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의 여성 소설가 앨리스 먼로가 2013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캐나다 국적 작가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불리며, 그동안 총독문학상, 미국 전미비평가협회상, 오 헨리상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앨리스 먼로
캐나다의 여성 소설가 앨리스 먼로가 2013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캐나다 국적 작가로는 처음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앨리스 먼로는 ‘현대 단편소설의 거장’으로 불리며, 그동안 총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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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북 어워드 사전
단편소설의 대가인 앨리스 먼로가 별세 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녀가 쓴 작품은 자존심 외에는 읽지 못했지만. 작품을 읽고 나서
작가로서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술술 읽혀지는 문장은, 아무리 공부를 해도 따라갈 수도 없고
닮고 싶다고 해서 닮을 수 있는 경지도 아니었다.
오늘 앨리의 먼로의 벨세 소식을 기사를 통해 읽으며
그녀의 명복의 빌고 싶다.
자존심/엘리스 먼로
전쟁은 많은 희생자를 낳지만, 반대로 실업률을 줄이고 부를 창출 하기도 하고 몰락의 길을 걷기도 한다
또한 전쟁은 신 기술의 도입으로 실업자를 구직 활동에 끌어들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예나 지금이나 부를 좇아 불나방 처럼 불빛을 찾아 떠돈다.
이것은 인간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욕망을 투영 하는것 같다.
거기에 소설속 하자인 아이다의 아버지 인 은행장의 몰락은 한 집안을 무너뜨리고 회생 불가능하게 하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혼란한 시기인 전쟁에도 동원 되지 못하고 비슷한 또레의 사내들과 함께
어깨 동무 하지 못하고, 은행 장부인 부기를 다루는 나는 외롭다.
그는 언청이라 말을 많이 하는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래서 전쟁에 참가 하지 않고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에서
목숨은 부지 했지만, 사회에서 일상의 삶을 영위 하지 못하고, 어두운 곳에서 웅크리고 숫자와 씨름 하는 화자를 바라본다.
다른 사람의 신경을 쓰지 않고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간
자신의 할일만 하고 사는 것은 어떤것일까. 소설속 화자와 오나이다를 통해서 듣는다.
화자인 내가 아팠을때 오나이다의 간호로 몸이 회복 된후 오나이다는
나의 집에서 함께 살기를 희망한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의 눈 은
모두를 남과 여로 바라보기 때문인데 오다이다는 함께 살아도, 문제 될거 없다는 식이다.
이때 나는 살짝 불쾌하다. 그러나 나는 자신이 언청이기에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 하지 못한다.
사람은 늘 자신을 보호 하며 스스로 자존감을 가지고 살아야 할 듯.
외로운 두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 하지 못하고 각자의 생활을
꾸리는 장면이 아쉽다.
언청이라는 신체적 결함을 가진 남자와 상류층 여성이 집안의 몰락으로
나이들어 혼자 살아가는 부분에서 서로의 결핍을 채워 주지 못한
심적 갈등이 아쉬움으로 남는 소설.
결국 소설은 소수자로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불편을 이야기 하는 것인지
그들만이 살아가는 방식의 방법인지 조용하게 지켜 볼 뿐.