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40 에이커와 노새 1마리 (40 acres and a mule) 는 남북전쟁이 끝난 후 자유를 얻은 흑인 노예들에게 지급될 보상금을 말한다, 40에이커 (약50평)는 농작물을 심을 땅이고, 노새는 쟁기를 끌어 토지를 경작할 터였다.
흑인들에게 보상조로 주어질 땅은 예전에 공식적으로 노예를 소유했던 백인지주 중 가구주들로부터 양도받은 토지 중 4분의1 (160에이커)에 해당하는 크기였으며, 1865년 육군소장 윌리엄 테쿰세 셔먼의 특별 야전훈령 15호(Special Field Orders No. 15) 결과로서, 사우스 캐롤라이나, 조지아, 플로리다의 근처 해안에 거주하던 흑인 가정들이 대상이었다. 셔먼의 명령은 "찰스턴과 남쪽섬들, 바다에서 약 48킬로미터 떨어지고 강 인근에 위치한 황폐한 밭, 플로리다의 성 존스 강의 서역"같은 장소를 명확히 지시하였다. 야전훈령에는 노새에 대한 언급이 전혀없지만 북군은 매우 흔하던 노새도 추가 지급하기로 했다. 연방과 주정부가 흑인들에게 지급할 자작 농장은 당시 미국 전체 농지 중 4분의 1규모에 달했다.
앤드루 존슨
1865년 6월, 1만명의 자유노예들은 조지아와 사우스 캐롤라이나에 위치한 1,600 km² 의 땅에 정착하였다. 얼마후 에이브러험 링컨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후계자인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셔먼의 훈령을 무효화했다. 대통령직을 승계한 앤드루 존슨은 전쟁 후 급선무가 남북의 백인들끼리 화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으므로 해방된 노예들을 위한 정책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는 남부의 재건을 주도하면서 국가의 조속한 정상화를 위해 반란군인 남부동맹군 지도자들과 대농장주들을 무더기로 사면시켜 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셔먼 소장의 특별야전훈령 15호를 통해 해방된 노예들에게 40 에이커씩 분배됐던 토지를 포함하여, 전쟁 중 연방군이 압류했던 모든 토지를 본래의 농장주들에게 되돌려 주라는 명령을 내렸다.
첫댓글흑인 입장에서는 악랄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론 현실적인 정책일수도 있죠 만일 셔먼의 정책이 계속 됐다면 남부는 끊임없는 토지분쟁과 흑인과 백인들의 극한반목 그 원인제공자(?)인 북쪽에 대한 반감이 겹쳐져서 사회통합이 엄청나게 늦어졌을수도 ...결국 소수인 흑인만 희생양이 된것이라능........
첫댓글 흑인 입장에서는 악랄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론 현실적인 정책일수도 있죠 만일 셔먼의 정책이 계속 됐다면 남부는 끊임없는 토지분쟁과 흑인과 백인들의 극한반목 그 원인제공자(?)인 북쪽에 대한 반감이 겹쳐져서 사회통합이 엄청나게 늦어졌을수도 ...결국 소수인 흑인만 희생양이 된것이라능........
셔먼이란 사람은 전쟁할 때는 '전쟁은 잔인할수록 일찍끝난다'라는 신조의 무자비하고 가차없는 사람이지만, 또 저런 면도 있었군요.
줬다 뺐다니 ㅡㅡ;;
그래도 앤드류 존슨은 무능한 쪽에 가깝죠. 제가 보기는 남북 백인의 협력 때문이 아니라 친 남부파의 인사 아닌가요? 그것 때문에 공화당에 의해서 식물 대통령이 되었다고 알고 있는데.
흑인 영화 감독 스파이크 리가 만든 영화사 이름이 그래서 "40에이커와 노새 한 마리"였군요.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앤드류 존슨은 연방주의자라는 것을 빼면, 완벽한 남부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