을 시작하게 되었고 비로소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기 위해서 목표를 수정하게 되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신 그대로 이루어진다.
가롯 유다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병사들과 함께 찾아와 배신의 입맞춤을 한다.
예수님이 군병들에게 붙잡히는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칼을 꺼내 말고의 귀를 떨어뜨려 보지만 오히려 예수님에게 책망을 듣고 칼을 거두게 된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붙잡히자 실망과 두려움에 빠져 모두 다 도망쳐 버린다. 마가는 자신도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예수를 따라가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예수님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간구했던 세베대의 아들들은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라고 했던 베드로는 왜 예수님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던 것일까?
베드로는 부자 청년이 떠난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했었다. ‘보소서 우리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듣고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박해를 겸하여 받는다’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우리 맘 속에 ‘예수를 믿으면 꽃길만 걸으리라’는 기대와 소망을 갖고 예수님을 따르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그런 길은 없다. 그래서 실망하고 좌절해서 가롯 유다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붙잡히자 다 도망친 자리에서 주님은 오늘 내가 가는 길에 예수님이 함께 하고 계신지를 돌아보게 하신다.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누구를 쫓아가고 있는가? 왜 이 길을 가고 있는가?...
열심히 달려가는 사람을 붙잡고 이렇게 물어보면 뭐라고 대답할까?
‘당신은 왜 이렇게 열심히 달리고 있습니까?’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습니까?’ ‘어디로 달려가고 있습니까?’ ‘마지막 도착지점은 어디 입니까?’
코로나를 지나고 우리는 2023년 주님과 함께 새로운 길이란 주제로 새롭게 출발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은 다시 한번 우리가 걷는 이 길에 대해서 묻게 하신다.
신앙생활의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성도들을 어디로 인도하고 있는가?
예배, 말씀, 기도, 찬양, 전도, 선교, 목회, 교회는 무엇인가? 왜 양육과 제자훈련을 강조하고 있는가?
오늘은 JMDC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날이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뼈아픈 실수를 허락하셨다. 그래야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깨닫기 때문이다. 열정과 열심만 가지고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다.
만약 주님이 내게 뼈아픈 실수를 허락해 주시지 않았다면 한 영혼을 어떻게 세워야 하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교회에 어려움을 주시지 않았다면 ‘예수의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심지어 하나님 아버지에게 버림받기로 작정하셨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실수까지 예수님은 짊어지고 가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다시 처음의 자리에서 성령 받게 하심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하신다.
그때 그 자리에는 12명이 아니라 120명이 모여 있었다.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
15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사랑의 주님, JMDC 첫 번째 관문을 통과하는 날. 지난 뼈아픈 실수를 통해 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그 실수까지도 예수의 길을 갈 수 있는 에너지로 사용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질문을 던집니다. ‘왜 예수를 믿어야만 하는가? 예수 믿는 목적이 무엇인가? 왜 교회를 다녀야 하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종착지는 어디인가? ...’
절대로 본질적인 질문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성령께 묻고 다른 길로 안내하지 않도록 저를 붙잡아 주시옵소서. 주님과 동행하는 기쁨이 우리 안에 날마다 충만케 하옵소서. 들꽃 공동체가 주님이 기뻐하는 길을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