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方廣佛華嚴經(대방광불화엄경) 疏序(소서)
●第2門(제2문) 別歎能詮(별탄능전)
剖裂玄微(부열현미)하고 昭廓心境(소확심경)하며 窮理盡性(궁리진성)하고 徹果該因(철과해인)하며 汪洋冲融(왕양충융)하고 廣大悉備者(광대실비자)는 其唯大方廣佛華嚴經焉(기유대방광불화엄경언)인저
유현하고 미묘한 내용을 분석하고 나누었으며 마음과 경계를 환하게 비추었으며, 이치를 다 드러내고 본성을 다 표현하여 결과에 사무치고 원인을 갖추었으며, 깊고 넓고 가득하여 넘치며 심원하고 융성하고 넓고 커서 모두 다 갖춘 것은 오직 대방광불화엄경뿐이로다.
여천무비 대강백 화엄경 왕복서 특강 (2019년 6월 24일-26일 대구 동화사 국제선센타)
窮理盡性(궁리진성)하고 徹果該因(철과해인)하며 이치를 다 드러내고 본성을 다 표현하여 결과에 사무치고 원인을 갖추었으며,
궁리진성(窮理盡性)하고 철과해인(徹果該因)했다. 그랬습니다. 처음에 왕복서를 아무리 읽어봐야 이해가 안되고 화엄경을 다 공부하고 나서 왕복서를 읽으면 조금 이해가 되고 또 그리고 나서 화엄경을 읽으면 화엄경 하고 왕복서 하고 매칭이 돼요. 비로소 그렇게 됩니다. 그래 화엄경을 환하게 꿰뚫고 있어야 그것을 간추린 것이 왕복서이기 때문에 그래서 왕복서가 사실은 이해가 됩니다. 이것은 사실 미끼 던지는 거예요. ‘아 화엄경은 이와같이 훌륭하고 이와 같이 심오하다’라고 하는 것을 약간 맛보이는 것인데 이 미끼에 모두 걸려야 하는데 그게 문제입니다. * 궁리진성(窮理盡性) 철과해인(徹果該因) 이치를 다 드러내고 본성을 다 표현했다. 궁리(窮理), 이치를 다 궁구했다. 진성(盡性), 성품을 다했다. 이치와 본성을 낱낱이 그 무엇도 하나 빠뜨리지 않고 낱낱이 설명한 것이 화엄경이다. 철과해인(徹果該因)이다. 결과에 사무치고 원인을 갖추었다.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전부 인과의 법칙에 다 해당되는 거거든요. 화엄경도 역시 인과의 이치에 의해서 설해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그러잖습니까? 저는 늘 평소에 승속을 막론하고 불교를 공부하는 불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할 것, ‘그것이 삶에 어떤보탬이 되겠는가?’ 하는 것을 깨놓고 한 번 연구해 보고 서로 토론해 보고 탁마해 볼 때 무엇이 가장 좋을까를 이야기 합니다. 마음 이야기도 좋습니다. 화두 이야기도 좋아요. 마음 가라앉히는 위파사나 좋습니다. 내일 1억 짜리 49재를 지낸다는데 49재 지내는 법도 또한 좋습니다. 천도재 다 좋아요. 불공 들이는 법도 좋습니다. 불교 안에는 여러 가지 그야말로 팔만 사천 문제에 대해서 팔만 사천 가지의 방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딱 한 가지 딱 하나만을 우선적으로 우리가 소개해야 하고 우리가 또 실천해야 하고 ‘불교가 뭐냐?’하면 두말할 것 없이 ‘불교는 이거다’‘이것이 우리 생활에 가장 유익한 가르침이다’ 할 것은 무엇일까? 저는 늘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인과의 법칙이다. 부처님이 뭘 깨달았느냐? 연기를 깨달았다 하지 않습니까? 연기니 인연과니 전부 같은 맥락인데 인과의 이치를 몰라서 세상이 그렇게 어지럽습니다. 왜 공무를 집행하면서 그렇게 부정을 저지르고 함부로 그렇게 해서 나중에 들통이 나서 큰집에 가고 저런 지옥고통을 당합니까?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큰집에 갔다 하면 그 사람하고 인연되는 모든 사람들은요 전부 지옥 생활입니다. 전부 지옥생활이예요. 왜 그래요? 왜 그 많은 사람들이 지옥 생활을 하게 합니까? 그 사람이 인과의 법칙대로 살지 않고 인과를 무시하고 살았기 때문에 그래요. 인과를 무시하고 ‘아 나는 절대 잘못한 적이 없다’라고 하더라도 자기가 스스로 깨달았지 못했을 것이고, 설사 금생에는 잘못이 없다 하더라도 과거생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틀림없이 자기가 그런 지옥 생활을 할 만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불교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 아닙니까. 고통을 떠나서 낙을 얻자, 편안하게 살자는 거예요. * 진정 편안하게 살자면 인과(因果)의 법칙(法則)대로 살면 편안한 거예요. 인과의 이치대로 살면 편안한 거라. 그저 자기가 비록 자기가 욕심 때문에 어리석음 때문에 예를 들어서 벼싹이 겨우 올라오고 있는데 빨리 좀 커서 열매를 맺으면 안되겠나? 하는 그런 욕심 때문에 그걸 뽑아 놓습니다. 보리싹이나 밀싹이나 뽑아 놓으면 그게 어떻게 되겠어요? 우리가 모두 그렇게 살고 있어요. 그렇게 살고 있는 거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그거 뽑아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압니다. 이치가 아니예요. 인과법칙이 아니야. 세월이 가야되고 때가 돼야 되고 그래 돼야 추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그렇지 아니한 사람들은 모두 세상에서 죄짓고 지옥가고 큰집에 가고 하는 사람들은 전부 한마디로 말하자면 벼이삭을 미리 뽑아 놓는 일과 똑같은 거예요. 그런 사실입니다. 그래서 불교에 그 많고 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인과의 가르침을 우리가 철두철미하게 알아야 되고 우리가 세상을 향해서 부처님 법을 전할 때 인과의 법칙을 전해야 돼요. 인과의 법칙. 그래야 세상이 편안해 집니다. 부정부패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이고득락, 자기자신의 인생사에 있어서 이고득락이 됩니다. 다른 것 없어요. 길게 설명할 것 없습니다. * 그러한 이치를 철과해인(徹果該因) 그 결과에도 사무치고 원인에도 사무친다. 예를 들어서 우리가 간단하게 인과(因果) 인과 하고 인과의 법칙하고 또 인과 이야기 하면 마치 전설따라 삼천리 같이 옛날에 어떤 선비가 지나가다가 어쩌고 저쩌고 해서 결과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예요. 간단한 게 아니예요. 인과 우리 깊이 연구해야 돼요. 우리가 알고 있는 인과 그거는 사실 십분의 일도 모르고 있어요. 아무튼 그런 문제까지도 화엄경에서는 다 세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철과해인(徹果該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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